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47화 밀려오는 문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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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본 시위자들. 그 틈새에 섞인 이질적인 다른 사람.
대부분 사람은 이름이나 간단한 프로필이 정보창처럼 나타나지만, 그 사람은 달랐다. 정확히는 일반인이 아닌 각성한 헌터에게만 나타나는 창이 떴으니까.
그냥 헌터라면 그래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뭘 하려고 해도 잘 안 되는 F랭크 헌터가 시위에 참여하는 일이야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녀석에게 [소속 : 데스페라도]라는 말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현찬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 저 녀석이 무언가를 하려고 수상한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현찬은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녀석이 자신의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는 순간 현찬은 녀석의 팔을 걷어차면서 지면에 착지했다.
“크악!”
“뭐, 뭐야?!”
“초, 총이다!”
팔에 느껴지는 강렬한 고통에 남자가 놓쳐 바닥에 떨어진 것은 바로 권총이었다. 그것을 알아본 시위자들은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현찬과 팔을 부여잡은 남자로부터 최대한 멀어졌다.
몬스터에게 귀의해야 한다고 그렇게 떠드는 놈들이 총 하나 봤다고 겁에 질려서 놀란 미어캣처럼 도망치는 꼴이 참 우습기도 했지만, 지금은 눈앞의 사람에게 집중해야 할 때였다.
“빌어먹을!”
데스페라도 조직원은 욕설을 내뱉으며 현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걷어찬 팔은 부러졌는지 덜렁거렸고 나머지 한쪽 팔을 크게 벌리며 몸을 낮춰 태클을 건다. 하지만 이미 A랭크를 뛰어넘어 조만간 S랭크 승급 시험을 받을 예정인 현찬에게는 우습기만 한 움직임이었다.
녀석의 몸에 폭탄이 둘러진 것을 알기 전까지는.
“크아아! 죽어라!”
녀석도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은 현찬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그렇기에 옷 안쪽에 숨겨놓은 폭탄을 이용해서 함께 자폭할 생각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었으니까.
근거리에서 폭탄이 터진다면 아무리 헌터라고 해도 당연히 다치고 심하면 죽는다.
그러지 않고서야 무법지대에서 헌터들이 총에 맞아 죽는 일들이 벌어질 리 없으니까
다만 상대가 현찬이었다는 것이 바로 녀석의 불행한 점이었으리라.
<헤르메스의 눈>
현찬은 이미 녀석이 옷 안쪽에 폭탄을 두르며 숨겨놓고 있는 것 또한 이미 파악한 상황. 활짝 편 오른손은 태클하려는 훼이크. 중요한 것은 일정 거리에 접근한 순간 왼손에 쥔 자그마한 버튼으로 폭탄을 터뜨릴 생각이리라.
‘이래서 탈레반 쪽 영령과 계약한 놈들이 악질이라고 하는구나.’
사람들이 말하기를 <악령> 중에서 가장 악질적인 녀석들은 급이 높은 악령이 아니다. 오히려 급이 낮은 달인급 악령이 가장 악질적이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은 바로 극 이슬람주의 <악령>들이다.
전직 알카에다, 탈레반, IS 출신의 달인급 악령들. 놈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극렬한 테러리즘에 있었다.
계약자마저 목숨을 불살라 테러하게 하는 악랄함!
현찬이 상대하는 녀석도 그런 부류였다.
이런 녀석들에게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었다.
현찬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테레이오스테(Teleióste)]를 휘둘렀다. 검은 도신이 공간을 빛살처럼 가르고 지나갔고 그 궤적에 걸린 테러리스트의 오른손은 팔뚝 아래로 잘려나갔다.
“끄아아악!”
“시끄럽고 잠이나 자라.”
현찬은 손잡이로 녀석의 뒷목을 적당히 힘줘서 내려쳐 기절시켰다. 그리고 잘린 팔의 단면에서 뿜어지는 피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구매한 포션을 일부 뿌리며 지혈했다. 혹시나 과다출혈로 죽으면 귀찮은 일이 생긴다.
현찬이 테러리스트를 진압하자 의경들이 몰려와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시위자들을 해산시키고 무전으로 테러가 일어났다고 알리며 현찬이 쓰러뜨린 사람을 구속했다.
무슨 일인가 구경하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폴리스 라인을 치며 상부에 빠르게 보고한다.
‘일 처리 잘하네.’
요즘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경찰이나 군인들은 매우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다.
하긴 그들도 지금 사태의 위험함을 느꼈으니 당연히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으리라. 이 테러리스트가 총과 폭탄을 가지고 있는 것만 봐도 시위자들 틈새에서 총으로 경찰들을 쏴 죽이고 마지막에 자살테러를 벌였을 거로 예상할 수 있으니까.
‘경고는 들었지만 설마 데스페라도에서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이야.’
[자신의 목숨을 이용해 아무런 관계도 없는 타인을 끌어들이려고 하다니. 상당한 독종이구나.]
