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60화 협회의 S랭크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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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찬은 오랜만의 휴식을 마음껏 만끽했다.
각성하고 나서 지금까지 쉬지 않고 너무 오랫동안 달려왔다. 솔직히 피곤하다거나 지쳤다고 느끼지는 않았지만, 정기적으로 휴식을 취해주는 것은 필요한 법이다. 그렇기에 현찬은 며칠 동안 정말 못했던 다양한 것들을 했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기도 했고 강윤의 병문안을 가기도 했다. 헤르메스와 서울 투어를 다니거나 다은이와 약속을 잡고서 밥 한 끼를 먹기도 했다. 물론 그때 헤르메스가 눈에 불을 켜고서 현찬을 감시하는 소소한 해프닝이 있었지만 별다른 문제 없이 넘어갔다.
그렇게 약 1주일가량 휴식한 현찬은 지금까지 쌓였던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모조리 풀 수 있었다.
그렇게 현찬은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한 채 협회로 이동했다.
물론 가는 길에 기자들이 쫙 깔려 있었지만 이미 인간의 신체 능력을 초월한 현찬을 그들이 붙잡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별다른 방해 없이 협회에 방문한 현찬은 중간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협회 건물 1층 홀, 그 구석에 자리 잡은 카페의 테이블에 낯익은 사람이 테이블에 엎드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익숙한 모습. 누구인가 했더니 황설영이었다. 뒤로 한데 모아서 묶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축 늘어져 있었지만, 현찬은 딱 그녀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대로 그냥 무시하고 갈까 했지만 그래도 서로 아는 사이고 지금까지 해준 것이 있었으니 인사를 나누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황설영의 상태가 꽤 심각해 보였기에 안부가 걱정되기도 하고.
“황설영씨.”
“아……. 강현찬 헌터님.”
테이블 맞은편에 현찬이 앉아 황설영은 고개를 살짝 들어 퀭한 시선으로 현찬을 보더니 다시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았다.
“……!”
그러더니 이내 몸을 흠칫 떨고는 황급히 고개를 팍 들며 허리를 빳빳하게 폈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현찬의 얼굴을 직시한다. 그녀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붉게 상기되었다.
“가, 강현찬 헌터님?!”
“네. 그런데요.”
“시, 실례했습니다. 이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다니.”
귓불까지 붉게 물들이며 고개를 푹 숙이는 황설영에게 현찬은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아뇨. 사람이 피곤할 수도 있죠. 저도 그래서 지난 일주일간 푹 쉬었거든요.”
“푹…… 쉬셨군요.”
그렇게 말하는 황설영의 목소리는 어딘가 매우 음울하고 무거웠다.
아차! 현찬은 자신이 말실수했음을 눈치챘다. 딱 봐도 며칠을 야근하며 밤샌 것 같은 그녀의 앞에서 자기는 푹 쉬었다고 말하다니. 이보다 더한 기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현찬은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황설영씨는 무척 바빠 보이시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저 말입니까……? 많은 일이 있었죠.”
그렇게 말하는 황설영이 살아있으면서도 마치 시체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황설영은 온갖 음울한 오라를 뿜어내면서 지난 1주일간 있었던 일들을 조용히 털어냈다. 물론 대부분이 자신의 고생담이었다.
듣기만 해도 끔찍하게 이어지는 야근의 생생한 경험담에 현찬은 식은땀을 흘렸다.
“저, 정말로 괜찮으신 거 맞죠?”
“아.”
이대로라면 불평불만이 끝이 없을 것 같아서 현찬이 중간에 말을 끊으며 그렇게 말하자 황설영은 고개를 퍼뜩 들었다.
“죄송합니다. 이거, 너무 제 말만 한 것 같네요.”
“뭐,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지 않겠어요.”
현찬은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황설영씨는 다른 동료가 없나요?”
“네? 그게 무슨 소리죠?”
“헌터 협회에 다른 A+랭크 헌터들이 더 있지 않나요. 너무 혼자서 바쁘게 일하시는 거 같은데요.”
현찬이 알기로는 헌터 협회에 소속이 된 S랭크 헌터가 한 명 있었다. 현찬이 그 주제를 꺼내자 황설영의 표정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구겨졌다. 평소 늘 무표정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그녀가 저렇게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이 처음이라서 영체화 한 상태로 지켜보던 헤르메스도 놀랄 정도였다.
