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39화 새로운 무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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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찬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움직이기 위해 [탈라리아(Talaria)]를 신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늘을 잘 올려다보지 않고 헤르메스의 능력 덕분에 현찬은 그 누구의 시선과 방해도 받지 않고 헌터스 숍 강남지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몇몇 사람들이 현찬을 알아보았지만, 그들은 대부분 헌터들이라 다른 사람들처럼 호들갑을 떨거나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묘한 시선으로 현찬을 바라볼 뿐. 그 시선에는 대부분 흥미나 부러움, 질투가 담겨 있었다.
‘여기가 헌터스 숍이구나.’
아카데미에서 책자의 사진으로 본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와 본 건 현찬도 처음이다. 전국 곳곳에 있는 헌터스 숍 중에서도 가장 크다고 알려진 강남지부. 이곳은 어지간한 대형 마트나 아울렛을 능가하는 규모를 지니고 있었다.
[와. 장난 아니게 호화스러운데?]
헤르메스도 이런 장소에는 처음 와봐서 그런지 감탄한 기색이 역력했다.
“신인 너도 놀라기는 하는구나.”
[당연하지. 특히나 나는 그렇게 연약한 인간들이 이런 문명의 발전을 이룩했다는 점이 더 놀라운걸. 인간들은 언제나 쉽게 부러지고 무너져 내리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모습들을 보였으니까.]
특히나 그리스 시절 대리석을 깎아서 만든 건축물을 보다가 이런 거대한 마천루나 아울렛 건물을 보면 당연히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21세기에 살아가는 현찬도 보면서 놀랐는데 헤르메스야 오죽할까.
현찬은 기왕 이렇게 왔으니 최대한 꼼꼼히 둘러보기로 했다. 몇몇 숍 여직원들이 현찬을 알아보고는 호들갑을 떨며 사인을 해달라는 자그마한 일들이 있었지만, 그것 외에는 별다른 문제 없이 현찬은 아이쇼핑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뿐.
마음에 드는 무기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방어구조차도.
[이거 좀 심각한데.]
현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헤르메스의 말에 동의했다.
헤르메스의 말 대로였다. 헌터스 숍. 국내에서도 가장 크고 뛰어난 물건들이 많다는 강남지부라더니 현찬의 눈에 차는 무기가 단 하나도 없었다.
물건들은 확실히 많았다. 엄청나게 넓은 가판대에 일자로 쭉 나열된 무기와 방어구들은 눈대중으로조차 몇 개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무기와 방어구의 질적인 측면에서는 너무나도 미흡한 것들투성이였다.
그나마 괜찮은 수준의 무기들은 A랭크 이상의 헌터들만 이용할 수 있는 특별 플로어에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현찬의 눈에 차지 않았다. 신인 헤르메스야 이런 물건에 대해 박한 평가를 내리는 건 두말 할 필요도 없었다.
성능보다 가격이 너무나도 비싼 것도 한몫했다.
과연 이것을 이만한 돈을 주고서 살 가치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절로 들 정도. 물론 이런 헌터들이 사용하는 무구들의 경우에는 몬스터들을 재료로 해서 가공하여 만든 것이기에 재룟값만 해도 많이 들어가지만 그래도 너무 비쌌다.
‘무기가 집보다 더 비싼 건 대체 뭐람.’
현찬은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유물을 그렇게 애타게 찾는구나.”
게이트나 던전에서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는 유물은 다른 세상에서 온 보물이다. 유물은 대부분 신묘한 힘을 담고 있어서 어지간한 대장장이가 만들어낸 장비보다 월등한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A+랭크 이상의 헌터들의 경우에는 유물을 주로 사용한다고 들었는데 현찬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들에게도 이곳의 무기는 크게 성이 차지 않은 것이다.
“그냥 적당한 거 하나 골라서 쓸까?”
비록 현찬의 눈에 차지 않았다 할 뿐이지 객관적으로 봐도 이전까지 쓰다가 부러진 검보다는 더 좋은 무기들이 많이 있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무기 자체의 성능보다는 무기를 다루는 사람의 능력이지 않겠는가.
[흠. 글쎄. 그래도 좋은 무기 하나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봐. 서로 실력이 같으면 그때는 무기 좋은 사람이 이기잖아.]
