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29화 랭크 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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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찬이 방송이 나간 후 현찬에 대한 기사가 우후죽순으로 양산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는 실시간으로 현찬에 대한 정보가 올라왔고 각종 포털 사이트의 순위에는 현찬의 이름으로 가득 찼다. 대부분은 현찬에 대한 칭찬이 가득 찬 내용이었다.
<한국 최초의 신급 계약자 등장!>
<최단기간 A랭크 헌터 달성. 기네스북 갱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한 사람의 질주!>
기사에는 현찬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와 함께 인터뷰 영상이 실려 있었다.
당연히 댓글창도 시끌벅적했다.
- 우리나라도 오버랭크 헌터 가즈아!
- 비트코인은 떡락했지만 국격은 떡상했습니다.
- 와. 그렇게 잘생긴 건 아닌데 되게 부드럽고 호감형이다. 너무 취향저격!
- 인터뷰의 말투나 행동을 보면 다른 헌터들보다 훨씬 더 겸손하네.
- 근데 저사람 그 화랑 클랜의 유망주라는 애 개처럼 팬 사람 아님?
- 헐~ 확인해보니 ㄹㅇ이네. 어쩐지 뭔가 있다 싶었어.
물론 현찬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이라는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에서는 언제나 남을 까고 깎아내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신급 영령은 주작이지 ㅂㅅ들아. 진짜인데 왜 이름 안 밝힘?
- 주작나무 타는 냄새 솔솔 나죠? 그쵸? 인정? 응! 인정!
- 지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오버랭크? 어이가 없네.
- 그렇게 잘 생기지도 않았구만.
물론 이런 의견을 내놓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극소수였다. 오히려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 최초의 신급 영령의 계약자이자 훗날 오버랭크가 될 가능성을 지닌 현찬을 좋게 보고 있었으니까.
이는 한국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신급 영령의 계약자라는 타이틀은 한국을 넘어서 해외로 뻗어져 나가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아직은 소식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서 그 수가 적지만 일본의 2ch나 해외의 레딧, 중국의 웨이보에서는 현찬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현찬이 어느 정도 실력을 밝히자 현찬을 어떻게든 영입하려던 대부분의 클랜 소속 사람들은 결국 꼬리를 말 수밖에 없었다.
역대급 신인인데 나이가 어려서 조금만 잘 구슬리면 데려올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신급 영령이라니. 저것은 너무나도 규격 외이지 않은가.
그것도 준 신급이 아닌 주신급이라면 더더욱!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걸 넘봤구나.’
‘신급 영령이라니. 5대 클랜이 아니면 눈도 안 들겠군. 아니, 거기에도 눈이 갈까?’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냥 구경이나 하자.’
현찬의 존재는 품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맛을 다시면서도 포기했다. 품는다면 그들의 클랜의 이름값은 하늘 높이 치솟겠지만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당연히 현찬의 가치는 그야말로 수직으로 상승했고 이제 그 누구도 현찬에게 자신의 클랜으로 들어오라고 말을 건네지 못했다.
그 덕분에 현찬은 거의 연예인 이상 가는 인기와 명성을 얻게 되었는데 그에 뒤따르는 여러 가지 귀찮은 일들도 가득했다.
우우우웅!
현찬의 핸드폰이 계속 울렸다. 지금까지 딱히 울릴 일이 없었는데 A랭크 헌터가 되고 신급 영령임을 밝히고 나자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많은 사람들이 현찬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현찬은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물론 받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가 포기하고 가만히 있을 리도 없었다. 전화가 안 되면 문자를 남겼으니까.
[오빠. 저 과 후배 이가희라고 해요. 혹시 저희 만날 수 있을까요?]
[현찬아. 나 동아리 선배 선우형이야. 술 한잔할래?]
[선배. 저희 치킨집 가서 술 마실 건데 선배도 오실래요?]
.
.
.
같은 과 후배나 선배, 동기들이 현찬에게 집요하게 문자를 남겼으며 심지어 중학교 동창이라고 10년도 얼굴을 못 본 녀석이 메시지를 보내기까지 했다. 이런 문자만 하루에 무려 수백 통씩 왔다.
“어휴. 거 참.”
현찬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에게 온 문자들을 그대로 전부 다 스팸으로 차단시켰다. 평소에는 연락도 안 하던 인간들이 현찬이 갑자기 뜨니까 인제 와서 어떻게든 친한 척 연결고리를 만들려고 하는 꼴이 너무 추했다.
물론 전화를 받아 줄 사람은 받아 줬다.
