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45화 새로운 경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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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강현찬 헌터님. 여기입니다.”
협회에 들어서자마자 현찬을 반겨준 것은 당연히 직접 뵙자고 문자 보낸 황설영이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디펜시브 슈트 위에 자신의 몸에 딱 맞는 양복을 입고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그녀의 철저한 준비.
어느 순간에도 자신의 빈틈을 드러내지 않는 그야말로 강철 같은 여자였다.
“안녕하세요.”
“아직 심란하실 터인데 이렇게 불러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도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이렇게 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아뇨. 그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거야 뭐 공무원 처지에는 어쩔 수 없죠. 게다가 저도 3일 정도 푹 쉬니까 이제 괜찮아졌어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네요. 어디 한적한 카페라도 가시겠습니까?”
“그래야겠죠?”
주변을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면 모든 사람이 현찬과 황설영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헌터들도 나름 가십거리를 좋아한다. 최근 한창 주가가 최고치를 달리는 현찬과 여전히 한국 여자 헌터 중에서 최상위 랭크를 차지하는 황설영과의 만남은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충분했다.
거기가 이쪽을 향해 시선을 던지는 이들은 비단 헌터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협회 내부에서 일하는 협회 소속의 공무원들 또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이쪽을 보고 있었으며 특히나 현찬에 관해 어떻게든 특종을 뽑으려는 기자들은 아주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제가 사람이 적은 곳을 압니다. 거기로 가시죠.”
“그러죠.”
“어, 음. 저기…….”
현찬을 안내하려던 황설영은 잠시 머뭇거리며 물었다.
“혹시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닙니까? 왠지 오늘따라 분위기가 너무 달라 보이셔서.”
“아.”
현찬은 황설영이 왜 저렇게 반응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테나와의 계약 때문이었다.
황설영의 영령인 <두두리>는 신령에 가까운 존재라서 현찬의 헤르메스를 느낄 정도였다. 아테나의 기운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영령의 반응이 그러니 그와 계약 맺은 황설영에게도 그 영향이 미약하게나마 미치는 것이리라.
‘새로운 신급 영령과도 추가계약을 했다고 말하면 아주 뒤집어지겠군.’
현찬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는 정말로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가시죠.”
현찬은 황설영을 따라 협회의 쪽문을 통해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멀리 갈 필요가 있다 보니 차량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황설영의 차량은 고급스러운 차들이 즐비한 주차장 내에서도 눈에 확 띄는 검은색 스포츠카였다.
람보르기니 세스토 엘레멘토.
그야말로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온 것 같은 스포츠카의 등장에 현찬은 휘파람을 불었다. 슈퍼카에 대한 로망은 남자들에게 절대로 없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차 되게 멋있네요.”
“감사합니다.”
원래 여자들은 부드러운 곡선을 띄는 페라리를 더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는데 조금 의외였다. 하지만 황설영이라면 오히려 조금 더 각지지만 그 특유의 날렵함이 살아있는 람보르기니가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돈 많은데 차 한 대 정도는 살까?’
차를 아직 사지 않은 이유가 그렇게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였다. 어디를 이동하더라도 하늘을 통해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신발인 [탈라리아(Talaria)]가 있는데 굳이 기름값이 드는 차를 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차가 없는 것은 조금 허한 느낌이 들었다.
스포츠카는 그래도 남자의 로망이니 비록 타지는 않더라도 한 대 정도는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으니까.
현찬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품으면서 조수석의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서울의 풍경을 구경했다.
“강현찬 헌터님. 그 검은…….”
운전하다 신호에 걸려 잠시 차가 멈췄을 때였다. 조금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지 황설영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이 검이요?”
비록 칼집에 들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테레이오스테(Teleióste)]는 딱 봐도 범상치 않은 무기임을 알 수 있다. 검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뜨겁고 성스러운 기운은 숨길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네. 꽤 범상치 않은 무기 같습니다만. 혹시 <유물>입니까?”
