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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17화 (17/265)

# 17

17화 비상의 시작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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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재재쟁!

사방에서 거울이 부서지며 그 파편을 흩뿌렸다. 거울의 내부에 있던 미러 비스트는 비명을 내지르며 거울과 함께 박살났다.

본디 미러 비스트가 머무는 거울은 그 강도가 합금보다 더 단단해진다. 그렇기에 거울 속에 숨은 미러 비스트에게 어지간한 공격은 먹히지 않는다.

대부분의 헌터들은 미러 비스트들이 거울 밖으로 나오게 유도를 한 이후에 놈들이 튀어나왔을 때 반격을 가해 잡는다. 그것이 미러 비스트를 사냥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현찬은 달랐다.

강철보다 단단해진 거울?

그 안에 숨어있는 미러 비스트?

전부 다 한꺼번에 깨부수면 그만이었다.

그에겐 그만한 힘이 있었으며, 현찬에게 힘을 빌려주는 존재는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으니까.

광개토대왕의 아들이자 그 뒤를 이어 백제와 신라를 공포에 빠트렸던 고구려의 정복왕.

장수왕이 지닌 영령으로서의 격과 힘은 고작 이런 하찮은 거울 속의 괴물 따위에게 당할 정도로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하압!”

현찬이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휘두르자 칼날의 범위 안에 있던 미러 비스트 두 마리의 목이 날아갔다. 죽은 미러 비스트들은 그대로 몸이 거울처럼 산산조각 나면서 그 안에 있는 마석을 그대로 드러냈다.

미러 비스트의 장점 중 하나가 마석을 채취하기 위해서 시체를 해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다른 몬스터들과 다르게 시체에서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이 없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획득한 마석만으로도 녀석들은 충분한 값어치는 한다.

주변 일대의 미러 비스트들은 모조리 정리가 끝났다. 현찬은 본격적으로 마석을 수거했고 장수왕은 고운 모래로 변한 미러 비스트들의 잔해를 지켜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세상이 변했구나. 어찌 이런 낮도깨비 같은 녀석들이 존재하는지.]

현찬이 베어 넘기는 미러 비스트를 보며 장수왕은 조금은 놀라움이 담긴 어조로 중얼거렸다. 고대의 사람인 그에게 있어서 대통합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매우 생소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러게요. 세상이 참 이상하게 변했죠?”

[이상하다마다. 다만, 마냥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대통합이라는 사건이 일어나고 난 뒤에 우리들 또한 본격적으로 다시 하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웃긴 일인가.]

각성자의 등장과 영령과의 계약.

이 모든 것도 게이트가 발생하는 대통합 사건 이후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현찬에게 있어서 대통합이란 자신에게 기회를 준 고마운 사건이기도 했기에 그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통합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 세상을 바꾸며 혼란을 야기했으니까.

“가시죠. 이제 이 환영굴의 마지막 녀석들만 남았으니까요.”

거울을 꽤나 많이 부숴서 그런지 무한히 이어지던 공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덕분인지 길을 찾기 더 수월해 졌으며 정신적인 압박감도 줄어들었다.

남은 것은 미러 비스트들의 대장.

이 녀석만 사냥하고 게이트의 핵을 부수면 환영굴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깨진 거울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까드득 거리는 소리가 마치 갓 쌓인 눈을 밟는 것 같았다. 게이트의 핵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는 동안 미러 비스트들의 습격은 없었다. 현찬은 직감했다. 나머지 놈들이 전부 다 한 곳으로 모여 있다고.

‘조금 싸움이 격렬해지겠는데.’

보스 몬스터와 함께 있는 미러 비스트들을 생각하니 상당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것 같았다.

다만 두려움은 없었다. 현찬이 혼자의 힘으로 싸울 경우에는 적들이 꽤 위협적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영령의 힘을 <차용>하고 있는 현찬은 절대로 그렇지 않으니까.

만에 하나 위험한 순간이 닥쳐온다고 하더라도 헤르메스의 가호가 지켜주고 있기 때문에 현찬은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거울로 이루어진 복도를 지나자 나타난 곳은 커다란 반구 형태의 홀. 다만 바닥을 포함해서 벽과 천장이 전부 거울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치 모든 공간이 우주 너머로 확장이 되어가는 느낌. 거울 속에 비춰 보이는 현찬이 수천, 수만 이상이 보여서 눈이 어지러웠다.

무수히 많이 존재하는 공간의 중앙에 홀로 동떨어진 느낌.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상당히 기묘한 공간이로군.]

장수왕도 이 공간에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사방에 존재하는 사이한 기운. 미러 비스트들은 벽, 천장, 바닥 곳곳에 몸을 숨긴 채 현찬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기운이 느껴지는 곳은 바로 홀 중앙.

폭 3m 높이 7m나 되는 거대한 직사각형의 거울. 거울의 테두리가 아름다운 금장식으로 덮여 마치 옛 왕족들이 사용했을 법한 거울처럼 고귀해 보였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녀석은 도저히 그렇지 않았다.

