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9화 (9/265)

# 9

9화 후반기 교육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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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반갑구나, 계약자. 나는 괴벨스라고…….]

“안 해요.”

[후후. 이 몸은 역아라고 하는데 이렇게 보여도…….]

“계약 안 해요.”

[나는 중국 진나라의 환관이자 조나라 왕족인 조고…….]

“아 꺼져.”

현찬은 원룸에서 조고를 마지막으로 쫓아내며 투덜거렸다.

“아니. 계약을 불러도 왜 저런 애들을 부르는 건데.”

[아하하. 미안. 이거 참. 그냥 적당하게 급 되는 얘들을 닥치는 대로 부르다 보니 이렇게 됐네.]

방금 만난 영령들이 확실히 머리는 좋다.

다만, 머리만 좋다는 것이 문제다.

심성이 이기적이고 악하며 무엇보다 역사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자부할 정도의 악인이 아니던가.

저런 영령과 계약을 맺는다면 오히려 현찬이 두고두고 찝찝해서 견디지 못하리라.

그보다 결국 저런 인간도 영령이 되는 건가. 말세다 말세.

“후우. 그보다 스텟이 많이 올랐네.”

현찬은 자신의 스텟창을 확인했다.

이름 : 강현찬

레벨 : 15

클래스 : 계약자

근력 : 113

체력 : 140

민첩 : 161

마력 : 89

스킬 : <계약(contract)>, <영령 빙의>, <차용> [탈라리아(Talaria)]

현찬이 헤르메스와 함께 훈련한 지도 어언 한 달이나 되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헤르메스는 현찬에게 달인급 영령들을 최대한 단기계약을 많이 맺음으로써 스텟을 올렸다. 심지어 스킬창이 새롭게 생겨난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중간에 레벨이 2가 오른 것은 F랭크 게이트를 다니며 사냥을 해서 올린 것. 그것을 제외하면 현찬의 성장은 그야말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레벨업을 하지 않고서 저 정도 스텟을 찍었다는 것 자체가 도저히 믿기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스텟만 보면 현찬의 레벨은 이미 30을 넘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

아마 현찬의 신체 스펙만 따지면 E랭크 헌터보다 훨씬 더 강하고 오히려 D랭크 헌터에 육박하는 수준일 것이다.

“흐음. 이제 달인급 영령과 계약을 맺어도 스텟의 증가가 얼마 없네.”

[그야 현찬이 네 격이 달인급 영령을 아주 쉽게 불러낼 정도로 올랐기 때문이지.]

처음 달인급 영령과 단기계약을 맺었을 때 스텟이 상당히 많이 올랐었다. 물론 그만큼 현찬의 육체에 가해지는 고통 또한 존재했지만 견딜만 했다. 그렇게 지난 한 달 동안 꾸준히 달인급 영령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스텟을 꾸준히 상승시켰다.

지금은 이제 달인급 영령을 그냥 불러내서 <빙의>까지 가더라도 육체에 아무런 리바운드가 없었다. 다만 그만큼 스텟이 오르는 폭이 줄어들더니 이내 거의 오르지 않게 되었다.

[뭐, 이 정도라면 이제 왕급 영령을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네.]

-역시 지금 상황에서 영웅급은 무리겠지?

[흐음. 내가 보기에는 부를 수는 있겠지만 리바운드가 엄청 클걸?]

아폴론이 특이한 케이스였다.

현찬은 아쉽기는 하지만 오늘은 이 정도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많은 달인급 영령들과 단기적으로 계약을 맺었고 그중에서 현찬에게 격렬한 러브콜을 보내오는 영령 또한 존재했다.

아무렴, 현찬은 이렇게 보여도 무려 신급 영령인 헤르메스의 계약자. 비록 영령이기는 하지만 급이 낮은 달인급 영령들이 현찬에게 열렬하게 관심을 표하는 것도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도 조금은 난처하기도 했었지.’

특히나 할리우드의 유명한 여배우였던 ‘오드리 헵번’이 자신에게 애절하게 부탁한 것은 정말로 태어나서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자신의 메인 계약자가 되어달라나 뭐라나.

물론 분노한 헤르메스가 ‘내 계약자에게 이게 무슨 짓이냐! 이 암고양이야!’라는 일갈로 쫓아 버렸지만 현찬은 그때의 기묘한 감각은 잊지 못했다.

아무튼, 달인급 영령들에게 있어서 현찬은 그야말로 인기인이었다. 이미 잊었던 현세를 다시 경험하게 해 줄 수 있으며 심지어 다른 영령과 다중계약을 맺을 수 있는 자격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성격도 좋다.

