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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8화 (8/265)

# 8

8화 각성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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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그걸 어떻게 해?”

“아뇨. 빛이 사라지면서 그래도 흐릿하게 실루엣을 봤는데 그게 형이었던 것 같아서요.”

아무래도 강윤이는 그 빛의 정체가 나인 것을 확신한 것은 아니고 반쯤 모호한 느낌에서 물어본 것 같았다. 음. 이대로 솔직하게 대답해 주느냐, 아니면 그냥 진실을 숨기느냐 고민이 된다.

솔직히 강윤은 나와 정말로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다. 이런 강윤에게 굳이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이 힘을 숨겨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만약 강윤이 까불기 좋아하고 입이 가볍다면 숨겼겠지. 하지만 이 녀석은 순박하고 인상이 곰답게 우직하며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산다. 즉, 타인의 비밀을 다른 누군가에게 함부로 발설하고 다닐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고 여기서 진실을 말해주기엔 뭔가 조금 그렇다.

정확히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를 않았다. 아폴론을 강림시키고 그 힘을 다룬 것은 순전히 나 자신의 의지가 아닌 헤르메스의 도움이 컸으니까.

나는 그것을, 내가 했다고 포장해서 말하기 싫었다.

사나이가 자존심이 있지.

결국, 내가 한 선택은 진실 일부만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래. 네 말대로 그건 내가 한 게 맞아. 정확히는, 내 영령의 힘이지만.”

“저, 정말요? 대체 무슨 영령이길래 그래요?”

“정확한 건 비밀이야. 솔직히, 여기서 말했다가 다른 사람이 들으면 여간 귀찮아지는 게 아니거든. 안 그래도 누가 그랬는지 지금 밖에서는 혈안이 돼서 찾고 있다며? 여기서 나인 거 들키면 진짜 난리 난다.”

강윤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그러니까 강윤아. 너도 어디 가서 그거 내가 한 거라고 말하지 마라. 어차피 말해도 믿지 않겠지만 세상에는 ‘만약’이라는 것이 있잖아. 혹시나 누가 내 뒤를 캘까 봐 그래.”

“네. 형. 걱정하지 마세요. 이 비밀은 반드시 지킬게요.”

의리 빼면 시체인 녀석이 저렇게나 호언장담을 하니까 마음이 놓인다.

“아 참, 그리고 형.”

“왜?”

“축하해요. 형, 엄청 강한 영령을 얻었잖아요? 드디어 형이 노력에 보답을 받았다고 생각하니까 괜히 제가 마음이 벅차네요.”

“하…… 그래, 고맙다. 강윤아.”

“에이. 뭘요.”

정말로 기특한 녀석이다. 요즘 시대에서 남의 기쁜 일을 자기 일처럼 마음을 다해 축하해 주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아마 강윤이 녀석만 한 사람은 진짜 찾기 힘들 것이다.

[와, 정말 대단하네. 이렇게 의리 넘치는 녀석은 내가 살던 세계에서도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헤르메스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조금은 감탄한 기색이었다.

“형. 저는 그럼 가 볼 테니까 이만 푹 쉬세요.”

“어, 그래. 잘 가라.”

강윤이도 나가고 병실에는 다시 나 혼자만 남게 되었다.

후우. 이제 다시 쉴 수 있겠구나. 나는 그대로 침대에 몸을 뉘었다.

몸의 상태는 상당히 호전되었다. 그것은 다은이 덕분이었다.

그녀가 내 몸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나에게 치료를 걸어주었던 것이다. 덕분에 무리한 <빙의>로 인해 망가진 신체는 거의 다 회복되었다. 다만 고갈된 마력은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이것만 해도 어디인가.

그러고 보니,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구나.

일주일 후면 다친 예비 헌터들도 전부 다 퇴원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러면 수료식이 끝나고, 헌터 라이센스가 나오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헌터로서의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과연 어떤 모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

수료식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헌터 라이센스를 받은 직후. 모든 헌터들은 재차 자신의 신체검사를 한 번 더 받아야 한다고 해서 현찬도 헌터 협회에 와서 재차 레벨과 스테이터스를 확인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름 : 강현찬

레벨 : 13

클래스 : 계약자(contractor)

근력 : 31

체력 : 40

민첩 : 39

마력 : 24

“응?”

예전에 봤을 때와 다르게 레벨과 스테이터스의 상승이 너무 눈에 띄었다.

특히나 2였던 마력은 24로, 무려 22나 올라버렸다.

‘아니, 나 레벨이 왜 이렇게 높아?’

