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62화 엘리트 오크 부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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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걱!
현찬의 검이 엘리트 오크의 팔을 벴다. 바위처럼 단단한 근육도 우람한 통뼈도 현찬의 검 앞에서는 그저 얇은 종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검을 대기만 해도 쉽게 잘려나가는 그런 종이.
촤악!
피가 튀고 엘리트 오크가 비명을 내지른다. 하지만 놈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눈동자를 붉게 물들이며 근육을 부풀리고 더욱 몸집을 크게 만든다. 놈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피해를 보면 저절로 발동하는 <광화(狂化)>였다.
꽈드득! 근육이 부풀어 오르자 잘린 팔의 단면에서 흘러나오는 출혈의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놈은 나머지 한 손으로 거대한 손도끼를 쥐고 현찬의 머리를 향해 내리찍었다. 콰앙! 현찬이 몸을 뒤로 빼고 도끼가 바닥을 찍자 거대한 소음이 일어났다.
‘대단하네.’
신체 능력이 급격하게 향상한 엘리트 오크의 힘은 정말로 엄청났다. 거대한 덩치를 지닌 기간테스의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저만한 덩치에서 나오는 힘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못 이길 정도는 아니야.’
크워어!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엘리트 오크를 향해 현찬이 재차 검을 휘둘렀다. 놈은 자신의 도끼를 세워서 현찬의 검을 막으려고 했지만 현찬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검의 궤적을 바꾸어 녀석의 허벅지를 노렸다.
크웍?!
엘리트 오크는 채 반응을 하지 못하고 한쪽 다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나무 기둥처럼 두꺼운 허벅지였지만 현찬의 앞에서는 바람에 휘날리는 풀보다 더 나약했다.
<광화> 상태에서는 힘과 민첩이 엄청나게 늘어나지만, 사물에 대한 인지능력이나 반응속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그렇기에 현찬이 직접 피지컬로 대결하지 않고 기교로 상대하니 엘리트 오크는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 하고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되게 잘 싸우네.]
“열심히 노력한 덕분이지.”
현찬은 지금 그 어떠한 영령의 힘도 빌리지 않은 채 혼자만의 힘으로 엘리트 오크들과 싸우고 있었다. 지금까지 많은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상승한 레벨과 스텟 덕분에 현찬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녀석들을 차근차근 사냥해 나갔다.
기본적인 무기를 다루는 기술에 숙달한 상태라 엘리트 오크 3마리를 상대로 정면에서 맞붙어도 현찬은 밀리지 않고 무난하게 녀석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숫자가 늘어나면 그거대로 힘들겠는데.’
지금은 일종의 척후병 같은 녀석들이 3마리씩 다니니 상대하기 편하겠지만, 본격적으로 부락에 진입하면 그때는 힘들어진다. 게다가 척후병 녀석들은 말 그대로 부락의 오크 중에서도 가장 약하기에 맡는 직책.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부락에 가까워지면 더 가까워질수록 더 강한 엘리트 오크들이 나타난다.
‘일단 여기서 최대한 숫자를 줄여야겠어.’
엘리트 오크 부락은 총 150마리 오크로 이루어져 있다.
혼자서 저 오크들을 동시에 쓰러뜨릴 수는 없으니 일단 기본적으로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놈들은 줄이 는 게 최선이었다.
현찬은 그런 생각을 품으며 숲 외곽을 돌아다니면서 오크 척후병들을 보이는 족족 사냥했다.
녀석들의 행동 패턴은 지성체답게 다양했지만 싸움을 거듭해 나가면서 점점 오크들과 싸움에 적응을 해나간 현찬은 별 무리 없이 척후대를 사냥할 수 있었다.
“척후대는 이 정도면 다 정리한 건가?”
[아니. 아무래도 아직 더 남은 거 같은데?]
크르르! 쿠워억!
멀리서 들려오는 오크의 소리. 그리고 이쪽을 향해 빠르게 가까워지는 기척들. 자신의 존재감을 숨길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우거진 나무나 풀숲을 가차 없이 뚫으며 다가오는 오크들을 보며 현찬은 몸을 풀어주었다.
“숫자가 늘었네.”
[저쪽도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는 거겠지.]
[방심하지 마라. 계약자여.]
이번에 등장한 녀석들은 3마리가 아니라 무려 6마리였다. 조금 전보다 숫자가 2배로 늘었으며 심지어 척후대 녀석들보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도가 훨씬 더 강력했다.
현찬은 허리춤에 매달린 마석 탐지기를 작동시켰다. 확인해보니 확실히 마석의 수준이 조금 전 사냥했던 녀석들보다 더 높았다.
