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20화 (20/265)

# 20

20화 흰개미 소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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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놈이 우리 제안을 거절했다?”

“그렇습니다.”

김현호는 눈앞의 남자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대답했다. 젊은 나이에 엘리트 가도를 걷고 있는 김현호는 다른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안하무인 하는 성향이 강했다. 그는 거만했으며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김현호조차 눈앞의 남자에게는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50대 초반의 남자임에도 늙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강대한 기세를 내뿜는 남자.

화랑 클랜의 창시자이자 클랜장 ‘최덕현’

화랑 클랜을 한국의 5대 클랜 중 하나로 올린 장본인이자 그 앞에서 누구도 감히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S랭크의 헌터였다.

A랭크와 S랭크는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질적인 무력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실제로 최덕현의 무력을 눈앞에서 본 적이 있는 김현호는 아직도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몸이 저절로 반응해서 떨리고는 한다.

특히나 최덕현은 자신이 적이라고 규정지은 상대방에게 절대로 자비를 베풀지 않는 냉혈한으로 유명했다. 김현호의 입장에서는 살면서 절대로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인물 부동의 1순위를 차지하는 게 바로 그의 클랜장.

그는 깔끔하게 면도를 한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대체 무엇을 고민하는 걸까? 김현호는 최덕현이 화랑 클랜의 제안을 거절한 현찬에게 쓴맛을 보여줄 거로 생각했다.

‘뭐지? 대체 뭘 고민하는 거야?’

최덕현의 성격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강현찬인가 뭔가를 결딴 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오히려 김현호는 그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 건방진 신입이 망가지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정도였다.

하지만 김현호의 바람과 다르게 최덕현은 오히려 더욱 조심스러웠다.

“클랜장 님. 허락하신다면 제가 당장 <기파랑>을 이끌고 가겠습니다.”

화랑 클랜에서 가장 대표적인 집단이자 양지에서 빛을 보는 조직 <신라사선>.

그 신라사선과 반대 처지에 있으면서 화랑 클랜의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서 하는 집단 <기파랑>.

기파랑은 대부분이 C~B랭크 헌터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들의 장점은 싸움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이제 막 헌터의 판에 끼어든 현찬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하더라도 저들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김현호의 기대와 달리 최덕현은 고개를 저었다.

“됐다. 가만히 있어라.”

“예? 하, 하지만.”

“지금 당장 움직일 필요가 없다. 최근 벌인 게이트 내에서 경쟁자들 제거 작업으로 인해 협회에서 우리들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어. 여기서 괜히 움직였다가는 꼬리가 밟히게 된다. 이럴 때일수록 몸을 사려야 해.”

화랑 클랜은 지금까지 저질러 온 일들이 너무 많았다. 물증은 없지만 이미 충분히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에 협회와 헌터 관리부에서 화랑 클랜을 직접 주시하고 있었다. 물론 개 중에 뇌물을 먹여서 어지간한 상황은 넘기겠지만 조금이라도 트집이 잡혀서 감사단이 나오면 귀찮아진다.

최덕현 또한 강현찬을 놔둘 생각이 없었다. 클랜의 영입 제안을 거절한 것도 괘씸했지만 무엇보다 다른 클랜에 가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지금 5대 클랜은 서로 전력이 비등한 상태를 계속 유지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역대 최고급 신인 때문에 그 균형이 무너질 가능성에 처했다. 이쪽에서 먹지 못한다면 다른 녀석들도 먹지 못해야만 했다.

“어차피 우리가 나서지 않더라도 다른 곳에서 손을 쓰는 놈들은 있다.”

최덕현은 자신의 테이블 앞에 놓인 서류 더미 중 하나를 뽑아 들며 그렇게 말했다. 그 서류의 정면에는 일본과 중국에서 몰래 입국한 헌터들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

한국에서 등장한 이름 높은 루키의 등장에 관심을 끄는 것은 한국 내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웃 나라인 일본과 중국이 더욱 관심을 가지며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고는 한다.

그들로서는 한국에서 새로운 S랭크 이상의 재능을 지닌 헌터의 등장은 달갑지 않으니까.

대부분은 온건하게 영입을 하고는 하지만, 거기서 수가 틀린다면.

‘암살이 일어나겠지.’

마치 영화에서 볼 수 있을 법하지만, 흔히 있는 일이다.

헌터 업계는 그렇게 깨끗하지 않다. 몬스터들 죽이고 피와 시체를 보는 직업이 헌터다. 그런 그들이 깨끗할 리가 있나. 무엇보다 일본과 중국은 예전부터 그런 범죄 집단이 꽤 많은 곳이기에 더 심하기도 했다.

‘알아서 죽여주면 이쪽이 편하지.’