“아뇨. 유물은 아니에요. 다만, 아는 사람이 만들어 준 거라서.”
정확히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 만들어 준 것이다.
현찬의 말에 황설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이 정도나 되는 무기를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는 겁니까? 놀랍군요. 저도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분은 별로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이름을 알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아마 쉽게 만나 뵐 수는 없을 거예요.”
“혹시 그분의 이름이라도 알 수 있겠습니까?”
“아. 그것도 별로 원하지 않으시다 보니. 저도 이 검을 우연히 받게 되었거든요.”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황설영은 입술을 살짝 내밀며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딱 봐도 게이트나 던전에서만 아주 극히 희박한 확률로 나오는 유물급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그나마 유명한 사람은 거의 다 외국인이고 직접 만나는 게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었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도착했습니다.”
황설영이 현찬을 데려온 곳은 정말로 인적이 뜸한 카페였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수도 적어서 그런지 시선이 크게 모이지도 않았다.
“제가 평소에 자주 오는 곳입니다. 이곳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잘 오지 않을 테니 마음 놓으셔도 될 겁니다.”
가볍게 커피를 주문한 둘은 테이블에 서로 마주보며 앉았다.
“딱히 추궁하려고 부른 것이 아니니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그때의 상황에 관해서 대략적인 상황을 듣기 위함이니까요. 원래라면 안 들어도 되겠지만 일단 저희의 일이 이렇다 보니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네. 물론이죠.”
현찬은 그대로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물론 있는 그대로 설명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각색을 했다. 헤파이스토스에 관한 일, 무기를 만들려는 일 등은 과감하게 잘라내고 거기에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서 이야기를 지어내면 됐으니까.
산속 깊은 곳에서 은거하는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를 만나러 갔고 거기서 이 무기를 얻어왔다고 말하자 황설영도 딱히 의심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렇군요. 그 당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알겠습니다.”
“그보다 저를 노리던 그 녀석들. 역시 람브로눅스가 맞나요?”
“네. 맞습니다.”
람브로눅스에 관해서는 당연히 아카데미의 기본교육에서도 가르쳐준다.
세계 2대 범죄 조직.
세상이 바뀌면서 각성자들이 계약할 수 있는 자는 <영령>에 그치지 않았다.
인류 역사에서 정말로 끔찍한 짓들을 자행했던 역사 속의 악당들인 <악령>
신화나 설화에 존재했다가 영웅의 손에 죽음을 맞아 증오로 뭉친 <괴물>
이 둘이 바로 대표적인 예였으니까.
<악령>과 계약을 맺어 세계에 테러를 자행하는 조직 ‘데스페라도’
<괴물>과 계약을 맺어 <영령>의 계약자인 헌터들을 살해하는 조직 ‘람브로눅스’
그중에서 후자의 집단이 현찬을 노리기 위해 한국에 밀입국했으며 심지어 총기까지 몰래 반입하여 들어왔다.
그나마 현찬이 그때 산속의 숲에 있었으니 보는 눈이 없어서 다행이었지 만약에 도시 한복판에서 저 녀석들이 나타났다면 정말로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다.
람브로눅스는 피에 미친 괴물들이라서 도덕심이나 세간의 시선 같은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녀석들을 죽였다고 너무 죄책감 느끼지 않으셔도 됩니다. 람브로눅스 경우에는 특히나 어느 나라에서라도 제압보다는 살해가 우선순위일 정도로 악독한 녀석들이니까요.”
“그렇군요. 그런 녀석들이 찾아왔을 정도니까 저도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겠네요.”
“헌터로서 랭크가 높아진다는 것은 그런 것을 의미하니까요.”
실제로 황설영 또한 이런 일들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지닌 가능성을 보고서 그녀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으니까.
그녀는 빠르게 성장해서 협회에 몸을 의탁했기에 살아남았고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왔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삐끗했다가는 정말로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으리라.
