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4화 (4/265)

# 4

4화 아카데미 (2)

_

현장 실습은 별다른 사고 없이 무난하게 흘러갔다.

있는 일이라고는 아직 마음이 약한 몇몇 여성 예비 헌터들이 심연의 약화한 몬스터와 싸우기를 많이 꺼린다는 점이다. 누가 보면 헌터가 왜 그런 걸 따지냐고 묻겠지만 나는 이해한다. 심연의 몬스터는 비위가 좋다고 자부하는 내가 봐도 징그러우니까.

분명히 우리가 상대하는 놈들은 심연에서도 약하고 심지어 통로로 와서 더 약화한 녀석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놈들은 생긴 것이 마치 검붉은 살덩어리에 촉수까지 달려 있으니 여자들이 못하겠다고 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으으 우웩. 징그러워.”

“아오, 대체 왜 이런 놈들과 싸워야 하는 건데.”

“거기! 잡담하지 말고 전위를 지켜!”

건장한 남자들도 심연의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일반 몬스터라고 하면 그래도 무섭고 위압감이 있기는 하지만 징그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심연의 괴물들은 거기에 더해서 징그럽고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오니 훨씬 더 심각하다.

특히 그 꿈틀거리는 촉수를 흔들며 접근하는 모습은 바퀴벌레 수백 마리가 동시에 기어 다니는 착각을 줄 정도로 혐오감이 들었다. 꿈에 나올까 봐 무서울 정도다.

페네오스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혀를 내두르며 질색했다.

[어우. 징그러워. 뭐 이런 애들도 다 있어?]

“세상은 넓으니까.”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보기엔 징그럽지만, 난도만큼은 이 녀석들이 우리 수준에서 가장 적당하다고 하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이 계속해서 불평불만을 내뱉는 동안 묵묵하게 몬스터들을 사냥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어떻게 싸우나 걱정도 들었지만, 생각보다 어려움은 없었다.

가진 검으로 꿈틀거리는 살덩어리 하나를 찔렀다. 놈은 촉수를 휘둘러 발악을 했지만 나는 가볍게 뒤로 몸을 뺀 후에 재차 달려들어 놈의 몸통에 칼을 휘둘렀다.

촤악!

녀석의 검은 피가 내가 입은 방어구에 튀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순간의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녀석을 붙들고 늘어졌다.

쿠웨어으윽!

놈은 내는 소리마저도 정말 끔찍했다. 아주 많이 끈적거리는 가래가 잔뜩 쌓인 소리를 내지르는 녀석은 이내 바닥에 그 진득한 살덩어리를 눕혔다. 나는 그 시체를 휘저어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마석을 채취했다.

역시 약한 놈이라 그런지 마석도 작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 정도. 그런데 이런 게 바깥에서 몇십만 원이 넘는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어차피 여기서 얻는 것들은 모두 아카데미 귀속이니 조금 아쉽기도 하고.

후우. 그래도 사냥하는 데 나쁘지는 않네.

처음 느꼈던 미칠 것 같은 불안감은 아무래도 나의 착각이었나 보다.

&

“흐음. 나쁘지 않군.”

아카데미의 대표 교관인 최현호는 첫 실전임에도 열심히 싸우는 예비 헌터들을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한 인상에 언제나 예비 헌터들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얼차려를 주는 그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이 맡은 직책에 자부심이 있고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최현호 교관님, 표정이 좋아 보이십니다.”

“아. 이번 기수는 그래도 괜찮은 재목이 많이 보여서 말입니다. 저희 가르침을 잘 따라와 준다고 생각하니 기쁨이 절로 나오는군요.”

“하하. 그러게요. 특히나 이번 기수에는 영웅급 영령이 역대 기수 중에서도 많이 나타났으니 풍년이라고 불러도 되겠네요!”

최현호와 대화하던 교관은 호탕하게 웃었다.

“아 참. 최현호 교관님은 그 애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애라면 누굴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 그 있잖습니까. 유일한 언더 클래스를 얻은 청년이요.”

“아…….”

동료의 말에 최현호는 현찬의 존재를 떠올렸다. 알다마다.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이번 기수에서 유명한 거로 따지자면 단연코 한 손안에 드는 인물인데.

다섯 기수에 하나가 나올까 말까 언더 클래스가 나왔다.

유니크 클래스면서도 일반 클래스보다 더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계약자라는 클래스를 가졌으면서 심지어 헌터로서의 능력, 가능성은 F랭크밖에 안 된다.

그야말로 운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교관들조차 동정을 금치 못하는 인물!

그게 바로 강현찬에 대한 주요 평가였다.

