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46화 밀려오는 문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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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님. 황설영입니다.”
“들어오게.”
“네. 들어가겠습니다.”
황설영은 사무실 문을 열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헙터 협회 서울지부 정기원 실장은 그런 시시콜콜한 예의는 차릴 필요 없다면서 중요한 사실들과 요점만 말하라고 지시했다.
“네. 일단 지난번 람브로눅스의 강현찬 헌터 습격 사건에 관한 일입니다. 현 시각으로부터 정확히 4일 전 람브로눅스 소속 범죄자 10명이 몰래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해당 루트는 추적 중인데 아무래도 폐쇄된 항구 쪽에서 온 것 같습니다.”
“항구 쪽인가.”
게이트가 생성되며 생긴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바다였다. 물속이라는 특성상 헌터들은 쉽게 몬스터들을 제거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바다에는 다양하고 많은 몬스터들이 서식했다.
물론 수만 톤이 넘는 유조선들이나 대형 선박은 여전히 잘 다니지만 작은 배들은 군함을 제외하고는 몬스터들의 목표가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피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여러 항구가 사람들이 사라진 유령 도시처럼 변하고 말았다.
그런 곳은 군인이나 경찰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이니 범죄자들이 몰래 들어오기에는 가장 적합한 루트이리라.
“하지만 버려진 항구라 하더라도 해안 경계선을 쉽게 넘어오지는 못할 터.”
정기원 실장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최악의 상황이 그의 뇌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국가 내부에 첩자가 있군.”
그러지 않고서야 총기까지 가지고 들어올 수 있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확신을 지니게 했던 것은 바로 현찬의 위치를 적들이 쉽게 파악한 것.
람브로눅스는 <괴물>의 계약자들이기 때문에 사람을 찾는 능력은 매우 떨어진다. 오로지 파괴와 전투에 치중된 능력을 지닌 놈들이 그런 깊은 숲으로 들어간 현찬을 찾았다? 너무나도 이질적이다.
“그것도 우리 협회 내부에 있어.”
“…….”
황설영은 말을 아꼈지만, 그녀도 내심 정기원 실장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협회 내부에 첩자가 있지 않은 이상은 지금 상황이 절대로 벌어질 수가 없었다. 누군가 내부에서 현찬에 관한 정보를 외부로 팔아넘기는 것이다.
“실장님. 그리고 강현찬 헌터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새로운 정보를 하나 알아냈습니다.”
수원 게이트 사태 때 도시 안쪽에 있었던 새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사람. 마치 이 상황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모든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그의 이야기를 해주자 정기원 실장의 이마가 더욱 찌푸려졌다.
그런 곳에 정체불명의 사람이 있다는 것부터가 수원시 게이트 사태가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골치 아프군. 그렇다고 다른 누구에게 이야기를 꺼내기도 모호해.’
첩자가 있다. 그것도 다양한 정보를 아는 것을 보면 나름 높은 직급.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의심 가는 사람은 가득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를 믿고 새 가면을 쓴 사람에 대한 정보를 털어놓겠는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황설영 뿐이었다.
“이 건에 대해서는 일단 조심히 움직이도록 하지. 협회 내부의 첩자를 색출하기 전까지는 우리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황설영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방을 나섰고 혼자 남겨진 정기원 실장은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최근 너무 다양한 문제들이 연달아 터지고 있었고 그런 것들을 신경 쓰다 보니 퇴근조차 하지 못하는 날이 태반이었다.
수원시 게이트 사태.
람브로눅스의 등장.
협회 내부의 첩자.
그리고 가장 골치가 아픈 것은 바로 지금 협회 바깥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인간들이었다.
“협회는 물러가라! 우리의 위대한 신들을 위협하는 협회는 물러가라!”
“신들이시여! 부디 저 어리석은 자들에게 천벌을!”
“헌터들은 각성하라! 신들의 분노가 두렵지도 않느냐!”
두세 명 정도가 저러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 수가 100명이 넘어서면 문제가 있다.
광신도 종교집단.