특히나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은 전부 통화를 끝마친 뒤였다. 현찬은 친척들과도 명절 때 자주 보는 만큼 관계가 원활했기 때문에 마찰을 빚는 경우는 없었다.
집에서는 당연히 기뻐했다. 헌터가 된다는 아들이 난데없이 일약 스타로 우뚝 섰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만 사람들이 또 어떻게 알았는지 현찬의 가족에게까지 가서 뭐 얻어먹을 게 없나 달라붙은 점은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친구들도 단톡방에서 난리였다.
형준[야 이 배신자야!]
건호[맞소! 강현찬 이 배신자야!]
현찬[???]
현찬[뭐가?]
정훈[기사 다 봤다.]
정훈[임마 그렇게 잘 될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해 줘야지!]
건호[맞소! 강현찬 이 배신자야!]
현찬[허어. 친구에게 배신자라니, 너무들 하시는군요.]
정훈[너무한 건 너다! 우리에게 이 사실을 숨기다니!]
건호[맞소! 강현찬 이 배신자야!]
현찬[아 꼬우면 님들이 헌터 하시던가요.ㅋ]
건호[헌터님.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 쟤들이 했습니다.]
정훈[저저저 배신자 새끼. 태세전환 하는 거 봐라.]
형준[헌터님. 저는 죄가 없습니다. 다 정훈이가 시켰습니다.]
정훈[아니 이 새끼들아.]
현찬[걱정하지 마. 조만간 내가 또 크게 쏠게. 정훈이 빼고.]
정훈[아닙니다 헌터님. 저는 처음부터 잘 될 거라고 다 믿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재밌는 반응에 현찬은 낄낄거리며 웃다가 이내 게이트에 도착했다.
A랭크를 달성했으니 새롭게 파티를 맺고 A랭크 게이트를 예약했던 것이다. 물론 혼자가 아니었기에 거기에는 먼저 도착한 사람이 현찬을 반겨주었다.
“강현찬 씨. 우리 또 보네요?”
“아. 이한율 헌터 님. 오랜만이에요.”
영웅급 영령 <강감찬>의 계약자이자 황룡 클랜의 A랭크 헌터 이한율.
현찬이 그녀와 마주친 것 순전히 우연이었다. 때마침 A랭크 게이트를 돌 필요성을 느꼈고 협회에 부탁해서 파티를 찾아달라고 했는데 그 대상이 황룡 클랜이었으니까.
“황룡 클랜은 클랜끼리 게이트에 들어가는 거 아니었나요?”
현찬의 질문에 이한율은 고개를 저었다.
“저희 클랜은 소수 정예를 지향하다 보니까 클랜원의 수가 다른 클랜에 비해서 적거든요. 그래서 저희끼리 뭉쳐 다니기보다는 다른 클랜과 합작을 하거나 아니면 소속이 없는 일반 헌터들과 함께 게이트를 돌거나 하죠. 저희 클랜은 그런 게 자유롭거든요. 어때요? 저희 클랜에 오지 않으실래요?”
“그쪽 클랜장 님이 오버랭크면 생각해볼게요.”
장난스럽게 물어보는 질문에 현찬도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이한율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칫. 클랜장 오빠한테 빨리 오버랭크 달라고 닦달을 하든가 해야지. 그보다 지금 괜찮으세요?”
“뭐가요?”
“A랭크 달고 그렇게 매스컴을 탔으니 아마 하루에도 수백 번 넘게 사방에서 강현찬 씨에게 달라붙을 거 같은데.”
“말도 마세요. 진짜 제 번호는 또 어떻게 알아냈는지 별의별 사람들이 다 연락을 하더라고요.”
“저 때도 그랬는데 아마 현찬 씨는 저보다 더 심할 것 같네요. 그래도 뭐 딱히 방법이 없으니까 적응하는 수밖에 없죠. 인기인의 업보라고 생각하고 스무스하게 넘기면 편해요. 물론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그런 인간들이 꼬이기는 하지만.”
이는 이한율이 실제로 겪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진심 어린 충고를 할 수 있었다.
이한율이 A랭크 헌터의 자격증을 얻은 지도 어언 몇 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아직도 이한율에게 은근슬쩍 들이대는 인간들이 있었다. 그녀가 SNS에 글을 남기면 그녀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온갖 아양과 아부를 떠는 사람들은 지천으로 널릴 정도.
현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정말 귀찮죠.”
“그렇다니까요~. 말 나와서 하는 소리인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정말 딱 잘라서 거절을 해야 해요. 마음 약해서 조금만 살살해도 이걸 괜찮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서 계속 귀찮게 구는 게, 어우 진짜 생각만 해도 짜증이.”