이보다 더 좋은 계약자가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왕급 영령 또한 관심을 있다고 헤르메스가 가르쳐 주었다.

[끄응.]

정작 헤르메스는 뭔가 뚱한 느낌이었다.

“대체 왜 그래?”

[조금 위기감을 느껴서 그래. 현찬이 네가 아무리 매력적인 계약자라고 하더라도 영령 간에 상도덕이 필요한 법이야. 내 도움으로 현찬이 너랑 만나게 됐는데 왜 자꾸 너한테만 엉겨 붙는지 모르겠다니까.]

“아하하.”

헤르메스의 질투 어린 말에 현찬은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헤르메스가 가진 가장 기초적인 권능인 계약(contract).

현찬은 이 힘을 이용해서 달인급 영령들과 계약을 맺고 끊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헤르메스의 완전한 능력을 <차용>하기엔 아직 현찬이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특히나 헤르메스를 상징하는 물건들 중 하나인 카두케우스(Caduceus) 지팡이는 불러내지도 못했고 날개가 달린 모자인 페타소스(Petasus)도 무리였다.

그나마 하늘을 날 수 있는 마법의 샌들인 탈라리아(Talaria)는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되었지만 역시나 오랫동안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노력만 하면 충분히 다룰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현찬은 낙담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제 곧 후반기 교육인가?”

전반기 수료 후 2주 뒤에 해야 할 후반기였지만 지난번 사고로 인해 상당히 미뤄지다 보니 1달이 넘어서야 시작하게 됐다. 심적인 피로감이 쌓인 헌터들을 위한 휴식시간을 더 준다는 취지였다.

때마침 현찬에게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다.

헌터 아카데미에서 후반기 교육을 위해 모여 달라는 동원문자였다.

현찬은 꺼냈던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후반기 교육이라.”

[재미있을 거 같지?]

“응. 재밌을 거 같네.”

헤르메스의 힘을 깨닫기 전이라면 불편한 자리였겠지만 최근 한 달간 자신감이 붙은 현찬은 오히려 한시라도 빠르게 가고 싶었다.

“기대된다.”

&

“혀엉! 여기예요, 여기!”

“어, 강윤아.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아카데미에 방문하자 대기실에서 강윤이 손을 흔들며 현찬을 반겨주었다. 덩치도 곰만 한 녀석이 저렇게 손을 휘휘 흔들자 발견하지 못하려야 못할 수가 없을 정도로 눈에 띄었다.

현찬은 강윤의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요즘 잘 지냈냐?”

“예. 저야 뭐, 잘 지냈죠.”

“이야기 들었다. 괜찮은 클랜에 들어갔다면서?”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POH 클랜은 나름 분위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잖아.”

톱10 안에 드는 클랜은 아니지만, 이 바닥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유명한 클랜이다.

<삼손>의 계약자인 최강윤은 전반기 교육이 끝나자마자 바로 POH 클랜의 영입 제안을 받았다.

“형은요?”

“에이. 나 같은 사람을 어느 클랜에서 부르냐? 일단 혼자서 열심히 다니고 있다. 그보다 너, 레벨은 몇이냐?”

“아, 저요? 저 10밖에 안 돼요. 일단 쉬는 건 다 쉬고 아직 후반기 교육도 남아있어서 게이트를 많이 못 돌았거든요. 그러는 형은요?”

“나? 나도 너랑 비슷하지. 그래도 나는 좀 열심히 돌아서 그 정도다. 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대부분 헌터들은 후반기 끝나고 본격적으로 다닌다고 했잖아.”

후반기 교육은 별로 길지 않으니 본격적으로 헌터로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도 먼 미래는 아니었다.

그 순간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찬은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서는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서다은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 오빠.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어, 다은아. 오랜만이다. 나야 뭐, 건강 빼면 시체지. 잘 지냈어.”

“다은 씨. 오랜만이에요.”

“네. 강윤 씨도 오랜만이에요.”

다은은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레 현찬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주변 남자 헌터들의 시선이 모두 현찬을 향해 몰렸다. 그 뜨거운 열기가 담긴 시선에 현찬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얼굴에 철면피를 깔며 견뎠다.

[저거. 저거. 또 꼬리 치는 거 봐.]

“헤르메스, 대체 뭘 꼬리 친다고 그래?”

[그 많은 빈자리에서 굳이 네 옆에 앉았는데 그게 꼬리 치는 게 아니면 뭐야?]

“에이. 그냥 가까우니까 여기에 앉은 거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난 뒤에 헤르메스는 유독 현찬에게 다가오는 여자에게 민감했다.

‘헤르메스의 신화 중에 여자에게 크게 덴 게 있었나?’

