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65화 희대의 사기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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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이 김선달>
무과에 급제하여 선달이라는 칭호를 얻은 그는 가진 바 능력이 몇 가지 주술과 도술밖에 없으며 그 영령으로서의 격 또한 아주 높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어떠한 영령들에게도 견줄 수 없는 최고의 업적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사기>에 관한 부분이었다.
나름 무과에 급제했을 정도라 기본적인 전투 능력도 있고 전국 팔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것들을 익혀 다채로운 재주를 지녔지만, 전투력은 조금 유명한 왕급 영령에도 밀리는 것이 현실.
하지만 사기에 관해서는 다르다.
영령 <봉이 김선달>의 스킬 중 하나가 그런 부족한 김선달의 능력을 최고치로 끌어올려 주기 때문이다.
스킬 <허언구현(虛言具顯)>
김선달이 지닌 최강의 기술.
능력은 간단하다. 이 스킬을 사용하는 시전자 일정 범위 내의 사람들이 김선달이 하는 <거짓말>을 믿을 때 그 거짓말이 현실처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조금 전에 김은혁이 속인 자들은 협회 내부에서 암약하고 있던 스파이들.
이 다섯은 김은혁의 거짓말에 속아서 김은혁을 현찬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 순간 <허언구현(虛言具顯)>이 발동하여 김은혁은 현찬과 비슷한 무력을 발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단한 능력이야. 하지만 한계 또한 명확하지.]
물론 <허언구현(虛言具顯)>이라고 해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신급 영령들 그 이상의 힘을 내겠지만 이 능력은 그렇게나 초월적이고 대단할 정도는 못 된다.
우선 거짓말이 현실에 구현되는데 범위가 존재한다.
사용자로부터 100m 이내에만 그 힘이 미치는 일종의 결계 같은 능력이다.
그리고 세계에 영향을 주는 기본적인 <상식개변>같은 수준까지는 구현이 불가능하다. 아니면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힘을 얻는 것도 불가능.
실제로 김은혁 지금 펼치고 있는 무력은 김은혁이 엘리트 오크 부락에서 보았던 현찬의 무력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아무리 김은혁이 현찬이라는 인물로서 둔갑하여 힘을 펼친다고 해서 <헤르메스>의 힘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김은혁이 직접 본 <항우>의 힘을 빌린 현찬과 비슷했다. 즉, 김은혁이 아는 강현찬의 힘은 결국 지금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그리고 가장 큰 약점은.
[상대방이 정신력이 강하고 의심이 많아서 거짓말을 믿지 않을 때는 아무런 소용이 없겠어.]
<허언구현(虛言具顯)>은 결국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속아 넘어간다는 전제하에 발동하는 스킬이다.
상대가 속지 않는다면 당연히 발동하지 않는다.
아스팔트가 녹을 것 같은 뜨거운 여름에 눈이 내린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지당하게도 상식을 넘어서는 거짓말은 기본적으로 먹히지도 않고 결국 여러모로 발동하는 데 제약도 있으며 조건도 까다로운 스킬이다.
하지만 발동만 한다면, 그것도 능력을 아주 잘 활용만 한다면 매우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는 능력이기도 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그렇기에 김은혁은 높게 쳐져도 왕급 정도밖에 되지 않는 영령과 계약을 맺었음에도 S랭크 헌터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을 김은혁은 현찬에게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투콰앙! 김은혁에 손을 저을 때마다 사람이 물수제비처럼 바닥에 튕기며 나무에 부딪친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근력이다. 저것이 바로 <항우>의 힘을 빌린 현찬을 형상화한 김은혁의 힘이었다.
협회 내부의 스파이들은 확실히 강했다. 잘 훈련했으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다섯이서 적 하나를 상대하기 위한 합공도 익혔다. 어지간한 A랭크 헌터라 할지라도 제대로 된 대인 전투 경험이 없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은혁은 달랐다.
그는 협회에서 가장 강하다는 S랭크 헌터다.
