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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67화 (67/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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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변화의 시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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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가면을 필두로 그의 직속 부하들이 현찬이 있는 게이트 내부로 진입했다.

몸이 통과하는 기묘한 느낌과 함께 부하가 걸려왔지만,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볍게 부하의 영향에서 벗어나 몸을 털어냈다.

신체에 가해지는 압박이 사라지고 느껴지는 것은 습하고 눅눅한 공기.

주변에 보이는 것은 얕게 낀 물안개와 종아리까지 잠기는 끈적끈적한 늪. 그리고 곳곳에 우거지게 자라나 있는 나무들이었다.

“웃기는 놈.”

철 가면의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것은 비웃음 소리였다. 철 가면도 바보는 아니다. 그는 현찬이 일부러 자신들을 이곳으로 불렀다는 것을 안다. 게이트 주변에 원래부터 있어야 할 협회의 사람들이나 군인들이 없는 것부터 이상한 느낌이 솔솔 났으니까.

‘감히 나를 유인하려고 들어?’

스스로 미끼가 된다는 배짱은 인정한다만 너무나도 지나친 만용의 결과를 어찌 감당하려는지.

철 가면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게이트 바깥,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협회의 헌터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 정도는 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척후 능력이 뛰어난 새 가면의 부하 몇 명을 차출해 데려왔으니까.

‘네놈의 생각대로 흘러간다고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철 가면은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누구보다 강현찬이라는 인물에 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가 아는 현찬은 정말로 강하며, 심지어 머리까지 잘 굴러간다. 보통 자신의 힘만 믿고 까부는 고랭크 헌터들과는 달랐다.

철 가면은 이것이 현찬의 함정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그는 당당하게 왔다.

왜냐?

그는 그만큼 자신의 힘에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함정을 파 놓았다고 하더라도,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전부 무너지기 마련.’

철 가면은 자신의 힘에 관해 자부심이 넘쳤다. 실제로 그가 따르는 자를 모시는 사도 중에서도 실질적인 전투력으로는 철 가면이 톱3 안에 들 정도로 강했다.

이 게이트 내부에 처음부터 다른 협회의 헌터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유명한 홍야차 황설영까지 있다 하더라도 철 가면은 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귀찮게 하는 녀석들을 한 번에 모두 정리할 수 있다면 그쪽을 더 선호했으리라.

비록 사도인 자신이 직접 나서는 시점에서 은밀하게 움직여야 하는 철칙 따위는 개나 줘버렸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처리하기로 다짐했다. 그렇기에 혼자서 오지 않고 자신의 직속 부하들을 이끌고 오지 않았던가.

‘네놈이 대체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지 모르겠지만, 전부 다 박살을 내주마.’

철 가면이 그렇게 으르렁거리는 순간 자신들의 뒤에 있는 게이트를 통해 새로운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응?’

철 가면은 갑자기 들어온 자들을 보며 가면 아래 눈썹을 찌푸렸다.

‘저것들은 또 뭐야?’

&

“여기다.”

김현호는 자신의 등 뒤에 도열한 10명의 인원을 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자신의 명령만을 기다리는 <기파랑>들을 보며 김현호는 괜히 뿌듯해지는 기분이었다.

‘이 녀석들이라면 충분히 그 애송이를 죽일 수 있다.’

화랑 클랜의 그림자에서 활동하는 <기파랑>은 확실히 영랑의 리더인 김현호가 보아도 장난 아니었다. 비록 개개인의 무력은 A랭크 헌터인 김현호 본인보다 약할지라도 이들이 뭉친다면 아무리 A+랭크 헌터라도 상대할 수 없었다.

몬스터가 아닌 사람을 잡는 데 특화된 헌터들. 대인전에 능숙하고 상대방의 허점을 찌르며 자비심이 없다. 무엇보다 이기기 위한 싸움을 해서 한 사람에게 여럿이 공격을 가하는 합공도 매우 뛰어나다.

거기에 더해서 A랭크 헌터인 김현호까지 더해진다면 아무리 최근 상승 가도를 달리는 현찬이라고 할지라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때마침 하늘도 나를 돕고 있어.’

