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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41화 (41/265)

# 41

41화 람브로눅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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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잇감이 제 발로 찾아와주다니 이거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려고 하는군.”

머리를 짧게 친 거한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온몸에 우락부락한 근육을 지닌 그는 몸에 착 달라붙는 스키니 진과 반소매 셔츠 하나만 입고 있었다. 방어 장비와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신급 영령의 계약자라고 해서 어디 얼마나 잘 나가나 싶었는데 범상치 않은 건 인정해주마.”

A랭크 살인마 알렉세이 보르프스키는 짐승의 그것과 같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붉게 충혈된 그의 눈동자는 현찬의 몸을 빌린 헤파이스토스의 좌우로 나열한 [황금인형]에 가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음심이 가득했다.

자신을 앞에 두고도 [황금인형]에 정신이 쏠린 보르프스키를 보며 헤파이스토스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감히.”

헤파이스토스의 몸 주위로 뜨거운 불길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누구 앞에서 한눈을 파는 것이냐?”

화륵!

피보다 더 진한 붉은 불길은 살아 움직이는 뱀처럼 똬리를 틀더니 이내 보르프스키를 향해 지면을 타고 빠르게 기어갔다.

“억!”

보르프스키는 엄청난 열기에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며 뒤로 황급히 물러났다.

샤아아!

불 뱀은 입을 쩍 벌리며 보르프스키를 위협하더니 이내 다시 헤파이스토스에게 돌아와 촛불처럼 꺼지듯 사라졌다.

“너 이 새끼가…….”

보르프스키는 눈앞의 상대가 자신에게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공격을 날렸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보처럼 무작정 달려들지는 않았다. 그의 숙달된 감각이 불의 뱀이 등장한 이후로부터 계속 경고를 울렸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헌터들을 사냥해 왔다. 그게 그와 계약을 맺은 <괴물>이 바라던 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전투에 관한 경험은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풍부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런 보르프스키는 조금 전 헤파이스토스가 보여준 화염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었었다.

[황금인형] 가운데 장발을 허리까지 내린 첫 번째 인형인 프로타(Próta)가 입을 열었다.

“주인님. 명령을 내려주시길.”

“됐다. 너희들의 손을 빌릴 생각은 없다. 전원 뒤로 물러나서 대기하도록.”

헤파이스토스의 명령에 황금 인형 다섯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헤파이스토스는 아직도 자신의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는 헌터 협회 특수3과의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 물러나라. 휘말려도 책임은 지지 않는다.”

“네? 아, 네!”

송지석은 자기도 모르게 존댓말을 쓰며 부하들을 데리고서 뒤로 도망치듯이 거리를 벌렸다.

‘원래 강현찬 헌터가 저런 성격이었나?’

그가 알고 있는 현찬은 매우 점잖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물론 직접 만난 적이 없지만 멀리서나마 그 모습을 어렴풋이 본 적은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현찬은 그가 알던 모습과는 괴리감이 있었다.

하지만 송지석은 그 모습에 전혀 토를 달지 못했다.

알 수 없는 위압감이 현찬의 말을 타고 전해졌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하대, 그에게 절대 거스를 수 없다는 본능.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졌기에 송지석은 군말 없이 몸을 뺐다.

더는 방해꾼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 남은 것은 현찬의 몸을 빌린 헤파이스토스와 람브로눅스의 사냥개 10마리가 전부.

“대단한 자신감이군. 우리 전부를 혼자서 쓰러뜨리겠다고?”

“못할 거야 없지. 고작 들개 10마리 잡는 일이지 않은가.”

유창한 러시아말이 돌아오자 보르프스키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는 피식 웃었다.

“네놈이 신급 영령의 계약자라 강하다는 것은 인정해주지. 하지만, 네놈은 아직 어리숙한 애송이일 뿐이야.”

보르프스키가 오른손을 들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9명이 각자 무기를 꺼내 들어 헤파이스토스를 겨누었다. 그것은 여타 헌터들이 사용하는 병장기와는 전혀 다른 것. 거무튀튀한 색깔을 띠고 있는 그것은 총이라고 불리는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어디 이것도 막아낼 수 있을까.”

헌터라고 해서 총에 완전히 면역인 것은 아니다. 특히나 9정의 자동소총이 뿜어내는 탄막은 절대로 한 개인의 헌터가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상처를 입히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타타타타탕!

