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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43화 (43/265)

# 43

43화 새로운 경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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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대체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아테나!]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 올림포스의 12신 중 하나이자 그리스 신화의 모든 여신 중에서도 단연코 최고로 꼽힌다는 문명의 여신.

그녀의 등장에 놀란 것은 헤르메스뿐만이 아니라 현찬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 그녀가 왜 갑자기 현찬의 앞에 나타난단 말인가.

처음에 그런 의문도 들었지만 방금 전까지 헤르메스가 하던 말이 아직 기억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어째서 등장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찾아오면 안 되는 일이라도 했나?]

[당연하지! 현찬이는 내 계약자야. 그 누구라도 함부로 끼어들 수는 없어!]

[흥! 이런 훌륭한 인재를 두고도 너는 네 욕심을 채울 뿐이지 않느냐. 세상에 혼란이 찾아왔다. 그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앞장서서 행동해야 하거늘. 헤르메스 너는 그 의무를 져버렸다. 그러니 내가 직접 나설 수밖에.]

[의무? 언제까지 그런 구닥다리 마인드를 가지고 살 건데? 됐네요!]

[네가 정 말을 듣지 않겠다면, 이쪽도 이쪽 나름대로 방법이 있다.]

계속 말다툼을 벌이던 아테나는 고개를 휙 돌려 현찬을 ‘보았다’

‘어?’

현찬의 눈에 아테나의 모습이 보였다. 저것은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가 없어서 실질적으로 현세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영체 상태인 그녀의 모습을 현찬은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헤파이스토스를 <빙의>하여 힘을 얻음으로써 현찬의 능력이 더욱 강해진 덕분이었다.

그의 눈은 이제 영체로서 존재하는 영령의 모습까지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테나는 과연 여신답게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꾹 다물어진 입술과 올곧은 눈동자는 절대로 패배를 모르는 그녀의 의지를 보는 듯했고 어깨 너머로 기른 남청색 머리카락은 윤기가 흘렀다.

한 손에는 창을 다른 한 손에는 방패를 쥔 늠름한 자태는 남자인 현찬이 보아도 강인하고 멋있어 보인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언뜻 드러난 살결에 보이는 근육은 과하지 않고 그녀의 건강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설마 여신을 직접 이렇게 두 눈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기에 현찬은 몸이 저절로 반응해서 긴장되었다.

[인간이여. 나와 계약을 맺자꾸나. 나는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 나와 계약을 맺으면 그대의 앞에 언제나 승리만이 가득할 것이니.]

여신 아테나.

제우스와 메티스의 외동딸인 그녀는 올림포스에서도 헤파이스토스와 맞먹는 제우스의 적녀에 가장 가까운 신이다.

그녀는 정의와 지혜, 무력, 지성, 이지(理知), 평화, 전쟁, 전술, 전략, 전법, 도기, 요리, 문명, 공예, 예술, 학문의 신이자 정의감이 투철한 전사와 영웅, 명예, 영광의 수호신이다.

그야말로 싸움에 관련된 것들은 거의 다 주관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

그런 그녀가 현찬에게 제안한 것이다. 승리를 주겠다고. 그러니 자신과 계약을 하자고.

전략, 지략, 전술에서 따라올 자가 없는 신인 그녀가 도와주겠다고 했으니 현찬이 얻게 될 힘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할 터.

그야말로 혼자서 모든 적을 쓰러뜨릴 힘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만인적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소리.

[이익! 남의 계약자한테 이게 무슨 꼬리치기야!]

[시끄럽다! 인간이여. 나와 계약을 맺겠느냐?]

아테나의 제안은 너무나도 감미로운 것이었다.

헌터는 싸워야 하는 사람. 그런 자에게 힘을 준다는 것은 가장 궁극적인 선물이니까.

헤르메스의 말이 맞았다.

신이 주는 사탕은 무엇보다도 감미로운 것.

그것을 거절할 수 있는 인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데도.

“거절하겠습니다.”

헤르메스를 포기하고 그녀와 계약을 맺을 수 없다.

현찬의 단호한 대답에 아테나는 일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었다.