더 강한 녀석들이, 더 많이 왔다.
하지만 현찬은 오히려 바라던 바라며 씨익 웃었다.
“안 그래도 너무 조금씩 잡느라 느린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저렇게 알아서 몰려와 주면 이쪽이 더 편하지.”
찾아갈 수고를 덜어주는 거니까.
현찬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오크들도 그것이 자신들을 도발하는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쿠워어어억!
놈들은 고함을 내지르며 현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2m가 넘는 근육질의 거구. 놈들의 돌진은 그야말로 거대한 트럭이 닥쳐오는 것 같았다. 현찬은 뒤로 빠르게 물러나며 커다란 바위 위로 올라갔다.
콰앙!
가장 먼저 달려온 엘리트 오크가 바위를 향해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그러자 바위가 산산조각이 나며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현찬은 이미 바위 위에 없었다. 일순간 현찬의 모습을 놓친 오크는 몸을 멈칫했다. 그리고 그것은 독이 되어 녀석에게 돌아왔다.
촤악!
녀석의 머리가 하늘을 날았다. 허공에서 가볍게 떨어져 내린 현찬이 타이밍 맞춰 검을 횡으로 휘두르며 한 바퀴 가볍게 돌았다. 근처에 있던 다른 엘리트 오크 둘의 머리 또한 함께 하늘을 날았다.
엘리트 오크를 사냥하면서 깨달은 점.
그것은 바로 놈들은 상처를 내지 않고 최대한 빠르고 간결하게 급소를 노려서 끝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광화> 상태가 되어 상대하기 껄끄러워지기 때문이다.
현찬이 움직였고 한 번의 칼질에 엘리트 오크 하나의 목숨이 사라졌다.
현찬은 놈들이 상대하기에는 너무나도 강하고 빨랐다. 특히 그들의 투박한 갑옷이나 단단한 근육 따위를 두부처럼 부드럽게 갈라버리는 [테레이오스테(Teleióste)]는 두려움을 모르는 엘리트 오크들에 있어서 악몽과도 같았다.
“후우.”
격렬한 움직임을 이용한 전투가 끝나고 현찬은 숨을 골랐다. 현찬의 주위로는 엘리트 오크들의 시체가 즐비해 있었다. 이미 6마리의 무리가 등장한 이후로도 몇 번의 싸움을 더 거쳤으니 숨이 차는 것도 당연했다.
“내가 지금까지 몇 마리 잡았지?”
[거의 50마리 정도?]
“많이도 잡았네.”
150마리 중 벌써 혼자서 3분의 1을 사냥했다. 어떻게 보면 정말 많이 잡았고 충분히 만족할 만하지만, 현찬으로서는 아직도 모자랐다. 아무렴. 그의 목표는 나머지 100마리의 오크들도 전부 다 사냥하는 거니까.
“그런데 이제 안 오네.”
[그러게 말이야.]
[이 주변 말고도 근방에 어떠한 몬스터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구나.]
이렇게나 격한 싸움을 벌였는데도 이쪽으로 다가오는 엘리트 오크들이 없었다. 아직 남은 녀석들이 100마리임을 고려하면 너무나도 조용하다.
“느낌이 쎄~ 한데.”
꽤 멀리 떨어진 거리까지 확인한 아테나가 없다고 말했으니 나머지 놈들은 거의 다 부락에 있다고 봐도 좋았다.
“100마리가 뭉쳐 있는 건가.”
그럴 수도 있다고 현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지능 있고 생각할 줄 아는 몬스터들이니 지금 이 게이트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그러니 척후대의 숫자도 늘리고 더 강한 녀석들을 보냈을 테고.
하지만 보낸 녀석들이 연달아 돌아오지 않으니 놈들은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우워어어어어!!
때마침 멀리서부터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숲과 바위산 일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이 외침은 딱 봐도 저쪽에서 현찬을 도발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갈 거야?]
헤르메스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누가 보면 걱정한다고 생각하겠지만 현찬은 헤르메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말투는 저래도 헤르메스의 얼굴에는 참을 수 없는 즐거움이 가득했으니까.
피식. 그런 헤르메스를 보면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현찬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흠. 좀 모호하기는 한데.”
현찬은 [테레이오스테(Teleióste)]에 묻은 피를 휘둘러 털어냈다.
“저쪽에서 저렇게 거하게 환영을 해주는데 손님 된 도리에서 빼기도 그러잖아?”
현찬이 바라보는 방향은 엘리트 오크 부락.
