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49화 밀려오는 문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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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건 말도 안 된다!’
테리 쿠아시는 지금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아주 끔찍한 악몽이라고.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 이 현실을 맨정신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주변을 둘러싼 것은 결국 잔혹한 현실이었다.
그가 아무리 회피하려고 해도 절대로 피할 수 없었다.
“왜 그러지? 테리 쿠아시. 몸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아, 내가 마음을 읽어서 그렇다고? 어떻게 그러냐고? 그거야 비밀이지. 그보다 현실 부정은 적당히 해. 아니면 내가 이 현실을 깨우쳐 줘야 하나?”
왼쪽 눈에 황금 안대를 낀 현찬은 식은땀 흘리며 입술을 깨무는 테리 쿠아시를 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륵불(彌勒佛) 궁예(弓裔)>
후삼국 시대의 군웅.
고려의 전 국가인 태봉의 초대 국왕이자, 마지막 국왕.
한때는 뛰어난 군주이기도 했지만, 마지막에는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은 파란만장한 삶을 산 인물이었다.
<궁예>는 왕급 영령이지만 여타 왕급 영령들과 비해서는 명성보다 약하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방면으로 매우 유명했다. 전투 능력도 있으며 군을 이끈 경험도 풍부했지만, 궁예라는 영령을 가장 유명하게 만들었으며 그만이 가진 유일한 특징.
<관심법觀心法>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무시무시한 능력이었다.
[짐은 미륵불이니라. 어찌 짐의 앞에서 감히 거짓을 고하는가.]
마음을 꿰뚫어 보는 궁예의 능력 앞에서는 거짓말도 침묵도 절대로 소용이 없다.
물론 완벽한 능력은 아니다. 상대방이 시전자보다 마력이 월등히 높거나 격이 다른 인물이라면 그 마음을 읽어낼 수 없다. 심지어 비슷한 수준만 되더라도 읽어낼 수 있는 정보의 수준이 급격하게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테리 쿠아시는 현찬에 비해서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아무리 머리를 비우려고 애써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입을 꾹 다물어도 그의 머릿속에 있는 명확한 정보는 현찬의 눈에 전부 다 읽혔다.
“세상에.”
그 광경을 특수유리 너머로 바라보고 있던 황설영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경악했다. 그것은 황설영의 곁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협회의 관계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처음에 현찬이 테러리스트의 심문을 자신이 맡겠다고 했을 때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현찬이 최단기간 A랭크 헌터를 달성하고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일들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전투에 특화된 일이었다.
누군가를 심문하는 것은 싸우는 것과 다르다. 특히나 이쪽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 한다는 <서희>의 계약자인 정기원 실장마저도 실패한 일이다. 고문조차 먹히지 않는 상대에게 현찬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편견은 유리에 망치를 후려치는 것처럼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저, 저건 궁예? 저 사람의 능력을 대체 왜?’
‘신급 영령의 계약자인데 궁예의 힘은 어떻게 다루는 거지?’
‘대체 어떻게 되먹은 신이기에 저러는 거야?!’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그런 감정을 품고 있을 때 현찬은 특수유리 너머로 시선을 던지며 씨익 웃었다. 이 정도면 괜찮냐는 시선이었다. 그 눈빛에 황설영은 분명히 저쪽에서 이쪽을 보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찬의 능력이 이제 정확히 무언인지 알려는 생각은 버렸다.
중요한 건 지금 현찬이 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테러리스트의 마음속을 읽을 수 있다는 거고 이것이 테러에 두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구할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었다.
“저 또한 들어가서 심문에 동참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머지는 이쪽에서 상황을 계속 지켜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현찬에게 저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한시라도 빠르게 테러리스트들의 정보를 알아차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황설영은 문을 열고 심문실로 들어가 현찬의 옆자리에 딱 붙듯이 앉았다. 헤르메스가 그것을 보고 ‘저, 저저! 여우 같은 년이!’하고 외쳤지만, 현찬은 그 소리를 애써 무시했다.
“어서 와요.”
“강현찬 헌터님. 이제부터 질문은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답변은 확실히 해 드리겠습니다.”
현찬이 저렇게 말하니 황설영은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등에 업은 것 같았다.