키이이이익!

거대 거울의 표면이 마치 수면처럼 일렁이더니 그것을 뚫고 네 개의 팔이 튀어나왔다.

현찬은 저 광경을 어디서 봤나 했더니 예전 TV에서 하던 영화가 떠올랐다. 터미네이터2를 보면 액체로 이루어진 T-1000이라는 로봇이 나오는데 그 녀석이 거울에서 튀어나오는 광경과 똑같았던 것이다.

튀어나온 네 개의 팔은 각자 거울 테두리를 붙잡고 힘을 주어 몸통을 끄집어낸다.

기다란 머리에는 눈과 코가 없이 오로지 입만 남았으며 체고만 5M는 넘는 몸통은 빛을 반사하는 매끄러운 은빛을 띠고 있었다.

미러 비스트들의 대장이자 모체인 환영굴의 보스 몬스터였다.

키아아아아!

녀석이 비명을 내지르자 주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미러 비스트들이 거울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눈으로 보이는 숫자만 무려 100마리에 가까웠다. 보스 몬스터의 강함까지 감안 하자면 현찬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

‘대체 어디가 1인용 게이트라는 건지.’

보통 1인용 게이트라 판단되는 것들은 대부분이 그 크기가 작은 것들이다. 이 환영굴도 확실히 게이트 치고는 크기가 작았다. 일단 배경이 되는 곳이 거울로 이루어진 장소였고 실질적인 공간은 건물 하나보다 더 좁으니까. 그렇기에 1인용 게이트라 불린 것이고.

다만 문제가 있는 것이 겉으로 보인 공간보다 거울로 인해 확장된 내부 공간이 더 넓었고 헌터협회는 그 점을 놓쳤다는 것이다.

즉 B랭크 1인용 게이트라 판단되었던 이곳은 실질적인 난이도는 그보다 훨씬 더 높다는 소리였다.

‘골치 아프게 됐어.’

현찬의 주위로 미러 비스트들이 빽빽하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한다면 미러 비스트들의 날카로운 이빨이 현찬의 몸을 사정없이 파고들 것이다. 그럼에도 현찬은 두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그와 함께하는 영령은, 고작 100이 넘는 적이 아닌 수만이 넘는 대군을 무찌른 정복왕이었으니까.

[사악한 마물들이 어딜 감히!]

<준마 소환>

왕급 영령들이 달인급 영령과 차이를 보이는 것은 영령으로서의 격이 더 높은 것도 있지만, 바로 이런 부분에 있었다.

왕급 영령, 그것도 실제로 왕이었던 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자 권능이다. 한때 전장을 누볐던 왕들은 자신이 타고 다니던 말을 부릴 수 있었으며 전생에서 자신을 믿고 따르는 병사들을 불러오는 권능 또한 지니고 있었다.

현찬은 자연스레 말의 등 뒤로 올라탔다.

말을 타는 것은 분명히 처음일 텐데도 현찬은 마치 오랫동안 이 말을 타온 것처럼 익숙하고 그리운 느낌을 받았다.

“가자!”

현찬이 말의 고삐를 잡자 말이 앞발을 들어 올리며 다가오는 미러 비스트의 머리를 그대로 밟아서 깨부쉈다. 현찬이 쥐고 있던 검은 마력을 머금으며 그 길이가 더욱 길어졌으며 말 위에서 긴 리치를 이용하여 미러 비스트들을 모조리 깨부수기 시작했다.

히히히힝!

캬아아아!!

준마의 외침과 미러 비스트의 비명소리가 한데 뒤섞인다. 현찬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미러 비스트들의 몸이 거울처럼 산산조각나며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앞길을 막아서는 미러 비스트들은 말발굽에 짓밟히며 사라졌다.

말을 타고 달리며 미러 비스트들을 모조리 베어 넘기는 현찬은 그야말로 한줄기의 질풍과 같았다. 몰아치는 검풍에 휩쓸리는 몬스터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조리 마석만 남긴 채 사라지고 말았으니까.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폭풍!

압도적인 현찬의 무력에 힘을 빌려주는 장수왕마저 감탄했다.

[대단 하구나 계약자여! 설마 이렇게까지 본인의 힘을 잘 다룰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후후후. 누구의 계약자인데. 당연한 일이지.]

곁에서 이 모든 상황을 보고 있던 헤르메스가 뿌듯하다는 듯이 말했다. 갑작스러운 등장이었지만 장수왕은 헤르메스가 현찬과 계약을 맺은 진짜 영령임을 직감했다.

[정말로 부럽군.]

헤르메스를 부러워하면서도 장수왕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한 나라의 왕이었던 그조차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성스러움. 영령으로서의 격조차 비교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해했다. 과연, 이 정도 되는 영령과 계약을 맺었기에 현찬의 재능과 그 힘이 장수왕인 자신이 감탄할 법도 했다.