자동소총이 불길을 뿜었다. 분당 수백 발의 탄알을 토해내는 자동소총이 총 9정. 그것이 쏘아내는 철의 비는 그 어떠한 것이라도 갈가리 찢어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대부분의 헌터들이 인간을 초월한 힘을 지니고 있지만 <영령>의 힘을 제대로 끌어내지 않은 상태에서 날아오는 총알은 비록 숨통은 끊지 못하더라도 중상을 입히기에 충분히 위협적인 물건이었다.

‘끝났군.’

보르프스키는 웃었다.

람브로눅스가 대부분 재능이 넘치는 헌터들을 쓰러뜨릴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점이다.

대부분 재능이 뛰어난 헌터들은 지나치게 자만하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렇기에 방심을 밥 먹듯이 하고 이렇게 허를 찌르는 공격이 당하고 만다. 디펜시브 슈트를 입고 있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운이 좋아서 목숨이 붙어있다고 하더라도 몸 상태는 그야말로 걸레짝이 되고 만다. 그렇게 약해진 때를 노려 목덜미에 이빨을 꽂아 넣으면 당연히 이쪽의 승리.

하지만.

“어처구니가 없구나.”

헤파이스토스를 향해 날아간 모든 총알들은 그대로 허공에서 녹아 한 줌의 쇳물로 변하고 말았다. 그 광경에 람브로눅스의 사냥개들은 모두 침음성을 흘렸다. 완전히 쓰러뜨릴 거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설마 어떠한 타격도 입히지 못하고 막아낼 줄은 몰랐다.

헤파이스토스로서는 정말 우습기 짝이 없는 공격이었다.

모든 금속을 다루는 대장장이들의 신을 상대로 저런 조잡한 철 쪼가리로 이루어진 공격을 가한단 말인가?

이는 그를 모욕하는 행위이자 신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리는 만행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헤파이스토스에 관해 이런 평가를 내린다.

헤파이스토스가 대장장이의 신이라고 해서 싸움을 못 한다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영웅과 신들에게 뛰어난 무기를 만들어 주는 게 전부라고.

그렇게 오해를 하고는 한다.

‘그야말로 바보 같은 판단이지.’

이 광경을 지켜보던 현찬은 적들의 어리석음에 고개를 저었다.

헤파이스토스가 약하다? 그건 절대로 그렇지 않다.

헤파이스토스는 대장장이들의 신이기도 하지만 그는 다른 것을 관장하기도 한다.

바로 ‘불’과 ‘화산’이다.

하늘의 기상이변과 번개를 다루는 ‘제우스’

바다의 재앙을 다루는 ‘포세이돈’

그리고 땅 위의 화산을 다루는 ‘헤파이스토스’

그리스 신화에서 재앙을 관장하는 신들은 딱 3명.

그중 하나가 바로 헤파이스토스였다.

그 일신의 무기를 다루는 무력은 그렇게 강하지 않지만, 그의 힘 자체는 올림포스의 주인 중에서도 당연히 한 손안에 들 정도로 무시무시하다는 소리다.

실제로 강의 신 ‘스카만드로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를 강으로 집어삼켜 죽이려고 했을 때 헤라의 명령을 받은 헤파이스토스가 나타나 화염으로 강 전체를 메마르게 한 일화는 유명하다. 무엇보다 그는 제우스조차 두려워하던 괴물 ‘튀폰’을 화산 밑에 가두어서 감시하는 역할도 맡았기 때문에 절대로 무시할 수 없었다.

“너희들에게 직접 보여주도록 하마.”

헤파이스토스의 발아래의 땅이 흔들리더니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새로부터 뜨겁게 타오르는 마그마가 지면을 뚫고 튀어나왔다. 새하얀 도화지 위에 붉은 물감을 뚝 떨어뜨리는 것처럼 마그마가 번져나간다.

“나를 분노케 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화산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분노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뜨겁다는 것을.

“젠장! 모두 지금 당장 녀석을 쳐!”

보르프스키의 발악 같은 외침에 람브로눅스의 사냥개들이 일제히 무기를 버리고 헤파이스토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갑자기 마그마를 불러내는 것에 놀랐지만 먼저 선수를 친다면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판단 한 것이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그 전에 죽여주마!’