당연히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 데 그는 엄청나게 노력하고, 오랜 시간 동안 단련해 그에 걸맞은 싸움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적들의 협공? 그는 그런 것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파훼했다. 기본적인 전력의 차이가 너무나도 심했다. 스파이들은 제대로 된 저항다운 저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바람에 휩쓸리는 낙엽처럼 이리저리 휘날렸다.
‘대단해!’
그 힘을 펼치는 김은혁도 속으로는 매우 놀란 상태였다.
그는 보통 <허언구현(虛言具顯)>을 사용할 때 ‘나는 강하다.’라는 거짓말을 사용하여 스스로의 전투 능력을 강화한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S랭크 헌터의 이름값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보유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강현찬 헌터다.’라는 거짓말은 자신이 지금까지 다루던 거짓말들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몸에서 끓어 넘치는 이 뜨거운 힘. 무기를 허공에 휘두르기만 해도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지는 착각이 들 정도로 폭풍이 몰아친다.
그가 현찬을 보고 느꼈던 힘을 자신의 몸에 적용한 것이기에 당연히 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은혁에게 있어서 더 놀라운 점은.
‘이렇게나 강한 힘을 휘두르고 있는데도 그때 보았던 강현찬 헌터에 비하면 내가 부족하다.’
그 정도로 영웅급 최상위 영령 <항우>의 힘은 대단했다.
다만 김은혁은 현찬이 <항우>의 힘을 빌린 것을 모른다. 헤르메스의 능력 때문에 기본적인 정보가 차단되어 알고 싶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그는 현찬이 너무나도 강하다는 것만 인지하고 있을 뿐.
김은혁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맺어졌다.
‘역시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어!’
김은혁은 현찬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와 친해지고 싶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를 만나서 그의 힘을 본 것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세상은 넓고 그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은 많았다.
‘조만간 최단기간 S랭크 헌터 또한 탄생하겠네.’
그렇게 된다면 또 얼마나 재미있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날지 생각만 해도 두근거렸다.
“죽어라!”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손을 휘두르자 강렬한 소용돌이 세 줄기가 김은혁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교묘하게 허공에서 뒤틀린 듯이 움직이는 소용돌이가 그대로 김은혁의 몸을 찢어버리려는 순간 김은혁의 발이 움직였다.
슈슉.
그의 다리가 흐릿하게 변했다가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정확히는 너무나도 빠르게 움직여서 그의 다리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 잔상을 남기며 움직인 김은혁은 정확하게 세 번의 발차기를 날려 소용돌이를 깨부쉈다.
“뭣?!”
당황하는 남성에게 날아드는 것은 김은혁의 주먹이었다. 그가 눈을 한번 깜빡이는 순간 이미 10m가량 떨어져 있던 김은혁이 턱밑까지 접근하여 어퍼컷을 날린 것이다. 김은혁의 주먹은 바람을 가르고 그대로 남자의 턱을 올려 쳤다.
퍼억! 깔끔한 소리와 함께 남자가 몇 미터를 튕겨 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싸움은 그렇게 길게 이어나가지 못했다. 현찬을 흉내내는 김은혁은 그야말로 패왕의 힘을 선보이며 놈들의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그대로 때려 눕혔으니까. 기절해서 바닥에 대자로 뻗은 스파이들을 보며 현찬이 은혁에게 다가왔다.
압도적인 싸움.
현찬은 자신의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보여주고 싶다는 거 잘 봤어요. 멋진 능력인데요?”
현찬의 칭찬에 김은혁은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뭐, 별 볼 일 없는 잡기술일 뿐이에요.”
“S랭크 헌터가 자기 최고의 스킬을 잡기술이라고 하는 것도 웃기네요.”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영령, 그거 맞죠?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봉이 김선달>”
“뭐, 이렇게까지 보여줬으니 속일 수는 없겠죠. 네. 맞습니다. 이게 바로 제 영령이죠.”
현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은혁이 어째서 자신의 정체를 숨겼는지 그 이유를 이해했다.
사기꾼에게 정체가 탄로 나는 것보다 더 끔찍한 것이 있을까. 모두를 속여야 자신이 더욱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그의 특성상 자신의 영령부터 시작해서 각종 사소한 정보를 모두 감춰야만 했다.
