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11화 (11/265)

# 11

11화 기간테스 (1)

_

“게이트 폭주? 이거 진짜야?”

“뭐? 아니 대체 뭘 어떻게 하면 게이트가 폭주를 해?!”

“아오. 이제 막 훈련 끝나고 푹 자려고 했는데, 왜 하필 오밤중에 폭주야!”

게이트 폭주.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간단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200여 명의 후반기 교육을 받는 헌터들도 직접 실전 상황에 투입된다는 것. 그리고 게이트 바깥으로 나온 몬스터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데없는 실전 상황에 모두가 당황하거나 화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그 광경을 본 교관이 호통을 쳤다.

“거기 잡담 금지! 현재 시각 우리 헌터 아카데미는 게이트 폭주를 지원하러 간다!”

“헐. 진짜였어?”

“폭주라니, 그런 건 어떻게 할지 모르는데.”

교관의 외침에도 교육생들은 불안에서 벗어날 줄 몰랐다.

난생처음 겪는 게이트 폭주. TV로만 봤지 그것을 직접 해결하러 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모두가 두려워할만 했다.

“조용! 누가 떠드나! 본 교관들도 너희들의 마음은 잘 안다! 걱정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시민들의 대피와 안전을 지키는 것이고, 최전방에서는 다른 클랜들이 나설 테니까!”

교관이 그렇게 말하자 불안에 휩싸여 웅성거리던 교육생들이 겨우 얌전해졌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는지 강윤이 현찬에게 작게 속삭였다.

“형. 어쩌죠? 게이트 폭주라니.”

“어쩌긴 뭘 어쩌겠어. 일단 교관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후방에서 시민들의 대피를 주도하는 역할이니까, 안전하다잖아. 너무 걱정하지 마.”

현찬도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은근히 불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부분 게이트가 폭주할 경우 강력한 몬스터가 튀어나왔고 심지어 불특정 다수의 위치에 산발적으로 몬스터들이 나타난다. 이것은 상식이었다.

그것을 고려하면 절대적인 안전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현찬은 그 부분이 걸렸다.

하지만 긴급 상황이라 200여 명의 교육생들은 교관의 지시에 따라 방어구를 갖춰 입었다.

“빨리빨리 준비해! 지금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닦달하는 교관의 목소리를 배경음 삼으며 헌터들이 각자 장비를 빠르게 걸쳤다. 첨단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디펜시브 슈트를 입고 그 위에 몬스터의 시체로 만든 기본 방어구를 걸친다. 각자 보급형 무기를 들고 마석 탐지기, GPS, 전방위 카메라 등을 장비했다.

“준비됐으면 가자!”

“예!”

그래도 나름대로 훈련을 받아온 헌터들이라 그런지 일사불란하게 아카데미 정문 앞에 대기한 버스에 올라탔다. 도로는 통제된 상태라 버스는 막힘없이 게이트 폭주가 일어나는 장소를 향해 질주했다.

장소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버스는 빠르게 도착했고 모두가 버스에서 내려 모이자 리더 역할을 맡은 교관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지금 강남에 게이트 폭주가 발생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라. 몬스터의 토벌은 주로 다른 클랜에서 맡아서 해 줄 거고 우리들은 후방에서 물자를 나르고 시민들을 대피하는 지원자 역할이니까.”

교관은 200명의 헌터들을 10명씩 짝을 지어서 총 20개의 조로 만들었고, 조마다 무전기를 하나씩 건네주었다.

“각 조장은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이 무전기로 보고할 수 있도록. 통신 채널은 6번이다.”

“예! 알겠습니다!”

현찬 또한 조장이었기에 무전기를 받을 수 있었다. 같은 조원인 강윤과 다은이 현찬에게 다가왔다.

“형. 우리 이제 어쩌면 좋죠?”

“이대로 기다리면 되는 건가요?”

“교관님께서 일단 각자 구역으로 이동하라고 하셨어. 그리고 그곳에서 혹시 민간인이나 일반인이 남아 있다면 대피시키래.”

현찬은 교관의 말대로 조원들을 이끌고 정해진 구역으로 이동했다. 게이트 폭주의 발생지로부터 상당히 떨어진 거리였기 때문에 조원들은 모두 안도하고 있었다. 다만 주변에서 호기심 때문에 모인 시민들을 막는 것은 상당히 고역이었다.

“여러분! 이 장소는 위험합니다! 모두 물러나 주세요!”

“게이트 폭주가 발생했습니다! 이 이상 접근하면 위험해요!”

“아씨! 거기! 학생! 위험하다는 말 안 들려?!”

시민들의 통제는 상당히 난항을 겪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그래도 나는 안전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서 어떻게든 게이트 폭주를 휴대폰으로 동영상이나 사진을 찍어서 올릴 생각만 가득했다.

