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61화 (61/265)

# 61

61화 엘리트 오크 부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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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학이요?”

현찬의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갑자기 왜 견학을 하겠다는 건가? 현찬은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이 남자가 무언가 흑심이 있어서 말을 꺼냈다기보다는 정말로 순수한 호기심으로 말했다는 것 정도는 쉽게 알았다.

‘거짓말을 어느 정도 간파가 가능한 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니까.’

헤르메스조차 별다른 언질이 없는 것을 보면 나쁜 의도는 없다고 볼 수 있었다.

견학이라고 해도 딱히 상관없지 않을까 했지만 그래도 초면인데 이런 건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에 현찬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오늘 혼자서 게이트에 들어갈 생각이라서요.”

“단순히 끼어들지 않고 지켜보는 것도 안 되나요?”

“네.”

“그렇군요. 정말 아쉽네요. 명성이 자자한 신급 영령의 계약자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남자는 정말로 아쉬운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는 와중에 이쪽을 향해 모이는 시선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협회 내부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물론이거니와 협회에서 게이트 업무를 발주 받는 헌터들 또한 하나둘 지나다니면서 현찬이 있는 테이블에 시선을 던졌다.

현찬과 황설영이 만나는 건 이제 놀라운 광경이 아니었지만 그런데도 협회의 A+랭크 헌터와 신급 영령의 계약자가 함께 있는 것은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했다.

이대로 있으면 괜히 더 귀찮은 일만 생길 것 같아서 현찬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먼저 가볼게요.”

“아, 네. 무운을 빕니다.”

“오늘 만나서 정말로 반가웠어요.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만나요.”

황설영과 남자의 인사를 받으며 현찬은 카페를 나섰다. 그런 현찬의 귓가로 헌터들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흘러들어왔다.

‘부럽다. 홍야차 황설영이랑 같이 있고.’

‘나도 저런 미인이랑 개인적인 친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꿈 깨라. 신급 영령의 계약자 정도는 돼야 저만한 여자 만날 수 있는 거야.’

대부분의 헌터들은 현찬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누구는 질투하고 누구는 자괴감을 느낀다. 이제는 익숙해진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그런데 같은 테이블에 앉은 남자는 누구야?’

‘응? 남자라니? 여자 아니었어?’

‘무슨 소리야? 나이 지긋한 노인이었잖아.’

‘어? 나는 어린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만 뒤에 이어진 말들이 현찬의 발걸음을 찰나지만 멈추게 했다.

“…….”

현찬은 고개를 돌려 테이블에 앉아 황설영의 잔소리를 듣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그는 현찬의 시선을 느꼈는지 이쪽을 보더니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환술이네.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헤르메스의 말에 현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헤르메스의 가호를 받은 현찬은 이런 환술에 면역이기 때문에 그의 본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주변 다른 헌터들은 달랐다.

누군가는 그를 여자로 보고 누군가는 그를 노인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그를 아이로 보았다.

그야말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같은 헌터들에게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환술을 거는 능력.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재미있네.’

현찬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대체 영령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재미있는 존재가 영령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만남의 자리를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먼 미래가 아님을 현찬은 알았다.

그것은 저쪽도 마찬가지겠지.

‘역시 세상은 넓고 독특한 헌터들은 많구나.’

저 사람과는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오늘은 여기구나.”

A랭크 헌터들이 사냥 다닐 수 있는 3급 소형 게이트. 현찬은 그 앞에서 가벼운 절차를 밟고서 게이트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번이고 느끼는 ‘부하’의 감각을 가라앉히며 현찬은 주변에 펼쳐진 풍경을 천천히 눈에 담는다.

우거진 나무와 바위들. 곳곳에 보이는 넓은 공터와 중앙에 우뚝 선 커다란 바위산. 험준한 지형은 보기만 해도 혀를 절로 내두르게 만드는 압박감을 줬고 풍겨오는 야생의 냄새는 저절로 몸을 위축시켰다.

[엘리트 오크의 부락]

A랭크 헌터들조차 사냥하기 꺼린다는 4등급 몬스터 엘리트 오크.