전장을 누비던 여신인 아테나조차 이렇게 끔찍한 녀석들은 본적 없는지 혀를 내둘렀다.
그녀는 언제나 정의로운 싸움을 해왔기에 이런 자살 폭탄 테러는 그야말로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으리라.
때마침 국가 소속의 헌터들 또한 현장에 달려왔다.
그중에서 리더로 보이는 40대 남성이 현찬을 알아보더니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현찬에게 예의를 차렸다.
“강현찬 헌터님. 안녕하십니까. 국가 소속 헌터 이제철이라고 합니다. 먼저 테러를 사전에 막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아니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닙니다. 강현찬 헌터님이 아니었다면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겁니다.”
그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식은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말했다.
주위에서는 여전히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최근 데스페라도 조직에서 움직임을 보인다는 이야기 때문에 다들 신경이 아주 날카로워진 상태입니다. 설마 이렇게 광신도 집단을 이용해서 테러를 일으키려고 할 줄은 몰랐네요.”
“네. 그러게요. 부디 앞으로도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현찬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현찬의 감은 이미 불안한 미래에 대한 경고를 내비치고 있었다. 데스페라도는 세계 2대 테러조직답게 고작 이번 한 번 실패한 것으로 테러를 그만둘 리가 없었다.
원래라면 한국의 테러리스트 녀석들은 얌전히 지내야 했지만, 수원시 게이트 사태 이후 사회가 떠들썩하게 변하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찬은 이 모든 일이 마치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발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좀처럼 지우지 못했다. 특히나 가장 걸리는 것은 바로 그 새 가면. 게이트 사태를 일으킬 정도라면 그 혼자 있는 것만은 아닐 터.
현찬은 사태에 관한 가벼운 진술만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 현찬을 반겨준 것은 새로운 육체를 얻고서 현대사회의 문물을 마음껏 즐기는 헤르메스였다. 한창 TV에서 나오는 영화를 보던 헤르메스는 현찬이 돌아오자 고개를 돌리며 반겨주었다.
“어. 현찬아 왔어? 어때? 아테나와 동화율은 좀 많이 올랐어?”
“뭐, 적당히?”
현찬이 그렇게 말했지만, 아테나가 그 말을 부정했다.
[적당이라니. 오히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랐다.]
“흐음. 예상했던 것도 나름 높게 잡은 거였는 데 그보다 더 빠르다니. 뭐, 오히려 좋은 일이니 딱히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나의 계약자가 이렇게나 뛰어난 인재라는 것을 알면 알수록 이쪽은 걱정만 늘어날 뿐이다.]
“그건 동감해.”
바로 다른 신들이 현찬을 노릴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테나와 헤르메스의 최대 고민이었다. 헤르메스는 혹시나 그럴 상황을 대비해서 아테나와 계약 맺게 했지만 그런데도 걱정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신들이 그런 걱정을 하는 와중에 현찬은 당연히 데스페라도 녀석들에 관해 걱정하고 있었고 이 중에서 걱정할 게 전혀 없는 한 명만 느긋하게 부엌에서 과일을 접시에 담아 가져왔다.
“오셨습니까. 현찬 님. 과일 좀 드시겠습니까?”
바로 황금인형의 여섯째이자 막내인 에크티.
원래라면 검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할 그녀였지만 육체를 구성한 헤르메스가 집안일을 도저히 하지 않아서 결국 현찬이 바깥에 계속 꺼내놓은 상태.
과연 헤파이스토스의 걸작답게 에크티는 요리도 곧잘 했고 집안일을 전부 다 혼자서 도맡아서 하는 등 최고의 가정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헤르메스와 현찬은 에크티가 깎아준 과일을 먹으면서 TV를 시청했다. 때마침 영화도 끝났기에 뭐 볼 게 없나 싶어 채널을 돌리자 뉴스에서 속보를 알리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현 시각으로부터 약 15분 전, 강남 지하철역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데스페라도의 소행으로 보이며 현재 해당 관할의 헌터와 경찰이 추적 중에 있다고 합니다.]
소식은 그것 하나로 그치지 않았다.
강남역 말고도 사람들이 자주 찾는 명동 거리나 가족끼리 산책하는 공원에서도 이와 비슷한 테러들이 연달아 벌어졌다.
“심하네.”
헤르메스도 브라운관으로 전송되는 광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TV 채널을 아무리 돌려도 온갖 테러에 관한 이야기들만 떠들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도 당연히 테러에 관한 뉴스들로 도배가 되다시피 한 상황.
쉽게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 경우에는 헌터들 또한 강제로 동원되어 테러리스트들을 잡아야 할 의무가 있어서 현찬은 아무래도 머지않아 매우 바빠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현찬 스스로 의지로 바뀌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현찬의 휴대폰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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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 형.”
“강윤아.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현찬은 중환자실의 침대 위 누워서 숨을 헐떡이는 강윤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평소에도 몇 번 연락하고 지냈던 동생이 갑자기 병원에 실려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이야기는 들었다.