이미 속세와는 연을 끊었다고 생각했는데 장수왕은 현찬을 보니 다시 피가 끓는 기분이었다. 비록 정식적인 계약이 아닌, 아주 짧은 순간만 맺는 계약이었지만 장수왕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계약자를 돕기로 했다.

[가세나! 계약자여!]

“네!”

장수왕과 한 몸이 된 현찬은 말을 타고 달리며 순식간에 주위에 있는 미러 비스트들을 휩쓸었다. 보스는 당황했다. 설마 저 허약한 인간 한명에게 자신의 부하들이 모조리 다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캬아아악!

그리고 분노했다. 이곳에 휘하 부하들이 모조리 당한 것에 대한 모든 증오를 현찬을 향해 쏟아 부으며 직접 움직였다. 체고만 5M에 달하는 보스가 움직이자 거울로 이루어진 바닥이 크게 진동했다.

[계약자여. 저 녀석은 꽤나 만만치 않아 보이는군.]

“확실히 강해보이기는 하네요.”

하지만 강해 보일 뿐.

실질적으로 현찬에게 가해지는 압박감은 전무했다.

오히려 저 거대한 덩치가 더 작게 느껴질 정도였다.

현찬이 검을 세우며 보스 몬스터를 노려보았다. 아직 주위에 남은 몇 마리의 미러 비스트들은 보스 몬스터가 나서자 현찬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캬아악!

보스 몬스터가 네 개의 팔을 활짝 펼치며 현찬에게 달려들었다. 현찬 또한 지지 않고 말의 고삐를 잡아 보스 몬스터를 향해 돌진했다. 보스 몬스터는 자신 있었다. 이대로 팔을 넓게 펼치면 아무리 말이라고 하더라도 회피할 공간이 부족해진다.

상대방이 겁에 질려 잠이 주춤하는 그 틈을 노려 그대로 억센 손아귀로 붙잡아 찢어죽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현찬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높이더니 서로 부딪칠 정도로 지척에 접근했을 때 예상치 못한 행동을 벌였다.

준마가 보스 몬스터의 가랑이 사이로 잽싸게 빠져나갔고 현찬은 이미 그런 준마의 등 뒤에 없었다. 오히려 직전에 등을 밟고 높게 뛰어올라 그대로 보스 몬스터의 넓은 이마에 검을 박아 넣은 것이다.

모든 힘을 다한 일점 찌르기!

캬아아악!

보스 몬스터는 비명을 내지르며 발악했지만 그것은 매우 짧았다. 머리를 꿰뚫린 보스 몬스터는 이내 움직임을 멈추더니 바닥에 그 거대한 몸체를 뉘였다. 보스 몬스터의 은빛의 몸은 수천 년간 풍화된 바위처럼 모래로 흩어졌다.

“후우. 쓰러뜨렸다.”

보스 몬스터가 죽자 그 휘하의 미러 비스트들이 폭주라도 하듯이 현찬에게 달려들었지만 현찬은 재차 말에 올라타서 녀석들을 전부 쓸어버렸다. 상태창을 보니 레벨도 올랐고 전체적인 스텟도 골고루 오른 게 보였다.

싸움은 순식간에 끝났다.

현찬은 마석을 모두 수거한 후에 홀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거울에 다가갔다.

이것이 바로 이 환영굴 게이트의 핵이었다.

“저와 계약을 맺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수왕 님.”

[나 또한 계약자 덕분에 오랜만에 즐거움을 느꼈으니 이쪽에서 고마워해야지.]

계약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장수왕은 못내 아쉬움을 감추며 말했다.

[계약자여. 그대의 앞길에 번영과 영광이 있기를.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세나.]

“예. 그러죠.”

현찬은 자신의 몸에 차올랐던 영령의 힘이 사라져가는 것을 느꼈다. 장수왕이 떠난 것이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다시 장수왕과 계약을 맺을 수 있었으니까.

현찬은 검을 휘둘러 게이트의 핵을 부쉈다.

&

현찬의 소문은 국내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퍼져 나갔다.

최소 영웅급 영령을 지닌 헌터가 아직 아무런 소속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아카데미 졸업과 동시에 바로 B랭크 판정을 받았으니 S랭크를 찍을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추정되는 영령이 바로 ‘헤라클레스’다. 해당 영상을 본 전문가들의 분석 또한 그러했다. 네메아의 사자 가죽은 절대로 못 알아볼 수 없는 트레이드마크였으니까.

많은 국가 운영자는 현찬을 탐냈다.

다만, 오히려 현찬이 다른 곳에 소속되는 것을 걱정하는 자들 또한 있었다.

아군으로 만들지 못할 때에는 적이 될 가능성을 보아 제거한다. 마치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대통합 이후로 몬스터가 나타나며 이것은 은근히 자주 발생하는 현실이기도 했다.

그렇게 현찬에게 눈독을 들이는 다른 국가에서도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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