개체의 강함도 강함이지만 고통과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뜨거운 호전성과 싸울수록 더욱 포악해지고 강해지는 전투력은 용감하게 싸우는 헌터들도 저절로 뒷걸음질 치게 할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바위처럼 단단하고 꽉꽉 찬 근육은 엄청난 파괴력을 뿜어내고 심지어 도구나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더욱 상대하기 껄끄럽다.

그런 악명을 지닌 녀석들이기 때문에 아직도 이 [엘리트 오크의 부락] 게이트가 클리어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안전하게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데 필요한 헌터들의 최소 권장 랭크는 당연히 A랭크.

그리고 최소 입장 인원은 무려 15명이다.

대부분 게이트에서 평균적으로 5명이 한 파티를 이루며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필요한 숫자는 그 3배. 그것도 전투력이 초인의 단계에 도달했다는 A랭크 헌터들로만 이루어져야 하는 점에서 이 게이트가 얼마나 흉악한지 그 일면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 자리를 현찬은 혼자서 찾아왔다.

오히려 협회에서 이 게이트를 발주하는 안내원이 현찬을 말렸을 정도. 아무리 신급 영령의 계약자라고 하더라도 현찬은 아직 A랭크 헌터다. 그 15배나 되는 인원이 와야 클리어를 할 수 있을까 말까 한 데 그곳을 혼자서 가겠다고 하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자살 지원자로밖에 보이지 않으리라.

물론 현찬은 자신 있다고 말했고 협회에서는 헌터가 원하는 게이트에 못 가게 강제할 수 없으므로 현찬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래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게이트 밖에 구조 인원을 대기시키는 것으로 협상했다.

현찬은 딱히 상관없었기 때문에 흔쾌히 허락했고.

지금쯤이면 게이트 바깥에서 협회 소속의 특무과 헌터들이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현찬이 시간이 지나도 게이트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움직이기 위해서.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무렴 현찬이 바보도 아니고 자신의 실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여기 왔겠는가.

현찬의 개인 무력은 더는 약하지 않다. 특히나 부족했던 전투에 특화된 능력들은 <아테나>와 계약을 맺은 이후로 나날이 발전하는 중이기도 했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이 있지만.’

그래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지금 이 [엘리트 오크 부락] 정도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이 현찬의 계산이었다.

크르릉.

그 순간 공기를 타고 들리는 묵직한 울음소리에 현찬은 빠르게 가까운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그 직후 현찬의 근처의 풀숲을 헤치며 오크 세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리트 오크답게 놈들은 다른 오크보다 덩치가 머리 하나는 더 컸다.

기본적으로 오크가 성인 남성보다 더 큰 것을 고려하면 그보다 더 큰 엘리트 오크는 키가 180이 넘는 현찬도 고개를 꺾어서 올려봐야 할 정도로 거구라는 소리였다.

온몸을 뒤덮은 것은 쉼 없이 꿈틀대는 우락부락한 근육. 우람한 팔뚝은 가느다란 나무 정도는 가볍게 부러뜨릴 정도로 엄청난 힘을 자랑했다. 그 몸을 짐승의 뼈로 이루어진 장신구와 투박한 무기가 장식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어지간한 사람은 겁을 집어먹고 자리에 주저앉도록 하게 생긴 엘리트 오크가 무려 세 마리.

현찬은 나무 뒤에서 놈들을 살폈다.

킁! 킁!

놈들은 코를 흔들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오크들은 후각이 나름 예민해서 냄새로 침입자의 위치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현찬은 테레이오스테를 손에 고쳐 쥐고서 숨을 죽였다.

<차용> [탈라리아(Talaria)]

기척을 죽이며 현찬은 엘리트 오크들의 시선을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무의 가지에 깃털처럼 가볍게 착지하며 엘리트 오크들을 주시했다. 녀석들은 코를 계속 킁킁대며 현찬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현찬의 바로 아래, 엘리트 오크들이 멈추었다. 놈들이 맡는 냄새가 가장 강하게 풍기는 곳이 바로 그 자리였기 때문이다.

‘지금이다.’

엘리트 오크들이 고개를 들어 현찬을 올려다보는 그 순간, 이미 현찬은 빠른 속도로 엘리트 오크들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검은 섬광.

테레이오스테의 흑색 검신이 움직이는 순간 가장 앞에 있던 엘리트 오크의 머리가 잘려나갔다. 허공에 팽그르르 도는 머리를 무시하며 현찬은 기습에 대비하는 나머지 두 녀석에게 재차 검을 휘둘렀다.