일단 파견된 경찰들이 현찬을 비롯한 예비 헌터들을 돕고는 있었지만, 시민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 여전히 힘이 부칠 정도였다.

현찬은 진땀을 흘리며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가드 라인을 넘어서 몰래 들어오려는 시민들을 막았다.

그 순간 멀리서부터 거대한 폭음과 함께 희미한 빛이 터져 나왔다.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추는 번쩍거리는 섬광과 괴물들의 비명이 서늘한 밤하늘을 타고 물감처럼 번졌다.

오오오! 몰려있던 시민들의 사이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대한민국에서 쉽게 구경할 수 없는 진귀한 볼거리에 그들의 마음은 마치 소풍가기 전의 아이들처럼 들뜨기 시작한 것이다.

현찬도 고개를 돌려 계속 섬광이 터져 나오는 빌딩 너머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시작인가.’

[헤에. 게이트 폭주라니. 처음 보는 일이네.]

“나도 그래. 그런데 생각보다 소리가 가까운 거 같은데. 나름 안전지대라고 멀리 떨어졌는데도 소리가 다 들릴 정도면.”

그만큼 몬스터와 헌터들의 싸움이 격렬한 걸 수도 있었다.

어찌 됐든 현찬은 자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지금 시민의 대피를 우선적으로 여겼기 때문에 관심을 껐다.

치직! 치지직!

“응?”

옆구리에 찬 무전기에서 나는 이상한 소음.

현찬은 의아해하며 무전기를 살폈다.

“뭐지? 이거 왜 이래? 고장이라도 난 건가?”

무전기에서는 계속 찌지직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잠시 무전기를 컸다가 다시 켰지만 여전히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은 그대로였다.

“뭐야. 설마 고장이라도 난 건 아니겠지?”

현찬은 약간 불안감이 들었다. 무전기가 갑자기 고장이 났는데 이걸 배상하라고 하면 어쩌지? 문득 그런 생각이 났다. 물론 배상이야 못 할 건 없지만 쓰기도 전에 알아서 고장이 났는데 배상하는 것은 억울하지 않은가.

그때였다.

“치직! 조……들…… 치직! 응답…… 칙!”

“어? 되네?”

하지만 들려온 말은 너무 끊겨서 제대로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여기는 6조. 무슨 일입니까?”

“지금…… 칙! 치직! 도망…… 치이익!

“뭐라고 하는 거야?”

너무 띄엄띄엄 들리다 보니 상대방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현찬이 곤혹스러워하는데 옆에서 잠자코 있던 헤르메스가 거들었다.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말이지, 빨리 도망치라고 말하는 것 같아.]

“뭐?”

‘그게 무슨 소리야’라고 물을 시간이 없었다.

상황은 갑작스럽게 벌어졌으니까.

삐빅! 허리춤에 걸어놓은 마석 탐지기가 갑자기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불빛을 내며 반응했다. 시민들을 대피시키던 예비 헌터들은 자신의 마석 탐지기를 살폈다.

“뭐? 마석 반응? 몬스터가 있다는 소리야?”

“근데 주변엔 아무것도 없는데?”

“아? 위를 봐!”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누군가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향하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을 따라갔다.

그곳에 있었다.

하늘 위에 열린 커다란 게이트가.

검은 밤하늘 위에서 영롱하게 자신의 색채를 뿜어내며 주변을 잠식해나가는 게이트. 그것은 마치 부서진 별들의 조각이 한곳에 뭉쳐서 새로운 은하수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게이트? 말도 안 돼! 저게 왜 여기에!”

“여긴 안전구역 아니었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예비 헌터들은 누구인지 모를 사람에게 따졌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폭주한 게이트가 이곳에서 열렸다는 것은, 조만간 이쪽에도 엄청난 파괴의 폭풍이 몰아친다는 소리.

대체 게이트가 왜 여기에? 라는 의문은 지금 상황에서 사치에 불과했다.

“모두 도망쳐! 지금 당장!”

하지만 현찬의 외침은 이미 늦고 말았다. 게이트에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저기서 뭐가 내려오는데?”

“저거 뭐야?”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검은 그림자는 점점 그 크기를 키워 나가더니 이내 게이트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왔다. 허공에 떠 있는 게이트였기에 튀어나온 몬스터는 그대로 자유 낙하를 했고 도심의 한복판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앙!

단지 지면에 떨어졌을 뿐인데도 주변에 충격파를 동반한 굉음을 낼 정도의 압도적인 질량.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은 마치 스티로폼처럼 박살이 나서 파편을 흩뿌렸고 주위 건물들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크게 흔들거렸다. 건물의 유리창이 박살이 나서 바닥에 비처럼 쏟아졌고 가로등이 옆으로 크게 기울었다.

“맙소사.”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키가 7m에 달하는 거인이 서 있었으니까.