그래야 김은혁에 관해 모르는 상대방은 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일단 속아 넘어갈 테니까.
“제게 이런 걸 밝혀도 되는 건가요?”
“그런 분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그런 거예요.”
게다가, 라며 김은혁이 말을 이었다.
“강현찬 헌터님의 영령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류는 동류를 알아보는 법이죠. 제 영령이 조금 전부터 계속 그쪽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데 당연히 믿을 수 있지 않겠어요?”
자신과 계약을 맺은 영령이 사기꾼임에도 김은혁은 그를 믿었다.
왜냐하면, 김선달은 그의 동료니까.
현찬도 그 기분을 모르는 게 아니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도 잘 지내보죠.”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해요.”
현찬과 김은혁은 서로 악수했다.
도둑과 상인, 사기꾼을 관장하는 신 헤르메스의 계약자.
사기꾼들 사이에서도 전설로 취급받는 김선달의 계약자.
그야말로 인류 역사상 최강의 사기꾼 듀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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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어먹을.”
화랑 클랜의 A랭크 헌터이자 차기 클랜 유망주인 김현호는 인터넷에 도배되다시피 한 현찬의 기사를 보며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빌어먹을 애송이 녀석이 벌써 나와 같은 자리에 올라왔다고?”
김현호는 그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첫 만남 때부터 그는 현찬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기 화랑 클랜의 유망주로 백한겸을 뽑은 것이 바로 김현호였다.
영웅급 영령인 <조홍>의 계약자인 그라면 화랑 클랜에 들어오더라도 승승장구 할 수 있을 테고 그렇게 된다면 그를 추천하여 뽑은 김현호도 클랜 내부에서 지분이 상당하게 높아지기 때문이다.
백한겸의 성격이 개차반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애초에 이 바닥은 인성보다는 실력이 모든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한 김현호는 그대로 놔두었다. 하지만 설마 그런 백한겸이 자신의 동기에게 두들겨 맞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당연히 영상은 이미 퍼질 대로 퍼졌고 백한겸은 온갖 욕을 먹었다. 백한겸을 추천한 김현호 또한 피할 수 없었다. 같은 클랜 내부에서 신라사선(新羅四仙) 중 다른 부대인 술랑(述郎), 남랑(南郎), 안상(安詳)의 리더에게 조롱당한 걸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렸다.
그러니 이 일의 근원인 현찬을 좋아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을 이 꼴로 만들어준 현찬을 죽여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현찬은 오히려 그런 김현호에게 보란 듯이 승승장구하며 그와 동등한 자리까지 올라왔다. 아니, 지금 동등할 뿐이지 시간이 흐른다면 그는 김현호조차도 올려봐야 할 정도로 높은 자리까지 계속 상승하리라.
으득!
김현호는 이를 갈았다.
그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A랭크 헌터가 되고 돈을 많이 번 그의 비대해진 자존감이 누군가에게 패배한다는 사실을 절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허영심으로 가득 찬 그의 이기적인 마음은 스스로 부족함을 인지하는 대신 오히려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계속 놔두면 녀석을 더는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생각을 품고 자신의 클랜장인 최덕현에게 현찬을 빨리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조금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최덕현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그의 예상과 한참을 동떨어진 것이었다.
‘놔둔다. 더는 우리가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애송이가 아니야. 여기서 우리가 무언가 했다가는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바로 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게 기파랑을 이끌 권한을 주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남들 몰래 녀석을 제거하고 오겠습니다.’
‘기파랑을 이끌 권한은 주지. 다만 움직일 수 있는 녀석들은 최대 10명으로 제한하고 여기서 내 소관은 전혀 들어가지 않은 거다. 만약에 걸려도 모든 죄는 네가 다 떠맡게 될 거야. 이건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다.’
‘상관없습니다.’
김현호는 그 말을 남기고 클랜장의 방에서 나왔다. 이성적인 최덕현은 현찬을 더 건드리지 말고 가까이 지내지 못하더라도 적대하지 말자는 주의로 갈아탔다. 그는 그것이 못내 못마땅하여 가슴 깊은 곳에서 화가 근질근질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반드시 죽여주마!’
김현호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