원래 모든 헌터들은 각성이 끝나고 영령과 계약을 맺으면 레벨 1로 시작을 한다. 현찬도 처음에 분명히 그랬었고. 그 이후에 몬스터를 사냥한 경우라고 해 봤자 <통로>에 가서 그 촉수 덩어리를 잡은 것밖에 없었다.

솔직히 그걸로 레벨을 오르겠지. 다만 현찬은 아무리 높아도 3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13레벨이라니. 이건 너무 많이 오른 게 아닌가?

“헤르메스. 내 레벨이 왜 이렇게 올랐지?”

[응? 그야 당연한 일이잖아? 그 거대한 촉수 괴물을 너 혼자서 잡았으니까 당연히 레벨이 많이 올랐겠지.]

“어? 그건 아폴론 님이 잡은 거잖아.”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그냥 몸을 빌려준 것뿐. 실제로 녀석을 다 잡은 것은 아폴론 님이 한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다 문득 혹시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설마…… 너로 인해 계약을 맺어도 경험치는 나에게 들어온다는 거야?”

[정답! 오, 생각보다 머리가 잘 굴러가는데?]

“엄청나게 사기잖아!”

만약에 아폴론을 한 번만 더 불러낸다면,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내에 고난도 게이트나 던전에 들어가서 몬스터를 대량으로 사냥한다면?

레벨이 엄청나게 오를 게 자명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지독히도 낮다. 아폴론을 한번 부르는 것도 헤르메스의 덕분이었고 목숨의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던가. 게다가 아폴론의 <빙의> 시간은 턱없이 짧았고 그 뒤에 있을 후유증은 지나치게 컸다.

그래도 현찬은 지금 상황을 만족하기로 했다.

레벨이 오르면 전체적으로 스텟도 증가한다. 특히, 가장 부족했던 마력 스텟의 증가는 현찬에게 있어서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무엇보다…… 클래스도 바뀌었어.”

원래 현찬의 클래스는 <언더 클래스>였다. 즉, 아무런 클래스가 없다는 소리.

하지만 지금은 <계약자>라는 클래스로 바뀌었다.

‘계약자? 이거 설마, 헤르메스의 영향을 받아서 이렇게 된 건가?’

헤르메스는 계약의 신. 그리고 다른 누군가와 계약을 맺게 해 주며 계약을 이행하기도 한다.

보통 클래스의 경우에는 영령과 연관이 돼 있지만, 대부분은 전사, 마법사, 궁수, 사제 이런 식으로 나뉜다. MMORPG처럼 말이다.

물론 독특한 클래스는 존재한다.

학자, 성기사, 블랙 스미스 같은 클래스도 있었고 현찬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계약자라는 클래스는 현찬도 처음 들어보는 생뚱맞은 클래스였다. 그러나 이것이 나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현찬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처음 보는 클래스지만 딱 봐도 좋아 보였으니까.

무엇보다 신급 영령 헤르메스로 인해 생긴 클래스다. 나쁠 리가 없다.

[너무 그렇게 기뻐하지는 마. 아무리 계약이라고 해도 제약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특히나 아직 너에게 격이 맞지 않은 대상을 계약으로 불러낼 경우에는 뭐…… 네가 어떤 고통을 겪는지는 알 거라고 믿어.]

헤르메스의 가호 덕분에 죽지는 않겠지만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 고통을 기억하고 있는 현찬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바르르 떨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그렇지? 그러니까 높은 격을 지닌 영령과 계약을 하려면 너 스스로가 일단 그에 걸맞은 존재로 탈바꿈해야 해. 레벨도 올리고, 스텟도 올려야지. 지금으로는 어림도 없어.]

“그래. 그래야지.”

현찬도 이렇게 모든 일이 쉽게 풀릴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인생은 뭐든지 쉽게 날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모든 것에는 그만한 대가가 필요했고 현찬은 그 대가를 지급할 자격을 얻어야만 했다.

“후. 일단 레벨업이 가장 시급한 일이네. 스텟을 올려야 하니까.?”

[뭐, 그거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기는 한데.]

“어? 정말? 스텟을 올리는 다른 방법이 있다고?”

[물론이고말고.]

현찬은 귀가 솔깃해졌다. 스텟을 올리기 위해서는 레벨업이 필요하다. 물론 스스로 단련을 거듭한다면 당연히 스텟은 오르겠지만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만큼의 효율은 없다. 그런데 다른 방법이 있다고 하니 호기심이 들 수밖에.

