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63화 엘리트 오크 부락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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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패왕 <항우>의 기세에 엘리트 오크들이 일순 움찔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크게 저으며 나약한 감정을 떨쳐내더니 목에 핏대 세우며 고함을 내질렀다.
100마리 오크가 동시에 내지르는 고함이 재차 현찬의 몸을 강타했지만, 현찬은 마치 산들바람이라도 부는 것처럼 눈을 감은 채 가볍게 소리를 흘려냈다. 그리고 어디 더 해보라는 듯 두 손을 벌리며 가슴을 활짝 폈다.
그야말로 엘리트 오크들의 자존심의 밑바닥까지 박박 긁는 광오한 도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엘리트 오크들은 안 그래도 흉악한 얼굴을 더욱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 그중에서 가장 격하게 반응하는 것은 역시나 보스 몬스터인 오크 족장.
쿠와아아아!!
녀석은 현찬에게 도끼를 향하며 고함을 내질렀고 그 명령에 엘리트 오크들은 모두 거친 콧김을 내뿜으며 현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럼 가볼까요?”
[하하하! 나야 언제든 환영이지!]
항우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 끓어 넘치는 힘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갑니다.”
현찬 또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엘리트 오크들을 마주 보며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그 속도는 엘리트 오크들보다 월등히 빨랐고 그리고 육체에 내포된 힘은 훨씬 더 강했다.
꽝!
가장 선두에서 달려오던 엘리트 오크가 현찬의 몸통과 충돌하자 볼링 핀처럼 허공을 팽그르르 돌면서 뒤로 튕겨 나갔다. 그것은 근처의 오크들도 마찬가지였다. 현찬의 강력한 몸통 박치기를 견디지 못하고 뒤로 넘어지거나 날아간 오크들의 숫자가 무려 열 마리나 되었다.
전열이 붕괴하고 항우를 등에 업은 현찬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하하하! 뜨거운 전장이 나를 부르는구나!]
현찬이 쥐고 있는 검이 모습을 바꾸었다. 검은 도신은 색이 바뀌며 시리도록 푸른빛을 띠었고 그 길이가 더욱 길어졌다.
항우가 사용했다는 세 자루의 보검 중 하나인 태아(泰阿)검.
셀 수 없이 많은 한나라 병사를 벤 그 검이 엘리트 오크들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촤아악!
현찬을 중심으로 거대한 피 보라가 일었다. 넘어졌다가 일어서려고 했던 오크나 현찬을 향해 달려든 오크들은 모조리 상반신과 하반신이 나뉘며 그대로 즉사하고 말았다.
단 한 번의 칼질에 무려 십여 마리에 가까운 엘리트 오크가 죽어 나간 것이다. 하지만 오크들은 동료의 죽음에 겁을 집어먹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전장의 광기에 잠식해가며 현찬을 향한 증오와 투기를 불태웠다.
그 모습을 본 항우는 마음에 든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 그렇게 나서야지! 그래야 더욱 싸울 맛이 나지 않겠느냐!]
겁쟁이 한나라 병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용감한 오크들.
한때 자신의 곁에서 필사적으로 싸우던 초나라 최후 결사대를 보는 것 같아서 항우는 아련한 그리움과 함께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늘에서 지면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는 오크들의 무기.
현찬의 정면에서 7마리의 엘리트 오크가 각자 무기를 현찬을 향해 내리찍었다.
도끼, 대검, 글레이브 등등.
현찬은 태아검을 들어 방패처럼 사용해 오크들의 무기를 막았다.
쿠웅!
<전쟁포효>로 신체 능력이 4배 가까이 증폭한 엘리트 오크 일곱 마리의 동시 공격에 현찬의 두 다리가 땅에 발목까지 파고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오크들이 아무리 용쓰고 힘내봐도 현찬의 몸은 그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았다.
“다 했냐?”
그렇다면 이제 이쪽의 차례다.
땅에 파고든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뽑은 후에 현찬은 정면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현찬과 무기를 맞대고 있는 일곱 마리의 엘리트 오크들의 몸이 뒤로 밀려난 것이다.
오크들은 당황했다. 이쪽은 현찬보다 덩치가 훨씬 더 컸다. <전쟁포효>로 신체 능력이 엄청나게 증가했고 심지어 수가 일곱이나 된다. 그런데 오히려 이쪽에 현찬 한 명에게 밀리고 있었다.
쿠와아아!