게이트 주변에는 놀랍게도 관리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비록 이 근처에 게이트가 이곳 하나뿐이라고 할지라도 어지간한 게이트에는 군인들이나 혹은 헌터 협회의 공무원 헌터들이 돌아가면서 관리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이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오히려 귀찮은 일이 줄어들어서 다행이로군.’

이곳에 사람이 있었으면 먼저 정리할 생각이었다. 이미 오기 전에 주변의 CCTV는 <기파랑>의 부대원들이 모조리 정리했기 때문에 목격자만 제거한다면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도 없으니 김현호의 처지에서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기분이었다.

“…….”

기파랑들은 얌전히 있었다. 그들은 이상하리만큼 잘 조성된 이 환경에 관해 의문을 품었지만, 그 이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명령을 내린 대로 움직이는 사냥개일 뿐이었으니까.

“들어간다.”

김현호가 앞장서 들어가자 그 뒤를 따라 기파랑들도 줄줄이 게이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생기는 부하를 떨쳐내고 나서 그들이 가장 먼저 본 풍경은 바로 정체를 알 수 없게 로브를 푹 뒤집어쓴 수십 명의 사람이었다.

“이건 또 뭐야?”

&

“어라?”

현찬은 늪에 뿌리내리며 거의 10여 미터 가까이 성장한 나무의 꼭대기에 서서 게이트 입구를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저건 또 뭐야?”

원래 생각했던 정체불명의 조직이 들이닥치는 것은 이쪽이 바라던 바였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의도치 않은 제3의 조직이 개입하는 것은 현찬이 예상하던 바가 아니었다.

[저 녀석, 예전에 봤던 그 재수 없는 놈이잖아?]

헤르메스의 말에 현찬이 눈에 힘을 주고 자세히 확인을 해보니 확실히 뒤에 들어온 조직의 선두에 그때 보았던 화랑 클랜의 왕재수인 김현호가 서 있었다. 완전무장한 그의 뒤로는 딱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사람 10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저 사람은 여기에 왜 온 거지?’

현재 이 게이트는 협회가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그렇기에 다른 클랜에서 이 게이트로 올 일은 없었다. 게다가 이 [푸른 갈퀴 리자드맨 부락]은 어지간한 클랜들도 사냥하기 꺼리는 게이트이기 때문에 돈과 실적에 환장하는 화랑클랜이라면 더더욱 오지 않을 곳이었다.

[현찬아. 저 녀석, 어쩐지 반응이 심상치 않은데?]

[내 생각도 그렇다. 계약자여, 저 인간에게서 알 수 없는 적의가 흘러나오고 있다.]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말에 현찬은 상황이 대충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오호? 대체 왜 여기로 왔나 했더니 나를 노리는 거였어?’

현찬은 상대방의 적의를 읽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저쪽에서 이렇게 나타났다는 것은 무언가 나쁜 의도를 지녔다는 뜻. 설마 타이밍이 이렇게 공교롭게 겹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현찬에게 있어서 이 상황이 반가워지는 건 바로 김현호의 패거리와 철 가면의 패거리가 서로 대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두 집단의 목표가 현찬임은 같았지만, 서로에 관해서 모르는 것도 있고 둘 다 목격자는 없애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저들의 주변은 마치 칼바람이라도 몰아치는 것처럼 긴장감이 넘쳤다.

‘상황이 이쪽에 좋게 흘러가네.’

혹시나 했던 화랑 클랜이 이런 타이밍에 들이닥칠 줄 몰랐다. 그야말로 천운(天運)이 따라준다고 해도 좋았다.

헤르메스는 이 상황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지난번 감은장아기의 축복 때문인가.]

온갖 길흉화복을 관장하며 나타나기만 해도 그 주변에 행운이 폭풍처럼 휘몰아친다고 알려진 <감은장아기>의 축복은 현찬에게 확실하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것도 좋은 쪽으로.

당장에 지금만 해도 현찬을 적대하는 두 세력이, 의도치 않게 이 자리에서 서로 충돌하기 직전이지 않은가.

행운의 여신이 준 축복은 절대로 우스운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순리’를 거스르면서까지 나타난 여신의 축복은 그보다 더하다.

언제나 행운이 따르지는 않겠지만 현찬에게 중요한 순간 혹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는 분기점에서 그 행운의 축복이 확실하게 제구실을 할 것이다.

‘이거 잘만 하면 이 상황을 이용 해먹을 수 있겠는데?’