일본인과 중국인이 남의 앞마당에 와서 설치는 꼴은 조금 거슬리기는 했지만, 자신들이 해야 할 똥 치우기를 대신해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협회에서 눈치챌 수 있으므로 일단 이쪽에서 자그마한 방해 공작만 해 주더라도 저들은 확인하는 것이 늦어지고, 큰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

‘기대되는군.’

최덕현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

헌터 협회 서울지부 정기원 실장의 사무실.

그곳에서 황설영은 정기원 실장과 직접 1대1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강현찬 헌터를 직접 만나 보니 어떻던가?”

“꽤 종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종잡을 수 없다?”

강현찬 헌터에게 왜 그런 평가를 했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자 황설영이 입을 열었다.

“처음 멀리서 봤을 때는 그저 평범한 헌터들과 별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 막 B랭크로 시작하는 헌터들 치고는 꽤 겸손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죠. 그런데 화랑 클랜의 김현호와 마주하고 나서부터 기세가 달라졌습니다.”

“기세가 달라졌다?”

“네. 제가 중간에 끼어들어서 상황은 중재했지만 아마 그대로 놔두었다면 자그마한 소란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순간 뿜어내던 기세는 대단했습니다. 아마 필시 지고한 영령과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겠죠.”

“자네와 계약을 맺은 영령조차 가늠하지 못하던가?”

정기원 실장의 질문에 황설영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두두리가 상대 영령에 관심을 그렇게 표현한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허. 대단하군.”

정기원 실장은 솔직한 감상을 표했다. 황설영과 계약을 맺은 영령 두두리는 거의 신급 영령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대단한 존재다. 그런 두두리가 관심을 가졌으며 그 정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영령. 그런 영령과 계약을 맺은 강현찬 헌터는 대체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정말로 헤라클레스인가?’

몇 번이고 보았던 CCTV의 영상은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사자 가죽을 뒤집어쓰고 몽둥이를 휘두르던 그 모습은, 누가 보아도 신화 속에서 설명하던 헤라클레스의 모습 그 자체였으니까.

하지만 조금은 미심쩍은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후반기 교육 때 모의 대련에서 상대방을 뛰어난 권투 실력으로 쓰러뜨린 것도 그러하고, 영령 서희의 설득과 협상의 힘조차 가볍게 흘려내고 막아내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헤라클레스의 힘을 사용하기 전, 화질이 상당히 나빴지만, 그는 보았다. 현찬의 신발에 달린 날개를.

‘헤라클레스가 이런 신발을 사용했던가? 이건 오히려 페르세우스에 가까울 텐데.’

정기원은 그 부분이 걸렸다.

그런데 실상 프로필에 적힌 영령의 이름은 페네오스였다.

그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그나마 동명으로 그리스 신화의 강의 신 페네오스가 있었지만, 목동과 관련되지는 않았으니까.

어쩌면 헤라클레스나 페르세우스보다 더 대단한, 더 고귀한 영령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설마 아카데미 전반기 때에 벌어졌던 사건, 그곳에서 강림했다는 신급 영령의 주인이 아닐까?’

그 영령을 다룬 가장 유력한 대상은 강현찬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추측일 뿐이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으니까.

이상하게 영령의 정체를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정체가 더욱 흐릿해지고 헷갈리기 시작했다.

정보전달을 관장하는 헤르메스이다 보니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영향이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정기원 실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 어떻게 되었든 강현찬 헌터가 귀중한 인재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 알아보느라 수고가 많았네.”

“아닙니다. 저 또한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 있었으니까요.”

“어찌 되었든 일단 강현찬 헌터가 딱히 악인이 아니며 다른 어딘가에 소속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아는 거로 충분해.”

다만, 하고 정기원 실장이 말을 이었다.

“다른 클랜이 어떻게 반응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오늘 낮에 화랑 클랜의 유명한 헌터인 김현호와 시비가 붙었다고 했다. 화랑 놈들은 예전부터 문제가 많았던 클랜이라 당장은 아니지만 언제 강현찬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혹시 모르니 제가 계속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남미에서 파견 갔다가 돌아온 지 이제 하루가 지났네만 괜찮겠나? 주어진 휴가를 그렇게 쓰는 것은 추천하지 않네만.”

게이트 관련으로 세상은 언제나 사건 사고로 떠들썩하다. 한국이야 땅이 좁은 점이 좋게 작용하여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의 사고를 잘 막아내는 추세지만 나라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다.

세계 협정에 의해서 정부 산하의 협회 소속 헌터들이 주기적으로 해외의 나라에 파병을 나가는 일은 이상할 게 없었다.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은 지금도 매일 많은 사람들이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죽어 나간다. 우리나라, 유, 중국, 일본, 미국 그리고 러시아 등 강대국은 헌터들을 타국에 지원을 보냈다. 그 대상은 황설영 또한 마찬가지.

