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66화 변화의 시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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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호에게 허락된 것은 화랑 클랜의 비밀 조직인 <기파랑>의 10명뿐.
하지만 그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기파랑은 사람 죽이는데 특화한 녀석들이다. 그 애송이가 아무리 나와 같은 등급에 있다고 하더라도 잘 쳐줘 봐야 나와 동급. 여기에 10명의 기파랑이 끼어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솔직한 그의 거만한 심정으로는 혼자서도 충분히 현찬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찬이 A랭크에 올라온 건 비교적 최근. 자신은 이미 A랭크에 올라오고 나서 몇 년 동안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싸움 감각을 키워왔다. 레벨이나 스텟, 전투 경험 면에서는 이쪽이 월등히 우위에 있는 것이 당연했다.
물론 일반적이라면 그랬으리라.
현찬의 진짜 능력을 모르는 김현호는 그렇게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것이 자신을 옥죌 늪이 될지도 모르는 채.
‘하지만 역시 가장 큰 걸림돌은 녀석과 계약을 맺은 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건데.’
김현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어찌 되었든 어차피 녀석은 A랭크의 헌터일 뿐이다. 영령과 계약을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제대로 능력 활용도 못 할 거야. 여기서 <기파랑> 10명만 있으면 충분히 제거할 수 있다.’
모두의 관심을 받는 신급 영령의 계약자라 주변의 시선이 모여들고 있지만 언제나 빈틈은 존재하는 법이다. 그것이 근거가 없다고 할지라도 김현호에게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미 분노로 머리의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그는 자신의 계획은 반드시 성공한다고 애써 합리화를 하고 있었으니까.
김현호는 속으로 어떻게 현찬을 죽일지 고민을 하면서 클랜의 빌딩을 나섰다.
빌딩 최고층, 클랜장 실. 그 유리창 너머에서 최덕현은 김현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무겁게 가라앉은 눈동자는 벌레처럼 작게 보이는 김현호의 모습을 담았다.
‘쯧. 자존심 탓에 그야말로 눈이 돌아가 버렸군.’
실패나 좌절을 모르고 산 자의 특권이 아닌 특권이었다.
스스로가 졌다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는 비대해진 자아 탓에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지 이성적으로 판단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어차피 말려봤자 듣지도 않을 테니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말라는 의미에서 기파랑을 10명이나 붙여주기는 했지만.’
아마 십 중 팔구로 현찬에게 덤벼들었다가 호되게 당하는 미래만 보일 뿐이었다. 그는 바보가 아니다. 이 자리까지 올라오기 위해서 악독한 짓을 많이 저질렀지만 그런데도 이렇게 떵떵하게 사는 것은 최덕현이 교활한 면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와 계약을 맺은 영령의 힘이기도 했다.
<흥무대왕(興武大王) 김유신(金庾信)>
모든 화랑의 최정점이자 신라 시대에서 견줄 자가 없다고 평가되는 아주 뛰어난 인물.
영웅급 영령인 김유신과 계약 맺은 최덕현이기에 그는 사리를 잘 읽으며 세태에 관한 흐름을 인지하고 있었다.
‘강현찬. 녀석은 이제 애송이가 아니야. 이미 루키 수준도 넘어섰어. 그리고 앞으로도 더 성장해 나가겠지.’
어쩌면 그와 동등한 S랭크 헌터 자리까지 올지도 모른다. 아니, 오히려 신급 영령의 계약자임을 고려하면 다른 나라의 신급 영령의 계약자들처럼 오버랭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최덕현은 지난 해묵은 감정을 모조리 털어냈다.
해묵은 감정이랄 것도 없었다. 애초에 그는 현찬에게 적대심을 느낀 적이 없었으니까. 조금 건방지다고 생각을 했을 뿐. 그 생각은 이제 완전히 바뀌었다.
그를 적대하면 이쪽이 손해다.
자존심이 상했다고 상대의 역량도 가늠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이빨을 드러내는 녀석은 삼류다.
그는 일류이길 원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렇기에 현찬과 친해지지는 못하더라도 이 이상 적대는 할 생각이 없었다.
‘아쉽군. 나름 쓸 만한 녀석이어서 키웠는데 너무 오만해졌어.’