서로 대치하는 두 조직은 딱 봐도 터지기 일보 직전의 폭탄과도 같았다.

당장이라도 칼을 뽑을 것처럼 무겁게 흘러넘치는 폭풍 전의 고요함!

한계까지 벼려진 저들의 날카로운 신경을 건드리는 사소한 요소 하나만 개입하더라도 저 두 조직은 서로를 향해 득달같이 이빨과 발톱을 들이밀 것이다.

숫자는 철 가면의 조직이 훨씬 더 위였다. 단순히 머릿수만 보더라도 철 가면 쪽은 30명 정도는 되었는데 김현호 쪽은 그를 포함해서 11명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초보자가 보는 시선이었다.

실제로 보면 김현호의 뒤에 나열한 10명은 30명을 상대로도 절대로 꿀리지 않았다. 그들은 특유의 무언가가 있었다. 현찬은 그것이 무엇인가 했더니 예전에 자신을 노리고 찾아온 리 쉔푸와 가토 타츠야가 떠올랐다.

저들은 사람 죽이는 훈련을 받은 살인의 프로들이었다.

일명 헌터 킬러들.

헌터들을 죽이는 녀석들이기에 그 실력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잘 됐어.’

현찬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면 보는 입장에서는 재미가 없지 않은가. 서로 비등비등해야 더욱더 치열하게 싸울 거고 둘 중 하나가 이긴다고 하더라도 이긴 쪽도 피해가 막심할 것이다.

‘저들을 동정할 필요는 없지.’

자신을 노리고 찾아온 놈들이다.

이 자리에 들어선 순간부터 김현호의 패거리나 철 가면의 조직원들은 현찬의 적이 된 것이다.

현찬에게는 그런 놈들에게 베풀어 줄 자비가 없었다.

현찬은 지체없이 적당한 크기의 나뭇가지 두 개를 꺾었다.

&

‘젠장. 이놈들은 대체 뭐지?’

‘저것들은 또 갑자기 뭐야?’

철 가면과 김현호는 말없이 눈동자만 굴리며 상대방의 실력을 가늠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마주친 순간부터 둘이 싸우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렇기에 싸운다면 최대한 자신 쪽의 피해를 줄이면서 싸워야 했다.

‘놈이 먼저 움직이기 전에 친다.’

‘저놈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공격해야 한다.’

둘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쐐애액! 습기가 가득한 공기를 가르며 무언가가 각자 철 가면과 김현호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것은 끝이 날카롭게 자란 나뭇가지였다. 하지만 말이 나뭇가지지 거의 나무로 만든 창에 가까웠으며 날아오는 속도나 실린 힘도 범상치 않았다.

김현호와 철 가면은 동시에 날아오는 나무창을 각자의 무기로 쳐냈다.

김현호는 들고 있던 창으로, 철 가면은 두 손에 낀 건틀릿으로.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냐는 생각 따위는 필요 없었다.

조금 전의 그 행동으로 늪지대를 가득 채우던 긴장의 끈이 그대로 뚝 끊어지고 말았으니까.

바람을 잔뜩 불어넣은 풍선에 바늘을 가져다 댔으니 그 결과는 당연히 폭발이다.

“이런 젠장! 쳐라!”

“목격자를 넘기지 마라!”

철 가면과 김현호의 외침과 동시에 대기하던 두 조직이 결국에 무기를 빼 들고 서로 충돌했다.

“오. 잘 싸우는데?”

[그러게 말이야.]

현찬과 헤르메스는 나무 위에 걸터앉아 멀리서 펼쳐지고 있는 치열한 싸움을 신명나게 구경했다.

[하아.]

아테나는 그런 현찬과 헤르메스를 보며 몇 번째인지 모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원하던 계약자는 아무리 많은 적이 있더라도 용감하게 나서서 맞서 싸우는 영웅이었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현찬과 계속 지내다 보면 저렇게 지나치게 효율적인 방법 때문에 맥이 빠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게 더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아무렴, 그녀라고 모르겠는가. 이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게 적들을 쓰러뜨리는 방법인데.

그런데도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은 이 아쉬움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뭐.

‘싸움 구경하는 건 역시 재밌네.’

아테나도 은근히 헤르메스와 현찬에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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