<대통합>이후에 나타났으며 점점 그 세력을 불려 나가 지금은 지구 곳곳에 암약하고 있는 미친놈들의 집단이다.
저 인간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몬스터들을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이다.
신께서 지상의 인간들에게 환멸을 느껴 몬스터들을 보내 지상의 인간들을 쓸어버리려 한다. 그런 신이 직접 보낸 몬스터들은 곧 신의 화신이라는 것이 저들의 주장이다.
원래도 귀찮은 집단이었는데 지난 수원 게이트 사태 이후로는 더욱 극성이 되었다.
수원 게이트 사태도 결국 분노한 신이 내린 천벌이라고 입에 거품 물고 떠드는데 이젠 협회까지 나타나서 시위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최근 데스페라도 녀석들도 움직임을 보여서 신경이 날카로운데 귀찮게 됐군.’
람브로눅스와 동등한 취급을 받는 조직 데스페라도. 이놈들도 위험하다. 세계 곳곳에서 산발적인 테러를 벌이는 이놈들은 예전 IS와 맞먹는 극렬한 테러리스트들이었으니까.
정기원은 자신의 책상 위에 올라온 서류를 보며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아무래도 오늘도 퇴근하기엔 그른 것 같았다.
‘그보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서류에는 이번 람브로눅스가 현찬을 습격했던 장소의 현장 사진이 찍혀 있었다.
숲 일대가 그야말로 녹아내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파괴되어 있었다.
람브로눅스의 뛰어난 조직원 중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그야말로 검은 숯덩이가 되었다.
전부 현찬 혼자의 힘이었다. 특무 3과의 부팀장인 송지석의 증언에 따르면 멀리서 봤지만 엄청난 열량을 지닌 폭풍이 휘몰아쳤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맨땅에 성을 짓더니 이번에는 A랭크 범죄자를 쓰러뜨릴 정도로 강렬한 열 폭풍을 몰고 왔다?
‘대체 영령의 정체가 뭐야?’
그리고 그 능력의 끝이 무엇인지 감조차 잡히질 않았다.
이쯤 되면 이제 놀랍지도 않다.
&
끼에에엑!
거대한 덩치를 지닌 거미 몬스터가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워낙 큰 녀석이다 보니 쓰러지는데도 주변의 땅이 크게 울렸고 지면의 먼지가 뿌옇게 일어났다.
“후우.”
현찬은 3급 몬스터인 자이언트 타란툴라를 쓰러뜨리고 가쁜 숨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창으로 변한 [테레이오스테(Teleióste)]를 다시 검의 모습으로 되돌렸다.
[훌륭하구나. 계약자여. 설마 나와 계약을 맺은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에 이렇게나 자유자재로 힘을 끌어올리다니.]
아테나는 그런 현찬의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헤르메스의 계약자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또한 그 지닌바 재능이 범상치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현찬의 재능은 뛰어났다.
전투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아테나의 힘을 다루는 실력이 일취월장했으니까.
어디 재능뿐인가.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마음가짐과 올곧은 의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까지 더해지니 많은 영웅을 보며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아테나조차 현찬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쯧. 헤르메스 녀석. 나를 이용해 먹으려고 하다니.]
그리고 헤르메스가 왜 아테나와 현찬이 계약을 맺게 도와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일종의 방패막이다. 전신으로서 권위가 아주 높은 아테나는 현찬을 노리는 다른 신들을 아주 잘 막아내는 최고의 방패였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그녀가 헤르메스의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그렇기에 헤르메스의 그런 속내를 알고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현찬과 계약은 너무나도 달콤한 유혹이었고 결국 아테나는 현찬을 노리는 다른 신들을 막아주는 역할을 자처했다. 그리고 그 선택과 행동에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만족하기까지 했다.
현찬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인재.
[후후.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구나.]
이미 아폴론과 헤파이스토스가 거쳐 간 흔적이 있었지만, 이 둘은 크게 욕심을 내는 성격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만약에 아레스가 먼저 현찬을 눈독 들였다면 아테나로서는 정말 억울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잤을 것이다.
비록 조금 손해는 보았지만, 그것을 감안하고도 충분한 이익이 있었다.
