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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무한계약-6화 (6/265)

# 6

6화 각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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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회가 한차례 크게 흔들렸다.

국가 헌터 아카데미 현장 실습 때 발생한 커다란 사고가 바로 그 이유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무사했지만, 부상자가 다수인 데다가 특히나 정신적인 충격을 아주 컸던 사람들은 병원에서 요양 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헌터 아카데미의 현장 실습 사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아카데미에 집중되었다.

아카데미에서는 일단 정보를 차단하고 기자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한편 200여 명의 예비 헌터들의 입을 단속시키는 데 급급했다. 어떻게든 사고가 났던 일을 엎어두고 진실을 은폐하려 든 것이다.

그 행태에 최현호 교관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국장님! 지금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야 최현호!”

옆에서 조마조마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아카데미 원장이 최현호를 말렸다.

“아. 최현호 교관. 나 귀 안 먹었으니까 조금 목소리를 낮춰서 말해. 지금 밖에 방송국 기자들 쫙 깔렸어. 여기서 자칫 했다가 소리라도 새나가면 우리 다 훅 가는 거 몰라?”

최현호의 눈앞에서 시끄럽다는 듯이 귀를 후비는 자는 국가 헌터관리부에서 직접 찾아온 엄성태 국장이었다. 그는 정부 산하기관인 헌터 아카데미에서 사고가 터지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와서 사건을 덮으려는 주범이었다.

“지금 이대로 진실을 숨기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일단 전 국민에게 저희의 실수를 알리고…….”

“최현호 교관. 아니, 현호야. 솔직히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

엄성태가 예전처럼 이름으로 부르자 최현호는 입을 다물었다.

둘은 예전부터 서로 안면이 있던 사이였다.

“상황은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고서도 읽어봤어. 그래. 네 말대로 한다고 쳐. 예기치 못한 사고가 터져서 심연의 괴물 한 마리가 날뛰었고, 거기에 휘말린 아카데미 소속 예비 헌터들이 정신적 충격과 신체의 상해를 입었다. 교관들도 날뛰는 괴물들과 싸우면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그냥 이렇게 다 말해? 다 같이 옷 벗자고?”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야, 현호야. 지금 만약 우리가 진실을 알리면, 뭐 사람들이 양심 지켰다 잘했다 손뼉 쳐줄 것 같아? 헌터 아카데미의 안정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감사까지 나올 거야! 저 헐뜯기 좋아하는 기자들은 온갖 루머를 만들어서 퍼뜨릴 테고 그렇게 되면 헌터 아카데미의 기능이 마비될 수도 있어.”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매년 헌터들을 배출한 기관이 마비된다면 문제가 생기고 만다. 정기적으로 마석을 공급해주는 헌터들의 숫자가 줄어들면 국가 경제에도 큰 타격이 가고 만다.

게다가 아카데미는 국가 산하의 기관이다. 특히나 아카데미 설립에 도움을 주었던 엄성태 국장의 입장도 난처해지고 만다.

“…….”

최현호 교관은 입을 다물었다. 그도 알고 있다. 진실이 바깥으로 흘러나갈 경우 일어날 파장을. 엄성태의 말도 옳은 부분이 있었다. 더 큰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여기서 덮자. 그걸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결국에는 다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고 하는 짓이 아닌가.’

이곳의 원장도, 엄성태 국장도 결국은 자기 밥그릇을 잃을까 봐 진실을 감추려고 드는 것뿐이었다.

“아 교장은 나가 있게나.”

“아, 예.”

지금 사태를 간을 졸이며 지켜보던 원장은 오히려 축객령이 고마운지 화색을 지으며 방을 나섰다. 방 안에는 오직 최현호와 엄성태 둘만 남았다.

“그보다 현호야. 그 불길과 빛을 일으켰다는 사람은 찾았냐?”

“아니오. 일단 최선을 다해서 찾고는 있지만, 소식조차 없습니다.”

“그 빛이라는 거, 혹시 성녀 <잔 다르크>의 영령 아니야?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데.”

엄성태의 말에 최현호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

“성녀 <잔 다르크>와는 그 빛의 방향성 자체가 달랐습니다. <잔 다르크>의 빛은 다친 사람들을 감싸 안아주는 따스한 빛이라면, 그것은 적에게 자비가 없는 뜨거운 빛이었습니다.”

최현호 교관은 아직도 그 광경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다만 너무나도 눈 부신 빛 때문에 그 빛을 일으킨 장본인이 누구인지 제대로 살필 수 없다는 게 아쉽다면 아쉬운 일이었다.

