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13화 제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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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와아악!
한쪽 팔이 날아간 기간테스가 비명을 내질렀다. 팔이 잘린 것이 아니라 강력한 힘에 의해 폭발해 버렸으니 그 고통이 오죽하랴.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그런 기간테스에게 동정심을 베풀지 않았다.
[시끄럽다! 이 괴물아!]
헤라클레스의 몽둥이가 휘둘러졌다. 깔끔한 궤적을 그리며 휘둘러지는 몽둥이의 동선 안에는 기간테스의 소리 지르는 머리가 있었고 그대로 기간테스의 머리통이 날아가 버렸다.
이제 마지막 남은 기간테스는 단 하나.
“모두 괜찮나?!”
“맙소사, 기간테스?! 저 녀석이 왜 여기에?!”
뒤늦게 소식을 받은 지원군들이 속속히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저, 저거 뭐야?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황룡클랜 소속 A랭크 헌터 김승태는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보고를 받기로는 아카데미에서 아직 교육을 받고 있는 초보 헌터들이 있는 곳에 게이트 폭주가 번졌다고 들었다.
최대한 빠르게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합류하기는 했지만 게이트의 난이도는 최소 B랭크 정도. 초보 헌터들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인명피해가 적게 났기를 기도하며 겨우 도착했는데.
지금 이게 뭐란 말인가.
초보 헌터 한명이, 혼자서 기간테스 세 마리를 때려잡고 있었다.
심지어 이미 둘 은 죽었고 마지막 한 놈만 남은 상대.
그런데 마지막 남은 기간테스는 공포에 질려서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맙소사!”
그 흉포하기 짝이 없는 기간테스가 공포에 질리다니! 그것도 거대한 덩치를 사시나무 떨듯이 떨다니! 곧 죽어도 적을 향해 눈이 뒤집혀 미친 듯이 달려드는 것이 기간테스가 아니었던가!
놀란 것은 무릇 김승태뿐만이 아니었다. 김승태의 옆에 방금 막 도착한 같은 황룡 클랜의 A랭크 헌터인 이한율 또한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세상에, 승태 오빠. 지금 기간테스가 겁을 먹은 거예요?”
“그러게. 나도 처음 본다. 저게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
몬스터 또한 지성을 지닌 존재이기에 공포를 느끼기는 했다. 하지만 기간테스는 엄청나게 흉포하고 강대한 존재였기 때문에 공포라는 감정을 몰랐다. 아니,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이 광경을 보기 전까지는.
이한율은 자신과 계약을 맺은 영령에게 물었다.
“강감찬 할아버지. 저게 가능한 일이에요? 상대 영령이 누구인지 알겠어요?”
[흐음. 저 청년이 가진 영령이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겠구나. 이 나조차도 저 힘을 제대로 평가할 수가 없겠어.]
“세상에나. 정말요?!”
강감찬이 누구인가.
영웅급 영령 중에서도 인지도가 엄청나게 높은 고려의 재상이자 장군이 아니었던가.
역사 속에서 유명한 전투인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던 그조차도 지금 현찬이 보여주는 힘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고 하니 이한율은 재차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빠. 일단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잠깐만 한율아. 지금 저 상황을 봐.”
김승태가 손가락으로 현찬을 가리켰다. 현찬은 마지막 남은 기간테스의 온몸을 몽둥이로 실컷 두들기고 있었다. 오히려 죽지도 못하고 실컷 두들겨 맞는 기간테스가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지금 우리가 끼어들면 오히려 방해야. 게다가 이미 주변에 시민들의 대피는 끝났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그러면 어쩌게?”
“일단 지켜보자. 그리고 저 헌터에 대한 정보도 모아 봐. 내가 알기로는 분명히 여기에는 아카데미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던 초보 헌터들밖에 없다고 했거든? 내 예상이 맞는다면 저 녀석, 분명히 아카데미 소속 헌터야.”
“뭐? 오빠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해. A랭크 헌터가 와도 쉽게 못 잡는 기간테스를 혼자서 세 마리나 몽둥이로 때려잡았어. 그런 헌터가 초보라고? 차라리 다른 클랜에서 숨겨놓은 비밀병기라는 말이 더 믿음이 가겠다.”
“저 정도나 되는 인재를 키울 수 있는 클랜이 존재 할까? 게다가 봐. 이미 저 사람의 실력은 A+랭크 헌터에 근접했어. 오히려 그 이상일 수도 있다고. 그런 사람이 아직까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맙소사. 그렇다면 정말로 초보 헌터?”
초보 헌터가 기간테스를 잡는다면 그가 지닌 재능이 대체 얼마나 높다는 소리인가.
김승태는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러자 제대로 현찬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거대한 사자 가죽과 몽둥이? 잠깐만, 이거 설마……?!’
바보가 아닌 이상 저 장비들을 보고 헤라클레스를 떠올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미친! 헤라클레스라고?! 거의 신급 영령에 맞먹는 영웅급 영령이잖아!’