테러리스트들이 나타났을 때 때마침 던전을 돌고 나온 강윤이 그 근처를 지나가던 중이었다고 한다. 때마침 테러를 벌이려던 녀석들과 강윤이 싸웠고 강윤은 영웅급 영령인 <삼손>의 계약자답게 데스페라도 녀석들을 차근차근 쓰러뜨렸다.
하지만 마지막 녀석이 근처의 일반인들에게 폭탄을 던졌고 강윤은 사람들을 지키려고 몸을 날려 육체를 방패 삼아 막았다. 그리고 보다시피 결과가 바로 이것.
다행히도 죽은 사람은 없지만 강윤은 너무나도 큰 상처를 입어 힐러들의 치료를 받으며 1개월 이상은 쉬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형. 다른 사람들은 안 죽은 거 맞죠?”
“그래. 자식아. 잘했다. 잘했어.”
현찬의 칭찬에 머리에 붕대를 두른 강윤은 순박한 미소를 지었다.
“다 형보고 배운 거죠. 뭐.”
강윤은 아직도 잊지 않았다. 헌터 실습 때 자신을 지켜주려고 몸을 날리던 현찬을. 그리고 기간테스를 쓰러뜨리던 그의 뒷모습을.
언젠가 자신도 저렇게 될 거라는 생각을 품고서 열심히 노력했다.
그 뒤를 조금이라도 따라가고자 했기 때문에 강윤은 망설임 없이 행동할 수 있었다.
그 마음을 잘 아는 현찬은 잔소리 할 수 없었다.
“쉬어라. 그래야 더 빨리 낫지.”
“네. 그럴게요. 형.”
“괜히 아픈 환자 붙들고 미안했다. 자라.”
현찬은 그 말을 남기고 병실을 나섰다.
[현찬아. 어쩔 거야?]
[계약자여. 이제 어떻게 할 거지?]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질문에 현찬은 뭘 그런 걸 묻느냐는 투로 대답했다.
“당연한 거 아니야?”
친한 동생을 상처 입힌 녀석을
박살 낸다.
“사람 잘못 건드렸어.”
무시무시한 투기를 내뿜은 현찬이 탈라리아를 신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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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서울 외곽에 자리 잡은 버려진 폐공장. 그곳에서 8명이 모여서 각자 무기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총과 폭탄을 챙기면서 다음 테러 활동을 벌이려고 대기하던 데스페라도의 조직원이었다.
“원래 정했던 대로 시간이 되면 움직인다. 그쪽도 잘 할 수 있도록.”
그중 대장이자 직접 서남아시아에서 한국으로 찾아온 테리 쿠아시는 다른 곳에서 대기하는 팀원에게 무전을 보낸 후 자신의 무기를 갈고 닦기 시작했다.
초기 테러 활동은 그렇게 큰 소득을 보지는 못했지만 맛보기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테러는 이제 곧 시작될 테니까.
“여기 다 모여 있었네.”
천장에서 갑자기 나타난 현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등장에 각자 쉬고 있던 데스페라도 조직원들은 모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놈들은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현찬을 노려보았다.
“헌터? 대체 여기 어떻게?”
“냄새를 맡았구나. 하지만 혼자서 왔다고? 자만이 가득하군.”
그들은 현찬이 혼자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하지만 그것도 곧 시간문제다. 현찬이 이곳에 찾아왔다는 것은 다른 헌터들도 온다는 소리였으니까.
‘놈이 방심한 이 틈에!’
최대한 빠르게 현찬을 정리하고 벗어난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일곱 개의 빛줄기가 그대로 이곳의 리더인 테리 쿠아시를 제외한 나머지 조직원들의 팔다리를 꿰뚫었다. 상처로부터 피가 뿜어져 나오고 뒤늦게 고통을 인식한 조직원들이 각자 상처 부위를 부여잡으며 비명을 내지른다.
“아아악!”
“크윽!”
“이, 이건 대체?”
그들을 꿰뚫은 것은 놀랍게도 허공을 떠다니는 6자루의 비도와 한 자루의 검이었다.
“어딜 멋대로 도망가려고 해?”
[나의 계약자 앞에서 도망을 치려고 하다니. 우습기 짝이 없구나.]
현찬의 등 뒤로 수염을 잔뜩 기른 거칠어 보이는 야수와 같은 남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현찬과 계약을 맺은 영령.
그는 고구려의 권신이자 가장 높은 직책을 가진 고구려 최고의 불꽃.
세상을 집어삼킬 것 같던 나당 연합군을 막아내며 자신의 고국을 지켜낸 영웅.
<대막리지(大莫離支) 연개소문(淵蓋蘇文)>
부리부리한 눈매로 적들을 훑어보는 연개소문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감히 외세가 우리 영토에 침범하려 하다니. 일러도 천년은 이르다.]
그렇게 말하는 연개소문의 등 뒤로 여섯 자루의 비도가 두둥실 떠올랐다.
수많은 당나라 군인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준 그의 비도술(飛刀術)이 테러리스트들을 향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