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31화 게이트 사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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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인간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현찬을 말리려던 사람은 속으로 현찬을 욕했지만 애써 겉으로는 멀쩡한 척 자신의 의견을 꺼냈다. 현찬은 회의실을 나서서 바깥으로 나왔고 그는 황급히 현찬의 뒤를 쫓았다.
“가, 강현찬 헌터 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지금 너무 성급하게 움직이시는 거 같은데 조금 더 계획을 세우고 가심이…….”
현찬을 그렇게 붙잡은 자는 수원지부 부장인 윤인환이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눈을 굴리며 주변의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의도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들리게끔 말을 꺼낸다.
현찬은 눈치가 좋았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이 말을 꺼낸 의도를 눈치챘다.
‘주변 시선을 의식한다 이거군.’
현찬이 이대로 떠나버린다면 협회 수원지부의 입장이 많이 난처하게 된다. 헐뜯기 좋아하는 기자들은 이것을 꼬집어서 기사를 쓸 테니까. 현찬과 협회의 불화, 뭐 이런 내용으로. 안 그래도 지금 협회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있는데 거기서 무언가를 더 일으키면 안 되는 게 윤인환 부장의 심정이었다.
그가 노리는 것은 바로 이것.
현찬이 자신들을 떠나는 당위성, 정당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입증하는 것이다.
“강현찬 헌터 님의 마음은 알지만 지금 혼자서 떠나신다면 위험합니다. 저희가 최대한 빠르게 구조팀을 꾸릴 테니 부디 그때까지만 기다려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이 남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했다.
우리는 최대한 말릴 만큼 말렸다. 여기서 가고자 하면 그것은 순전히 헌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협회의 잘못이 아니라 멋대로 개인행동을 한 현찬의 잘못이다.
그 의도가 빤히 읽혔기 때문에 현찬은 헛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을 두려워해서 헌터들을 붙잡아두는 그들의 행태에 완전히 질린 것이다.
정기원 실장은 그래도 강직한 인물이었지만 역시나 모든 사람이 다 정직하고 정의로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 대부분은 윤인환 부장 같은 사람이겠지.
이게 현실이었고 현찬도 그 점을 알고 있었지만 씁쓸한 맛은 지울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울려주지.’
“죄송하지만 저는 협회의 방침에 따를 수가 없겠네요. 이대로 가만히 놔둔다면 저 안쪽에 갇힌 사람들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아직 저들은 안전한 상황입니다. 오히려 지금 바로 들어갔다가 헌터님께서 당하신다면 그건 우리 국가에 큰 손해입니다.”
“저 안쪽의 사람들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신합니까? 장담할 수 있느냐고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저 안쪽에는 남아있는 헌터들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그들은 대처 가능합니다.”
둘의 대화를 멀리서 포착했는지 기자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윤 부장이 바라던 바이기도 했다. 기자들이 오자 그는 조금 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헌터 님께서 마음을 굽히실 생각이 없으시다면 저희들은 강현찬 헌터 님의 뜻을 존중하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강현찬 헌터 님을 말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뭐, 그러도록 하죠.”
그는 기자들이 더 파고들기 전에 확실하게 선을 그은 후 자리를 떴다. 기자들은 결국 둘의 대화로 상황을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눈치 하나는 귀신같은 기자들이다 보니 지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있으리라.
현찬은 윤 부장의 행동을 보며 속으로 비웃음을 날렸다.
이제 저들은 현찬과 별개로 갈라서게 됐으니 현찬이 수원시에 들어가서 죽어도 면책을 피할 수 있었다.
‘당신들은 잘못 생각한 거야.’
바꿔 말한다면, 현찬이 혼자서 저 안쪽에서 생존자들을 구해온다면 이는 온전히 협회가 아닌 현찬의 공적이 된다는 소리였다.
저들도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다만, 현찬이 실패할까 성공할까 2가지 선택지에서 실패에 걸었을 뿐이다. 이성적으로 봐도, 객관적으로 봐도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으니까.
현찬 혼자서, 성공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현찬은 그 도전을 받아주기로 했다.
“강현찬 헌터 님.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신 겁니까?”
“협회와 의견 충돌이 있으셨나요?”
기자들의 질문에 현찬은 쐐기를 박기로 했다.