그 광경에 테리 쿠아시는 혀를 콱 깨물어 자결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발버둥이였다. 현찬이 이미 그의 의도를 읽고서 사전에 차단했기 때문이다.
입에 재갈까지 물린 테리 쿠아시는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현찬의 물음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묻겠다. 이번 테러를 일으키려는 너희 데스페라도 조직은 총 몇 명이지?”
현찬은 친절하게 황설영의 말을 아랍어로 통역을 해서 테리 쿠아시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재갈을 물린 상태에서 어떻게든 몸을 뒤틀며 발악을 했지만 이미 현찬은 녀석의 마음속을 읽은 지 오래였다.
“총 213명이로군요. 이렇게 보여도 조직에서 나름의 지위가 있어서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조직의 위치는? 꿍꿍이는 대체 무엇이지?”
재차 이어지는 질문의 연속. 현찬은 테리 쿠아시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들을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었다.
“데스페라도는 수원시 사태로 인해 대한민국이 혼란스러워지자 그 틈을 타서 각종 테러 활동을 벌여서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더욱 각인하려는 속셈입니다. 원래부터 벼르고 있었는데 큰 구멍이 뚫렸으니 ‘이때가 기회다’하고 몰려온 거죠.”
해외에서 몰래 들어온 자들도 있지만, 한국 내부에서 활동하는 놈들도 전부 모였다. 국내에서도 데스페라도 소속의 한국 헌터들이 없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최근 몬스터들을 믿는 이상한 종교집단이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어서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테러를 벌이기 적당하다고 합니다. 현재 이 테리 쿠아시 말고도 비슷한 수준의 테러리스트가 무려 7명이나 더 있네요. 그리고 이 일을 주도한 간부 격 인물이 하나 있고.”
“간부라면 누구입니까?”
“아마르 알 하진이라고 하는군요.”
“음.”
그의 이름을 말하자 황설영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아마르 알 하진.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러리스트였다. 극렬 이슬람 주의자인 그는 자신들의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며 매우 잔혹하게 살해하는 자였다.
무엇보다 그는 각성자이며 A랭크 헌터에 버금가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프랑스 열차 테러 사건’이었다.
아마르 알 하진, 그는 혼자서 칼을 들고서 열차에 몰래 숨어 들어가 그 안쪽에 탑승한 승객 전원을 처참하게 살해했고 이는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고 갔다.
302명이나 되는 사망자 명단은 노인과 아이를 가리지 않았다.
수많은 헌터들이나 현상금 사냥꾼들이 그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을 상대하는 자들을 농락하듯 계속 테러 활동을 자행해왔다. 그런 위험한 인물이 지금 한국에 들어와서 테러하려 한다니 당연히 걱정이 밀려올 수밖에 없었다.
“장소는 총 열 군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집중적으로 테러를 벌일 생각이며 이 모든 일의 시작 시각은…… 큰일이네요. 원래라면 6시간은 더 걸릴 일들이지만 이미 한 명이 잡혀서 미리 정해진 대로 거사를 앞당긴다고 하더군요.”
“네? 그렇다면 시간이 얼마나 남은 겁니까?”
“…… 30분.”
콰당!
황설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앉던 의자가 뒤로 넘어졌지만, 그녀는 고작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 당장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장소는 어디인지 아십니까?”
현찬은 즉시 정보를 읽고 하나하나 읊어주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는 것과 동시에 황설영은 휴대폰을 꺼내 황급히 전화를 걸었다.
“황설영입니다. 지금 급한 상황입니다. 앞으로 30분 내로 데스페라도 녀석들이 움직일 예정입니다. 놈들이 노리는 위치는 문자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바로 그쪽으로 헌터들 파견을 부탁드립니다.”
이곳에 머물기에는 일 분 일 초라도 시간이 아까웠다. 밖에서 상황을 전해 들은 협회 사람들도 분주하게 움직였고 국가에 소속된 헌터들에게 연락을 하거나 다른 클랜 사람들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황설영은 현찬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만 저도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워낙 바쁘다 보니…….”
“아뇨. 괜찮습니다. 저 또한 이 녀석들과 결착을 봐야 해서 말이죠.”
황설영은 고맙다는 대답을 남기고 떠났다.
