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25화 노리는 자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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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흑룡단은 중국계 마피아 조직이다. 놈들은 사람들을 납치하거나 인신매매, 장기밀매, 마약 거래 등의 악질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놈들인 한편, 헌터 업계에 뛰어든 몇 안 되는 조직이기도 하다.
놈들이 하는 일들은 간단하다. 자국에 위협이 될 만한 자질을 갖춘 신입 헌터를 납치하거나 암살하는 것이다.
스미요시카이(住吉会) 또한 흑룡단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일본 야쿠자 계열의 범죄 조직인데 혐한 성향을 보이는 우익 조직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한국을 이유 없이 증오하고 비하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뛰어난 헌터가 나오는 것을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조직에서도 나름 상당한 실력을 지닌 닌자를 고용해서 직접 현찬의 목숨을 노리려고 하는 것이었다.
원래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
하지만 이는 현찬이 어디에도 소속이 되지 않은 탓도 컸다.
적당한 클랜에 들어가기만 했어도 현찬을 건드리기는 껄끄러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찬은 어떤 클랜에도, 심지어 협회에도 들어가지 않고 프리랜서처럼 행동했다. 즉 그를 비호할 자는 아무도 없다는 소리.
그것이 흑룡단과 스미요시카이가 현찬을 직접 제거할 여지를 주었다.
무엇보다 현찬은 첫 시작부터 B랭크라는 엄청난 업적을 가졌다. 지금까지 재능 있는 S랭크 헌터들이라 하더라도 첫 시작은 최대가 C랭크.
그렇기에 일본과 중국에서도 현찬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잠재적 적국인 한국에 S랭크가 될 가능성을 가진 헌터가 나타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사실상 범죄조직이 끼어들었지만, 그들을 사주한 배후에는 국가 정부까지 있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그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었는데 원래라면 협회에서 바로 그들을 사전에 막아냈어야 하는 일이 정상이었지만 화랑 클랜이 일부러 수작을 부린 탓에 운이 좋게 이곳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이런 운이 겹친 덕에 리 쉔푸는 쉽게 현찬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이곳이로군.’
리 쉔푸는 현찬이 들어간 게이트를 살폈다. 도시의 바깥쪽에 자리 잡은 게이트라서 그런지 게이트 주변을 관리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서 오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상당히 적었다. 이는 리 쉔푸에게 오히려 좋은 환경이었다.
보는 눈이 없으므로 더 마음 놓고 움직일 수 있으리라. 들킨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인터폴에 수배가 떠도 잡히지 않은 자신이 고작 한국의 경찰이나 헌터들에게 잡힐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게이트로 들어가다니, 간이 크구나.’
지금 보이는 B랭크 게이트는 상당히 큰 게이트였다. 내부도 넓어서 도저히 B랭크 헌터 혼자서 사냥을 하러 들어갔다고 볼 수 없었다. 아마 가더라도 최소 5명 이상이 파티를 맺어야만 활동할 수 있을 테니까.
리 쉔푸는 현찬이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믿는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런 상대일수록 방심을 많이 하게 된다.
‘흥. 고작 작은 땅덩어리의 무지렁이가 감히 우리 위대한 나라에 맞먹으려고 든 죄는 크다.’
현찬이 들었으면 참 억울해 할 만한 속내를 품은 채 리 쉔푸는 게이트 내부로 들어갔다. 그는 B+ 랭크의 헌터. 이제 막 헌터 라이센스를 받은 B랭크 헌터는 절대로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게이트 내부는 그야말로 넓은 숲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솟아 우거진 나무들을 보며 리 쉔푸는 잘됐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시야가 가려질수록 자신의 범죄는 더욱 은밀해지고 들키지 않을 테니까.
그르르르.
B랭크 던전인 [아지랑이 숲]에는 트롤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3M에 가까운 덩치와 우둘투둘한 짙은 회갈색 피부, 기다란 팔과 한손에 쥐고 있는 거대한 몽둥이, 그리고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온 이빨.
6등급 몬스터인 트롤은 엄청난 재생력과 방어력으로 뭇 B랭크 헌터들을 매우 귀찮게 만드는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B랭크 헌터들이 사냥하기에 적합한 몬스터이기도 했다.
재생력이 뛰어난 트롤의 피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약물이 된다. 이것들을 정제하면 매우 값비싼 화장품을 만들 수도 있거니와 각종 치료제로 만들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매우 고귀한 피였다.
그렇기에 트롤은 상대하기 껄끄러우면서도 사냥에 성공할 경우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몬스터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최고의 가치를 지닌 몬스터였다. 어차피 같은 랭크 몬스터를 사냥하기 힘든건 매한가지라면 돈을 더 많이 버는 트롤이 좋으니까.
리 쉔푸는 그런 트롤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의 목표는 현찬이었기 때문에 트롤들을 피해서 나무의 위로 올랐다.