“협회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는 쪽이었고, 저는 지금 바로 사람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혹시 함께 떠날 다른 동료들은 없으신가요?”
“저 혼자 갑니다.”
현찬은 오기로라도 혼자서 해낼 생각이었다.
증명해 보일 것이다.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틀린 것은 협회의 썩어 빠진 인간들이라고 세상에 알릴 것이다.
그에게는 그만한 힘과 능력이 있었으니까.
“혼자서는 위험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까지 하시려는 건가요? 이유가 있습니까?”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
현찬의 말에 기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자리에 못 박힌 듯이 서 있었다. 현찬은 그런 기자들에게 실례한다는 말을 남기며 지나쳤다.
“현찬아!”
기자들을 물리자 이번에 온 건 이한율이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빠르게 달려왔는지 그녀의 머리카락은 정리가 되지 못해서 엉망이었다. 한율은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먼저 입을 열기 전에 현찬이 선수 쳤다.
“괜찮아.”
“이 바보야! 지금 그걸 몰라서 물어?! 저기에 먼저 들어간 A랭크 헌터랑 B랭크 헌터들이 당했어. 아무리 신급 영령의 계약자인 너라고 해도 아직 제대로 힘을 다루지 못한다면 위험하단 말이야!”
“그러니까 괜찮다고 하는 거야. 저기에 들어가는 건 나 혼자로 족해.”
“자살행위라니까!”
“글쎄.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솔직히 무섭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리라.
하지만 그 무서운 걸 알면서도 현찬은 용기를 냈다.
자신의 옷자락을 잡으며 부디 엄마를 구해달라고 했던 어린아이의 부탁을 받았으니까.
그리고 약속했으니까.
구해 보이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너는 따라오지 않아도 좋아.”
“뭐?”
“나야 어디 소속된 곳도 없지만 너는 클랜에 소속되어 있잖아? 함부로 움직이기 곤란하지?”
“…….”
이한율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정답이었다. 그녀는 현재 클랜에서 내려온 명령 때문에 일단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자며 자리에서 대기해야만 했다. 현찬은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나 혼자서 충분해.”
현찬은 그 말을 남기고 수원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한율은 따라오지 못했다. 그 대신 현찬이 떠나가기 전에 ‘조심해’라고 뒤에서 외쳤을 뿐. 그걸로 충분했다.
곳곳에 탱크와 군인들이 즐비해 있었지만, 현찬을 알아보더니 알아서 길을 비켜주었다. 방어선에 점차 가까워지자 그곳에서는 한창 휴식 중인 헌터들도 있었다. 그들은 다가오는 현찬을 보며
“저 사람은?”
“본 적 있어. 신급 영령의 계약자. 강현찬이야.”
“뭐야. 왜 혼자 온 거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현찬은 바리게이트의 앞에 섰다. 그곳에서 한창 방어를 맡고 있던 B랭크 헌터 고평강은 현찬에게 다가와 물었다.
“무, 무슨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상대가 그 유명한 A랭크 헌터인 걸 알아보았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생존자들을 구출하러 가기 위해서 왔습니다.”
“예? 하, 하지만 혼자서.”
“네. 혼자서 갑니다.”
쿠워어어어!
때마침 멀리서 괴수의 포효가 들려왔다. 그 외침에 대기하고 있던 헌터들이 모두 각자 무기를 챙겨들고 헐레벌떡 바리게이트로 뛰어왔다.
“이런 젠장! 또 녀석이야!”
“아오! 쉴 때마다 나타나네.”
“모두 원거리로 먼저 포격 퍼부어!”
그렇게 외치는 헌터들의 얼굴에는 미약하게나마 공포감이 실려 있었다. 보스 몬스터가 아닌 일반 몬스터임에도 지금 수원시에서 날뛰는 녀석들은 매우 강력했다. 저 멀리서 건물 모퉁이에 5m의 덩치를 지닌 녀석이 튀어나왔다.
온몸이 갈색의 흘러내리는 진흙처럼 이루어진 괴물. 징그러운 외모의 코를 후비는 악취를 풍기는 놈의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이쪽을 주시한다.
“늘 오던 녀석이다!”
“젠장! 대체 몇 마리나 있는 건데?!”
군인들도 욕설을 내뱉으며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순식간에 부산해진 주변에 현찬은 마치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서 나왔다.
