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12화 (12/265)

# 12

12화 기간테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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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은아! 버프!”

“아, 네!”

다은이 손을 뻗자 새하얀 빛이 현찬의 몸에 스며들었다. 지금 그녀가 줄 수 있는 최선의 버프. 단지 그것뿐인데도 현찬은 자신의 몸에서 힘이 흘러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성녀의 가호! 모든 스텟이 30분 동안 30이 증가합니다.]

[몬스터로부터 받는 피해량을 최대한 감소시킵니다.]

[공격 시 일정 확률로 치명타가 터집니다.]

[반사신경이 증가합니다.]

[상태 이상 저항력이 향상합니다.]

그야말로 힐러 계열 최상이라고 불리는 성녀다운 버프였다.

성녀의 가호를 받은 현찬은 하늘로 날아올라 기간테스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칼을 휘두르며 기간테스의 얼굴 부분을 공격했다. 검 끝이 번쩍이며 기간테스의 거대한 얼굴에 생채기가 생겨났다.

크워어!

기간테스는 손을 휘저었지만, 현찬은 재빠른 움직임으로 기간테스의 공격을 피하며 재차 달려들었다. 어떻게 보면 현찬이 여유롭게 기간테스의 공격을 피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달랐다.

‘스치기만 해도 끝장이다!’

기간테스의 강점은 그 엄청난 근력에 있다. 손을 휘젓기만 해도 엄청난 바람이 몰아쳐서 현찬의 비행을 크게 방해했다. 단순히 피했음에도 이쪽에 영향을 줄 정도인데 저 공격에 맞기라도 한다면?

못해도 최소 중상, 자칫 잘못 하면 죽을 것이다. 그것도 버프로 인해 보호를 받는 것을 고려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기에 현찬은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도 최대한 기간테스의 신경을 건드리며 치고 빠지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목적은 쓰러뜨리는 것이 아닌, 시간을 버는 것이었으니까.

그야말로 외줄 타기의 절정을 보여주는 광경!

주변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은도 손에 땀을 쥐고서 지켜보고 있었다.

크워어어어!

기간테스는 현찬에게 짜증 났는지 두 손을 무차별로 휘둘렀다. 맨손으로 자동차도 으스러뜨리는 악력을 지닌 손아귀가 현찬이 있던 자리를 몇 번이고 움켜쥐었다. 현찬은 가까스로 탈라리아를 이용해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큰일 날 뻔했어.’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온몸이 쥐포처럼 납작하게 변했으리라.

시간으로 따지면 3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마치 1시간이라도 흐른 것 같았다.

“헤르메스! 아직 멀었어?!”

[기다려 봐! 이 녀석 오랫동안 잠들어 있어서 그런지 제대로 반응이 잘 오질 않아. 게다가 나조차도 컨트롤하기 힘든 녀석이라고.]

‘대체 뭘 불러내려고 하기에 신인 헤르메스조차 컨트롤하기 힘들다고 하는 거야?’

영웅급 중에서 신에 필적하는 존재가 있었나? 현찬은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길게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바로 코앞에 기간테스가 접근했기 때문이다.

현찬은 빠르게 하늘 높이 날아올라 기간테스의 공격을 피하고 그대로 수직으로 내려오며 기간테스의 정수리에 검을 박았다. 하지만 녀석의 두개골은 너무나도 튼튼했기 때문에 현찬의 검은 머리의 피부만 가르는 데 그쳤다.

그것만으로도 기간테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다.

조금 전부터 잡힐 듯 잡히지 않은 이 날파리 같은 녀석 때문에 기간테스는 너무나도 화가 난 상황이었다. 심지어 조금이지만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히니 자존심이 강한 기간테스의 성질을 제대로 건드리고 있었다.

크와아아악!

“으헛?!”

기간테스는 거리에 놓인 자동차를 집어 던졌다. 현찬은 재빠르게 회피 기동을 보이며 피했고 자동차는 근처 빌딩의 벽에 부딪히며 폭발하고 말았다. 깨진 유리 파편이 떨어졌고 그 아래 시민들이 비명을 질렀다.

“이런!”

다행히도 다은이 방어막을 펼쳐서 시민들의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현찬이 한눈을 판 사이 기간테스가 공격을 감행했고 그것은 드디어 먹혀들었다.

“크윽!”

현찬은 가까스로 공격을 피했지만, 기간테스의 주먹이 만들어낸 풍압은 견뎌내지 못했다. 자세를 잡지 못한 현찬은 지면으로 추락했고 탈라리아도 유지가 풀려 사라지고 말았다.

“허억, 허억.”