그녀는 A랭크 헌터들조차 쉽게 사냥하지 못하는 4등급 몬스터들을 꽤 많이 사냥했다. 특히나 아마존 외곽에서 튀어나온 3급 보스 몬스터인 ‘타루다로’와 3일 밤낮으로 싸워 겨우 쓰러뜨렸다.

그런 치열한 곳에서 몇 날 며칠을 사냥하며 돌아온 황설영이 쉬지는 못할망정 자처해서 새로운 일을 맡겠다고 하니 그의 상사로서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제 걱정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저는 이런 일로 지치지 않습니다.”

그녀는 협회에서 자랑하는 A+ 랭크의 헌터. 정기원이 가장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최고의 인재였다.

“그렇다면 부탁하겠네. 갑자기 최근 화랑 클랜 녀석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졌어. 무언가 일을 꾸미고 있는 게 틀림없으니 조심하게나.”

“네. 맡겨주십시오.”

&

“자. 오늘도 돈을 벌기 위해 나가볼까?”

원룸에서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한 현찬은 든든하게 아침밥을 챙겨 먹은 이후 바로 헌터 장비를 착용했다. 보통 헌터들이 의무적으로 던전이나 게이트를 클리어한다고 치면 현찬은 오히려 반대였다.

그는 순수하게 이 상황을 즐겼다. 특히나 오늘은 어떤 영령과 계약을 맺을지 고민하는 것 또한 그를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전날 화랑 클랜과 시비가 붙어서 기분이 조금 더러웠지만, 그것을 빠르게 떨쳐냈다. 어차피 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신경을 쓰는 쪽만 스트레스를 받을 뿐이었다.

‘물론 그쪽이 그냥 가만히 넘어갈 리가 없겠지만.’

화랑 클랜은 소문이 좋지 않은 곳이다. 비록 증거는 없다고 하더라도 소문이 그렇게 돌 정도라면 당연히 그 이유가 있으리라. 현찬은 혹시 그들이 무슨 술수를 부린다면 이쪽도 봐주지 않고 나설 생각이 만반이었다.

‘만약에 건드린다면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지.’

물론 그것은 나중의 일이 되리라.

[오늘은 어디 갈 예정이야?]

헤르메스의 질문에 현찬은 오늘 예정했던 B랭크 게이트의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오늘은 다른 헌터들과 함께 파티를 맺어서 게이트를 처리할 생각이야.”

환영굴을 통해 1인용 게이트의 수준이 어떠한지, B랭크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은 얼마나 강한지 알아보았다. 이번에는 최소 5인용 게이트의 수준이 어떤지 알아볼 차례였다. 특히나 그쪽은 더 크고 더 강한 몬스터들이 있을 터.

[흐음. 파티 사냥이라. 하긴, 다른 사람들이랑 함께 하는 것도 나름 묘미지.]

헤르메스는 현찬의 뜻에 동조해 주었다. 현찬의 실력이라면 딱히 어디 가서 꿀릴 리도 없고 같은 B랭크 헌터들의 실력도 어느 정도인지 확인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오히려 미리 약속을 잡아 놓은 현찬의 행동력이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현찬은 지금 닥친 급한 일이 끝나는 대로 허술한 원룸 생활을 청산하고 이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자 게이트 앞에서는 이미 먼저 나와서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강현찬 헌터 님 맞으세요?”

“네. 제가 강현찬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B랭크 헌터 양문수라고 합니다.”

현찬을 반겨준 것은 50대 정도 돼 보이는 평범한 아저씨였다. 다만 외모는 평범하지만, 몸은 덩치가 상당히 컸으며 두꺼운 갑옷과 함께 거의 자신의 상반신만 한 거대한 방패를 들고 있었다.

그 말고도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무려 2명이나 더 있었다. 약속 시각보다 현찬이 20분은 더 일찍 왔음에도 미리 와서 자신의 장비를 정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로 부지런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명은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 그리고 다른 한 명은 30대 초반의 안경을 쓴 남성이었다. 여성은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가벼운 재질의 복장을 보아 레인저나 도적계열 같았고 남자는 마법사로 추정되었다.

“생각보다 다들 일찍 오셨네요.”

“헌터라는 일이 목숨 걸고 하는 거라 당연한 일이죠. 저는 그래도 강현찬 님이 조금 늦게 올 거로 생각했어요. 일찍 와주셔서 감사하네요.”

리더인 그는 현찬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친절하고 좋은 분이셨다. 나이가 어린 현찬에게도 존댓말을 써 주었으니까.

“그런데 아직 한 분이 안 오신 것 같네요?”

이번에 들어갈 게이트 [흰개미소굴]은 최소 5명의 입장 인원이 필요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아직 한 명은 오지 않은 상태.

현찬의 말에 파티의 리더인 양문수는 난감하게 볼을 긁적였다.

“아하하. 그게 말이죠…….”

현찬은 왜 양문수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했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되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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