그 이후로 저장된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재생해 보았지만, ‘역시’라고 해야 할까. 새하얀 빛무리만 보일 뿐 찍힌 것은 없었다.

“끄응. 골치 아프군. 최소 신급 영령이야. 그 신급 중에서도 상당히 상위의. 그 사람을 우리가 먼저 잡아야 하는데 단서조차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로군.”

“일단 예비 헌터들 중에서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추려서 명단을 만들어 봤습니다만, 아무리 살펴도 저희가 보았던 빛을 낼 만한 영령은 없었습니다. 그나마 가능성이 큰 영령이 오를레앙의 성녀 <잔 다르크>였죠.”

“역시 아닌가?”

“애석하게도 아닙니다.”

아무리 <잔 다르크>가 대단하다고 해도 결국 영웅급 영령이다.

심연의 통로에서 사고가 났을 때 보았던 빛은 누가 봐도 신급 영령의 힘. 전직 베테랑 헌터였던 최현호 교관은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것은 분명히 신급 영령이었다.

“만약에 그게 신급 영령이 확실하다면 여기서 반드시 찾아야 해. 신급 영령은 해외를 포함해도 손에 꼽힐 정도다. 헌터 등급 S 따위는 껌으로 볼 정도라고. 나는 어떻게든 정보를 막을 테니까 현호 너는 최대한 그 신급 영령의 주인을 찾아라.”

“…… 예. 알겠습니다.”

엄성태가 저렇게 열을 올리는 것은 아무래도 이번 아카데미 사고 발생으로 좁아진 자신의 입지를 어떻게든 다시 살리기 위해서이리라. 즉, 순전히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저렇게 나서는 것이다. 최현호는 그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또한 신급 영령을 가진 자에게 볼일이 있었기 때문에 알겠다며 방을 나섰다.

최현호는 짧게 친 머리를 긁적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매우 시끄러워지겠군.”

아무리 정보를 은폐한다고 해도 그 광경을 직접 본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야기는 새어나갈 거고 정보력이 뛰어난 헌터 클랜의 귀에 들어갈 것이다.

결국, 헌터 클랜에서 어떻게든 신급 영령을 가진 헌터를 영입하기 위해 사달 나리라.

아무렴. 신급 영령은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신급 영령 중에서도 거의 최상위 수준의 힘이었다. 그 정도라면 한국을 넘어서서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몇 없을 정도.

‘대체 누가 주인인지 도저히 알 방법이 없군.’

이백 명 중 한 명이 분명한데 막상 찾으려고 하니 보이지 않았다.

최현호는 막막함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

내가 정신을 차리고 본 것은 새하얀 병원의 천장이었다. 나는 눈을 몇 번 껌뻑이고는 내가 지금 침대에 누워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뭘까. 나는 대체 왜 여기에 누워있는 걸까.

잠시 정신을 잃기 전의 일을 회상하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맞다. 나, 기절했구나.

상반신을 일으키려는 순간 온몸을 강타하는 무시무시한 고통에 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침대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끄어어어. 어, 엄청 아파. 너무 아프잖아. 전신 근육통에 걸려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 정신이 드나 보네. 계약자.]

“페네오 …… 아니. 헤르메스?”

[응. 내 이름을 기억하는 거 보니까 정신적인 부분에서는 멀쩡하구나.]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말해줄 수 있을까?”

아폴론이 강림한 이후부터는 도저히 내 머리로 상황을 따라가기 벅찬 일만 가득했다. 그런 내 심란한 마음을 느꼈는지 헤르메스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 상황이 여간 웃긴 게 아닌가 보다.

[몸 상태가 그런 건 아마 무리한 빙의로 인한 리바운드일 거야.]

“잠깐. 빙의라고?”

[그래.]

“차용을 뛰어넘어서 바로 빙의를 했다고?!”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장 기초적인 단계이자 영령과 함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적인 헌터들이 하는 것이 바로 <차용>이다.

<차용>은 힘을 빌리는 것으로 자신과 계약한 영령의 힘과 권능, 무기를 빌려서 사용하는 능력이다. 대부분의 헌터가 이 <차용>이라는 능력을 자주 사용한다.

<차용>을 마스터하면 그다음이 바로 <빙의>다.

영령의 혼을 직접 몸에 집어넣어 영령이 직접 사람의 몸으로 싸우는 것이다. 이 <빙의>에 경우에는 싱크로율이 따로 존재하는데 이게 높으면 높을수록 영령의 힘을 더 높이 끌어올릴 수 있다.

그다음은 <소환>이다.