녀석이 웅크리고 있던 몸을 피자 그 높이만 거의 10m에 근접해 있었다. 옆에 기울어진 가로등이 나무 막대기처럼 보일 정도의 압도적인 덩치였다.

4등급 거인종 몬스터 기간테스.

성질이 포악해서 A랭크 헌터가 와도 잡기 힘든 대형 몬스터였다.

쿠오오오오오!!

놈은 한바탕 하늘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단지 그것뿐인데도 주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귀를 틀어막거나 비틀거리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한바탕 거대한 바람이 몰아치자 시민들은 그제야 지금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들이 지금 얼마나 터무니없는 장소에 와 있는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부닥쳤는지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꺄아아아악!”

“살려줘!”

“길 막지 말고 비켜!”

“모, 몸이…… 몸이 움직이지 않아. 누, 누가 좀 도와줘!”

주변 일대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도망치는 사람, 겁먹어서 못 움직이는 사람, 공포에 사로잡혀 미친 듯이 방황하는 사람. 그 모든 인간들이 한 장소에 뒤엉키고 넘어지며 그야말로 일대에 혼란을 초래했다.

그 순간 기간테스가 움직였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현찬이 외쳤다.

“막아!”

뒤늦게 정신을 차린 조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찬의 지시에 따라 조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도 나름 아카데미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치면서 성장해 온 헌터들이다. 비록 지금 상황은 매뉴얼에 전혀 없는 비상사태였지만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우와악! 받아라!”

양손에 건틀릿을 착용한 강윤이 기간테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영령 <삼손>의 엄청난 힘이 담긴 펀치. 그것이 그대로 기간테스의 다리를 후려쳤다.

크르르르.

“어?”

기간테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놈은 강윤을 발로 툭 밀어버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강윤은 뒤로 훌쩍 날아가 건물 창문을 깨부수며 안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강윤아!”

기간테스는 압도적이었다. 녀석이 발길질할 때마다 헌터들은 피했음에도 그 충격으로 멀리 나가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마법을 쏴도 녀석은 몸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검이나 창을 휘둘러도 질긴 가죽 때문에 피부에 상처가 조금 났을 뿐 치명상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영령을 지녔다고 해도 결국은 숙련도가 부족한 초보들이다. 가진 영령의 힘을 제대로 끌어내지도 못하는 상태.

베테랑도 상대하기 힘든 기간테스에게 버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빠, 빨리 도망쳐!”

“괴물이 온다!”

시민들은 더욱 혼란 상태에 빠졌고 기간테스는 그런 도망치는 사람들을 벌레 보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느릿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시민들을 향해 다가갔다.

녀석은 즐기고 있었다.

눈앞의 벌레들을, 차근차근 밟아 죽이는 것을.

그때 새하얀 빛의 장막이 기간테스의 앞길을 막았다.

성녀 <잔 다르크>의 계약자인 서다은, 그녀가 최대한 넓게 방어마법을 펼친 것이다.

쿠워어어어!

기간테스는 자신의 앞길이 막혔다는 사실에 화가 났는지 눈앞의 장벽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콰아앙! 단순한 주먹질에도 엄청난 힘이 담겨 있었다.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터져 나왔고 서다은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쩌적!

빛의 장막은 단순한 주먹질 한 방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방벽을 유지하며 버티고는 있지만 결국은 시간문제였다.

현찬은 이를 악물었다.

이미 겁에 질린 몇몇 조원들은 전투 불능 상태였다. 강윤도 기절했고 그나마 다은이 지금 겨우 버티고 있는 상황.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헤르메스! 지금 바로 영령과 계약해야 해. 도와줘. 내 힘으로는 부족해.”

[후우. 어쩔 수 없네. 하지만 부를 수 있는 건 최대 영웅급 영령이야. 지난번처럼 아폴론 형을 불렀다가는 네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 계약자의 목숨은 내게 최우선 사항이거든.]

“…… 좋아. 영웅급이라도 괜찮아.”

영웅급이라도 현찬이 계약을 할 수 있다면 바로 <빙의> 단계까지 갈 수 있다.

그것이 현찬이 가진 계약의 힘.

다른 사람들은 영령과 계약을 맺으면 차근차근 그 힘을 배워 나가지만 계약의 신인 헤르메스의 기운이 담긴 계약은 그런 단계를 순식간에 뛰어넘게 하는 힘을 지녔다.

[내가 이 상황에서 딱 아는 녀석 하나가 있는데, 그 녀석 부르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거야. 그 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텨줘.]

“알겠어.”

현찬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지금까지 갈고 닦았던 힘 일부를 개방하기로 했다.

<차용>

[탈라리아(Talaria)]

현찬의 발에 날개가 달린 신발이 생겨났고 현찬은 그대로 하늘을 날아올랐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