“음. 그것도 그래.”
게다가 지난번처럼 강력한 몬스터와 싸우다가 무기가 또 부러지지 않을 보장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 걸 어쩌겠는가.
그나마 돈이 많은 헌터들은 뛰어난 블랙스미스에게 직접 주문을 넣어서 만든다고 하는데 현찬은 그마저도 썩 미덥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데 헤르메스가 좋은 생각이 났다면서 의견을 꺼냈다.
[야. 현찬아. 나에게 좋은 생각이 났어.]
“뭔데?”
[애초에 사야 할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만들면 되잖아.]
“어?”
현찬은 그게 무슨 농담이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헤르메스가 하는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현찬에게 무기를 만들라고 말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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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깊은 산 속.
[탈라리아(Talaria)]를 통해서 이곳까지 온 현찬은 주변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널찍한 공터의 중앙에 섰다.
“정말로 이걸로 된다 이거지?”
[물론이지. 재료만 적당히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다만, 하고 헤르메스가 말을 덧붙였다.
[아마 며칠은 좀 앓아누워야 할 거야. 하지만 그만한 보상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해.]
무기를 만든다. 그리고 며칠 앓아눕는다.
현찬은 헤르메스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영웅급 영령도 이제 무리 없이 불러내는 현찬이 앓아서 누울 정도라면 헤르메스가 지금 부르려는 상대는 당연히 신급. 그것도 하위 신 수준이 아니라 헤르메스 자신과 거의 동등한 위치에 서 있는 신일 것이다.
리바운드에 의한 고통은 부르는 영령의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거대하다. 아폴론 때 겪었던 고통은 현찬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낀 그 어떠한 고통보다 더 거대했다. 그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몸이 절로 떨렸다.
하지만 현찬은 지금 많이 성장했다. 그때의 어리숙한 애송이는 이제 없다.
그는 신급 영령을 다루는 A랭크 헌터였으니까.
‘내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
과연 신급 영령을 부르고 리바운드가 얼마나 올까. 지금의 자신이라면 그래도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호기심과 도전의식이 현찬의 의욕을 더욱 뜨겁게 불태웠다.
“좋아. 각오는 됐어.”
[그렇다면 시작할게.]
스킬.
<헤르메스의 권능-계약>
현찬의 몸에서 막대한 마력과 신력이 넘쳐흘렀다.
마치 세상의 중심이라도 된 것처럼 현찬을 중심으로 빛무리가 휘몰아쳤다.
그것은 하나의 격류를 만들었고 태풍이 되어 깊은 산속 일대를 순식간에 집어삼키며 세를 불려갔다.
현찬은 자신의 몸이 마치 거대하고 포근한 요람에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이와 비슷한 기분을 받은 적이 있다. 바로 아폴론이 현찬의 몸에 직접 강림했을 때였다.
뜨겁다.
그리고 강렬하다.
아폴론과 비슷한 기운은 마치 넓게 펼쳐진 뜨거운 사막의 열기처럼 현찬의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폴론과는 비슷하면서도 무언가가 근본적으로 달랐다.
아폴론의 기운이 저 하늘에 떠오르는 태양이라면
지금 느끼는 기운은 저 아래에서 끓어오르는 마그마였으니까.
화륵!
현찬의 몸에 뜨거운 불길이 일어났다. 아폴론의 빛처럼 새하얀 불길과는 대조되는, 매우 붉고 진한 화염이었다. 마치 끈적거리는 마그마와 같은 이 불꽃은 현찬의 몸 전체로 번지며 그야말로 화염의 화신처럼 만들어 주었다.
이 세상에 녹이지 못하는 금속이 없다는 신의 불.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모든 대장장이들의 신.
[이곳이 하계인가. 너무나도 신비로운 세계로구나.]
<헤파이스토스(Hephaistos)>
올림포스 12주신 중 하나인 그가 헤르메스의 힘을 통해 머나먼 미래의 하계로 강림했다.
그는 현찬의 몸을 빌려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대부분을 자신의 공방에 틀어박혀 망치질하던 헤파이스토스에게 있어서 바깥의 풍경, 그것도 21세기의 풍경은 그것이 비록 숲이 가득한 산이라고 하더라도 참으로 아름답고 정감이 가는 모습이었다.