오죽했으면 현찬이 이런 생각을 품었을 정도다. 오히려 헤르메스가 여자를 엿 먹이면 먹였지 당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때 바깥이 또다시 어수선해졌다. 이번엔 뭔가 해서 밖을 바라보니 창문 틈으로 멋지게 빠진 붉은색 스포츠카가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린 남자.

머리카락을 노랗게 하고 귀에 피어스를 하며 양아치처럼 껄렁거리며 다니는 남자.

<조홍>의 계약자인 백한겸이었다.

녀석은 일부러 과시라도 하듯이 자신의 차를 손으로 쓰윽 쓰다듬으면서 대기실을 향해 다가왔다. 옆에서 현찬과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본 다은과 강윤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리 봐도 너무 꼴불견이었다.

“저거 화랑 클랜 들어갔다더니 아주 돈을 처발랐네.”

강윤은 백한겸이 꼴도 보기 싫은지 눈살을 찌푸렸다. 대기실로 들어온 백한겸은 주변을 쓰윽 훑어보더니 이내 서다은을 향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와! 다은 씨. 오랜만이에요! 이게 얼마 만이람?”

“별로 오래된 건 아니네요.”

“에이~ 오랜만에 보는데 너무 튕기신다. 지난번에는 왜 제 전화 안 받으셨어요?”

“아, 그거 그쪽 번호였어요? 번호 교환도 한 적 없는데 모르는 전화가 와서 그냥 안 받았어요. 차단했으니 이제 안 하셔도 돼요.”

“다은 씨는 예전보다 더 예뻐지셨네. 이야기 들었어요. 세인트 가디언 클랜에 들어갔다면서요? 거기에도 저 아는 사람 있는데 제가 잘 봐달라고 부탁할까요?”

“일 없네요.”

어떻게든 수작을 걸어보려는 백한겸의 모든 시도는 다은의 철벽같은 가드에 전부 막히고 말았다.

옆에 앉아서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던 현찬과 강윤은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와. 어떻게 저걸 다 쳐낼 수 있지.’

‘진짜 자비심이 없구나.’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가려던 백한겸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가고 있었다. 한겸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눈동자를 굴리다가 서다은의 옆에 앉은 현찬을 발견했다.

‘이 자식……!’

서다은의 옆에 F랭크의 언더 클래스가 앉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백한겸의 자존심은 무참히 구겨졌다. 저 자리가 자신의 자리여야 했다. 어째서 이렇게나 열렬하게 관심을 표현하는데도 서다은은 자신이 아닌 저 보잘것없는 F랭크 녀석의 옆에 앉는단 말인가.

백한겸이 현찬을 상대로 타깃을 바꾸어 무언가 말을 하려는 순간 대기실에 교관들이 들어왔다.

“모두 자리에 앉아라.”

‘쳇! 운 좋은 녀석.’

한겸은 혀를 차며 멀리 떨어진 빈자리에 앉았고 현찬은 그런 한겸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일 수밖에 없었다. 예전이야 그랬지만 지금 현찬에게 있어서 한겸은 신경을 쓸 가치조차 없는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왕급 영령에는 누가 있지? 막 세종대왕님 만나 뵐 수도 있는 건가? 어우. 만나면 만 원짜리 지폐에 사인해 달라고 해야겠다.’

현찬의 머릿속에는 지금 어떤 영령과 계약을 맺을지 가득 차 있었다.

&

“오늘은 헌터들 간에 모의 대련을 시행한다.”

모의 대련!

그 말에 호전적인 성향이 강한 헌터들이 눈을 빛냈다. 반대로 전투에 자신이 없는 자들은 오히려 불안한 표정이었다. 대부분이 F랭크 판정을 받은 헌터들이 그러했다.

“모의 대련이라고 해도 위험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보호구를 착용하고 무기도 안전한 거로 줄 테니까.”

교관은 시범을 보이듯 특수재질로 만들어진 무기로 방어구를 툭 하고 쳤다. 그러자 검은 방어구 위로 푸른 홀로그램이 물결이 퍼지듯 생겨나며 삑! 소리가 났다.

“이렇게 상대방에게 일정 수준의 타격을 줄 때 기계가 그것을 감지하고서 점수로 환산한다. 즉, 안전한 상태에서 대련을 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그렇게 모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대부분은 서로 비슷한 실력끼리 붙었는데 별다른 탈 없이 상황이 진행되었다. 그때 백한겸이 손을 번쩍 들며 나섰다.

“교관님. 저는 강현찬 헌터와 붙어보고 싶습니다.”

백한겸이 꺼낸 말은 주변에 파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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