<소환>은 말 그대로 계약을 맺은 영령을 직접 현세로 불러올 수 있다. 언제나 영체로 활동하는 영령에게 육체를 제공하고 함께 싸울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좋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소환>으로 생성된 영령은 본신의 능력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지만 그런데도 강하다.

그리고 마지막은 <강림>

영령과 계약자가 하나가 되는 것.

그야말로 모든 헌터들이 꿈꾸는 궁극의 단계였다.

그런데 내가 <빙의>를 했다고 한다. 그것도 태양의 신 아폴론과 <차용>조차 없이.

이는 기초적인 과정도 없이 바로 숙련자의 절차를 밟았다는 소리가 아닌가.

[무리한 빙의로 마나가 다 고갈됐어. 심지어 육체에도 무리가 심하게 갔고. 솔직히 죽지 않은 것만 해도 충분한 기적이라고 봐도 좋을걸? 신이 인간의 몸으로 빙의했으니까 오히려 이 정도에 그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려나.]

허. 설마 죽을 정도였다고?

그보다 몸이 이렇게나 아픈 것은 억지로 맺은 계약과 <빙의>의 영향인가?

8주간의 교육 과정에서 들어본 적이 있었다. <빙의>를 잘못 사용한 헌터의 힘이 폭주한 나머지 온몸의 구멍에서 피를 뿜으며 죽었다는 사실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에이.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도 너는 신인 나의 가호가 있으니까 죽거나 하지는 않을 거야.]

“…….”

나는 얌전히 누우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잠시 심호흡을 하니 몸 전체를 달리던 격통이 어느 정도 줄어든 느낌이었다. 그리고 조금은 심란했던 마음이 가라앉자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하게 됐다.

“헤르메스. 묻고 싶은 게 있어.”

[응? 뭔데?]

“왜 나를 도와준 거야?”

[뭐? 왜 도와줬냐니. 당연히 계약자니까 도와줬지.]

“아니, 너는 지금까지 나에게 이름을 숨기고 힘도 숨겼잖아. 물론 그것을 질책할 마음은 없어. 진짜야. 단지 궁금해서 그래. 너는 신이고 나는 인간이잖아. 너에게 있어서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일 텐데 왜 그렇게까지 해서 날 도와준 거야?”

[흐음.]

헤르메스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잠자코 헤르메스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시간이 엄청 느리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헤르메스가 말문을 열었다.

[네 말이 맞아. 나는 솔직히 처음에 네가 나를 불러냈을 때 완전히 너를 신뢰하지 않았어.]

“왜?”

[그야 너는 인간이니까. 욕심이 많고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이기적인…… 그런 인간.]

하지만, 하고 헤르메스가 말을 이었다.

[내가 본 너는 달랐어. 분명히 남들은 포기했을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어. 내가 힘을 숨기고 페네오스라는 가명을 댔을 때도 너는 나에게 화조차 내지 않았지. 그저 본인의 부족함이라 생각하고 더 노력했을 뿐이야.]

“그, 그런가?”

[그렇게 너라는 인간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지. 그리고 바로 오늘. 모두가 공포에 질렸을 때 누가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나서며 싸우던 네 모습을 보며 결심했어. 아, 이 녀석이라면 정말 가능하겠구나……라고.]

“내가 알던 헤르메스와는 조금 이미지가 다르네.”

내 말에 헤르메스는 오히려 화를 내기는커녕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네가 생각하는 내 이미지는 어떤데?]

“으음. 장난꾸러기에 영악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성격? 솔직히, 네가 만약에 다른 헌터와 계약을 한다면 더 교활하고 똑똑하고 잔머리 잘 굴러가는 사람과 할 거로 생각했어.”

[흐음. 그래? 뭐, 네 말이 맞는 부분도 있기는 해. 잔머리 잘 굴러가는 사람이랑 같이 지내면 재미있겠지. 그래도 나는 결정적으로 네게 잘 맞는다고 생각해.]

“왜?”

헤르메스는 내 질문을 바보같이 여기는지 깔깔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뭐, 머리 좀 좋은 악동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하면서 잔머리를 잘 굴리는 사람도 좋지만…….]

‘그래도’ 하고 헤르메스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우직한 녀석도 마음에 들거든. 특히나, 너처럼 이 시대에 사라진 <영웅>과 비슷한 부류.]

헤르메스는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이 시대에 사라진 과거의 영웅과 비슷하다고.

[난 그런 게 정말로 싫지 않거든.]

그렇게 말하는 헤르메스는 어딘가 매우 만족스러운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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