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22화 (22/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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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흰개미 소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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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거 안 놔?”

최휘문은 그렇게 말하며 힘으로 현찬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현찬이 놓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 무슨 놈의 힘이 이렇게 강해?’

같은 B랭크 헌터라고는 하지만 휘문은 현찬보다 헌터의 기수가 더 높았다. 즉, 헌터 일을 현찬보다 더 오래 했다는 소리다.

상식적으로 같은 랭크일 경우에는 몇 연차인지 따라서 그 사람의 레벨과 스텟을 비교한다. 연차가 높을수록 레벨과 스텟이 높은 것이 당연한 이치. 재능의 차이를 산정하지 않은 기본적인 계산 방식이지만, 거의 들어맞는 대표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비록 최휘문이 매우 건성으로 헌터의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현찬보다 게이트와 던전 클리어 횟수가 더 많았다.

‘그런 내가 힘에서 밀린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인정할 수 없었다.

“이 새끼가!”

휘문은 기습적으로 현찬을 향해 빈손으로 주먹을 쥐어 휘둘렀다. B랭크 헌터가 전력으로 휘두르는 주먹은 돌조차도 바스러뜨릴 수 있는 위력을 지녔다. 아무리 튼튼한 헌터라고 하지만 맞으면 상당히 타격이 클 터.

하지만 그런 휘문의 주먹은 현찬의 다른 손에 잡히고 말았다.

“어, 어?”

강현찬은 당황하는 휘문을 뒤로 밀어냈고, 최휘문은 뒤로 몇 걸음 밀려나다가 자기도 모르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기습이 먹히지도 않고 힘에서 밀렸다는 사실에 휘문은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혀, 현찬 씨.”

“죄송하지만 아무리 저라도 이건 못 참을 거 같네요.”

양문수는 현찬을 말리려고 했지만, 상황이 이미 극단적으로 치달았다. 양문수는 여기서 자신이 끼어든다고 해도 말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만큼 휘문이 저지른 짓, 그가 벌인 행각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 아니요. 말리지 않겠습니다. 이쪽에서 부탁드립니다.”

양문수는 왠지 본능적으로 현찬이 휘문을 이길 거로 생각했다. 갑자기 현찬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감히 그조차 가늠하기 힘든 영령의 힘이었으니까.

여기서 자신이 끼어들어 상황을 중재하고 현찬을 말리는 것보다 그냥 지켜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말린다고 휘문이 들을 인물도 아니었고 그도 반쯤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러죠.”

현찬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는 자신의 무기를 손에 쥔 휘문을 노려보았다.

“무기 놔라. 안 그러면 다친다.”

“잣 까!”

휘문이 현찬의 심장을 향해 창을 찔러왔다. 이것은 명백히 과도한 행동이었으며 상대방을 죽이려는 의도조차 있는 일격. 그야말로 일이 심각하게 번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현찬은 씨익 웃었다.

“네가 먼저 공격했으니까 정당방위다.”

현찬은 몸을 살짝 틀며 창을 피한 후 창대를 손으로 꽉 붙잡았다.

현찬의 두 눈에서 총기가 맴돌았다.

그의 몸을 타고 흐르는 왕급 영령의 기운이 현찬의 몸에 활력과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미 휘문이 주먹을 휘둘렀을 때부터 현찬은 자신의 힘으로 왕급 영령과 계약을 맺은 상태.

[허. 저런 놈도 왕이라고 하다니.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구나.]

현찬과 계약을 맺은 영령이 휘문의 영령인 <충혜왕>을 보며 혀를 찼다.

[무릇 왕이란 언제나 타인의 모범이 돼야 하는 법. 그것은 문무를 절대로 가리지 않는다. 하물며 인성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내 직접 네놈의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계도시켜주도록 하마.]

얼핏 보면 같은 왕이라고 해도 상대방을 눈 아래로 보는 행동은 거만한 태도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지금 말하는 자에게는 충혜왕을 욕할 자격이 충분했다.

그는 그만한 자질과 무력을 겸비한 정복왕이자 최고의 싸움꾼이었으니까.

왕급 영령 <대무신왕(大武神王) 무휼(無恤)>

고구려 3번째 왕이자 부여의 왕을 죽인 인물.

여타 왕들과 다르게 그는 자신을 무예의 신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그는 싸움에 능했다.

전장에 나서서 적들의 목을 직접 베는 왕이 바로 그였으니까.

현찬의 몸에서 투기가 아지랑이처럼 뿜어져 나왔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고 투기를 직접 마주한 휘문은 안색이 창백해져서 자기도 모르게 무기를 손에 놓고 뒷걸음질을 쳤다.

대무신왕과 한 몸이 된 현찬은 그런 휘문을 도발했다.

[와라.]

“진정한 왕의 힘을 보여주마.”