현찬은 숨을 몰아쉬었다. 탈라리아를 이렇게 오래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지치는데 극한의 긴장감 속에서 계속 기간테스를 상대로 시간을 끌다 보니 육체나 정신이나 거의 탈진 상태에 몰렸다.

하지만 소득은 있었다.

이 주변에 모였던 시민들이 대피를 끝냈고 남은 사람들은 같은 조원인 헌터들뿐이었으니까. 그마저도 심하게 다친 사람들은 다은이 필사적으로 치료를 하고 있었다.

크르르! 크와아아!

기간테스도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현찬을 향해 살기를 내뿜었다. 이 날파리 하나 때문에 다른 벌레들을 짓밟아 죽이지 못했다. 그 분노를, 그 울분일 녀석을 가지고 놀면서 풀리라. 기간테스는 현찬을 향해 다가왔다.

그 순간 하늘에 있던 게이트가 여전히 빛을 내뿜더니 두 마리의 기간테스를 더 소환했다.

“세, 세 마리나 된다니.”

“큰일이야. 우린 이제 끝났어.”

이 광경을 지켜보던 조원들도 절망감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한 마리라면 어떻게든 시간을 끌면서 피해 다닐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수가 셋이라면 절대로 가망성이 없다.

쿵, 쿵. 녀석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지면이 묵직하게 진동했다. 현찬은 비틀거리며 겨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까마득히 높은 곳에 기간테스의 얼굴이 보였다.

그야말로 위기의 순간. 겨우 정신을 차린 강윤과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다은도 그 모습을 발견했는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형 도망쳐요!”

“오빠, 피해요! 거기 가만히 있으면 위험하다고요!”

하지만 이미 기간테스는 현찬의 바로 지척까지 접근했다. 녀석은 현찬을 내려다보더니 이내 그 거대한 다리를 들어 올렸다. 기간테스는 이대로 현찬을 자근자근 밟아 죽일 생각이었다. 커다란 그림자가 현찬의 몸을 가렸다. 기간테스의 다리가 바로 머리 위에 있었다.

하지만 정작, 죽음을 문턱에 두고서도 현찬은 웃고 있었다.

“이 정도 시간 끌었으면 된 거지? 헤르메스.”

[물론이지. 잘 버텨줬어. 자, 이제 네가 나설 시간이야!]

헤르메스의 기세등등한 외침과 동시에

쿠웅!

기간테스의 다리가 현찬이 서 있던 자리에 떨어져 내렸다.

“안 돼!”

“오빠!”

강윤과 다은은 그 광경을 보며 절망했지만, 정작 기간테스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응?

벌레를 밟은 자신의 발바닥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 살아 있는 건가? 기간테스는 다리에 몸무게를 실어 힘을 더 주었다. 쩌적! 쩍! 기간테스가 힘을 주자 아스팔트 도로에 거미줄 같은 금이 갔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피떡이 돼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그러한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있어서는 안 됐다.

“이 발 치워!”

크워어어?!

놀랍게도 현찬은 살아 있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현찬이 자신을 밟고 있던 기간테스의 다리를 들어 올려서 그대로 밀어낸 것이었다. 기간테스는 균형을 잃고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고. 쿠웅! 거대한 육체가 뒤로 넘어지자 주변이 한차례 흔들렸다.

“마, 말도 안 돼.”

“살아 있어?”

기간테스의 공격에 직격 했음에도 현찬은 멀쩡하게 서 있었다. 오히려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이었던 조금 전보다 훨씬 더 활기가 넘쳤다.

무엇보다 현찬의 주위로 빛의 입자가 모여 있었으며 방어구 위로 못 보던 물건들이 더러 보였다.

등 뒤에 매달린 활과 화살.

머리와 몸을 덮고 있는 거대한 사자 가죽.

오른손에 쥐고 있는 커다란 몽둥이.

[호오? 거인인가? 이거 참, 오랜만에 잠에서 깨어났는데 보이는 게 저런 녀석이라니. 온 몸의 피가 들끓는 기분이로군!]

이 영웅은 아기 때부터 맨손으로 독사의 목을 틀어쥐었다.

이 영웅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12개의 시련을 넘어섰다.

이 영웅은 신조차 두려워 한 거인들을 쓰러뜨렸다.

모든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 중에서도 당연히 으뜸가는 존재이자 신에 한없이 가까운 자타공인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Hercules).

[하하하하! 이거 나와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사람이 아직 이 세상에 존재했을 줄이야! 하마터면 좋은 경험을 놓칠 뻔했어!]