특히나 여자 헌터들은 더 험한 꼴을 당하게 되니까.
“한국이 <대통합> 이후로 그래도 치안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자들은 있는 법입니다.”
실제로 한국이라고 해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오지나 시골 쪽은 몬스터에 의해서 황폐화된 곳이 많다. 그나마 주기적으로 헌터들과 군인들을 이용해서 정리하고 있지만,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으니까.
물론 해외에 비하면 한국의 상태는 양반이다.
인구에 비해 땅이 넓은 미국과 러시아는 <대통합> 시절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해서 엄청난 손실을 맛보았으니까.
덕분에 인구가 넘치도록 많은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우뚝 섰고 아이러니하게도 한국도 강대국의 순위에 들어가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으니 세상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인데 강현찬 헌터님에게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뭐죠?”
황설영은 혹시나 다른 듣는 사람이 있는지 주변을 살피더니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이야기를 꺼냈다.
“저와 계약한 영령이 누구인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알죠. 영령 두두리. 유명하잖아요.”
“네. 제 영령이 경고를 보내주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한국 땅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매망량이 들끓고 있다고 합니다. 제 영령이 영령이다 보니 이런 부분에 민감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매망량.
지식이 적은 사람들은 대부분 몬스터로 알고 있지만, 그들은 몬스터와는 존재 자체가 다르다.
몬스터는 다른 차원에서부터 흘러들어온 미지의 생명체라면 이매망량은 예로부터 지구에 존재해 왔던 잡귀, 귀신, 요괴들을 지칭하는 말이니까.
“어디 이매망량뿐만이 아닙니다. 강현찬 헌터님을 노리는 타국의 클랜이나 테러리스트 조직들. 몬스터를 믿는 광신도 집단들도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그런 불온한 움직임들이 너무 많이 보이니 강현찬 헌터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거참, 큰일이네요.”
현찬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사실 원인을 따지고 본다면 이 모든 일의 근원은 결국 현찬에 의해서 일어난 것들이 태반이니까.
‘곤란하네.’
이매망량의 준동도 현찬이 지나치게 이 좁은 땅에 신들을 불러와서 발생한 일이었고 테러리스트 조직들도 현찬을 노리고 나타난 것이다. 현찬은 문득 말하지 않은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최근 너무 정신 사나운 일들이 가득해서 깜빡했던 것.
바로 수원 게이트 사태 때 모습을 보였던 새 가면을 쓴 자에 대한 것이다.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황설영 씨. 저도 알려드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죠?”
현찬은 황설영에게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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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왔어.”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게 된 현찬은 원룸에 들어서자마자 방에서 펼쳐진 광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이건.]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테나도 입술을 떨며 말을 더듬었다.
그야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자신의 남동생이지만 신인 헤르메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을 먹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겠지.
“헤르메스? 너, 대체 무슨 일이야?”
“흑흑. 현찬아. 흑! 이거…… 너무 맛있어. 내 생각이 틀렸어. 인간은 위대한 생명체야. 신인 나조차 감동할 음식을 만들다니!”
헤르메스는 지금 치킨이 너무 맛있어서 우는 것이다.
확실히 그리스 시대와 비교하면 지금의 식문화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발전을 거듭했으니 신이라 할지라도 난생처음 먹어보는 음식들이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눈물을 흘릴 줄은 몰랐기에 현찬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난 지금까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었어!”
“어, 응. 그래.”
“한 마리 더 시켜도 돼?”
“…… 그래라.”
아싸! 하고 외치며 재차 치킨집에 전화를 거는 헤르메스를 보며 현찬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신의 이미지가 와장창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계, 계약자여.]
그런 현찬에게 아테나가 약간의 부끄러움을 띤 채 조심스레 물었다.
[저, 저게 그렇게 맛있는가? 나도 먹어볼 수 없는 건가?]
“…….”
현찬은 조만간 빨리 마력을 늘려서 아테나도 <소환>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