아테나가 그런 생각을 품는 동안 현찬은 어제 있었던 황설영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이매망량이라.’
한반도의 이매망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해주던 것이 기억났다. 그리고 이매망량이 현찬을 주시하고 있다는 정보 또한.
놈들이 노리는 것은 현찬. 하지만 이매망량은 무조건 <영령>들에게 증오를 불태우는 <괴물>과는 다른 녀석들이라서 명확한 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오히려 아군이 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었다.
미래를 알지 못하는 처지에서는 무작정 적대할 수도 없는 노릇.
‘부딪쳐 봐야 알겠지.’
게다가 황설영이 경고했던 것은 이매망량에 그치지 않았다.
그녀가 말해준 정보에 의하면 데스페라도 또한 무언가 움직임을 보이며 현찬을 노리는 다른 나라의 클랜들, 무엇보다 최근 이슈인 광신도들의 집단은 그야말로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세상에 참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
현찬은 게이트의 핵을 부수고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게이트는 클리어했으니 사체는 챙겨 가시면 될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헌터님.”
게이트 바깥에는 게이트를 지키는 군인과 협회 공무원들 그리고 몬스터 사체를 챙겨가기 위해 트럭을 끌고 온 사람들이 있었다. 현찬은 짐꾼을 대동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직접 업체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업체 쪽에서는 자신들의 일거리가 떨어지니 옳다구나! 하고 달려들었다. 보통 몬스터 사체를 처분하는 업체들도 그 수가 많았고 특히나 대형 업체가 아닌 중형 업체는 경쟁이 그야말로 불꽃이 튀기도록 치열했지만, 현찬의 경우에는 그런 경쟁에 휘둘릴 필요가 없었다.
다 부르면 되니까.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만 정말 그만한 능력이 됐다.
실제로 몬스터 사체를 처분하러 온 사람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하나하나가 그 크기가 자그마한 주택의 크기만 한 거미 몬스터 시체들이 게이트 내부에 아주 쫙 깔려있었다. 몬스터 사체를 처분하는 사람들답게 비위가 좋음에도 거미 공포증이 생길 정도로 징그러운 시체들이 지천으로 널렸다.
그 수는 또 어떤가. 이번에 대형 건이라서 나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트럭이란 트럭은 거의 다 끌고 왔음에도 전부 다 담지 못할 양이었다. 아마 처분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소모될 것이다.
“이, 이건 대체.”
“이게 혼자서 사냥한 거라고?”
업체 직원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현찬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차용> [탈라리아(Talaria)]
사람들의 시선이 사라지자 현찬은 [탈라리아(Talaria)]를 신고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른 현찬은 아래에 펼쳐진 서울의 도심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피켓을 들고 도로를 점거한 시위를 벌이는 일단의 무리였다.
‘저 사람들이 바로 그 광신도 집단인가?’
연신 헌터들을 몰아내고 몬스터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에 거품 물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을 보며 현찬은 혀를 찼다.
‘거 참. 미칠 거면 곱게 미치지. 그렇게 몬스터가 좋으면 게이트에 들어가거나.’
광신도들이 도로 한복판을 차지하고 불법 시위를 벌이니 도로가 크게 정체되었다. 근처를 순찰하던 의경들이 와서 시위자들을 몰아내려고 했지만, 의경들의 숫자가 부족해 보였다.
[말세로구나. 저런 사람들도 있다니.]
“뭐,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는 법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자신의 이지를 잃고 다른 무언가에 매달리는 불쌍한 사람들이지.]
아테나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시위자들을 바라보았다.
현찬도 아테나의 시선을 따라 시위자들의 모습을 보았다. 헌터로 각성하면서 발달한 오감 덕분에 현찬의 눈은 저 아래에 작게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도 쉽게 확인이 가능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던 현찬은 무언가 불현듯 뭔가 불안한 기운을 느꼈다.
<헤르메스의 눈>
현찬은 혹시나 해서 헤르메스의 눈을 발동시켰고.
“저건……?”
시위자들의 틈새에 섞인 누군가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