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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9화 (19/265)

# 19

19화 홍야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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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이 그…….’

현찬 또한 황설영에 대해서 들어서 알고 있다. 한국에서 정말로 유명한 헌터들 중 상위 100명을 뽑는다면 반드시 들어가는 인물이었으니까.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지녔으면서 다른 클랜에 들어가지 않고 협회에 몸을 담았으니 더 유명할 수밖에.

그녀를 특별하게 만든 것이 바로 그녀와 계약한 영웅급 영령.

도깨비 <두두리(豆豆里)>

보통 각성자들이 계약을 맺는 존재가 역사나 설화에서 유명한 사람이었음을 생각하면 그녀가 계약을 맺은 존재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가깝다는 도깨비이자 신령이었다. 그리고 그 독특하고 기묘한 힘과 정의감 넘치는 그녀의 성격 덕분인지 황설영은 이한율에 버금가는 인기를 지니고 있었다.

“해외로 출장 나갔다고 들었는데?”

“이제 막 돌아온 건가?”

주변의 헌터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황설영은 서로 마주 보는 강현찬과 김현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협회 내에서 소란은 금지다.”

“…… 황설영.”

김현호는 황설영을 보자 얼굴을 찌푸리며 노골적으로 싫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A랭크인 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A+ 랭크의 헌터이며 영웅급이되 영웅급 영령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영령과 다르게 신급 영령에 가깝다고 평가받는 영령과 계약을 맺은 헌터.

모두가 그녀를 평하기를.

아름다우며 강하고 강직하다.

그런 황설영의 존재는 김현호에게 있어서 열등감을 품게 만들기 충분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모두가 우러러보는 자신을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바라보는 무기질적인 시선! 그것이 김현호의 심기를 크게 건드리고 있었다.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왜? 협회의 입장에서 조금 아니꼽나?”

김현호가 적대감 어린 목소리로 시비를 걸듯이 말했지만 황설영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럴 리가. 다만, 그쪽이 무기를 뽑아 들려고 기세를 한껏 끌어올리기에 막았을 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협회 내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행위는 일절 금지다. 그것을 어길 시에는 무력을 동반한 제재가 가해지니 잘 생각하도록.”

마치 ‘너 따위는 내가 쉽게 제압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황설영의 말투. 그 깔보는 것 같은 시선에 김현호는 자신의 자존심이 크게 스크래치 입는 것을 느꼈다.

‘이 빌어먹을 년놈들이!’

김현호는 검을 뽑아 황설영과 현찬의 목을 동시에 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황설영은 자신보다 더 강하다. 김현호는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아마 덤벼드는 순간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제압당할 터.

그리고 이상하게 강현찬이 신경에 걸렸다. 아무런 힘조차 느껴지지 않는 신입 헌터다. 그런데 현호의 직감을 계속 쿡쿡 찌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성격은 이래도 그 실력은 의심할 바가 없는 A랭크 헌터다. 지금까지 다양하고 많은 몬스터들과 싸워왔기 때문에 그 감각은 당연히 여타 헌터들보다 날카롭고 뛰어나다.

그런 그의 감이 계속 그에게 무언가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쯧.

김현호는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더는 이런 곳에 머물렀다간 그의 인내심이 먼저 바닥이 날지도 몰랐다. 더는 되지도 않는 일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몸을 돌리면서도 현찬을 향해 경고를 날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후회하게 될 거다.”

그 말을 남긴 김현호는 현찬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는지 협회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김현호가 사라짐으로써 사건 아닌 사건은 일단락되었고 좋은 구경거리가 끝난 헌터들은 아쉬워하며 다시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후회는 무슨.’

[맞아. 저런 말 남긴 놈 치고는 제대로 된 놈을 못 봤어.]

그 순간 황설영이 현찬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아. 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협회 소속 헌터인 황설영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강현찬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황설영이 자연스레 손을 내밀기에 현찬은 악수를 했다. 뭔가 딱딱하고 강직해 보이는 인상과 다르게 손은 매우 부드럽고 따뜻했다. 황설영은 ‘음.’ 하고 침음성을 내더니 현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강현찬 헌터 님의 무용은 잘 보았습니다. 꽤 대단한 영령과 계약을 맺으신 것 같은데 실례가 아니라면 누구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 제 행동이 매우 무례한 것은 압니다만 그…… 이유가 있어서.”

본래 황설영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원래 헌터들 사이에서 상대방이 밝히지 않고 영령을 숨기려고 하는데 그것을 물어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일이었으니까. 그 것을 알기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이 미약하게나마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와 계약을 맺은 영령인 <두두리>가 계속 그녀를 보챘기에 어쩔 수 없이 물어 볼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이 도깨비가 갑자기 이렇게 상대방에게 격렬하게 관심을 두는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황설영 또한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두두리는 아마 무언가를 느꼈을 것이다. 현찬과 계약을 맺은 영령에게 있는 무언가를.

