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24화 노리는 자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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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현찬은 자신의 통장에 찍힌 액수를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며칠 전 B랭크 게이트 [흰개미소굴]을 클리어하고 난 뒤 몬스터의 사체와 마석 그리고 게이트 클리어 보상이 모두 합쳐진 금액이 그의 통장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금액은 세금을 제외해도 무려 33억 원이나 되었다.
원래라면 이 정도 금액이 나올 수 없겠지만 보스 몬스터의 사체가 비싼 값에 팔렸고 게이트를 클리어한 보상에, 게이트 내부에 있는 대부분의 몬스터들을 모조리 다 때려잡았기에 가능한 금액이었다.
특히 현찬이 꽤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헌터들보다 정산 비율이 높았고 그렇기에 단 하루 만에 33억이라는 거금을 얻을 수 있었다.
처분해야 할 몬스터의 사체가 너무 많다 보니까 돈이 지급되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걸렸지만, 이 금액을 보고 나니 그런 소소한 불편함 따위는 전부 씻겨 나갔다.
‘그보다 이렇게나 많은 B랭크 몬스터들을 죽여도 거의 기간테스 3마리와 비슷하구나.’
그만큼 B랭크 몬스터와 A랭크 몬스터가 지닌 가치의 차이는 매우 컸다. 고작 랭크 1개의 차이라고 생각하겠지만 B에서 A까지 가는 그 간극은 그야말로 절벽보다 까마득하게 높을 정도.
‘괜히 A랭크 헌터들이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었어.’
인터넷에 나돌아다니는 A랭크 헌터의 생활이 찍힌 동영상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마음만 먹고 1달간 빡세게 게이트를 돌 경우 A랭크 헌터는 거의 혼자서 기업에 가까운 돈을 벌 수 있을 정도였다.
‘이제 A랭크 헌터까지 멀지 않았어.’
원래 현찬은 잠정적으로 A랭크 헌터에 가까웠다. 다만 가진 스텟이 다른 A랭크에 비해 부족했기 때문에 B랭크에 머무는 거지 스텟만 올린다면 충분히 A랭크를 달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B랭크로서 활동했을 뿐이었다.
‘나 스스로가 강해져야만 해.’
A랭크 몬스터인 기간테스를 잡을 수 있던 것도 결국에는 영령의 힘을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각성자인 헌터들은 결국 자신과 계약한 고유의 영령 힘을 필연적으로 빌리게 되니까.
하지만 현찬은 너무 영령의 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무 때나 영령을 부르고 거기에 의존할 경우에 정작 긴급한 상황에서 자신의 힘으로 대처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이구~ 우리 현찬이. 철들었네?]
그런 현찬의 각오를 느꼈는지 헤르메스가 장난스러운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뭐래. 원래부터 철들었거든?”
[쿡쿡. 현찬이 네가 무엇을 의심하고 걱정하고 있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어.]
“…….”
마치 자신의 마음을 뚫어보는 것 같은 헤르메스의 말에 현찬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현찬은 알 수 있었다.
헤르메스가 자신의 계약자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음을.
헤르메스에게 변명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영령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제 실력을 갈고닦는 것도 좋아. 하지만 현찬아 너는 한 가지 간과하는 게 있어. 영령의 힘 또한 바로 너의 힘이라는 거야. 그들의 힘을 빌리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마. 그들과 계약을 맺고, 그들의 힘을 현세로 불러오는 것이 가능한 것은 네가 유일하니까.]
현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일련의 불안감을 모조리 해소해주는 통찰력 있는 말.
[그것은 네가 가진 능력이야. 그러니 불안에 떨지 말고 당당해져.]
“…… 응. 고마워 헤르메스.”
[뭘. 너는 나의 유일한 계약자니까.]
헤르메스의 말이 옳다. 영령과 계약을 맺고 그들의 힘을 다루는 것 또한 현찬의 능력이다. 지나치게 그들의 힘에 끌려다닌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괜한 걱정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영령들을 다루는 힘을 올리는 방법도 마련해야 해.]
“그것도 알고 있어.”
영령의 힘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그 영령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영령의 전승이 어떠한지, 그들이 가진 업적과 힘이 어떠한지 전부 다 깨닫고 있어야만 영령의 진정한 힘을 끌어낼 수 있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나는 헤르메스에 대해 얼마나 알지?’
어릴 적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에서 접한 것 말고는 헤르메스에 관해 잘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헌터가 돼서 다른 영령에 대해 여러 가지 찾아보고 살핀 적은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이 계약을 맺은 헤르메스의 정보를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니!
현찬은 그런 자신을 자책했다.
‘내 진짜 영령은 헤르메스야. 그런데 나는 왜 지금까지 헤르메스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안일한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일지도 몰랐다.
헤르메스는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어 주니까 다른 영령들처럼 찾으려 들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런 생각 때문에 굳이 헤르메스의 전승을 찾으려 들지 않았다.
현찬은 자신의 그런 판단을 반성했다.
자신의 진짜 파트너는 헤르메스다. 지금까지 여러 명의 영령과 계약을 맺어 왔지만,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현찬의 마음가짐 덕분일까.
현찬은 자신의 몸에 새로운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이건?”
[축하해. 현찬아. 너는 지금부터 내 힘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갔어.]
“너의 힘이라고……?”
[그래. 네가 지금까지 사용했던 것들은 내가 가진 힘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니까. 조금 전 무언가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힘을 얻은 것 같네. 그래도 너무 만족하지 마. 여전히 너는 내 힘의 일부밖에 다루지 못하니까.]
“그건 알고 있어.”
아직도 헤르메스의 힘을 다루는 데 <차용>의 수준밖에 미치지 못했다.