하지만 최현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강현찬이라는 예비 헌터에 대해 더 깊고 더 세심하게 살폈다. 그렇기에 남들이 보지 못했던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제가 아는 강현찬 헌터는…… 누구보다도 부족함을 알기에 노력하고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는 현찬이 남들 몰래 괴로워하고 절망하는 것도 보았다. 우연히 밤중에 순찰하다가 보았던 현찬의 눈물. 그러면서도 다음 날이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으면서 남들보다 배는 노력을 했던 그의 모습.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다른 누구보다도 더 크게 성공하리라 믿습니다.”

“허. 설마요. 아무리 노력해도 태생적 한계는 극복할 수 없다는 걸 알지 않으십니까.”

“F랭크에서 B랭크까지 간 사례도 있습니다. 그리고 언더 클래스는 그 수가 극히 적다 보니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영령이 가진 잠재력이 깨어나게 된다면 다른 클래스가 생길 수도 있죠. 미래는 모를 일입니다.”

“흠. 최현호 교관님은 상당히 그 청년을 높게 평가하는군요. 뭐, 저도 개인적으로 그 청년이 잘 되길 바라고는 있습니다. 적어도 자신이 헌터라고 거들먹거리는 놈들보다는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예의가 바른 사람이 좋죠,”

“제가 장담합니다. 저 청년은 분명히 크게 성공할 겁니다.”

수년 동안 아카데미의 교관으로서 사람을 봐온 그의 직감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흐음. 그보다 상당히 무난하게 끝날 것 같네요. 이번에도 사상자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언제나 같은 일 아니겠습니까. 이번에도 무사히 끝나가니 어서 휴가라도 나가고 싶군요.”

그 순간이었다.

쿠와아악!

어디선가 거대한 고함이 들려온 것은.

&

“뭐, 뭐야?”

“무슨 소리야? 방금?”

막 몬스터 사냥을 끝내고 쉬고 있던 사람들은 통로를 가득 메우는 거대한 굉음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랬다. 무슨 폭탄이라도 터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가 났으니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몸에 힘이 쭉 빠져서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 가까스로 신체의 균형을 잡아 꼴사납게 엉덩방아 찧는 불상사는 면했다.

‘이, 이건 대체?’

단순히 포효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겁에 질린 것처럼 덜덜 떨렸다. 나는 오른손으로 떨리는 왼팔을 부여잡으며 진정시켰다. 나는 그나마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더했다.

“으아아. 모, 몸이 말을 안 들어!”

“흑흑! 무서워! 엄마! 엄마아!”

“망할!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어떤 새끼가 장난치는 거야! 다 죽여 버리겠어!”

상황은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몸이 마비된 사람, 공포심에 주저앉아 울먹이는 사람, 그야말로 미쳐서 무기를 휘두르며 날뛰는 사람. 200여 명의 예비 헌터들 중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찾기 힘들 정도로 주변은 아수라장이었다.

교관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야! 지금 무기 휘두르는 놈부터 제압해!”

“힐러들은 상태 이상 회복시키고 다친 사람들 치유해!”

“탐색계! 지금 무슨 일인지 파악해 둬!”

교관들이 어수선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사태는 진정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조금 전까지 우리들이 쉽게 사냥했던 촉수 괴물의 수가 점점 늘어났고 놈들이 매우 포악하게 변하기까지 했다.

[이봐. 계약자.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거 같은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어?’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조금 전 들려온 외침 있지? 거기서 무언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어. 느낌만 봐도 상당히 좋은 감정을 품고 오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젠장.

대체 뭐가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은 알겠다.

교관들은 혼란에 빠진 훈련생들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위험하다. 뭔가 해야 했다.

그 순간 나의 눈에는 성녀 <잔 다르크>의 주인인 서다은이 들어왔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멀쩡해 보였지만 두 눈동자에는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서다은 씨? 혹시 지금 바로 영령의 힘을 발휘해서 주변 사람들의 정신 이상 상태를 치료해줄 수 있습니까?”

“아, 네……?”

“정신 차리세요. 지금 상황을 보면 뭔가 일이 터졌습니다. 한시라도 빠르게 사태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어요. 서다은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상태 이상 해제 가능하죠?”

“가능…… 해요.”

다은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 영웅급 영령이라면 그 힘은 의심할 여지가 없겠지.

“그럼 부탁드립니다. 서다은 씨의 도움이 절실해요.”

내가 그 말만 남기고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자 그녀가 내 손을 붙잡았다. 자기도 모르게 한 행동인지 그녀가 멋쩍게 손을 놓았다.

“아, 저 그쪽은요?”

“저는…….”

통로 너머에서 들려온 거대한 굉음과 함께 멀리서부터 심연의 괴물들이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내 눈에 보였다. 다가오는 놈들은 조금 전까지 우리들이 사냥하고 있던 촉수가 달린 살덩어리. 놈들은 촉수를 꾸물꾸물 움직이며 이곳을 향해 빠른 속도로 접근 중이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죠.”