“그 방법이 대체 뭔데?”

[그거? 별거 아니야.]

헤르메스는 그렇게 말하며 충격적인 대답을 내뱉었다.

[몸이 적응하고 발달할 때까지 계약을 계속해서 하는 거지.]

“뭐?”

현찬은 순간 이해가 가질 않았다. 계약하기 위해서는 스텟을 올려야 하는데 스텟을 올리기 위해서 계약을 한다니. 뭔가 앞뒤가 안 맞지 않은가. 현찬이 뭔가 싸한 느낌을 받았을 때 헤르메스가 황급히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야. 물론 지금 네 상황에서는 격이 높은 영령과 계약을 맺기 힘들겠지. 하지만, 말했잖아? 격이 높은 영령이라고. 바꿔 말하면 적당한 수준의 영령과는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소리야.]

“그런데 그게 왜?”

[네 스텟이 엄청나게 증가했다는 건 알아차렸지?]

현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레벨이 오른 것 이상으로 자신의 모든 스텟이 상당히 증가했기 때문에 안 그래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게 바로 계약의 효과야.]

“계약의 효과라고?”

[그래! 계약을 맺으면 인간의 몸에, 자신보다 훨씬 더 월등한 영령이 깃드는 거야. 당연하게 그만한 힘이 네 몸에 들어오는 거고. 그것만으로도 현찬이 네 스텟은 증가하게 되는 거지. 특히나 격이 높은 영령과 계약을 맺으면 그만큼 스텟의 증가도 클 거야.]

과연, 그것 때문에 이렇게 스텟이 엄청나게 증가했던 거였다.

“아프지는 않을까?”

[아폴론 형과 같은 경우는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해. 일단 계약을 하더라도 <빙의>까지는 가지 않을 생각이니까. 무엇보다 격이 낮은 영령을 부르면 별다른 위험은 없거든.]

현찬은 헤르메스의 제안이 상당히 끌렸다.

‘내가 지금 헌터 자격증을 얻었다고 해도 나는 아직 F랭크의 풋내기에 불과해. 어디 클랜에서 나를 스카우트 한 것도 아니고 가지고 있는 거라고는 협회에서 초기에 지원해주는 기초적인 무기와 방어구가 전부.’

당연히 그에 걸맞은 게이트를 찾는 것은 현찬에게 있어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리라. 심지어 게이트는 보통 혼자서 클리어하는 것이 힘들다. 당연히 다른 사람과 파티를 맺어야 하는데 이제 막 아카데미를 졸업한 현찬과 함께하려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오히려 계약을 통해서 스텟을 올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어.’

차근차근 스텟을 쌓고 높이다 보면 F랭크 헌터에서 다음 단계인 E랭크 헌터, 운이 좋으면 D랭크 헌터까지 랭크업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실전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중간중간 몬스터 사냥을 나서는 것도 빼먹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무엇보다 몬스터 사냥은 돈이 되니까 빼먹을 생각도 없었지만.

“잠깐만. 그런데 내가 네 도움으로 다른 영령과 계약을 맺었다고 쳐. 그러면 다른 영령이 과연 계약을 맺고자 할까? 이미 헤르메스 너 말고도 다른 영령과 계약을 맺었으니 다른 영령들은 꺼리지 않을까?”

[아, 그건 걱정하지 마. 나에게 다 방법이 있거든.]

“방법이라니…….”

[계약을 맺더라도 단기계약을 맺는 거야.]

단기계약?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이었다.

“단기계약이라니?”

[말 그대로야. 계약을 맺더라도, 바로 그 순간만 짧은 계약을 맺는 거지. 그렇게 하면 영령은 너에게 묶이지 않아서 좋고 너 또한 그 영령과 계속 함께 있지 않아도 괜찮잖아? 다른 영령들도 불편해하지 않을 테고.]

“맙소사.”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현찬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그 모습을 몸속에서 지켜보던 헤르메스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봐 친구!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 나는 계약의 신이라고? 그런 것 정도는 나에게 있어서 일도 아니야. 오히려 장기계약보다는 이렇게 단기계약이 훨씬 더 쉬운 일인걸. 너에게도 좋은 일이야. 신체에 오는 리바운드가 거의 없으니까.]

리바운드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그 끔찍한 고통도 거의 없다는 소리가 아닌가?

현찬의 판단은 빨랐다.

“좋아! 하자!”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이래야 내 계약자지.]

그렇게 현찬과 헤르메스의 영령과 단기계약 맺기라는 기묘한 훈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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