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40화 새로운 무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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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 됐다.]
헤파이스토스의 망치질은 장장 하루 동안 이어졌다. 해가 중천이었던 하늘은 해가 저물고 밤하늘을 지나 새로운 해가 다시 떠올라서야 헤파이스토스의 일이 끝난 것이다.
현찬은 그 과정을 쉬지 않고 계속 지켜보았다.
지루함은 느낄 틈이 없었다. 혼신의 힘을 불어넣으며 망치질을 하는 헤파이스토스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을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었으며 현찬은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도 몰랐을 정도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은 한 자루의 검.
신이 만들었다고 해서 하늘의 찬란한 태양처럼 눈부시게 화려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디자인은 오히려 여타 철검과 비슷했다. 하지만 도신이 마치 새까만 먹물을 머금은 것처럼 검었으며 그런 검에는 황금으로 복잡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하루 만에 탄생한 한 자루의 검.
하지만 현찬은 그것을 절대로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
헤파이스토스는 반나절만 망치질해서 물건을 만들어도 1000일을 단련하여 만든 갑옷보다 튼튼하고 여신들의 가호를 받은 갑옷보다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것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일리아스에서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 준 [아킬레우스의 방패]의 묘사에만 한 권을 다 썼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그런 헤파이스토스가 무려 종일 만들어 준 검이다.
그 가치를 어찌 얕잡아 볼 수 있을까.
[미안하구나. 마음 같아서는 갑옷 또한 만들어주고 싶지만 아무래도 더 하계에 현현할 시간이 부족해서 말이다.]
헤파이스토스으로서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라 아주 아쉬웠지만, 현찬은 오히려 만족했다. 처음 아폴론이 강림했을 때는 고작 3분밖에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꼬박 24시간을 버텼으니 그만큼 현찬은 자신이 성장했음에 만족했다.
‘별말씀을요. 저에게는 이 검 한 자루로도 이미 충분한 보상이 됩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어디 이 검에 이름을 붙일 생각이냐?]
현찬은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마땅히 떠오르는 이름이 없던 것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가 한몫했다.
‘저보다는 만들어 주신 주인인 헤파이스토스 님께서 직접 이름을 지어주셨으면 합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그러지. 이 검은 지금까지 내가 만들었던 것 중에서도 가장 실험적이면서도 큰 공을 들였으니까. 그래. 테레이오스테(Teleióste)라고 부르면 좋겠군. 우리말로 ‘궁극’이라는 뜻이다.]
띠링.
현찬의 눈에 무기의 상세한 정보창이 떠올랐다.
[테레이오스테(Teleióste)]
종류 : 검
등급 : 신급
속성 : 화(火)
설명 : 대장장이들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꼬박 하루를 쏟아부어서 만들어낸 지고의 명검. 헤파이스토스의 영향 때문인지 미약하지만, 신력과 불의 기운이 담겨 있다. 모든 불길한 기운을 태워주며 착용자의 능력을 크게 증폭시켜준다.
능력 : <외형변화> 사용자가 원하는 무기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모든 스텟 30% 증가.
버프 효과 50% 증가.
마력회복속도 대폭 증가.
화염 저항력 대폭 증가.
얼음 속성 상대로 추가 대미지.
부러지지 않는다.
영령의 무구를 불러올 시 동조율 대폭 증가.
스킬 : <불카노스>, <황금인형 소환>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뛰어난 성능에 현찬은 찢어질 것 같은 입꼬리를 최대한 억누르며 진지하게 감사를 표했다.
‘테레이오스테라…… 좋은 이름이네요.’
[그렇게 말해주니 나도 기쁘구나.]
헤파이스토스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동생인 헤르메스의 계약자라고 해서 과연 어떠한 인물인가 호기심이 생기면서도 혹여나 악인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그가 직접 보고 판단한 현찬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헤파이스토스마저 현찬과 직접 계약을 맺고 싶은 욕심이 생길 정도.
현찬에게는, 다른 누군가를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 대상은 설사 상대가 신이라고 할지라도, 벗어날 수 없다.
이는 예로부터 영웅이었던 자들이 지니고 있던 특징과 매우 흡사하지 않은가.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의 욕망을 억눌렀다. 그러자 자신의 동생인 헤르메스가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헤파이스토스는 현찬이 모르게 헤르메스에게만 염화를 보냈다.
[헤르메스.]
[왜? 형.]
[너에게 이런 말을 내가 할 필요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해라. 너의 계약자는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신인 우리에게도 그렇게 느껴질 정도이니 다른 자들이라면 오죽할까.]
솔직히 헤르메스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헤르메스는 머리가 영민하고 눈치가 빠르며 매우 영악해서 다른 누군가를 골탕 먹이면 먹였지 누군가에게 당할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데도 ‘만약’이라는 것이 있다.