[어째서지? 누구보다도 정의로운 그대라면 나와 계약을 맺었을 때 그 힘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텐데.]

“아테나 님의 제안은 매우 매력적이죠. 그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계약을 맺은 신이 있으니까요.”

[현찬아……!]

헤르메스가 감동받았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현찬의 이름을 외쳤다.

“저와 계약을 맺고 싶으시다면 헤르메스를 통해서 해주시길 바라요.”

[감히 여신인 나의 제안을 거절하겠다는 것이냐?!]

아테나의 외침에 현찬의 방이 드르르 떨렸다. 영체 상태에서도 그 분노만으로 현세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그녀의 본신의 힘은 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것일까. 하지만 현찬은 협박에도 절대 굴하지 않았다.

“먼저 저와 계약을 맺은 것은 헤르메스입니다. 영령들 사이에서는 그런 상도덕도 없습니까?”

[맞아! 상도덕은 지키라고 있는 거라고!]

계약과 사기의 신인 헤르메스가 그런 말을 하니 좀 웃기기도 했지만, 현찬은 가만히 있었다.

아테나는 이를 으득 갈았다. 설마 자신이 이런 취급을 당할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모습이다.

언제나 싸움에서 승리하고 쟁취했으며 누구보다도 승리에 대한 열망이 강한 그녀에게는 이런 사소한 패배조차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라크네와 베를 짜는 대결만 봐도 아테나가 얼마나 승리욕이 강한지 알 수 있다.

[감히!]

아테나가 재차 힘을 발휘하려고 하는 순간.

[미안하지만 이 싸움은 내가 이겼어.]

헤르메스가 그녀를 막아섰다. 아테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헤르메스가 비록 그녀와 같은 올림포스의 신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인 무력은 당연히 아테나가 더 위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헤르메스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헤르메스는 현찬을 통해 현세에서도 자신의 힘과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마땅한 계약자가 아직 없는 아테나의 경우에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전력을 다한다면 그래도 현세에 영향은 주겠지만 힘의 소모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오히려 기피해야 할 방법이었다.

[어릴 때 사고뭉치가 잘도 컸구나.]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건데? 그쪽은 메두사한테 질투해서 저주한 노처녀 히스테리가 아직도 남아 있나 본데?]

[뭐라?!]

헤르메스가 아테나의 역린을 건드렸다!

아테나가 눈에 쌍심지를 켰지만, 헤르메스는 오히려 해보라는 듯 그녀를 도발했다. 이미 상황의 우위는 이쪽에 있었으니 헤르메스로서는 전혀 꿀릴 일이 없었다.

현찬은 그런 둘의 사이를 중재했다.

“아테나 님은 저와 계약을 맺고 싶다는 거죠?”

[…… 그렇다.]

“하지만 저는 이미 헤르메스와 계약을 맺은 상태고요. 그렇다면 쉽네요. 헤르메스를 통해서 저와 계약을 맺으시면 되잖아요.”

[…….]

아테나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니. 잘 생각해 보세요. 아테나 님은 지루하지 않으세요? 자신의 모든 힘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곳에서 그렇게 답답하게 지내는 게 괜찮아요?”

괜찮을 리가 있나. 비록 그녀가 아레스처럼 온갖 전장을 찾아다니며 누빌 정도로 싸움 광은 아니지만, 그녀도 전쟁의 신. 간혹 몸이 달아오르고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헤르메스의 계약자 이야기를 듣고서 냉큼 달려온 것이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남에게 허락을 받고 힘을 써야 하는 게 아니더냐!]

“아뇨. 다릅니다. 헤르메스에게 허락을 받아서 저와 계약을 맺고 힘을 쓰는 것이 아닌, 제 지분의 일부를 그쪽이 차지하는 거죠. 아무리 헤르메스라고 하더라도 큰 전투에서는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죠. 하지만 아테나 님은 다르잖아요?”

즉 이거다.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아테나와 부분적인 계약을 맺는다. 정말로 감당하기 힘든 싸움이 벌어질 때 아테나의 힘을 빌린다는 것. 그것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는 그대로 헤르메스가 주관한다는 것.