그마저도 헤르메스의 신발인 [탈라리아(Talaria)] 하나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게 현찬의 처지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헤르메스가 착용하는 모자인 [페타소스(Petasus)]는 물론이거니와 헤르메스의 가장 큰 무기이자 상징인 [케리케이온(kerykeion)], 라틴어로는 ‘카두케우스(caduceus)’라 불리는 지팡이를 다룰 자신이 있었다.
‘이게 아직 일부의 힘이란 말이지?’
현찬은 호승심이 일었다.
그래. 이 정도로 끝나면 재미가 없지.
기왕 이렇게 된 거 더 높이, 더 멀리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성은 정해졌다.
이제 스스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헤르메스의 전승을 찾아봐야겠어.’
헤르메스에 관해 더 알수록, 헤르메스에게 더욱 깊이 공감하고 유대감을 쌓을수록 현찬의 힘은 늘어나게 된다.
레벨이 오르지는 않지만 단순한 깨달음으로 스텟이 오르는 것이다. 이는 헌터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아마 다른 헌터들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화를 냈으리라. 하지만 이것은 전부 현실이고 전부 현찬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현찬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헤르메스에 대해 자세하게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헤르메스가 정확히 어떤 신인지, 어떤 일화를 겪었는지, 어떠한 전승을 지녔는지.
현찬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며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기 시작했다.
[이건……?]
헤르메스는 현찬에게서 느껴지는 강대한 힘에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현찬의 성장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현찬을 일깨워주는 말을 내뱉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현찬이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힘을 깨닫는 것을 보며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현찬은 자신의 성장 속도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랐기 때문이다.
[이 성장 속도는 대체…….]
단순히 영령의 전승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 영령에게 마음 깊이 공감을 해야만 제대로 힘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영령과 계약을 맺고서 10년이 지나도 이 단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헌터들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현찬은 고작 말 몇 마디를 해줬을 뿐인데도 스스로 깨닫고서 이 단계를 이룩한 것이다. 아니, 고작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헤르메스의 힘을 모두 <차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이제 <빙의>까지 가능하게 됐으니까!
아마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오래 걸리지 않아서 헤르메스를 직접 현계로 불러내는 <소환> 단계까지 가능하게 되리라.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헤르메스는 다시 한번 현찬을 계약자로 삼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이날.
현찬은 A랭크 헌터의 벽을 돌파했다.
&
‘이게 내가 새롭게 얻은 힘.’
현찬은 헤르메스의 힘이 계약에 편중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깨달음을 얻으면서 그것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 깨닫게 되었다.
헤르메스는 고작 계약 하나에서 그치지 않는다. 헤르메스가 지닌 진정한 힘, 비록 아직은 그 힘의 일부밖에 사용하지 못했지만, 현찬은 그 힘을 볼 수 있었다.
‘내 생각이 짧았구나.’
헤르메스는 모든 떠돌이들의 신이면서도 죽은 자들을 명계로 인도해 주는 경계를 건너는 자이기도 했다.
신들의 뜻을 전하는 사자, 재화의 교역, 상품의 교환, 의미와 정보의 전달, 언어의 해석, 웅변술, 작문, 사후세계로 건너가는 영혼을 인도하는 것 등과 관련된 신이었다.
즉 다른 신들과 비교해서 주관하는 분야가 너무나도 많았다.
현찬이 지금까지 헤르메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결국 극히 일부였다는 소리.
‘그보다 이건 뭐야?’
헤르메스 트리메기스토스(Hermes Trismegistus)
현찬인 인터넷을 뒤지면서 새롭게 찾은 헤르메스에 관한 정보였다.
흔히 헤르메스주의라고 불리는 이것은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가 이집트 신화의 신인 토트와 로마의 신 메르쿠리우스가 융합하는 학설이라고 한다.
이름 그 자체로 해석하면 세 배 위대한 헤르메스를 의미하며 이는 헤르메스가 우주 전체의 지혜 중 세 부분을 완전히 관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금술(Alchemy)
점성술(Fortunetelling)
신성 마법(Theurgy)
이는 헬레니즘 시대에서 유래했고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 학자들까지 문헌을 작성할 정도로 유서가 깊은 학설이었다.
그리스에서 모두가 최고신으로 뽑는 자는 당연히 올림포스의 주신인 제우스다. 하지만 이 헤르메스 주의에서 절대자로서의 최고신은 단연코 헤르메스로 뽑힌다. 너무나도 과한 대접이 아닌가 싶었지만, 현찬은 딱히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이 헤르메스 학설은 헤르메스와 관련이 돼 있다.
‘으음. 일단은 이걸로 끝내볼까.’
현찬은 더 파고들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순히 정보를 찾으려고 했을 뿐인데 시계를 보니까 몇 시간이나 흐른 뒤였다. 그만큼 헤르메스에 관하여 몰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기한 건 그런데도 전혀 피곤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몇 날 며칠을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몸과 정신이 쌩쌩했다.
“좋아. 이렇게 된 거 새로운 힘도 시험해 볼 겸 게이트나 가자!”
[어휴. 중독자네 중독자야.]
“그래서 싫어?”
[당연히 좋지!]
이번에는 새로운 실력을 테스트할 겸 B랭크 던전에서도 꽤 상위의, B+랭크 던전을 가기로 했다.
‘적당한 게이트 하나 잡아서 가면 되겠지.’
남아넘치는 게 게이트라 원하는 걸 선택해서 갈 수도 있었다.
현찬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서 게이트로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있는 같은 시각.
중국 범죄조직 중 하나인 흑룡단(黑龍團)의 헌터 리 쉔푸, 일본 헌터 범죄집단 스미요시카이(住吉会) 소속 헌터 가토 타츠야(加藤達也)가 서울로 발길을 향했다.
목표인 현찬을 죽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