오크들이 힘으로 밀리자 그런 동료를 도우려 다른 녀석들이 현찬에게 밀려 나가는 오크들의 등을 밀어주었다. 그 수가 14마리가 되었음에도 오크들은 뒤로 밀려났다. 21마리가 되었을 때 밀리는 게 살짝 줄었다.
그리고 그 수가 30마리가 됐을 때 겨우 오크들은 현찬에게서 밀리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엘리트 오크들은 식은땀 흘렸다. 신체 능력이 4배 상승한 상태에서 30마리가 나서야 겨우 현찬의 힘과 비등하다. 그렇다는 건 <전쟁포효>가 없을 때 현찬은 혼자서 120마리의 엘리트 오크의 힘을 낸다는 소리였다.
말 그대로 산을 뽑는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쿠워어!
현찬이 힘겨루기 상태에서 고착화되자 주변의 다른 오크들이 현찬의 휑한 등을 향해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이대로 쉽게 공격을 맞아줄 생각이 없는 현찬은 힘겨루기하는 오크들을 밀쳐내고는 뒤를 점하는 녀석들에게 태아검을 휘둘렀다.
단 한 번의 칼질에 엘리트 오크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엘리트 오크 족장이 싸움에 참여했다.
[호오? 드디어 머리가 직접 나섰구나.]
항우는 자신보다 덩치가 월등히 거대한 오크 족장을 보며 호기롭게 미소지었다.
“체급 차이가 심하게 나네요.”
멀리서부터 다가오는데도 벌써 고개를 들어야 눈을 마주칠 수 있을 정도로 엘리트 오크 족장은 엄청난 덩치를 자랑했다. 3m에 달하던 트롤과도 맞먹는 눈높이! 다른 엘리트 오크들보다 훨씬 더 거대한 덩치!
[그렇다면 이쪽도 본격적으로 나서야겠지.]
<소환-오추마(烏騅馬)>
온통 검은 털로 도배되다시피 한 거대한 흑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 역사에서 여포와 관우가 탔던 적토마와 함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명마.
오추마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주변의 오크들은 움찔했고 항우는 반갑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이구나. 추야.]
히이이잉!
[그래. 나도 반갑다.]
현찬은 자연스럽게 오추마의 등 뒤에 올라탔다. 그리고 태아검의 형태를 바꾸어 기다란 창으로 변화시켰다. 어지간한 명마보다 훨씬 더 거대한 오추마의 등에 올라탔음에도 엘리트 오크 족장의 눈은 현찬의 머리 위에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얼추 눈높이는 맞았다.
“자! 어디 본격적으로 붙어보자!”
히이이잉!
창을 들고 오추의 등에 올라탄 현찬은 그야말로 검은 질풍과도 같았다.
엘리트 오크들은 이렇다 할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현찬이 휘두르는 창에 명을 달리했다. 피와 살점이 튀고 오크들의 비명과 피 냄새가 공간을 짙게 잠식했다.
현찬과 오크 족장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엘리트 오크들은 오추마의 발굽과 현찬의 창 아래에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다.
크워어어어!
부하들의 죽음에 분노한 족장이 현찬을 향해 도끼를 강하게 휘둘렀다. 현찬은 창대를 수직으로 세워 녀석의 도끼를 막아냈다. 창대와 도끼가 충돌하며 강렬한 충격과 함께 스파크가 튀었다.
녀석은 역시나 보스 몬스터답게 엄청나게 강했다. 다른 엘리트 오크보다 순수한 근력은 거의 10배 이상 더 강할 것이다.
하지만.
“이쪽은 너보다 몇 배는 더 강해.”
충돌한 창대에 힘주며 녀석의 도끼를 밀어낸다.
족장은 도끼를 밀어내는 엄청난 반발력에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두세 걸음 정도 물러났다. 손에 쥔 도끼를 놓지 않기 위해서 꽉 쥐었음에도 족장의 손아귀가 찢어지며 도끼 손잡이 아래로 피가 흘러내렸다.
족장은 두 눈을 붉게 물들였다.
<광화>였다.
인정할 수 없었다.
덩치도 작고 비리비리한 저 인간에게 자신이 힘으로 밀렸다는 사실이.
저 인간을 상대하면서 아주 약간이지만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품었다는 사실이.
정말로 저 인간이 강하다는 것을 인정해버린 자신이.
그 모든 것을 분노의 연료로 삼으며 장로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현찬을 향해 전력이 담긴 일격을 가했다.
하지만.
카앙!