“아. 죄송해요. 아직은 밝힐 생각이 없어서요.”

현찬이 정중히 거절하자 황설영은 그렇습니까, 하고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현찬도 솔직한 심정으로 자신이 신급 영령과 계약을 맺은 헌터라고 말하고 싶었다. 심지어 클래스는 다른 영령들과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계약자라고 밝힐 생각도 있었다.

다만 헤르메스가 그것을 극구 말렸기 때문에 영령의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헤르메스 왈.

[아직 현찬이 네가 다른 영령들과 자연스레 계약을 맺지 못한 상태에서 내 정체를 밝힌다면 오히려 너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신급 영령과 계약을 맺은 헌터라면 이름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겠지만, 그만큼 날파리들이 많이 꼬이니까.]

헤르메스의 말은 확실히 옳았다.

아직 헤르메스의 힘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현찬이 여기서 헤르메스와 계약했음을 밝히는 건 어리석은 행위였다. 안 그래도 B랭크로 시작했을 뿐인데도 벌써 현찬에게 제발 클랜으로 와달라고 부탁을 하는 사람들이 천지다.

여기서 신급 영령임을 밝힌다면?

그것도 어지간한 신이 아닌 올림포스의 12신 중 하나인 헤르메스라면?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이목이 현찬에게 쏠리게 될 것이다.

현찬은 물론이거니와 현찬의 가족에게까지 피해가 갈 거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게다가 세상에는 타국의 유명한 헌터의 자질을 지닌 자들을 암살하거나 납치하는 범죄 집단도 존재한다. <대통합>이후 세상은 큰 혼란을 맞이했고 그럴 때일수록 악인들은 더욱 판을 쳤으니까.

현찬이 그런 집단의 눈에 들 위험도 있었다.

현찬은 헤르메스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고 그 말에 이해했다. 다만, 헤르메스가 마지막 말만 하지 않았다면.

[게다가, 원래 이렇게 비밀이 있어야 사람이 신비로워 보이는 법이야. 그게 더 재밌잖아?]

장난기가 다분한 미성으로 그런 말을 내뱉는 헤르메스를 보자니, 만약에 눈앞에서 실제로 헤르메스가 존재한다면 꿀밤을 때려 줄 자신이 있었다.

‘에효. 내가 뭐라고 말을 하겠어.’

헤르메스가 장난을 좋아하는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부터 유명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지닌 신이 바로 헤르메스였다.

[흐음. 그보다 저 여자의 영령. 확실히 좀 독특하네.]

“그래?”

헤르메스는 황설영의 영령인 두두리의 존재를 느꼈는지 그렇게 품평했다. 보통 헤르메스가 다른 영령에 대해 저렇게 직접 평가 내리는 경우가 흔치 않았기에 현찬은 조금 호기심이 생겼다.

[저 영령, 미약하게나마 숨기고 있는 나의 힘을 느끼고 있어. 어느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자연의 정령이자 신령에 가깝기 때문일까? 저 여자도 정말 대단하네. 저만 한 영령, 아니 신령과 계약을 맺다니.]

“네가 그렇게 평가할 정도라면 정말 대단한 거겠네.”

헤르메스는 신이라서 보는 눈이 상당히 높다. 헤르메스가 영웅급 영령 중에서도 거들떠보지 않은 영령이 태반일 정도. 그런 헤르메스가 관심을 가질 정도라면 두두리의 계약자인 황설영이라는 인물 자체도 확실히 범상치 않다는 소리였다.

[물론 내 계약자에게 꼬리를 치게 둘 수는 없지만 말이야!]

“저번부터 궁금했던 건데 너는 참 여자들한테는 날카롭게 군다.”

[당연하지! 무릇 남자는 여자들을 조심해야 하는 법. 예로부터 뛰어난 영웅들도 여자에 푹 빠져서 패가망신한 경우가 많았어. 너는 나의 계약자니까, 나 또한 걱정할 권리가 있다고.]

‘그건 그냥 그 영웅들이 여자를 너무 밝혀서 그런 게 아닐까.’

특히나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남자들은 지금 보면 그야말로 성범죄자들 투성이지 않던가.

현찬은 그렇게 반박하고 싶었지만, 헤르메스가 워낙 단호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거참. 누가 보면 자기가 내 여친인 줄 알겠어.’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현찬은 눈앞의 황설영에게 집중했다.

“볼 일은 이걸로 끝이신가요?”

“네? 아, 네. 실례했습니다. 헌터 님. 혹시 저희 헌터 협회로 오시는 건…….”

“안 가요.”

“……네.”

황설영은 재차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푹 떨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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