나는 치유 능력도 없다. 상태 이상을 회복시킬 능력도 없고, 누군가를 지휘할 능력도 없다.

그저 지금 다가오는 몬스터들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것밖에.

그것이 F랭크이자 언더 클래스인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으니까.

“으아아아!!”

나는 검을 뽑아 들고 촉수 덩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놈들은 생긴 건 징그럽지만 하는 행동은 매우 단순하다. 공격에 일정한 패턴이 있으며 어디를 공격할지 특유의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읽기 쉽다.

방심만 하지 않으면 충분히 혼자서도 쓰러뜨릴 수 있다.

촤아악!

검을 휘둘러 놈들을 벤다. 한 놈에 필요 이상의 시간을 끌지 않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속전속결로 놈들을 쓰러뜨렸다. 한 놈이 죽으면 나는 즉시 다른 놈을 향해 뛰어들어 검을 휘둘렀다.

[계약자. 지금 위험해 보이는데 그냥 도망치자. 응?]

‘안 돼. 다른 사람들이 위험하잖아.’

[저런 것들이 어떻게 돼도 상관은 없잖아. 특히 계약자는 약하니까 몸을 피해도 아무 말 하는 사람 없을 거야.]

‘…….’

페네오스의 말은 옳았다.

나는 약하니까.

적성도 F랭크가 나오고 클래스조차 없는 언더 클래스인 내가 대체 뭘 할 수 있겠는가.

지금 내가 하는 행동도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발버둥이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서 언더 클래스라는 이유로 도망을 치면 나는 평생 그 꼬리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증명하고자 한다. 아무것도 아닌 클래스라고 해도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에휴. 못 말리는 계약자네.]

내가 포기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읽었는지 페네오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들을 습격하려는 괴물들부터 차근차근 처리해 나갔다.

하지만 놈들의 숫자는 너무 많았고 나는 고작 개인일 뿐이다. 다른 전투계 교관님들이 나서서 싸우고 있지만 그런데도 수적 열세는 극복할 수 없었다.

“허억! 허억!”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온몸이 땀에 절었고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검을 든 팔이 아래로 축 처졌다. 이대로 쉬고 싶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했잖아?

이제 나도 좀 쉬어도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려던 순간, 촉수 괴물이 바닥에 쓰러진 강윤이에게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강윤아!”

나는 있는 힘껏 검을 집어 던졌다. 빠르게 회전하며 포물선을 그리던 장검은 그대로 괴물의 몸뚱이에 박혀 들었다. 검은 피가 튀고 놈이 고통에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나는 빠르게 녀석에게 접근해 몸에 박힌 검을 옆으로 그어 숨통을 끊었다.

나는 즉시 정신을 잃은 강윤의 몸을 흔들어 깨웠다.

“야! 얀마! 최강윤! 정신 차려!”

“어, 형? 지금 대체……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정신이…….”

“그래 인마. 정신 차렸으면 어서 일어나! 지금 긴급 상황이다! 어서 도망쳐야 해!”

나는 비틀거리는 강윤의 어깨를 부축해주었다. 어우씨, 덩치도 커서 그런지 더럽게 무겁네!

“나는 또 형한테 도움만 받았네. 나는 해준 것도 없는데.”

“해준 게 뭐가 없어 인마. 정 그렇게 미안하면 나중에 잘될 때 나 잊지나 마라.”

“내가 형을 어떻게 잊어? 내 생명의 은인인데.”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거기 둘! 어서 이쪽으로 와!”

멀리서 교관들이 우리를 불렀다.

“어서 가자.”

“어, 응. 그보다 형.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지금 빨리 도망치지 않으면 더 위험한 일이 벌어질 거야.”

특히 저 멀리서 들려왔던 엄청난 포효.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잡아 왔던 촉수 덩어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몬스터가 틀림없었다.

“교관님! 여기 부상자입니다!”

“그래 알았다. 이봐! 여기 부상자 한 명 더 있어! 어서 데려가!”

강윤은 들것에 실려서 나갔고 나는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서다은은 내가 말한 대로 잘 해줬는지 공포라는 상태 이상에 빠진 사람들이 모두 다 회복해서 빠르게 대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때였다.

쿵! 쿵! 쿵!

땅이 조금씩 진동하더니 저 멀리서 검고 거대한 실루엣이 보이던 것은.

그것은 우리가 잡았던 녀석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놈이었다. 생긴 것은 거대한 갑각류 벌레처럼 생겼다. 그런데 높이만 7m 정도는 되었고 거대한 여섯 개의 다리로 기어오고 있는데 등 뒤에는 수백 가닥이 넘는 촉수들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