그는 김현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가진 바 재능이 뛰어나서 키워줬는데 하룻강아지가 너무 기고만장해 져서는 자신보다 더 뛰어난 자도 알아보지 못한 채 이를 드러내며 컹컹 짖는다. 최덕현은 개의 주인으로서 그는 개를 보듬기보다 버리는 걸 택했다.
‘이쪽과는 연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녀석을 일단 제명해야겠어.’
이는 최덕현 그만의 뜻이 아닌 그와 계약을 맺은 김유신의 뜻이기도 했다.
[부하들을 아끼는 것은 좋지. 하지만 언제나 감싸고돈다면 결국에는 그 사소한 정 때문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만다. 승리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살아남는 것은 생각해야 하니, 살기 위해서는 자존심마저도 버릴 수 있어야 하는 법.]
김유신은 자기희생적인 영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보다는 매우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지략가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그는 삼국시대에서 신라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냉정한 결과를 내릴 수 있었고 최덕현 또한 그 영향을 받아 같은 사고를 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사리면서 행동해야겠군.’
최덕현은 상대해야 할 자가 많았다.
협회가 대표적이었고 다른 5대 클랜들 또한 경쟁자들이었으니까. 여기서 현찬마저 적으로 돌리면 귀찮은 수준이 아니라 매우 상황이 이쪽에 불리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컸다.
이미 그는 혼자서 어지간한 중소 클랜 이상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으니까.
‘일단 내부를 더욱 조율해야겠군. 괜한 잡소리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야.’
영랑 리더의 자리가 비겠지만 그 자리를 대체할 인원은 얼마든지 있다.
최덕현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고급 외제 차를 타고 떠나는 김현호를 보았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며 복종을 맹세했던 김현호를 바라보는 최덕현의 시선은 매우 차갑고 예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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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로군.’
철 가면의 남자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 가면이 실패하고 나서부터 그는 강현찬이라는 인물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서 그를 제거하려고 했다.
그분의 명령이 있어서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하지만 방법은 많았고 철 가면은 다른 녀석들을 이용해서 현찬을 노렸다.
하지만 전부 다 실패했다.
특히 데스페라도에서도 강자로 불리는 악마 <푸르카스>의 계약자마저 패배할 줄은 몰랐다.
어디 그뿐인가. 최근에는 협회에 심어 놓았던 첩자들이 색출 당하기까지 한 것이다. 협회 내부를 몰래 염탐하는 역할을 맡은 그로서는 그야말로 뼛속까지 아리는 커다란 실책이었다.
‘어차피 놈들에게는 진실을 말하려는 순간 죽는 금제를 걸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될 게 없지만 그렇다 쳐도 공들여서 겨우 내부에 투입한 녀석들인데 아쉽게 됐어.’
철 가면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임무를 실패한 것도 있지만, 그런 그를 더욱 처참하게 만드는 것은 소식을 듣고 자신을 비웃을 게 뻔한 다른 사도들이었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그분이 내린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철 가면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이 실책을 무마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의 몸이 덜컥 멈추었다.
딱 하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강현찬.’
신급 영령의 계약자. 최근에 가장 주가가 오르고 자타공인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헌터였다.
‘전부 녀석 때문이다.’
그분께서 맡긴 일들이 틀어지게 된 것도 강현찬으로부터 비롯된 일이었다. 그래. 철 가면은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문제였다. 녀석이 모든 일의 근원이었으며 자신들의 대업을 막고자 하는 최악의 장애물이었다.
“내가 직접 나설 수밖에.”
그분께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만, 철 가면은 고개를 저었다.
그분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그로서도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분을 향한 충성심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그는 명령을 어겨서라도 현찬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이상 놔둔다면 나조차도 손댈 수 없게 된다.’
그 전에 제거해야만 했다.
철 가면은 자신의 직속 부하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목표인 현찬을 죽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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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참 지독한 놈들이네.’
현찬은 김은혁에게 사로잡혀 포박당한 다섯 명의 스파이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놈들의 소속이 어디인지, 무슨 목적으로 협회에 숨어들어 왔는지, 그 조직의 정체는 무엇인지.
물어볼 것들이 아주 많았음에도 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왜냐하면, 다섯 명 전부 다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으니까.
[설마 이런 독한 금제를 걸어놨을 줄이야.]
“그러게 말이야. 그럴 줄 알았으면 바로 궁예의 힘을 빌려서 정보를 캐낼 걸 그랬어.”