그가 신이지만, 아니 오히려 신이기 때문에 모든 최악의 경우의 수에 대비해야 했다.
[헤르메스. 너의 계약자에 대한 소문은 이미 쭉 퍼지고 있다. 심지어 이 좁은 땅에 아폴론에 이어 나까지 강림했어. 이 땅의 토지에 머무는 존재들, 그리고 이 땅의 신들 또한 우리를 의식하기 시작했을 거다. 아니, 이 땅뿐이겠는가. 세상 어디라도 마찬가지겠지.]
현찬에게는 오히려 더 잘된 일이다.
영령이 직접 한 인간에게 관심을 둔다는 것은 그 자의 가치와 격을 높여주는 일이었으니까.
다만 헤르메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라이벌들이 대거 등장하는 격이다. 그의 형으로서, 올림포스의 가족으로서 헤파이스토스는 그 점을 걱정하고 있었다.
[형. 걱정하지 마. 내가 누구인지 몰라? 나 헤르메스야.]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거다.]
[형의 마음은 잘 알았어. 충고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아줬으면 해. 나도 바보는 아니야. 그런 상황이 언젠가는 닥쳐올 거라는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어.]
헤르메스는 오히려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태도로 씨익 웃었다.
[현찬이는 내 계약자고 내 꺼야. 절대 남에게 빼앗길 수 없지.]
[그래.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안심이구나. 그렇다면 너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마.]
[뭔데?]
헤파이스토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 아테나가 너의 계약자에게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켁!]
천하의 장난꾸러기이자 트릭스터인 헤르메스라고 할지라도 상대하기 껄끄러운 존재는 있었다.
그들은 특히 크게 2가지로 분류되는데, 그 중 첫 번째는 바로 헤르메스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이른바 ‘동료’이자 ‘친구’이며 ‘악우’와 같은 존재들이다.
북유럽의 ‘그 녀석’과 중국 설화의 그 ‘원숭이 녀석’은 서로 친한 사이이면서도 간혹 경쟁과 장난을 일삼는 일종의 라이벌이었다. 헤르메스가 꺼리는 그 첫 번째 케이스가 바로 이 둘.
그리고 두 번째 케이스는 첫 번째와 정 반대다.
그들은 헤르메스와는 오히려 반대되는, 매우 올곧고 정의롭고 바르며 강인한 자들이었다.
그냥 이런 성격만 지녔다면 헤르메스가 쉽게 골려줄 수 있다. 은근히 단순한 아르테미스가 이쪽이었으니까.
문제는 이런 성격을 지녔으면서 머리까지 비상하며 지혜로운 자는 헤르메스와 아주 상극이라는 점이다.
그중에서 가장 정점을 찍는 존재가 바로 전쟁과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였다.
[그 근육녀는 대체 왜 남의 계약자에게 눈독을 들이는 건데?!]
말을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납득은 갔다. 현찬의 성격은 아테나의 마음에 쏙 들었을 테니까. 이 사실을 알기 전부터 헤르메스는 은연중에 ‘아테나라면 혹시’라는 생각을 품은 적이 있었지만, 막상 마주하고 나니 상상 이상으로 당황스러웠다.
[어찌됐든, 나는 일단 너에게 전해줄 말은 다 전해줬다. 무운을 빌지.]
[…… 그래. 고마워. 형.]
헤르메스와 둘의 대화를 끝마친 헤파이스토스는 검을 보며 여전히 감탄하는 현찬에게 물었다.
[계약자여. 마음에 드나?]
“예. 물론이죠. 제가 지금까지 이보다 더 기쁜 선물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대답해주니 주는 입장으로서 기쁘구나.]
‘한데’하고 헤파이스토스가 운을 띄웠다.
“왜 그러시죠?”
[나의 공방 바깥에 있는 저자들은 계약자 그대와 아는 자들인가?]
“네?”
헤파이스토스의 질문에 현찬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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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 아프게 됐다.’
대한민국 헌터 협회 특수3과 소속 헌터인 송지석은 지금 눈앞의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대체 왜 악명이 높은 람브로눅스 녀석들이 이런 곳까지 찾아온 거야!’
람브로눅스는 데스페라도와 함께 각성자들로 이루어진 세계적인 2대 범죄조직 중 하나다.
각성자들은 영령과 계약을 맺는데 이 세상에 모든 영령이 다 선한 경우는 없다. 심지어 영령이라고 해서 무조건 인간이었던 자들이지도 않다.
살아서 유명한 악인, 살인마, 범죄자였던 자들이나 신화나 역사 속의 괴물들 또한 영령으로서 존재한다. 사람들은 흔히 그들을 악령이라 부르며 이런 악령과 계약을 맺은 각성자들은 대부분이 범죄자들이 된다.