[와. 완전 강철 같은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화도 낼 줄 알았구나.]
‘실례야. 헤르메스.’
한 번 가볍게 꾸짖어준 뒤 현찬은 다시 황설영에게 집중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렇게 좋은 관계는 아니신가 봐요?”
“어, 음. 네…….”
황설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대답하는 데 조금 망설임이 있는걸 보면 본인도 애매한 듯했다.
“관계가 나쁘다고 해야 할지, 조금 애매한 관계이기는 합니다. 일단 같은 협회에서 일하는 직장동료이기도 하고, 그쪽에서는 저를 그렇게 싫어하거나 하지는 않으니까요. 정확히 말하자면 이쪽이 조금 일방적으로 껄끄러워할 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밀 것 같은 황설영이 그 입으로 껄끄럽다고 말할 정도라니. 현찬은 그 S랭크 헌터가 대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성격이 많이 개차반이에요?”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정의심이 있다면 있겠죠. 그러니 좋은 조건을 제시한 클랜의 제안을 거절하고 협회에 들어왔고, 국가의 밑에서 일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하고 황설영이 말을 이었다.
“워낙 자유분방해서 누군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협회 소속의 헌터라는 이름값을 지녔고 S랭크 헌터인데도 그에 관한 책임감은 쥐꼬리만큼도 없고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죠.”
“지금까지 협회에 자주 들렸지만 그런 사람은 못 본 거 같은데. 여기에 없나요?”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아마 여전히 전국팔도 어딘가를 떠돌아다니고 있겠죠.”
“팔도요? 어, 음. 팔도라면 북한도 포함된 거 아닌가요.”
“그 인간 성격과 능력이라면 거기에 있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북한을 넘어갈 정도의 능력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그렇게 말하니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증폭되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인물이기에 황설영이 저런 평가를 한단 말인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대단한 사람인 게 틀림없었다.
“그 능력이나 가진 바 실력은 저도 인정합니다. 아니, 솔직히 저라도 그자와 싸워서 이길 거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너무 경박하고 자유분방해서 주변에 민폐를 끼치니 저로서는 싫을 뿐입니다.”
즉 그 사람은 원리원칙을 잘 따지는 황설영과는 반대 선상에 서 있다는 거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강현찬 헌터님과 나름 죽이 잘 맞을 거 같기도 합니다.”
현찬과 죽이 잘 맞다니.
‘그런 사람을 내가 왜 듣지 못했을까?’
생각해 보면 헌터 협회에 S랭크 헌터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알려진 바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저 성별이 남자라는 것만 알 수 있었고 그의 이름, 나이, 계약한 영령 등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떤 이는 협회의 S랭크 헌터는 허구의 존재라고 말할 정도로 유령같은 존재였다.
[흐음. 이렇게까지 미지에 싸인 인물이라니, 아주 궁금해지는데?]
호기심이 가득한 헤르메스의 촉이 무언가를 잡아냈는지 S랭크 헌터에 관해 흥미를 느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그 사람을 만나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 기회는 나중으로 미뤄야 할 것이다.
“혹시 그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있나요? 그냥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생겨서요.”
현찬의 물음에 황설영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기밀이기에 말씀해드릴 수 없습니다. 싫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그쪽의 영령이나 사용하는 힘과 능력이 비밀을 엄수해야 하는 계통이라서요.”
“신기한 능력이네요. 그보다 괜찮아요?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제가 괜히 시간을 뺏은 거 같은데.”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제 일이 다 끝나서 저도 모처럼 휴식을 취하려던 터라 딱히 실례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죄송한 건 접니다.”
황설영은 손을 저으며 그렇게 말하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지난번에 도와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 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경황이 없어서 그러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강현찬 헌터님의 덕분에 데스페라도의 간부를 생포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황설영의 감사 인사에 현찬은 부담스러움을 느꼈다.
딱히 누군가의 칭찬을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니었으니까.
현찬은 그저 화가 났을 뿐이다.
자신의 추잡한 욕망으로 죄 없는 타인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테러리스트들의 행동에.
자신의 친한 동생을 비겁한 방법으로 상처 입히며 다치게 만든 놈들의 행동에.