현찬이 테리 쿠아시를 보니 녀석은 입에 재갈이 물린 채 끅끅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래, 우스울 테지. 마음을 읽어가며 정보를 얻었지만 이미 늦었으니까.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마음을 읽는 현찬에게 테리 쿠아시의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끝마쳤다는 사람의 후련함과 기쁨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그는 현찬을 보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쩔 거냐? 네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동시에 열 군데에서 벌어지는 테러는 막지 못할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도 그런 여유 있는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죽는 걸 보고도 네놈의 평정심이 무너지지 않을까? 기대되는구나.’
눈을 희번덕거리는 테리 쿠아시의 시선이 현찬은 오른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내렸다.
“큭큭!”
현찬은 웃고 있었다.
테리 쿠아시는 그 광경을 보며 의아했다.
이런 상황에서 웃어?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실성이라도 한 것인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테리 쿠아시가 눈살을 찌푸리자 현찬이 입을 열었다.
“진짜 별것도 아닌 거로 뻗대는 꼴이 참 같잖네.”
현찬은 웃음을 멈추고는 싸늘한 표정으로 테리 쿠아시를 내려다보았다. 현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기세에 테리 쿠아시는 몸을 움츠렸다. 그의 신체가 머리의 통제를 벗어나서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너희가 그렇게까지 하겠다면…… 그 도전 받아줄게. 이쪽도 진지하게 간다.”
현찬은 자신의 눈에 걸린 안대를 제거했다.
[계약자여. 위대한 짐과 계속 계약을 맺지 않겠는가? 그대라면 짐에게 어울리는 신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헤르메스. 이놈 쫓아내.”
[오케이!]
[짐은 미륵불…… 허어억!]
헤르메스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며 헛소리하는 궁예를 바로 쫓아내 버렸다. 자기가 마치 신이라도 된 양 거만하게 대하는 궁예의 헛소리를 들어주자니 헤르메스는 스스로가 신인데도 정신병이 걸릴 것만 같았다.
[휴. 속이 시원하네.]
이제 꼴 보기 싫은 녀석을 쫓아냈으니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현찬이 지금 자신에게 계약할 영령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뭐어어어?!]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헤르메스가 보인 반응은 매우 격렬했다.
[안 돼! 얘는 진짜 안 돼!]
헤르메스 고개를 저으며 완강하게 거절했다. 지금 현찬이 말한 영령은 헤르메스로서도 매우 껄끄러운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녀석을 부를 바에야 차라리 다른 신들을 부르는 것이 훨씬 더 편했다.
하지만.
호랑이도 부르면 온다고 했던가?
[뭔가 재미난 인간이 나를 찾았다고 들었는데 말이지.]
헤르메스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현찬이 말한 영령이 직접 나타났다.
왜냐하면, 이 영령에게는 그만한 힘과 능력이 있었으니까.
“그래. 네 도움이 필요해.”
현찬의 말에 그 영령은 씨익 웃었다.
매우 장난스러워 보이는 미소가 헤르메스와 비슷해 보였다.
[나 또한 바라던 바라고.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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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은 황설영이다. 현재 그쪽 상황은 어떻지?”
“네. 특무 4과입니다. 아직 사람들이 다 모이지는 않았기에 현재 대기 중입니다.”
“다른 곳은?”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클랜에도 지원을 요청하기는 했지만, 그쪽에서도 이유를 대면서 어떻게든 헌터들을 파견하는 것을 꺼리는 중이라서…….”
“지금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무슨 이유를 대! 어디 클랜이 그렇게 말하는 거지?”
“그, 그게. 화랑 클랜입니다.”
“그 자식들이……!”
사람들의 목숨을 뭐로 보고 그렇게 미적지근하게 행동을 한다는 건가. 황설영은 속으로 분노가 끓어 올랐지만, 딱히 방도가 없어서 속으로 화를 식힐 수밖에 없었다.
“일단 적당한 인원이 모이는 즉시 상황 봐서 돌입할 수 있도록. 이대로 지원을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오히려 시민들이 죽고 만다.”
“네, 알겠습…… 어?!”
황설영은 갑자기 무전에서 들려오는 기함에 귀를 쫑긋했다.
“무슨 일이지?”
“그, 그게…… 테러리스트들의 은거지를 확인하는데 한 헌터가 놈들을 다 정리했습니다.”
“한 명이? 대체 누구인데?”
“강현찬 헌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