악한 인간들과 주로 계약을 맺은 조직 <데스페라도>
역사나 설화 속 괴물과 계약을 맺은 자들의 조직 <람브로눅스>
그중 하나가 지금 한국에 몰래 숨어들어왔고 지금 특수3과와 충돌한 것이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근무를 뺄걸!’
최근 특수과는 신급 영령의 계약자인 강현찬 헌터의 비밀 호위를 맡고 있었다.
비밀 호위라고 해도 어지간한 사람들은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강자인 현찬을 지켜주는 것보다는 현찬을 노리는 자들을 사전에 그들이 차단하는 것이 주된 임무다.
한국에서 나타난 최초의 신급 영령의 계약자를 타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정부에서 내린 결단이었다. 그래서 특수과가 교대로 돌아가면서 멀리서부터 현찬의 주위를 맴돌며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맡은 것이다.
물론 아무리 그들이라고 해도 현찬을 노리는 자들은 너무나도 많았고 특수과의 견고한 수비를 뚫고서 현찬에게 추파를 던지는 첩보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현찬에게 별다른 특별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설마 설마 했지만, 하필 나 때에 이런 녀석들이 나타날 게 뭐냐고!’
강현찬 헌터가 갑자기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기 위해 따라간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추적계열 능력을 지닌 헌터의 도움으로 현찬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파악했고 꼬박 하루가 걸려서 겨우 따라붙었지만 하필이면 람브로눅스 녀석들과 마주치고 만 것이다.
‘이런 놈들이 밀입국하는데 국가안보부 녀석들은 대체 뭐 하는 거야!’
운이 없어도 너무 없다며 송지석은 입술을 깨물었다.
람브로눅스 녀석들은 매우 악독하다. 괴물들의 소굴이라서 그런지 사이코패스에 이성이 없는 짐승 같은 범죄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사람들을 갈가리 찢어 죽이는 게 취미인 미친놈들의 집단이었다.
<괴물>의 계약자인 놈들은 특히나 뛰어난 업적을 지닌 <영령>의 계약자들에게 증오심을 불태우며 집중적인 ‘사냥’을 해왔다.
이런 녀석들에게 지금까지 각 나라의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죽어 나갔고 그 실질적인 피해액수는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알려져 있다. 개개인의 실력 또한 매우 높았기에 유망주들을 마구잡이로 암살하고 다녔으리라.
신급 영령의 계약자인 현찬은 그들에게 있어서 아주 맛있는 먹잇감인 것이다.
송지석은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특수3과의 부팀장인 자신과 팀원들의 수준으로는 녀석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최소 특수1과에서 오지 않는 이상 저런 괴물들은 피해 다니는 게 상책이다.
일단 지원요청을 보내기는 했지만, 과연 그때까지 그와 팀원들이 저 괴물들을 상대로 버틸 수나 있을까.
이쪽은 수가 30여 명이고 저쪽은 고작 10명이지만 이미 풍기는 기도부터 차이가 확실하게 났다.
“뭐야. 저것들은.”
“그 신급 영령의 계약자라는 녀석이 목적인데, 가는 길에 손을 푸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푸흐흐! 그래. 전부 죽이면 되는 일이야. 최근 피를 못 봐서 몸이 근질거렸는데 운이 좋구만?”
‘젠장.’
송지석은 나름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라왔기 때문에 외국어로 중얼거리는 녀석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전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떡하지? 도망칠까?’
다들 뿔뿔이 흩어지면서 도망친다면 그래도 몰살은 피하지 않을까.
하지만 송지석은 고개를 저었다. 보아하니 녀석들은 이쪽을 쉽게 보내줄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던 것이다. 도망을 치려고 하는 순간 오히려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몰살당할 게 불 보듯 뻔했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방법은 죽기 살기로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송지석이 그렇게 다짐하는 순간.
쿠르릉!
땅이 크게 진동했다.
소리의 근원지는 바로 현찬이 머무르는 곳으로 짐작되는 거대한 공방. 그곳에서 이 흔들림의 근원이 느껴졌다.
대체 저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란 말인가?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하는 순간 공방이 신기루처럼 허공에 녹아내리듯 사라지더니 이내 하늘 높이 시뻘건 불덩어리 하나가 치솟아 올랐다. 하늘을 반으로 가르며 솟구친 화염은 유려한 포물선을 그리더니 람브로눅스와 특수3과가 대치하는 장소로 떨어져 내렸다.
순식간에 화염의 장벽이 특수3과와 람브로눅스들의 사이를 가로지르듯 일어났고 그 중심에서 현찬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현찬의 곁으로는 아름다운 금발의 여성들 5명이 좌우로 늘어 서 있었다.
현찬, 아니 현찬의 몸을 빌린 <헤파이스토스>는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대충 짐작했기 때문에 피식 웃으면서 람브로눅스의 암살자들을 가볍게 훑어보았다.
“떠나기 전에 계약자에게 자그마한 선물 하나는 할 수 있겠구나.”
그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