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10화 (10/265)

# 10

10화 후반기 교육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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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이놈 봐라?’

현찬은 자신을 향해 도발적인 웃음을 짓는 백한겸을 보며 피식 웃었다. 현찬은 예전에 백한겸이 알던 그 강현찬이 아니다.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졌고, 무엇보다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졌다.

자신을 보며 열등감을 불태우던 그때의 남자는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하지만 백한겸은 오히려 현찬에게 열등감을 불태우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백한겸 헌터. 비록 모의 대련이 최대한 공평한 조건에서 붙는다고 해도 이것은 형평에 어긋난다.”

“교관님. 어차피 레벨도 낮은 상황에서는 다 비슷비슷한 거 아닙니까? 심지어 모의 대련은 최대한 안전한 상태에서 진행되니까 딱히 문제가 될 거는 없다고 보는데요?”

“뭐야, 저거.”

“뻔뻔해라. 괜히 비슷한 사람끼리 붙는 게 무서우니까 만만한 놈이랑 싸우겠다는 거 아니야?”

주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200여 명의 헌터들은 모두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다들 백한겸의 행동이 정당성에 어긋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교관도 최대한 정중하게 백한겸 헌터를 말렸다.

다만 조금 난처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백한겸 헌터는 국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화랑 클랜에 들어간 유망주. 그리고 한겸이 선택한 사람은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은 F랭크 언더 클래스 헌터.

‘누가 봐도 공평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거절하기도 모호하군.’

교관으로서는 당연히 중립을 유지해야겠지만 솔직히 두 사람의 편을 든다면 당연히 백한겸의 편에 들고 싶은 것이 교관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잘나가는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 건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니까.

그렇게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교관의 뒤로 현찬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승낙하죠.”

“강현찬 헌터. 괜찮겠나?”

“어차피 모의 대련 아닌가요? 그러면 한번 해 보죠.”

직접 지목당한 현찬 본인이 저렇게 말을 하니 교관인 그조차 더 말릴 수 없었다. 결국, 교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둘의 모의 대련을 승낙하자 백한겸은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멍청한 놈! 고작 이런 소소한 도발에 못 이겨서 승낙하다니!’

모의 대련이라고 해도 상대는 F랭크의 언더 클래스. 이미 소문이 쫙 퍼질 대로 퍼진 약자다. 반면 자신은? 영웅급 영령의 계약자이며 헌터 적성 및 가능성이 B랭크에 다하는 엘리트가 아니던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아주 개쪽을 주겠다!’

현찬과 백한겸은 모의 대련장에서 서로 마주 보며 섰다. 몸 곳곳에 방어구를 걸친 백한겸은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굳이 무기를 쓸 필요는 없으니까 맨손으로 하지. 이 정도 핸디캡은 괜찮지?”

이것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상당한 거만한 행동이었다. 모의 대련이라고 해도 그렇지 검을 쓰는 클래스면서 무기조차 들지 않겠다니! 그 말에 주변 헌터들이 웅성거리며 뭐라고 떠들었지만, 현찬은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이 맨손으로 하겠다면 나도 맨손으로 할게. 그러면 서로 딱 공평하잖아?”

울컥!

‘…… 이 새끼가!’

현찬의 여유로운 태도에 백한겸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내 앞에서 여유를 부린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백한겸은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을 애초에 하지 않았다. 그는 레벨이 18이며 모든 스텟이 평균 60에 근접할 정도로 높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같은 레벨을 가진 헌터보다 훨씬 더 높은 수치였다.

현찬은 말없이 자세를 잡았다. 상대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쪽도 맨손으로 싸우지만 그렇다고 대책 없이 무대포로 싸우는 것은 아니었다.

‘가자. 헤르메스.’

[좋아. 저 양아치 녀석의 얼굴을 뭉개버려!]

땡!

대련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백한겸이 현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스피드! 이 자리에 모인 어지간한 후반기 교육생들은 절대 반응하지 못할 속도였다.

백한겸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현찬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이대로 저 여유 넘치는 얼굴이 일그러질 상상을 하니 마냥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한겸이 내지른 스트레이트 펀치는

빗나갔다.

‘뭐?!’

백한겸의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현찬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그의 주먹을 피해낸 것이다.

‘운 좋은 녀석! 이것도 한번 피해 봐라!’