짧고 빠르게, 회전이 실린 찌르기가 도끼의 날을 정확하게 가격하자 족장은 두 손으로 꽉 쥔 도끼를 놓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도끼를 쥐고 있는 두 손이 힘을 견디지 못하고 뜯겨 나간 것이다.
사라진 두 손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족장을 향해 마지막 선고가 내려졌다.
“이제 끝이다.”
푸욱!
현찬의 창이 그대로 오크 족장의 심장을 꿰뚫었다. 울컥! 오크 족장은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마지막까지 현찬을 노려보더니 이내 그 거대한 덩치가 옆으로 쓰러지며 삶을 마감했다.
대장이 사라지자 남은 엘리트 오크들은 그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오추마와 함께 부락 내부를 그야말로 폭풍처럼 휘젓고 나니 멀쩡하게 살아있는 오크들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부락 내부에 있던 100마리 오크들은 단 한 놈도 빠지지 않고 현찬의 손에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후우.”
치열한 싸움이 끝나고 현찬은 오추의 등에서 내려와 갈기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오추는 기분이 좋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짧게 투레질했다. 영체로 존재하는 항우는 현찬의 앞에 선 채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헤어질 때가 다가왔다.
[만나서 반가웠고 오랜만에 즐거웠네. 계약자여.]
“저도 그 유명한 항우 님을 만나서 반가웠어요.”
[언젠가 인연이 있다면 또 불러주게나. 자네라면, 언제라도 달려올 테니.]
“네. 안녕히 가세요.”
항우가 사라지자 오추도 함께 사라졌다. 현찬은 부락 내부를 쓰윽 훑어보았다. 투박하게 지어진 오두막이 목책 외곽에 다닥다닥 자리 잡고 있었고 중앙의 넓은 공터는 엘리트 오크들의 시체가 즐비해 있었다.
저걸 다 처리하려면 대체 얼마나 걸리려나.
별로 상관은 없을 것이다. 이미 몬스터 사체를 수거해가는 업체를 불렀으니까. 다만 예상보다 사냥이 더 빨라졌기 때문에 현찬은 시간이 남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충분히 견학은 하셨습니까?”
현찬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묻자 허공에서 흠칫하는 기색이 느껴지더니 이내 숨어있던 사람이 나타났다. 머쓱한지 뒤통수를 긁적이며 아하하 웃는 그는 바로 협회에 소속된 유일한 S랭크 헌터였다.
“알고 계셨군요. 역시 신급 영령의 계약자는 못 속인다니까.”
“뭐 황설영 씨의 <도깨비감투>도 꿰뚫어 봤는데 그런 투명화 주술을 못 보겠습니까?”
현찬은 상대가 항우에 관한 대화를 들었어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왜냐하면, 헤르메스의 권능 중 하나인 정보 왜곡이 그에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음. 이거 정신간섭 계열 권능인가요? 조금 전에 현찬 씨가 보여준 능력이나 그런 게 전혀 기억 속에 이미지로 남지 않네요.”
그래도 S랭크 헌터답게 자신이 이미 당했다는 것을 그는 인지하고 있었다.
현찬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잡담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저를 이렇게 만나러 온 이유가 뭡니까?”
“…… 뭐 들킨 마당에 더 숨길 것도 없겠죠.”
남자는 한숨을 내쉬면서 현찬에게 자신의 목적을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강현찬 헌터님. 최근에 여러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는 걸 아신다고 믿습니다.”
현찬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의 말에 동의했다. 그의 말대로 현찬도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람브로눅스의 습격, 데스페라도의 테러 활동. 이에 이상한 점을 깨닫고 저 나름의 정보 수집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죠.”
“그게 뭐죠?”
“협회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겁니다.”
배신자라.
현찬은 딱히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이미 정체불명의 비밀조직이 존재하는데 여기서 협회 내부에 스파이가 있다고 딱히 크게 이상할 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찬도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던 바이기도 했다.
게이트 폭주를 강제로 일으키면서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조직이라면 충분히 그만한 능력이 있을 테니까.
“저는 협회 내부의 배신자들을 색출하기 위해서 여러 방면으로 살폈습니다. 그리고 대략적인 인물들과 함께 놈들이 강현찬 헌터님을 노린다는 것도 알아냈죠.”
남자는 말을 이었다.
“다시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헌터 협회 소속의 S랭크 헌터. 김은혁이라고 합니다. 저를 도와서 스파이들을 소탕하는 데 도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