현찬은 입을 쩍 벌렸다.
설마 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대장장이들의 신인 헤파이스토스를 부른 것이다.
그가 누구던가.
에로스의 활과 화살, 헬리오스의 태양 마차, 아프로디테의 허리띠, 아이기스 흉갑, 아킬레우스의 갑옷 등의 온갖 뛰어난 무구를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신들조차도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물건들을 애용했으며 심지어 헤르메스가 사용하는 [탈라리아(Talaria)]와 [페타소스(Petasus)]도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다.
그런 헤파이스토스가 직접 현찬의 무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하계로 강림한 것이다.
[그래. 이야기는 다 들었다. 그래. 무기가 필요하다고?]
헤파이스토스의 목소리는 매우 중후했다. 마치 수천 년 동안 단단해지고 단련된 철을 보는 것 같았다. 겸손하지도 않고 거만하지도 않다. 그저, 묵묵하게 일자로 쭉 그어진 직선과도 같은 올곧음.
현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헤르메스 녀석이 계약자를 얻었다기에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꽤 괜찮은 아이로구나. 좋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내가 직접 만들어주도록 하지.]
오너라.
현찬의 몸을 빌린 헤파이스토스는 주먹을 쥔 오른손을 펼쳤다.
뜨거운 불씨가 그의 손바닥 위에서 생성되더니 이내 하나의 망치로 모습을 바꾸었다. 단순한 망치처럼 보임에도 망치에서 느껴지는 영험한 기운과 뜨거운 열기는 과연 신구(神具)라 칭할 만했다.
[일어나거라.]
헤파이스토스가 가볍게 지면에 발을 쿵 굴렀다. 그러자 주위의 지형이 변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공터 주변의 나무들은 마치 뒤로 미끄러지듯 물러나며 공터의 범위를 더욱 넓혔으며 그런 공터의 중심에서 거대한 공방이 땅을 뚫고 튀어나왔다.
공방 내부는 단출했지만, 대장장이로서 사용할 물건들은 전부 있었다.
[기왕 만든다면 제대로 만들어 줘야겠지.]
헤파이스토스가 손짓하자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금발의 소녀 다섯이 모습을 드러냈다.
금발인 것만 같고 머리 스타일이나 모습은 하나같이 제각각인 그녀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아름다웠는데 얼굴에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지 그야말로 살아있는 인형을 보는 것 같았다.
헤파이스토스가 직접 제작한 자율 구동 인형인 [황금인형].
그녀들은 헤파이스토스의 대장장이 일을 돕거나 잡일을 하고 공방에 침입하는 자들을 격퇴하는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불을 지피거라.]
“네. 알겠습니다.”
헤파이스토스의 명령에 따라 그녀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도저히 만들어진 인형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움직임이 매끄럽고 이질감이 없었다. 정말로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뜨거운 불길이 일고 공방의 안쪽은 순식간에 열기로 가득 찼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땀을 흘리거나 숨을 헐떡이지 않았다.
[와. 이렇게 형의 야금 질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네.]
[그렇구나.]
헤파이스토스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하더니 이내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현찬이 가져온 재료는 필요가 없었다. 헤파이스토스의 공방 안쪽에는 그가 신화시절부터 사용하던 온갖 재료들이 즐비해 있었으니까.
카앙!
헤파이스토스의 망치가 휘둘러지고, 청명한 소리와 함께 뜨거운 불씨가 사방으로 휘날렸다.
그 소리는 공방을 가득 채우고도 산골짜기 너머로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망치질은 매우 길게 이어졌다.
헤파이스토스는 대장장이이자 장인답게 심혈을 기울여서 장비를 만들고 있었다.
불에 친화적인 그의 특성과 신력 덕분에 뜨거운 열기에서도 견디는 헤파이스토스가 점점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의 곁에 서 있던 [황금인형] 중 하나가 땀을 닦아준다.
현찬은 그런 헤파이스토스의 모습이 정말로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파이스토스는 절름발이이자 얼굴이 못생겨서 다른 신들에게도 비웃음을 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는 스스로에 비관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왔다.
그 우직함과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은 같은 남자인 현찬이 보아도 동경심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카앙!
망치와 모루가 충돌하는 소리가 재차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