[은신잠행]
그의 몸이 마치 허공에 녹듯이 사라졌다. 주변 풍경과 동화되어 하나가 된 것 같이 몸이 사라진 리 쉔푸는 이번에는 추적에 특화된 스킬을 발동시켰다.
[추적자의 눈]
리 쉔푸의 눈에 마력으로 필터링이 씌워졌다. 바닥에 찍혀 있는 발자국들이 은은한 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리 쉔푸의 눈은 그것을 전부 다 보고 있었다. 상대방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는 데 최적화된 스킬!
거의 사라지기 직전처럼 희미하게 빛나는 발자국은 이곳에 온 지 상당히 시간이 지났음을 의미했다. 사람의 발자국들과 트롤의 거대한 발자국들의 사이에서 조금 전까지 사람이 있었는지 선명하게 빛나는 발자국이 있었다.
‘찾았다.’
발자국은 딱 한 사람의 것이었다. 리 쉔푸는 눈썹을 꿈틀했다.
현찬은 정말로 혼자서 이 게이트에 찾아온 것이었다. 그것도 자신과 동 랭크의 헌터가 몇 명은 더 필요한 게이트에.
‘건방진 녀석.’
리 쉔푸는 허리춤에 메여 있는 박도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발자국이 난 방향을 따라 나무 위를 타고 달렸다. 그의 움직임은 매우 은밀했고 빨랐다. 우거진 나무 위를 마치 평지라도 되는 것처럼 달린 리 쉔푸는 이내 몸을 멈추었다.
그곳에는 트롤 세 마리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 중심에는 자신이 그토록 찾던 목표물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B랭크 헌터 다섯이 동시에 달려들어서 한 놈 잡기 힘들다는 트롤이 무려 세 마리가 바닥에 쓰러져 죽어 있었다. 그 모습에 리 쉔푸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애써 그 생각을 떨쳐냈다.
‘몬스터를 잘 잡는 것 같지만 사람과 싸우는 것은 다르니까.’
그는 지금까지 10명이 넘는 B랭크 헌터들과 싸워서 전부 다 압도적으로 이긴 전적이 있었다. 아무리 헌터가 몬스터를 잘 잡는다고 해도 사람과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건 경험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귀찮은 카메라부터 없앤다.’
리 쉔푸는 손에 쥔 장침을 집어던져 현찬의 오른쪽 어깨에 있는 초소형 카메라를 향해 암기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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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뭐야.”
현찬은 허공에서 날아온 암기를 보지도 않고 손가락으로 잡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현찬이 네가 목표 대상이라서 찾아온 거 같은데?]
“그런 거 같네.”
현찬은 리 쉔푸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나무 위에 보이지는 않지만, 기척이 확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계속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에 그냥 자신이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는 다른 헌터구나 하고 생각했다.
상대방이 던진 거대한 장침이 자신의 카메라를 노리기 전까지는.
대체 뭘 하려고 저렇게 숨어있나 싶었는데 설마 카메라부터 노릴 줄이야. 날아오는 암기가 자신의 몸을 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저 가만히 있었는데 조금만 더 늦었으면 돈 몇백이 그대로 날아갈 뻔했다.
현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노골적으로 카메라를 노린 시점에서 상대가 좋은 의도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거 비싼 건데.”
헌터들에게만 지급되는 장비다 보니 이 자그마한 카메라의 가격만 무려 400만 원이나 한다. 그것을 상대방이 갑자기 부숴버리려고 했으니 현찬으로서는 당연히 기분이 상당히 언짢았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 하더라도 400만 원을 그냥 버릴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현찬이 나무 위를 노려보자 리 쉔푸는 자신의 은신을 해제하고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카메라를 부수는 것이 실패하고 상대도 자신을 알아차렸으니 더는 숨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넌 뭐야?”
자신의 카메라를 부수려는 상대에게 말이 곱게 나갈 리가 없었다. 현찬이 노려보며 말하자 리 쉔푸는 대답하지 않고 손에 쥔 검을 현찬에게 겨누었다. 가시처럼 날카롭게 찌르는 것 같은 살기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현찬아. 저 녀석, 보통 녀석이 아니야.]
헤르메스의 말에 현찬도 고개를 끄덕였다. 리 쉔푸가 뿜어내는 살기는 보통 헌터가 지닌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죽여 온 자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살기.
현찬은 이런 기운을 처음 느꼈지만, 지금까지 많은 인간군상을 봐온 헤르메스와 계약을 했기 때문인지 상대방의 정체를 대략적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하. 설마 나를 노리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누구인지 묻고 싶었지만, 상대방은 대답해줄 것 같지 않았다. 꾹 다문 입술은 고작 묻는 것만으로 쉽게 열리지 않으리라.