“으아아아아!”

도발에 쉽게 걸려든 휘문과 그의 영령 충혜왕은 현찬을 향해 무차별로 달려들었다.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인한 공격이었지만 썩어도 B랭크 헌터라고 나름 위협적인 주먹이었다.

[하품이 나올 지경이구나.]

하지만 대무신왕이 보기에는 저 주먹은 너무나도 느려 터졌다. 현찬은 그런 주먹을 가볍게 피해내고는 휘문의 복부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퍼엉! 휘문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휘문은 고함을 내지르며 벌떡 일어났지만, 현찬은 그런 휘문을 쫓아 그대로 오른손을 휘둘러 뺨을 후려쳤다.

짜악!

동굴 내부를 가득 울리는 청명한 따귀 소리.

휘문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고 입술이 터져서 피가 흘렀다. 하지만 현찬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짝! 짝! 짝! 짝!

“그, 그만!”

미친 듯이 휘둘러지는 손바닥은 휘문의 양 뺨을 좌우로 사정없이 갈겼고 휘문은 반격조차 하지 못한 채 맞기만 했다. 현찬의 공격은 더욱 강력해져서 뺨을 때리는 것은 주먹질로 바뀌었다.

퍼버버버벅!

빠르게 내지르는 주먹 하나하나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휘문의 얼굴에 맞을 때마다 가죽이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죽했으면 평소에 휘문에게 쌓인 게 많았던 짐꾼들과 정다희도 그를 불쌍하게 여겼을 정도일까.

일방적인 구타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끝났다. 그야말로 얼굴이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은 휘문은 도저히 동일인이라고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왕급 영령? B랭크 헌터?

그런 건 대무신왕의 힘을 얻은 현찬의 앞에서는 고작 종잇장에 불과했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가 버리는 그런 종이.

멱살을 쥔 손을 놓자 휘문은 그대로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을 뒹굴었다. 양문수는 결국 일이 이렇게 됐구나 하고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휘문이 인성은 쓰레기지만 그가 가진 실력은 확실히 진짜였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런 말종과 수차례 동안 게이트에 다닐 리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 우려하던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고 휘문은 현찬에게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고 말았다. 파티의 리더로서 이 상황에 대해서 내심 통쾌하면서도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 나가야 하는가 고민이 생겼다.

‘딜러 중 한 명이 인사불성이니 벌써 문제로군.’

“와! 속 시원하다! 1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네.”

“그러게요. 진짜 스트레스 확 날아가네요.”

정작 정다희나 문정훈은 오히려 통쾌하다는 반응이었다. 평소에 맺힌 것이 많았기 때문이 오히려 그들은 현찬을 더욱 반기기까지 했다.

“어우. 근데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이 엄청나게 못생겨졌네.”

“정다희 씨.”

“아, 아저씨 미안. 그래도 아저씨도 솔직히 이 새끼한테 맺힌 거 많았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결국, 양문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기어코 일이 터지고 말았으니 양문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 흰개미소굴 게이트를 클리어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졌다. 보스 몬스터인 여왕개미가 있는 장소에 가기 위해서는 장수 개미를 뚫어야 하는데 장수 개미는 방어력이 매우 강력한 놈이었다.

딱히 현찬을 원망하는 마음은 없었다. 모든 문제점은 지금 기절한 최휘문으로부터 비롯된 일이었으니까. 오히려 이 파티의 리더인 그가 휘문을 제대로 컨트롤 하지 않은 탓이 컸다. 그는 그만한 책임감을 지니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사냥은 이걸로 끝내야 할 것 같은데요.”

별로 게이트 클리어에 목을 맨 것도 아니었고 지금까지 사냥한 흰개미들의 사체만으로도 나름의 소득은 올렸으니 물러날 때라고 판단했다.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현찬이 나서서 말하자 양문수는 무슨 방도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희망을 품었다.

“혹시 무슨 방도가 있나요?”

“부족한 딜러의 자리를 채우면 되는 거죠?”

“네. 그건 그렇죠.”

“그렇다면 걱정하실 필요가 없네요.”

현찬은 자신만만한 미소로 대답했다.

“지금 기절한 저 인간이 빠진 것 이상으로 제가 딜을 넣을 테니까요.”

&

양문수는 처음에는 불안했다.

아무리 현찬이 역대급 신인이라고 불린다고 해도 같은 B랭크 헌터의 빈자리까지 충당시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설마. 그 정도면 A랭크 헌터라고 해도 무방하지.’

최휘문을 손쉽게 제압한 현찬의 무력은 확실히 대단했지만 그렇다 해도 그의 빈자리까지는 대처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 실제 싸움이 벌어졌을 때 단 한 명의 구멍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거대하니까.

그것이 양문수가 냉정하게 내린 판단이었다.