자신의 공격을 피한 것을 운으로 치부하며 백한겸은 미친 듯이 주먹을 날렸다. 빠르게 쏘아지는 펀치의 연속! 하지만 현찬은 마치 프로 복서처럼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한겸이 내지르는 주먹을 모두 피해내고 있었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후반기 교육생들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와! 뭐야? 백한겸이 쪽도 못 쓰잖아?”

“대체 어떻게 저렇게 다 피할 수 있는 거지? 혹시 무슨 무술이라도 배운 거 아니야?”

‘뭐야! 왜 이렇게 안 맞는 건데!’

백한겸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현찬이 맞을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공격을 자꾸 피하니 그냥 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짜증이 났다.

‘대체 왜 안 맞는 거냐고!’

이것은 마치, 허공을 나풀거리는 나비를 잡기 위해 손을 계속 뻗는 것 같지 않은가.

이를 악문 백한겸이 현찬에게 달려들자 현찬은 냉철한 시선으로 그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움직임 한번 더럽게 느리네.’

백한겸은 영웅급 영령인 <조홍>의 계약자다. 하지만 녀석이 보이는 움직임은 도저히 영웅급 영령의 계약자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느리고 조잡했다. 헤르메스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쯧. 보아하니 영령은 나름 쓸 만한 녀석 같은데 계약자라는 놈이 저렇게 제멋대로 굴어서야 당연히 그 힘을 끌어내지 못하지.]

“그게 무슨 소리야?”

[힘을 <차용>하려면 그만큼 영령과의 유대감도 깊어야 하고 본인의 의지도 강해야 해. 하지만 저 양아치 녀석은 자기중심적이고 제 잘난 맛에 사는 녀석이라 자신과 계약한 영령의 힘을 제대로 <차용>하지도 못하고 있어.]

즉, 계약한 영령의 힘조차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는 백한겸에게 있어서 <조홍>이라는 영령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소리였다.

‘슬슬 피하면서 움직임에 적응도 되었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가 볼까?’

현찬의 움직임이 급변했다. 마치 유유히 나비처럼 한겸의 공격을 모두 피해내던 현찬은 상대방의 허를 찌르듯이 쾌속으로 변하여 빠르게 펀치를 내질렀다.

뻐억!

삑!

“크헉!”

보호구 장갑을 끼고 있음에도 현찬의 펀치는 한겸의 머리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한겸은 반사적으로 주먹을 뻗었지만, 현찬은 가볍게 상반신을 숙이고 오히려 품 안으로 파고들며 한겸의 몸에 펀치를 욱여넣었다.

퍽!

삑!

지금까지 조용했던 모의 대련장에서 점수가 카운트되는 소리가 울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교관들과 교육생들은 모두 입을 쩍 벌렸다.

[흠. 나쁘지 않군. 계약자. 상당히 단련한 몸이야.]

“칭찬 고맙네요.”

지금 현찬은 달인급 영령의 힘을 <차용>한 상태.

‘그럼 다시 간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현찬의 주먹이 복부에 틀어박히자 백한겸은 폐부에서 산소를 내뱉으며 몸을 앞으로 꺾었다. 그의 튼튼한 육체와 보호구를 뚫고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야 현찬에게 힘을 빌려주는 이 영령은 충분히 그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권투계 황제이자 37 케이오승의 화려한 전적을 지닌 전설의 복서.

무함마드 알리(Muhammad Ali).

아직도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전설의 스포츠맨인 그가 현찬의 힘을 빌려서 이 자리에 다시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슈슉!

현찬은 알리 스텝이라는 독특한 풋워크를 밟으며 백한겸을 향해 다가갔다. 백한겸은 그런 현찬의 현란한 움직임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눈이 상대방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그리고 무함마드 알리의 앞에서 방심했다는 것은 패배와 직결된다.

퍼억!

현찬의 몸무게가 실린 시원한 스트레이트 펀치. 그것이 머리 보호구를 끼고 있는 백한겸의 얼굴에 제대로 파고들었다.

“억!”

현찬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두꺼운 보호구로 무장된 백한겸의 복부를 향해 펀치의 세례가 작렬했다. 헌터의 뛰어난 육체와 무함마드 알리의 복서 능력이 하나로 합쳐지자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시너지를 뽑아냈다.

현찬의 점수판이 미친 듯이 올랐다.

삐비비비비빅!