[단순히 말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걸 보면 아무래도 다른 나라 사람인 것 같은데?]
“그렇겠지.”
말을 하지 않는 것도 힌트가 될 수 있었다. 동양권 외모를 보면 아무래도 중국인, 혹은 일본인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현찬은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그에게는 묻지 않아도 알 방법이 있었으니까.
‘그래. 새롭게 얻은 능력은 이럴 때 써야지.’
현찬은 다른 영령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과 계약을 맺은 파트너, 헤르메스의 힘만 사용하기로 했다.
현찬이 손가락을 까닥이며 도발하자 리 쉔푸는 얼굴을 굳히며 현찬에게 달려들었다.
‘빠르다!’
B+ 랭크에 도적계열 클래스를 지닌 리 쉔푸의 움직임은 매우 민첩하고 빨랐다. 아마 평범한 B랭크 헌터라면 제대로 몇 번 저항하지도 못한 채 저 속도에 농락당해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A랭크의 단계에 오른 현찬에게는 그의 움직임이 전부 보였다.
<차용> [탈라리아(Talaria)]
날개가 달린 신발이 현찬의 발을 휘감고 하늘로 날아오르게 해주었다. 현찬은 그대로 하늘 높게 솟구쳐 올라 박도를 피하며 허공을 유영하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현찬의 머리 위에는 챙이 넓은 모자가 씌워져 있었다.
<차용> [페타소스(Petasus)]
헤르메스가 사용하는 모자.
이 능력은 바로 상대방의 상태창을 읽게 해 주는 것.
타인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 그것을 이용하는 헤르메스의 잔꾀를 가득 담아 형상화한 모자가 바로 이 페타소스다.
페타소스를 착용하자 현찬의 눈에는 리 쉔푸의 정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 소속 국가, 나이, 키, 몸무게, 헌터의 특성과 스텟 등등. 영령이 누구인지나 세밀한 사항만 모를 뿐이지 어지간한 건 전부 다 볼 수 있었다.
‘허. B+랭크나 돼? 이런 등급을 지녔으면서 헌터로서 몬스터는 잡지 않고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나 하다니.’
현찬은 리 쉔푸가 도저히 갱생할 수 없는 쓰레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봐주면서 싸울 생각은 없었다.
<차용> [카두케우스(Caduceus)]
현찬의 손에 지팡이 하나가 쥐어졌다. 황금으로 이루어진 이 지팡이는 아래서부터 2마리의 뱀이 2중 나선을 그리며 휘감듯 올라오고 있었으며 지팡이의 끝에는 한 쌍의 날개가 펼쳐져 있었다.
‘이, 이건!’
리 쉔푸도 바보는 아니다. 지금 현찬이 꺼내든 저 지팡이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모를 헌터는 이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을 거니까.
‘위험하다!’
“늦었어.”
현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리 쉔푸는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헤르메스가 가지고 다니는 카두케우스는 죽은 자를 명부로 안내해 주는데 모험가들을 수호하는 상징이었다.
이 지팡이가 지닌 효과는 죽어가는 자를 편안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사람을 최면에 빠뜨리거나 깨우게 하는 것이다.
리 쉔푸는 위험을 직감하고 몸을 빼려고 했지만 이미 카두케우스의 영향을 받아 최면이 걸리고 말았다. 리 쉔푸의 눈은 흐리멍덩하게 변하며 초점이 흐려졌고 벌어진 그의 입에서는 침이 흘렀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자가 있었다.
가토 타츠야.
스미요시카이(住吉会)에서 보낸 B랭크의 닌자 클래스를 지닌 헌터. 그는 현찬과 리 쉔푸가 싸우는 광경을 보며 믿을 수 없는지 눈을 부릅떴다.
‘이, 이 사실을 당장 알려야 한다!’
현찬이 지닌 힘은 감히 자신이 대적할 수 없는 것이다. 저게 B랭크라고? 아니, 저건 그 수준을 넘어섰다.
하지만.
‘어디로 사라졌지?’
조금 전까지 리 쉔푸의 앞에 서 있던 현찬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타츠야는 자신이 표적을 놓쳤다는 사실에 순간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런 타츠야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또 뭔데?”
‘……?!’
등 뒤에서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에 타츠야는 즉시 손을 휘둘러 표창을 날렸다. 하지만 현찬은 지팡이로 표창을 가볍게 튕겨냈다. 그런 현찬의 모습을 보며 타츠야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설마 매복해 있는 자신의 위치가 탄로 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됐다. 너도 자라.”
현찬은 이미 타츠야의 상태창을 살핀 후였기에 누구인지 정체를 묻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 지팡이를 휘둘러 그에게 최면을 걸었을 뿐.
B랭크 헌터 정도는 가볍게 쓰러뜨릴 수 있는 둘은, 현찬을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손쉽게 제압당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