[어휴. 진짜. 내가 못 살아. 그러니까 적당히 자라고 했잖아! 널 불러내려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너무 그러지 말라고 헤르메스. 결국에는 왔잖아?]

현찬의 몸에 빙의한 헤라클레스는 눈빛을 빛냈다.

[그래. 저 거인 녀석들을 쓰러뜨리면 된다 이거지?]

헤라클레스는 거인과 어느 정도 인연이 있었다. 그가 올림포스로 올라가 몽둥이로 다 때려잡은 녀석들이 바로 그 거인이었으니까.

심지어 때마침 저 거인의 이름도 기간테스였다.

헤라클레스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우득, 우드득! 그가 몸에 힘을 주자 근육이 눈에 띄게 팽창했다.

크워어어어!

몸을 일으킨 기간테스는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고작 저 자그마한 생명체에게 자신이 넘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기간테스는 재차 현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방금 전과 현찬이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도 모른 채로 말이다.

[어딜 감히 덤벼드는 거냐!]

현찬의 몸을 빌린 헤라클레스는 그대로 자리에서 가볍게 점프했다. 그랬을 뿐인데도 순식간에 10m 높이에 있는 기간테스의 머리까지 도달했고 그대로 오른손에 쥔 몽둥이를 힘차게 휘둘렀다.

퍼어억!

물이 가득 찬 가죽 주머니를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기간테스의 거대한 육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쿠구궁! 무거운 기간테스가 쓰러지자 지면이 한차례 떨렸다.

탱크로도 잡지 못하고 미사일을 쏴도 쓰러지지 않던 기간테스가, 단순한 몽둥이질 한 방에 그 거체를 바닥에 뉘인 것이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 광경을 지켜보던 다은과 강윤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쯧. 거인이라고 해서 나름 기대했는데 예전에 싸우던 녀석들만도 못하군.]

헤라클레스는 신들과 거인의 전쟁인 ‘기간토마키아(Giganthomachia)’를 직접 겪고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다.

비록 지금이 빙의의 형태이고 전성기의 힘을 낼 수 없다고 쳐도 눈앞의 상대는 너무나도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비록 일부의 힘이라고는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주신 제우스의 아들이고 기간테스들을 상대하기 위해 태어난 올림포스의 결전 병기.

당연하게도 지금 선보이는 힘 하나만으로도 신이 아닌 몬스터 기간테스를 쓰러뜨리는 것은 충분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어디 나를 더 즐겁게 해 보라고!]

헤라클레스가 움직였다.

멀쩡한 기간테스 둘이 동시에 포효를 내질렀다. 막대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음파 공격. 그것이 건물 유리를 깨부수며 바람을 일으켰지만, 현찬에게 먹히지 않았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은 사자 가죽에 모조리 막히고 말았다.

[네메아의 사자 가죽]

그 어떠한 창과 화살도 뚫지 못하는, 헤라클레스가 지닌 최고의 방어구였다.

퍼억!

헤라클레스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기간테스의 머리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방금과 다르게 제대로 힘이 들어간 일격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엄청났다.

몽둥이에 맞아 겨우 정신을 차린 기간테스의 머리가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다.

헤라클레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뒤에 서 있는 두 마리의 기간테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쿠워어어어!

기간테스 한 녀석이 주먹을 내지르자 헤라클레스도 거기에 맞서 자신의 왼 주먹을 뻗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격돌.

평범한 성인 남성의 주먹과 덩치가 사람만 한 주먹이 부딪쳤음에도 결과는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기간테스의 팔이, 헤라클레스의 힘을 견뎌내지 못하고 터져나갔던 것이다.

한쪽 팔이 날아가자 기간테스가 고통에 겨운 비명을 내질렀다.

“대, 대단하다.”

그 광경을 전부 지켜보던 현찬은 감탄했다.

그만큼 헤라클레스가 가지고 있는 힘과 보여주는 무위는 대단했다.

영웅급 영령이 아닌, 거의 신급 영령에 맞먹는 힘. 실제로 헤라클레스는 반신의 존재였기 때문에 어지간한 신급 영령보다 더 강한 존재였다.

이 정도라면 어째서 헤르메스가 불러내는 데 애를 먹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본인의 힘이 신에 근접한 헤라클레스라면 누구라도 쉽게 불러낼 수 있을 리가 없었을 테니까.

‘엄청나.’

이거라면 기간테스도 이제 두렵지 않았다.

현찬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용기가 샘솟는 것을 느꼈다.

“좋아! 가자!”

[하하하! 호탕해서 마음에 드는군! 계약자!]

그리스 신화의 모든 괴물들의 악몽인 헤라클레스가 커다란 포효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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