“와! 미친! 지금 1초에 11번이나 때린 거야?!”

“방금 주먹 내지르는 거 봤어? 엄청나게 빨라!”

“전직 권투 선수인가? 저거 풋워크만 봐도 장난 아닌데?”

한겸은 두들겨 맞으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떻게든 발악을 하듯이 손을 뻗어도 현찬은 그것을 우습게 피하며 자신의 몸에 몇 배나 되는 펀치를 날렸다. 게다가 위력은 얼마나 절묘한지, 딱 한겸이 쓰러지지 못할 정도로 때리고 있었다.

퍼억!

마지막으로 현찬의 어퍼컷이 작렬하고 그대로 턱을 얻어맞은 한겸은 뒤로 날아가 쓰러지고 말았다.

“모, 모의 대련 종료!”

한겸이 쓰러지자 교관은 황급히 모의 대련을 끝냈다. 그리고 최종 스코어를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강현찬 : 212

백한겸 : 0

212대0. 바꿔 말하면 백한겸은 1대도 못 때리고 내리 212대를 두들겨 맞았다는 소리다. 그것도 복날을 맞이한 개처럼.

헌터 아카데미 모의 대련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점수 차이였다.

&

“푸하하! 형! 완전히 통쾌했어요! 백한겸 그 자식, 기절하고 난 뒤에 막 정신 차렸을 때의 표정을 형이 봤야 하는데!”

강윤은 1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까불거리며 잘난 척하던 백한겸이 현찬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비 오는 날 먼지가 나도록 맞아서 기절한 광경은 그의 인생에서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짜릿한 순간이었다.

“와, 형. 그보다 무슨 권투 배웠어요? 완전 스텝이랑 펀치 뻗는 게 장난 아니던데.”

“어, 뭐. 그냥 예전에 좀 배웠어.”

“에이~ 보니까 조금 배운 수준이 아니던데요? 아무튼, 형 덕분에 진짜 오늘 완전 꿀잠 잘 수 있을듯!”

“그래. 그래. 푹 쉬어라.”

한겸과 현찬의 모의 대련의 결과는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야 200여 명의 교육생과 모의 대련을 담당하던 교관이 보는 앞에서 펼쳐진 일이다. 이 사실을 숨긴다고 숨겨질 만한 것이 아니었다.

덕분에 백한겸은 그야말로 개쪽을 당했고 그가 몸을 담고 있는 화랑 클랜 또한 싸잡아서 비웃음을 당하고 있었다.

F랭크 언더 클래스에게 개처럼 두들겨 맞는 화랑 클랜!

누군가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해서 올렸는지 순식간에 영상이 인터넷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인터넷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 ㅋㅋㅋㅋㅋㅋㅋㅋ지금 저거 봤냐?

- ㅋㅋㅋㅋ진짜 미친 듯이 두들겨 맞네. 화랑 클랜의 유망주 클라스 보소.

- 와, 근데 상대 진짜 잘 싸운다. 누구임? 프로 권투 선수 아님?

- 예전에 보던 무함마드 알리랑 되게 비슷하게 싸우네.

- 내가 더 잘 싸움.

┗ 응 아니야.

┗ 찐따임? 담당일진 어디 갔냐?

뒤늦게 화랑 클랜에서 동영상을 모두 삭제했지만 이미 퍼질 대로 퍼졌고 모두의 입에서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내려진 백한겸을 향한 징계!

그가 가진 스포츠카를 몰수하고 향후 2달간 자숙의 의미로서 기초적인 훈련을 시키겠다고 화랑 클랜에서 백한겸을 향해 엄포를 놓았다. 그 소식이 훈련소에도 퍼지자 스포츠카도 클랜 거였냐며 웃음거리가 됐다.

그 때문인지 백한겸은 후반기 교육을 받는 동안 얼굴도 제대로 못 들고 다녔고 현찬만 보면 죄를 지은 사람처럼 그 자리를 피해 다녔다. 아직도 현찬에게 두들겨 맞던 그 기억을 잊지 못했다.

반면에 현찬은 그야말로 인기인이 되었고 현찬에 대해서 별 관심을 두지 않던 교관들도 현찬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렇게 현찬은 편한 후반기 교육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마지막에 가서는 사고가 터졌다.

서울시 강남구의 한 게이트가 원인불명의 사고로 폭주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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