쉽게 설명하자면 아테나는 현찬이라는 주식 일부를 매입하는 대주주가 되는 것이다.

물론 아테나에게 그런 상황이 별로 달가울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현찬은 설득에 들어갔다.

“자신의 힘을 하계에서도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까? 오랫동안 세월이 흘러서 다들 잊어갈 사람들이 다시 아테나 님의 이름을 환호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습니까?”

[그, 그건…….]

확실히 끌렸다. 끌려도 너무나도 끌렸다.

“아테나 님이 고개를 숙이고 패배하고 그런 게 아닙니다. 지는 게 아니에요. 그냥 서로 함께 이기는 거죠. 윈-윈. 아시죠?”

[하지만…….]

아테나의 드높은 자존심이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아테나 님이 손해 볼 것이 뭐가 있습니까? 오히려 모두 함께 웃을 방법입니다. 이것은 오직 제가 아테나 님에게만 직접 제안하는 겁니다. 다른 신들은 이런 제안 못 받아요.”

[현찬아. 너…… 벌써 이렇게나 성장했구나.]

헤르메스는 마치 자신의 자식이 이제 다 커서 혼자서도 뭐든지 잘 할 수 있게 된 것을 바라보는 부모처럼 감동받았다. 현찬은 헤르메스에게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라고 한 뒤 아테나를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아테나님은 자신의 힘을 하계에서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모두가 아테나 님을 외칠 겁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넘어서서 이 21세기의 현계에서 아테나 님은 신앙심을 모으게 되는 거죠. 전쟁의 여신 아테나. 모두의 우상 아테나. 다른 신들보다 더 위대한 신 아테나. 멋지지 않나요?”

현찬의 혓바닥에서 나온 말은 마치 뱀처럼 아테나의 귀를 감미롭게 휘감았다.

그것은 나무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넝쿨처럼 아테나의 마음의 빈틈을 파고들고 스며들며 그 세력을 확장했다.

아테나는 모르고 있었다. 지금 현찬은 헤르메스가 관장하는 권능 중 하나인 <설득>과 <협상>을 동시에 시전하고 있었다는 것을.

워낙 자연스럽게 그리고 은밀하게 사용하는 거라서 아테나조차 제대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에 그녀가 자신의 온전한 힘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이곳은 올림포스가 아닌 지구.

자신의 힘을 완전히 다루지 못한 상황에서 이것을 눈치챌 수가 없었다.

헤르메스는 그런 현찬을 보며 정말로 잘 성장했구나 하고 감동의 도가니로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어쩌시겠습니까. 아테나 님. 아테나 님은 지혜의 여신. 아주 현명하신 분이니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되는지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하, 하지만…….]

아테나는 여전히 갈등하고 있었다. 지혜의 여신인 그녀는 멍청하지 않다. 그녀도 지금 무언가 자신이 말리고 있음을 짐작했다. 그렇기에 오기와 자존심 때문이라도 쉽게 승낙하고 싶지 않았다.

현찬은 여기서 조금만 더 흔들어 준다면 확정 타를 먹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것만은 꺼내지 않으려고 했건만.

현찬은 필살기를 날렸다.

“정 그러면…… 아레스 님이나 부르죠, 뭐.”

[계약하지.]

아테나는 0.1초의 시간도 두지 않고 대답했다.

현찬은 씨익 웃었다.

“훌륭한 선택입니다.”

그녀가 자존심이 정말로 강하다면 그녀의 자존심을 가장 크게 자극하면 되는 것이었다.

같은 전쟁의 신이자 남신인 아레스를 언급하는 것이야말로 아테나의 마지막 자존심을 박박 긁는 행동이었다.

같은 전쟁의 신이라고 할지라도 아레스는 아테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총명하고 지혜로운 아테나와 그저 싸움밖에 모르는 아레스를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아테나에게는 매우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일!

결국, 아테나는 현찬의 제안을 바로 승낙해 버렸다.

“헤르메스야 뭐하냐. 손님 받아라.”

[예이~]

[어, 어라?]

아테나는 그제야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게 됐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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