큰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사전에 준비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은 헌터 업계에서도 통용된 일종의 법칙이다. 저것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지녔는지 모르겠지만 느껴지는 기운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기술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럴수록 발동시키는데 걸리는 시간이 더욱 길 터.

그 사이에 이쪽에서 먼저 친다.

우드득! 보르프스키의 모습이 변했다. 안 그래도 컸던 그의 덩치가 더욱 비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근육이 팽창하고 온몸에서 짙은 회색의 털들이 자라난다. 그의 머리는 늑대의 그것처럼 주둥이가 앞으로 튀어나오고 이빨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와 계약한 괴물은 사람들에게 흔하게 알려진 늑대인간

하지만 오히려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늑대인간은 여타 괴물들보다 더욱 강하다. 총알도 박히지 않는 튼튼한 가죽과 강철도 씹어 먹는 이빨. 뛰어난 재생력과 엄청난 민첩성.

어지간한 왕급 영령을 상대로도 꿀리지 않는다.

아우우우우!

보르프스키 말고도 나머지 9명은 각자 자신과 계약을 맺은 괴물의 힘을 빌려 변신했다. 여타 영령과 다르게 괴물과 계약을 맺은 자들은 그 괴물로 변신할 수 있으므로 가능한 일이었다.

“죽어라!”

동시에 10개의 방향에서 달려드는 끔찍한 괴물들.

헤파이스토스를 향해 섬뜩하게 빛나는 손톱이 다가오고.

주변 일대에 마그마가 폭발했다.

“끄아아악!”

“아아악!”

순식간이 헤파이스토스의 주변을 집어 삼킨 마그마는 그야말로 하늘로 승천하는 용처럼 높게 치솟아 올라 거대한 기둥을 우뚝 만들어냈다. 그 엄청난 열기에 지면의 흙이 흐물흐물 녹아내렸고 주변의 풀이나 나무들이 불에 타서 재가 되었다.

당연히 거기에 휩쓸린 람브로눅스가 성할 리가 없었다.

헤파이스토스에게 달려든 자들은 모두 새까만 잿덩이가 되었다. 그나마도 마그마의 직격을 피해서 뒤로 물러난 결과가 바로 이거였다.

“끄어어.”

이들 중에서 리더격인 보르프스키만 유일하게 살아남았지만, 그의 몸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늑대인간 특유의 뛰어난 재생력과 강인한 생명력 덕분에 겨우 죽지 않았을 뿐이지 지금 그는 거의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한쪽 팔과 다리는 녹아서 사라졌고 얼굴의 절반이 이미 뭉그러졌다. 살과 털이 타는 고약한 악취와 몸 곳곳에 물집이 잡힌 피부는 그의 몰골을 흉하게 만들었다.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보르프스키를 보며 헤파이스토스는 솟구쳤던 마그마를 다시 땅속으로 집어넣었다.

그의 분노는 이미 충분히 제 역할을 마쳤다.

헤파이스토스는 여타 신들과 다르게 뒤끝이 없었기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네. 계약자여. 언젠가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나지.]

‘네.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헤파이스토스가 떠나가고 다시 자신의 몸을 되찾은 현찬은 바닥을 필사적으로 기어 다니며 아등바등하는 보르프스키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주위로는 새까맣게 타버린 시체 아홉 구가 길가의 쓰레기봉투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사람을 죽였다.

현찬이 한 일이 아니라 헤파이스토스가 한 일이라고 해도 과연 현찬의 의지가 없었을까?

온전히 육체는 현찬의 것인데.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헤파이스토스를 말려서 저들을 살려서 제압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현찬도 알고 있던 것이다.

녀석들은 살아있으면 오히려 세상에 큰 피해를 주는 놈들이라는 것을.

죽어도 싼 놈들이라는 것을.

죄책감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구역질이 난다거나 머리가 어지럽다는 느낌은 없었다. 헌터로 각성한 영향인지, 영령과의 계약 덕분인지 대부분의 헌터들은 무언가를 죽인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놈들은 지난번에 현찬을 노린 리 쉔푸나 가토 타츠야처럼 이용해 먹을 건덕지도 없었다.

그나마 보르프스키를 남겨놓은 이유는 협회에 한 명 정도는 넘겨야 하는 필요성 때문이었다.

이들을 죽인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대통합 이후로 시대는 변했으니까.

하지만 조금 가라앉은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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