촤악!

크와악!

횡으로 휘둘러진 현찬의 검이 엘리트 오크의 가슴을 가른다. 어지간한 도검 따위는 제대로 파고들지 못한다는 엘리트 오크의 강철처럼 단단한 근육은 헤파이스토스의 역작 [테레이오스테(Teleióste)]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가슴이 쩍 갈라지며 엘리트 오크가 고통이 찬 소리를 토해냈다. 갈라진 상처의 틈새로 피가 울컥울컥 새어 나왔다.

하지만 녀석은 그걸로 죽지 않았다. 상처 입은 엘리트 오크의 두 눈동자가 시뻘겋게 물들더니 입가에 침을 흘리면서 현찬을 향해 우람한 두 손을 뻗은 것이다.

상처를 입어도 싸움에 관한 의지를 불태우는 엘리트 오크의 무시무시함!

하지만 이미 엘리트 오크가 어떤 녀석들인지 사전에 정보를 얻은 현찬은 자연스럽게 녀석의 겨드랑이 사이로 빠져나왔다. 상처 때문인지 엘리트 오크의 움직임은 둔했고 틈이 많았다. 바로 녀석의 등 뒤를 점한 현찬은 그대로 검을 목덜미에 찔러 넣었다.

쿠웍!

목이 뚫린 엘리트 오크는 자신의 목젖을 뚫고 튀어나온 검은색 검신을 보더니 두 손으로 붙잡았다. 곧 죽는데도 상대방의 무기를 맨손으로 잡는 집요함! 다른 헌터였다면 녀석의 행동에 당황하며 무기를 빼려고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현찬은 달랐다.

현찬은 그대로 검에 힘을 주어 옆으로 휘둘렀다.

서걱!

엘리트 오크의 머리와 검신을 붙잡고 있던 손가락이 부드럽게 잘려나가며 바닥을 뒹굴었다.

이것이 바로 신이 만들어준 무기의 힘! 별다른 힘을 주지 않고도 엘리트 오크 따위는 가볍게 베어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테레이오스테(Teleióste)]의 성능이었다.

현찬이 뒤로 훌쩍 점프하며 거리를 10m 이상 벌렸다.

쿠와아아!

마지막 남은 녀석은 두 손에 거대한 글레이브를 쥐고서 현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현찬도 더 이상의 기습은 끝났으니 이제 정정당당한 승부만 남았다 생각하며 녀석의 장단에 맞추어 검을 들었다.

엘리트 오크가 현찬에게 달려들었다. 몸무게만 200kg이 넘는 녀석이 근육을 꿈틀거리며 달려오는 광경은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현찬은 침착하게 녀석과의 거리를 가늠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엘리트 오크와 현찬의 거리가 3m가량 좁혀지는 순간.

그리고.

푸욱!

현찬의 검이 엘리트 오크의 심장을 꿰뚫었다.

아니, 검이 뚫은 것이 아니라 창이 뚫은 것이었다.

[테레이오스테(Teleióste)]가 가진 성능 중 하나인 <외형변화>

모든 영령의 무기를 <차용>할 때 그에 맞춰서 자유자재로 변하는 이 무기의 능력을 이용하여 현찬은 검이 아닌 사거리가 매우 긴 창으로 바꾼 것이다.

엘리트 오크는 현찬의 무기를 검이라 판단했고 그 거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리치가 증가한 [테레이오스테(Teleióste)]는 그런 오크의 예상을 가볍게 뒤엎고 그대로 심장을 뚫어버린 것이다.

아테나와 계약을 하며 온갖 무기에 관한 숙련도가 오른 현찬에게 창에 회전력을 실으며 찌르는 정도는 우스운 일이었다.

“내가 미쳤다고 정정당당하게 싸워?”

그야말로 상대방의 허점을 찌르는 일격!

그 광경을 지켜보던 헤르메스는 깔깔거리며 웃었고 아테나는 이마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내 계약자야!]

[그래. 역시 네 계약자답다.]

상대방의 허점을 찌르는 기상천외함.

이보다 헤르메스에 어울리는 자가 있을까.

현찬은 오크들의 사체에서 마석을 수거하며 씨익 웃었다.

“자. 나머지들도 사냥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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