어떻게 보면 현찬을 말리고 오늘 사냥을 뒤로 물러야만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양문수는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렇다면 소규모 싸움을 통해 상황을 한번 살펴보죠.’라고 말한 것이다.

혹시나.

현찬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바람이 들었던 걸지도 몰랐다.

그것이 헤르메스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설득>의 영향이었지만 그는 몰랐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현찬의 자신감과 그것을 믿은 양문수의 판단은 옳았다.

‘세상에.’

현찬은 처음 전투 때는 그저 가볍게 몸을 풀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최휘문이 빠진 싸움부터는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전위에서 다가오는 모든 흰개미들은 현찬의 손에 쥔 칼에 손쉽게 썰려 나갔으며 곳곳에 숨겨진 굴에서 기습을 가하는 개미들 또한 그 뜻을 실현하기도 전에 현찬의 검에 차가운 주검이 되었다.

그 광경을 옆에서 직접 지켜본 양문수는 그저 감탄밖에 할 수 없었다.

‘저게 B랭크 헌터라고?’

대무신왕과 계약한 현찬이 보여주는 무위는 A랭크 헌터와 비교해도 도저히 밀리지 않아 보였다.

그와 같은 감상을 품은 것은 양문수뿐만 아니라 이곳에 모인 사람 전부였다.

정다희와 문정훈을 포함하여 짐꾼 7명은 현찬이 흰개미들을 모조리 쓰러뜨리는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헐. 대박.”

“미친. 방금 봤어?”

“뒤에서 오는 기습을 보지도 않고 피했어.”

“B랭크 헌터가 원래 저렇게 강했나?”

그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왕급 영령과 계약을 맺은 현찬의 힘은 A랭크 헌터에 육박한다. 특히나 왕급 영령 중에서도 순위권에 들 정도로 강력한 <대무신왕>의 힘이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자. 계속 가죠.”

현찬이 나서서 대부분의 개미들을 쓰러뜨려 주니 사냥은 매우 수월했다. 오히려 보이는 족족 다 잡다 보니까 짐꾼들의 커다란 가방이 부산물들로 가득 차서 질이 떨어지는 것들은 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들은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 짐꾼들에게 가장 반가운 소식이었으니까.

게다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부산물과 마석만 해도 원래 예상했던 수량을 아득히 웃도는 정도라 이미 파티원들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사라지질 않았다.

‘이거라면, 게이트 클리어도 가능해!’

원래라면 클리어까지 할 생각이 없었지만, 이 기세를 몰고 가면 보스 몬스터까지 사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게이트를 클리어해서 소멸할 경우에는 클리어 수당까지 주기 때문에 그들의 처지에서는 거부할 필요가 없었다.

키이이익!

거대한 통로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머리. 여왕의 방을 지키는 장수 개미였다. 녀석들은 여타 흰개미들보다 머리가 더 거대하고 머리의 갑각이 훨씬 단단하여서 입구를 막는 임무를 맡았다.

무엇보다 그들의 입에서 뿜어내는 강력한 산성 액은 헌터들의 접근을 쉽게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흰개미소굴이 지금까지 여러 헌터 팀들이 도전했음에도 클리어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장수 개미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그마저도 현찬이 나서자 손쉽게 뚫렸다.

중장비로도 제대로 절단하기 힘든 장수 개미의 단단한 머리 갑각은 마력을 머금은 현찬의 검과 그 후방을 지원해주는 문정훈의 마법에 스티로폼 조각처럼 박살이 나버렸다.

“이럴 수가. 정말로 여왕의 둥지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파티의 리더인 양문수가 그렇게 말했다. 그의 말에 정다희와 문정훈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조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사소한 거에 감탄할 때가 아니었다.

“짐꾼 여러분들은 뒤로 물러나 주세요!”

각종 부산물들과 기절한 최휘문을 데리고 있던 짐꾼들은 양문수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혹시나 무슨 상황이 벌어진다면 후방지원을 해 주기 위해서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비록 랭크는 낮지만 그들 또한 헌터였기 때문이다.

“으음. 그림으로만 봤는데 실제로 보니 확실히 징그럽군.”

키이이익!

현찬의 눈앞에는 자신의 영역에 침범한 침입자들에게 살기를 내뿜는 거대한 흰여왕개미가 있었다. 병정개미보다 몇 배는 거대한 장수 개미, 그 장수 개미보다 더 거대한 덩치를 지닌 여왕개미.

심지어 배 아래쪽에는 쉴 새 없이 꿈틀거리는 거대한 난소가 있었기에 그 기괴함과 징그러움은 배에 달했다.

“전부 준비하세요! 옵니다!”

키이이이익!

여왕개미의 외침과 함께 천장 곳곳에 뚫려있는 구멍에서 수백 마리의 병정개미들이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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