A랭크의 헌터이자 황룡 클랜에서도 손에 꼽히는 김승태 또한 영웅급 영령과 계약을 맺은 상태. 하지만 그럼에도 헤라클레스는 같은 영웅급 영령과 격이 다른 존재였다. 기본적으로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피를 이었기에 존재 자체가 반신인 데다가 나중에는 신의 자리까지 올라갔다고 전해졌을 정도니까.
‘저 녀석, 대체 정체가 뭐야?!’
김승태는 경악에 가까운 감정을 품으며 지금도 열심히 몽둥이를 휘두르는 현찬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끝이다!]
헤라클레스는 마지막까지 기간테스를 가지고 놀다가 스트레스가 다 풀려가자 그제야 녀석의 머리통을 깨부수었다. 널브러진 기간테스의 시체는 총 셋. 결국, 게이트 폭주로 인해 발생한 기간테스 세 마리는 헤라클레스의 몽둥이에 전부 머리가 박살 나는 것으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이렇게 날뛰는 것도 오랜만이라서 즐거웠다. 계약자. 뭐, 이번에는 어떻게든 나를 불러낸 것 같은데 다음번에는 조금 더 충분히 단련하고 부르라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앞으로도 자주 만날 사이인 거 같은데. 편하게 지내자고. 그럼, 난 이만 간다.]
“아, 예.”
헤라클레스가 떠나자 <차용>으로 인해 몸에 두르고 있던 네메아의 사자 가죽과 몽둥이, 그리고 히드라의 독이 발라진 화살이 모두 사라졌다. 현찬은 자신의 몸 곳곳에 차오르던 힘이 빠져나가자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뭔가 아폴론 님도 그렇고 헤라클레스도 그렇고, 날뛰는 면이 없지 않아 있네.”
현찬의 말에 헤르메스도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다들 하계에 관심이 많아서 그래. 그런데 정작 계약을 맺을 만한 각성자들이 없다 보니까 잠자코 지내고 있는데 갑자기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잖아? 다들 신날 만하지. 뭐, 저렇게 날뛰는 거야 아빠의 영향이 크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헤르메스는 뭔가 철부지 아빠를 둔 자식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 말에 현찬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헤르메스의 아버지인 제우스라고 한다면 하늘의 신이기도 하지만 바람둥이이자 철이 없기로 유명했으니까.
[아무튼, 생각보다 괜찮은가 보네? 그래도 영웅급 영령 중에서는 헤라클레스가 거의 탑이라서 리바운드가 엄청 날 거로 생각했는데.]
“……아 맞다.”
현찬은 뭔가 깜빡하고 있다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리바운드가 남아 있었다.
뒤늦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온몸을 내달리는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리바운드를 깜빡했어…….’
그것을 마지막으로 현찬은 막대한 고통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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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찬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본 것은 새하얀 병원의 천장이었다.
‘또 기절한 건가. 이러다가 병원비 엄청 깨지겠는데.’
물론 헌터의 경우에는 병원에 실려와도 치료비가 면제라는 국가적인 혜택을 받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현찬은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리바운드로 인한 고통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도 처음 아폴론과 <빙의>를 하고 난 뒤 겪는 리바운드보다는 훨씬 더 괜찮았기 때문에 가까스로 상체를 일으켰다.
[현찬아, 일어났어?]
“어. 상황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어?”
기간테스를 쓰러뜨렸지만, 혹시나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지도 몰랐다. 물론 현찬이 이렇게 멀쩡하게 병실에서 정신을 차렸다는 것부터가 상황이 무사하게 끝났다는 증거겠지만.
[네가 쓰러지고 나서 지원군이 왔어. 모두들 쓰러진 기간테스를 보고 얼이 빠져있더라. 아무튼, 그 이후로는 별거 없어. 주변 상황 정리하고 다친 사람들은 모두 병원으로 실려 온 거지.]
“그래?”
현찬은 침대 옆에 놓인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들어 인터넷으로 뉴스를 확인했다.
<서울시 강남구 게이트 폭주 발생!>
<게이트 폭주,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어.>
<헌터 협회 ‘모두 힘을 합쳐서 해결해나간 덕분’>
“다친 사람은 있어도 죽은 사람들은 없었구나. 다행이야.”
전부 다 헌터 협회와 다른 헌터들이 재빠르게 대처를 끝마친 덕분이었다. 특히나 현찬이 아니었다면 아마 기간테스에 의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을 것이다.
그때 병실의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왔다.
한 명은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남성이었고 다른 한 명은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처음에는 또 강윤과 다은이 찾아온 건가 싶었던 현찬은 처음 보는 얼굴인 걸 알아보고는 물었다. 아니, 여자 쪽은 어딘가 낯이 익었다.
“실례지만 강현찬 헌터 님 맞습니까?”