물론 강력한 금제는 마음을 읽는 관심법에도 반응하여 발동하겠지만 그 짧은 틈새 사이로 소량이나마 정보를 긁어모을 수 있다면야 당연히 이 방법을 취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결국에는 아무런 소득 없이 겨우 잡아놓은 스파이들이 죽고 말았지만 말이다.
특히나 김은혁이 너무나도 아쉬워했다. 게다가 현찬에게 미안해하기도 했고. 애써 좋은 자리 마련해주며 정보를 팔아넘긴 스파이들을 색출해 냈는데 제대로 된 이득도 없이 유일한 증인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현찬은 애써 괜찮다며 은혁을 위로해 주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뭐.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애초에 그런 녀석들에게 정보를 캘 필요가 없었지.”
[맞는 말이야.]
현찬의 느긋한 말에 헤르메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찬의 말에 동조했다.
아테나는 그저 입을 다문 채 묵묵히 둘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어차피 언젠가 녀석들이 나를 노릴 테니까. 그렇지?”
[그럼. 물론이지. 녀석들이 과연 너를 가만히 내버려 둘까?]
이미 세상의 관심이 쏠리고 있었기에 현찬은 흐름상 반드시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은 점차 강해지면서 발전해나가는 현찬의 감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감은장아기>의 축복 이후로 감이 부쩍 예민해진 현찬은 오늘 내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러한 예상은.
언제나 틀리지 않았다.
[역시나. 오고 있구나.]
헤르메스의 말과 함께 자리에 앉아서 쉬고 있던 현찬이 몸을 일으켰다.
그런 현찬의 주위로는 몬스터들의 사체가 즐비했다.
현재 현찬이 머무르고 있는 공간은 바로 A랭크 헌터들만 들어갈 수 있는 던전 [푸른 갈퀴 리자드맨 부락]
늪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습한 공기가 피부에 집요하게 달라붙는 이 공간에는 이미 피를 철철 흘리며 늪 곳곳에 반쯤 잠긴 리자드맨의 사체가 가득 차 있었다.
“어째 불안한 예상은 전혀 틀리질 않는단 말이지.”
[그러게 말이야. 정말 너무 고난과 역경만 가득한 거 아닌지 몰라.]
둘의 대화를 보다 못한 아테나가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조금 전부터 계속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너희 둘은 최소한 입에 침 정도는 바르고 거짓말을 해라. 보는 사람으로서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구나.]
[뭐야. 아테나. 또 뭐가 불만인데?]
[불만이고 자시고.]
아테나는 가느다란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표정을 작게 찌푸렸다.
[애초에 함정을 파 놓고 이렇게 대기하고 있으면서 마치 피해자인 척, 몰랐다는 척하는 꼴이 질 나쁜 연극을 보는 것 같다.]
그녀의 말 대로였다.
현찬은 지금 자신을 노리는 자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저들이 이 게이트 내부로 들어온 것도, 현찬이 사전에 이 주변에 사람들이 오지 않도록 최면을 걸어 사람들을 모두 내보낸 것도, 김은혁과 황설영의 도움을 받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헌터들이 멀리서 대기하게 한 것도.
모두 현찬의 머릿속에서 나온 계획이었다.
[대체 그런 것들은 또 어떻게 알고 이렇게 대비를 잔뜩 했는지…….]
거의 푸념에 가까운 아테나의 말을 주워들은 현찬이 별거 아니라는 투로 대답했다.
“뭐. 이쪽 나름의 능력이라는 거지. 애초에 이런 야밤에 노리는 놈들이 잘못 아니야?”
각종 다양한 정보를 관장하는 헤르메스의 권능이 담긴 <헤르메스의 눈>
현찬은 스파이 5명이 죽기 전에 이 <헤르메스의 눈>으로 녀석들의 소소한 정보를 잡아냈다.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읽어낼 수 없었지만, 한 가지 알아차린 정보가 있었으니 바로 그들이 속한 조직에서 조만간 현찬을 노린다는 것이었다.
현찬은 거기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저쪽에서 정확히 언제 노리는지 확정이 나지 않는다면, 이쪽에서 그것을 유도해주면 그만이라고.
그렇게 현찬은 스스로가 미끼가 되어 놈들이 자신을 노릴 수 있도록 주변의 환경을 조성했다.
“자, 와라.”
현찬은 멀리서 느껴지는 게이트 입구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