멀리서 진흙 괴물이 달려왔고 현찬은 그런 녀석과 마주 보는 형태가 되었다.
“어, 어?”
“헌터 님!”
주변의 사람들은 현찬이 갑자기 앞으로 나서자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나서서 현찬을 데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저 괴물과 가까이 다가가기 싫었기 때문이다.
현찬은 보여주기로 했다.
자신이 어째서 신급 영령의 계약자인지.
‘헤르메스. 이번에는 나 혼자 해 볼게.’
[그래. 믿을게.]
헤르메스의 도움 없이, 새롭게 성장한 자신의 힘을 제대로 선보여주겠다.
<계약>
현찬의 앞에 무수한 영령들이 나타났다. 예전이었다면 아무리 높아도 왕급 영령밖에 만나지 못했겠지만 A랭크 헌터로 발돋움한 현찬은 이제 영웅급 영령들과도 자연스럽게 계약할 수 있게 되었다.
현찬은 그런 영웅급 영령들 중에서도 이 상황에 어울리는 영령을 선택했다.
‘저와 계약하시겠습니까?’
현찬의 물음에 영령은 호쾌하게 대답했다.
[나를 부를 정도 되는 계약자의 부탁이다. 내 어찌 거절하겠는가!]
그러겠다고.
그리고 현찬의 몸에 강대한 힘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강하고 강직하며 우직한 사내였다.
수만 명이 넘는 적들의 앞에서도 용기를 잃는 일이 없었으며 용감하게 검을 뽑아 들었다.
섬기고자 하는 자를 잘못 만나 그 최후는 매우 안타까웠지만 그런데도 그의 무위와 업적은 가히 천하를 호령했다고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촤아악!
현찬의 몸에 걸친 갑옷이 빛에 휩싸이더니 이내 새하얀 무복으로 바뀌었다. 현찬이 손에 쥔 검 또한 그 형태가 바뀌며 예전 후삼국 시대의 무인이 쓸 법한 도검으로 변했다. <대여>의 능력으로 인해 영령이 생전에 사용하던 무기와 의복으로 바뀐 것이다.
현찬은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괴물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그 거대한 덩치에 걸맞지 않게 빠른 속도로 달려왔는데 멀리서 본 것이 방금인데 어느 순간 지척까지 접근한 뒤였다.
뒤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지금 저 끔직한 괴물이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현찬이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아, 안 돼!’
‘위험해!’
갑자기 입고 있는 옷이나 손에 쥔 검이 바뀐 것은 그렇다 치지만 가만히 있으면 당할 뿐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현찬은 당황하지 않았다.
진흙의 괴인이 거의 코앞에 다가왔을 때.
현찬은 검을 휘둘렀다.
서걱!
쿠오오오!
단 한 번의 칼질, 그것만으로도 진흙의 괴인은 상반신과 하반신이 갈라져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 광경에 주변의 헌터들과 군인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뒤늦게 멀리서부터 카메라로 현찬의 모습을 찍고 있는 카메라맨과 리포터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추정 4, 5등급 몬스터를 한칼에 베었다. 이는 평범한 A랭크 헌터는 절대로 보일 수 없는 무력. 모두가 현찬이 보여준 풍경에 압도되고 말았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사람이 단 칼질 한방으로 몬스터를 쓰러뜨린단 말인가.
하지만 현찬과 계약을 맺은 영령은 그만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고려 시대.
여진족이 국토를 침범하고 전쟁이 벌어지던 시절 그는 무신이자 군인이었다.
그는 힘이 장사였고 누구보다도 칼을 잘 썼으며 그것에는 한 치의 과장도 없었다.
그는 단둘이서 여진족 기마대 100명을 막아섰다.
그는 홀로 적군의 성벽을 기어올라 여진족의 목을 베었다.
그는 기습을 당해 전열이 붕괴한 상황에서도 총사령관을 지원군이 올 때까지 지켜냈다.
그는 홀로 성문 밖으로 뛰쳐나가 적들의 목을 베어 2만이 넘는 여진을 쫓아냈다.
정사에서도 만인지적이라 불리는 자.
그 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고려 최고의 검.
<무신 척준경>
[계약자의 의지에 따라,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적에게 죽음을 안겨주겠노라.]
수많은 여진족의 악몽이자
나라를 지키던 최고의 명검이 이 자리에 다시 강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