“네. 그런데요. 누구세요?”
가장 먼저 말을 건 사람은 바로 인상이 날카로운 중년인.
그는 자신을 헌터 협회의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제 이름은 정기원이라고 합니다. 부족하지만 헌터 협회 서울지부에서 실장의 역할을 맡고 있죠.”
“엇? 아, 네. 반갑습니다.”
헌터 협회, 그것도 서울 지부의 실장급 사람이라면 상당히 높은 자리가 아니던가? 현찬은 의아해 했다. 이렇게 직급이 높은 사람이 어째서 자신을 찾아온 건가?
“그리고 옆에 분은……?”
현찬이 묻자 그녀는 얼굴에 밝은 미소를 지으며 현찬에게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황룡 클랜에서 온 이한율이라고 해요.”
황룡 클랜의 이한율! 그녀의 소개에 현찬은 뒤늦게 그녀가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낯이 익다 싶더니 TV에서 자주 보던 A랭크 헌터가 아닌가. 영령 <강감찬>과 계약을 맺은 여장부이자 모두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여성 헌터. 무엇보다 현찬이 꿈꾸던 삶의 주인공!
설마 그 사람이 직접 병실까지 찾아올 줄이야.
현찬은 얼떨떨하면서도 이한율과 악수를 하였다. 이 사실을 자신의 친구들에게 말한다면 거짓말하지 말라거나 혹은 질투를 하겠지.
현찬이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동안 정기원 실장이 옆에 놓인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앉았다.
“몸이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만. 실례지만 혹시 이야기는 나눌 수 있겠습니까?”
“예? 아, 네. 그 정도야 괜찮죠.”
리바운드의 고통이 여전히 거슬리기는 했지만, 지금은 꽤나 나아진 상태였다. 대화를 나누는 것 정도는 지장이 없었다.
현찬의 승낙에 정기원 실장은 헛기침하며 목소리를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일단 이한율 헌터님과 저는 볼일이 다르니 제가 먼저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강현찬 헌터 님. 어제 있었던 게이트 폭주 사태에서 큰 활약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했고 피해의 확산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네? 아, 네.”
현찬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
아폴론 때야 강렬한 빛 때문에 정체를 숨기게 되었지만, 헤라클레스와의 계약은 달랐다. 보는 눈이 너무나도 많았고 무엇보다 도심에서의 싸움이라 CCTV나 각종 카메라에 전부 찍혔을 것이다.
현찬은 이 이상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을 포기했다.
아폴론을 불렀을 때는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여겼지만, 자신감이 붙은 지금은 달랐기 때문이다.
“제게 뭘 바라시는 건가요?”
“혹시 저희 헌터 협회에 들어오시지 않겠습니까? 바로 A랭크 헌터의 자리를 내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거기에 더해 국가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하죠. 5년 계약으로 300억은 어떻습니까?”
헌터 협회의 제안!
정말로 귀가 확 열리는 조건이 아닐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연봉 60억이라니!
국내에서 알아주는 운동선수도 연봉이 50억을 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60억이라면 정말 대단한 수치가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헌터 협회는 국가의 기관이라 세금 면제, 헌터 장비 무료 증정, 게이트 최우선권 등의 여러 가지 추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한율이 마음이 급했는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에헤이! 기원 아저씨. 먼저 손 뻗는 게 어디 있어요? 저희한테도 기회 줘야죠.”
“먼저 데려간 사람이 임자라고 외치는 게 이 바닥의 룰이 아니던가?”
“그러긴 하지만……. 아무튼! 강현찬 헌터 님! 저희 황룡 클랜에 들어오시지 않을래요? 저희 클랜장 님께서 아주 좋은 조건으로 모셔오라고 했거든요. 솔직히 헌터 협회는 국가 소속이라 던전이나 게이트에서 얻는 부산물의 정산 비율이 낮고 의무적으로 게이트에 들어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죠. 하지만 저희에게 그런 건 없어요. 어떤가요?”
황룡 클랜의 제안까지! 현찬은 표정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매우 놀란 상태였다.
황룡 클랜이 어디인가. 국내에서도 톱5 안에 드는 클랜이며 소수정예를 추구하고 분위기가 자유분방한, 모든 헌터들이 꿈에 그리던 클랜이 아니던가.
[와, 현찬이 복 받았네!]
헤르메스도 신이 난 목소리였다. 자신의 계약자가 이렇게나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하니 영령인 그로서는 당연히 기뻐할 일이었다.
현찬은 지금의 상황이 적응되지 않았다. 난데없이 수백억 단위의 돈 이야기가 나오니 지금까지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현찬에게는 너무나도 먼 나라 이야기였다. 아직도 자신이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다행히 이것은 현실이었다.
“흠.”
현찬은 한참 고민했다. 지금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선택의 분기점임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초의 시간. 현찬은 그 시간 동안 고민을 끝내고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