“하하. 이한율 헌터님도 고생이 많았겠어요.”
“물론이죠. 뭐, 대다수 A랭크 헌터의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다른 해외의 사람들 또한 저희들을 주시하니까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이한율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현찬 또한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에 공감했다.
헌터들의 시대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이 하나로 뭉친 것은 아니었다.
국가 간의 알력다툼은 여전했고, 타국에서 뛰어난 헌터가 나오는 걸 원치 않은 나라는 많았다.
당장 양옆에 끼고 있는 중국과 일본만 봐도 그렇다. 현찬이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있지 않자 바로 암살자를 보내 싹을 자를 정도이지 않던가.
일단 현찬이 한번 거하게 으름장을 놓았으니 지금은 잠잠하겠지만 언제 다시 문제를 일으켜도 이상할 게 없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카운터펀치를 강하게 먹여줄 생각이었다.
‘그보다’하고 이한율이 말을 이었다.
“저희도 이제 구면이고 그런데 말 편하게 하는 게 어떨까요?”
“네?”
“계속 서로 누구누구 헌터님, 이렇게 부르는 것도 너무 불편하잖아요. 앞으로도 같은 A랭크 헌터로서 마주칠 텐데 그때마다 거리감 느껴지게 구는 건 제 성미에 안 맞거든요. 그냥 편하게 해요 편하게.”
“아, 네.”
“좋아. 나이가 몇 살이라고 했지?”
“26살.”
“어! 나랑 동갑이네?”
놀랍게도 이한율은 현찬과 같은 26살이었다.
나이가 같고 말을 놓자 둘은 매우 빠른 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다. 정확히는 살갑고 발랄한 이한율의 성격 덕분이기도 했다. 그녀는 붙임성이 워낙 좋아서 조금 어색해하는 현찬에게도 분위기를 잘 맞춰주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가는 게이트가 어딘지 알아? 자세한 설명은 파티장이 현장에서 설명해준다고 들었거든.”
“아, 현찬이 너는 모르겠구나. 우리가 가는 곳은 A랭크 게이트인 [숲의 미로]야. 지금까지 클리어된 적이 없는 곳인데 현찬이 네가 이번에 왔으니 아마 이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도 있겠다.”
그 정도로 이한율은 현찬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약속 시각이 가까이 다가오자 함께 파티를 맺기로 한 헌터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현찬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나지막이 감탄했다.
역시 A랭크 헌터라 그런지 그들이 걸치고 있는 방어구와 무기가 하나같이 다 고급스러웠기 때문이다.
B랭크와 A랭크가 하늘땅 차이라고 말하는 것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돈을 엄청나게 쓸어 담고 그만한 가치를 지닌 아이템들을 사용했다. 이 자리에서 가장 초라하게 보이는 건 현찬이었다.
‘음. 나도 이제 슬슬 좋은 방어구랑 무기를 갖춰야 할 것 같은데.’
A랭크 방어구와 무기는 그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원래 보통 헌터라면 꾸준히 돈을 모아서 걸맞은 아이템을 갖추었겠지만, 현찬의 경우에는 그 성장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나머지 그럴 틈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었다. 아이템이 현찬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래. 돈을 벌면 일단 무기와 방어구부터 새 걸로 맞추자.’
운이 좋다면 유물을 획득할 수 있겠지만 어디 유물이 쉽게 나오는 것이던가. 길 가다가 벼락에 맞고 거기에 로또 당첨되는 것보다 제대로 된 유물 하나를 건지는 게 확률이 더 낮을 정도였으니까.
현찬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이 자리에 모인 헌터들의 핸드폰이 동시에 알림음을 토했다.
“응?”
“뭐야?”
이한율도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들더니 날아온 문자를 보며 고운 이마를 주름지었다.
“현찬아. 아무래도 너의 첫 A랭크 게이트 원정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거 같아.”
현찬 또한 자신의 휴대폰에 온 문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응. 그런 거 같네.”
[긴급 동원 문자]
금일 11시 수원에 긴급 게이트 발생. 3급 게이트 주의보 발령. 해당 구역과 현직 헌터들은 모두 13시까지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짤막한 말이었지만 그 심각성은 충분히 전해졌다.
3급 게이트 주의보.
이것은, 최소한 A랭크에 버금가는 몬스터가 대거 출현했을 때 뜨는 경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예상치 못한 게이트의 등장에 수원시가 그대로 몬스터 소굴이 되었다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