100마리 오크들이 대기하는 본진이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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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한 목책을 넘어서자 거대한 공터가 있었다. 그곳에서 100마리의 엘리트 오크들이 현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현찬이 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하나같이 무기를 쥐고서 잔뜩 성난 표정으로 대기 중이었다.
다만 놈들이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 단 하나 있었으니 매우 많을 거로 생각했던 적이 사실은 고작 현찬 한 명이었다는 점이다.
고작 인간 하나라니! 자신들의 동료가 고작 저 인간 하나에 당했다는 말인가? 그것도 50이나 되는 수가?
몇몇 엘리트 오크들은 충격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표정에서 드러냈다.
하지만 엘리트 오크들은 현찬이 이쪽을 향해 검을 겨누자 그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현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투기. 그것은 절대로 약한 자가 보일 수 없는 능력이었으니까.
“크륵.”
그런 오크 무리의 중앙에서 다른 엘리트 오크보다 훨씬 더 거대한 덩치를 지닌 오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떡 벌어진 어깨와 다른 녀석들보다 더욱 길고 거대한 엄니. 손에 쥐고 있는 거대한 양날 도끼는 성인 남자의 키와 맞먹을 정도로 거대하다.
[엘리트 오크 족장]
이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였다.
현찬은 피식 웃으며 검을 쥐지 않은 왼손을 뻗으며 엘리트 오크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한꺼번에 다 덤벼도 상관없어.”
그것이 오크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크와아!
엘리트 오크 족장이 입을 쩍 벌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다른 녀석들도 함께 고함을 내지르며 호응했다. 거대한 소리가 사방으로 퍼지고 공터를 넘어서며 주변 숲 일대를 뒤덮었다.
엘리트 오크들이 사용하는 기술인 <전쟁포효>
아군의 용기와 신체 능력을 올려주고 적들을 정신적으로 압박하는 엘리트 오크들 고유 스킬이었다. 단순히 소리를 지르는 것이고 그렇게 효과가 커다랗지 않지만, 문제는 저것이 개체마다 ‘중첩’ 된다는 것이었다.
엘리트 오크가 여타 오크들보다 무시무시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보통 <전쟁포효>의 경우에는 신체 능력을 3%밖에 올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10마리가 동시에 외친다면? 100마리가 동시에 외친다면?
그렇게 된다면 그야말로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지금 현찬의 눈앞에서와같이.
“대체 왜 각개격파 하라고 했는지 알 거 같군.”
현찬은 흉흉한 살기를 해일처럼 쏟아내는 엘리트 오크 무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100마리가 동시에 <전쟁포효>를 내질렀으니 놈들의 전투력은 단순 계산만으로도 300%가 증가했으니 4배가 되었다. 그야말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놈들 하나하나가 기간테스에 버금가는 괴물이 된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잘 안 쓰는 기술이라던데 내가 너무 도발했나?’
설마 이런 단순한 도발이 너무 잘 먹힐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 경우에는 아무리 현찬이라고 하더라도 별다른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싸우는 건 무모한 행동이었다.
저쪽에서 저렇게 나온다면 이쪽도 방법이 있다.
“계약.”
현찬은 눈을 감고 마력을 운용하여 스킬을 발동했다.
그가 계약 맺고자 하는 영령은 당연히 영웅급 영령.
단순히 영웅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이 상황에서 그야말로 최고의 효율을 뽑아낼 수 있는 모두의 인정을 한 몸에 받는 그 정도의 영웅이어야 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야말로 강대한 힘. 모든 것을 제압하고 찍어 누르는 무시무시한 무력.
그만한 힘을 지닌 영령이 지금 현찬에게 힘을 빌려주었다.
[그 유명한 계약자를 만나다니. 이거 참 반갑구나.]
그는 압도적인 무력과 함께 우수한 전술까지 두루 갖춘 전장의 승리자였다.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그것이 설사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분쇄해버리는 패왕.
그를 표현하는 단어는 이 하나로 충분하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는다.
단신으로 수백의 적들을 베어버리고.
단 3만 명의 군사로 57만의 적을 쓸어버렸으며.
100명의 결사대로 5천의 적을 뚫어버린.
전장에서 비견할 자가 거의 없다고 평가되는 최강의 무인이자 장수.
<서초패왕(西楚覇王) 항우(項羽)>
그 무력은 중국 역사상에서 도저히 견줄 사람이 없다고 평가되는 당대 최고, 최강의 무인.
그가 현찬과의 계약으로 하계에 직접 힘을 행사했다.
[다시 돌아온 곳이 또다시 전장인가.]
항우는 주변을 포위한 엘리트 오크들을 보면서 호기롭게 웃었다.
[뭐,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