그저 분노했을 뿐이다.
거기에 어떠한 정의감도 확고한 신념도 없었고, 있는 거라고는 오직 개인적인 감정뿐.
그렇기에 황설영의 이런 극도로 고마워하는 태도는 현찬에게 있어서 조금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는 한편 황설영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리원칙을 준수하고 딱딱하지만,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은 그녀만의 매력이었으니까.
이대로 겸손을 떨어도 황설영이라면 우격다짐으로 고맙다고 할 것을 알기에 현찬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감사를 받아주었다.
여기서 그 S랭크 헌터에 대해서 더 묻고 싶었지만, 휴식하는 사람을 붙잡고 더 물어보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 판단했다. 게다가 오늘은 현찬도 게이트에 들어가 몬스터 사냥을 위해 찾아왔기 때문에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갑자기 테이블 옆자리에 기척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해 보이는 미남의 등장에 현찬은 놀란 기색 없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아무도 없던 자리에 마술처럼 사람이 나타났으니 놀랄 법도 한데 상대방은 현찬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차분하게 인사하자 눈동자를 빛냈다.
정말로 재미있다는 듯, 흥미가 넘친다는 듯 입가에는 지울 수 없는 미소가 만연했다. 마치 현찬이 어떤 인물인지 확인을 하는 시선. 하지만 현찬 또한 그의 몸을 가볍게 훑어보며 상대방을 살폈다.
그의 등장은 순간이동. 아니, 정확히는 축지법(縮地法)이었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사용할 정도로 상당히 숙련된 상태. 저 정도로 도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정도라면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다, 당신은!”
황설영이 그를 알아보고는 입을 쩍 벌리며 외치려는 순간 남자가 먼저 선수를 쳤다.
“강현찬 헌터님 맞으시죠?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헌터 협회 소속 S랭크 헌터. 맞죠? 이름은 비밀이고요.”
현찬이 먼저 말하자 남자는 한 방 먹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와. 되게 유명하신 분인데 역시 그만한 이유가 있었네요. 맞습니다. 제가 그 헌터입니다. 이름이나 영령, 인적사항은 비밀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저와 계약한 <영령>의 특성이 그렇다 보니까요.”
현찬과 인사를 나누느라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남자에게 황설영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당신은 여기에 왜 온 겁니까? 아니, 그보다 대체 언제 온 겁니까? 왔으면 상부에 보고를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예전부터 누누이 말했지만…….”
“에이~ 설영 씨도 참. 인생 피곤하게 살지 말자. 사람이 융통성 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 아무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여러 가지 소식을 주워들었는데 신급 영령의 계약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구경차 빠르게 달려온 거야. 운이 좋았네. 이렇게 오자마자 만나다니.”
현찬은 둘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남자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 <헤르메스의 눈>을 사용했다.
몇 번 연습한 덕에 정보의 양을 조절할 수 있었고 현찬은 눈앞의 남자에 대한 정보를 집중적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남자의 정보는 읽히지 않았다.
아니, 읽히기는 했다.
다만 정보창 일부분이 마치 먹물을 칠한 것처럼 여기저기가 지워져 있었을 뿐.
곳곳에 중요한 정보는 붓질한 것처럼 가려져 있었고 대부분 정보도 가려져 있었다. 그 때문에 제대로 파악이 불가능했다. 대표적인 예시로 이름 부분에서는 김■■라 적혀있어서 그가 김 씨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헤에. 되게 독특 영령인데?]
‘누구인지 알겠어?’
[그건 나도 자세히 모르겠어. 가지고 있는 영령으로서의 격이나 힘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조금 독특한 분야로 발달한 영령 같아. 그래. 굳이 비슷한 걸 뽑는다면 나와 비슷한 과라고 볼 수 있겠네.]
‘너와 비슷한 과라고?’
현찬과 헤르메스가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남자가 고개를 휙 돌려 현찬에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혹시 오늘 게이트에 들어가거나 합니까?”
“네. A랭크 게이트에 들어가려고 왔죠.”
“오. 그렇군요.”
남자는 목을 가다듬더니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물었다.
“혹시 견학해도 됩니까?”
“음?”
남자의 말에 현찬이 의아한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