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3화 (3/265)

# 3

3화 아카데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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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8주는 상당히 힘들었다. 일단 군대의 훈련소와 비슷한 느낌으로 교관들이 나와 300명의 예비 헌터들을 쥐 잡듯이 잡았다. 나이가 많아도 자비란 없고 여자라고 봐주는 것도 없었다.

그리고 역시 힘든 것은 훈련 그 자체였다. 몬스터들에 관한 공부 또한 필요했지만, 모의 전투, 생존 능력 강화, 전투 방법 배우기 등등. 헌터로서 앞으로 지낼 때 필요한 모든 것들을 8주 동안 욱여넣으니 당연히 지칠 수밖에.

다만 군대의 훈련소와 다르게 간식거리도 사 먹을 수 있으며 바깥의 가족과 통화도 가능하다. 이런 점만 보면 편의적인 시설은 이 헌터 아카데미가 더 압도적이다. 덕분에 나 또한 이 힘들고 고된 훈련을 견뎌 낼 수 있었다.

물론 훈련을 참지 못하고 중간에 퇴소하는 사람 또한 존재했다. 300명으로 시작했던 사람들은 그 수가 팍 줄어들어서 어느덧 200명밖에 남지 않았다. 헌터라는 직업은 결국 목숨을 걸고 몬스터와 싸우는 위험을 가진 만큼 훈련도 빡세게 굴린 결과였다.

나는 여기서 물러서면 정말로 끝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시간은 바쁘게 흘러갔고 8주라는 시간은 정말 눈 깜짝할 새 다가오고 말았다.

“후유. 이제 거의 다 끝나가는구나.”

“형. 수고 많았어요.”

내가 휴게실 의자에 축 늘어지자 내 옆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시원한 캔 커피를 건네주었다.

“아, 고맙다. 강윤아.”

“에이. 뭘 이런 걸 가지고 그래요. 형이 저 도와준 거 생각하면 제 건 아무것도 아니죠.”

내 옆에서 실실 웃으며 대답하는 녀석은 최강윤.

나와 같은 동기이자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다. 다만 덩치는 나보다 훨씬 더 크고 턱선도 굵다. 심지어 몸에는 근육이 가득해서 그야말로 바위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든든했다.

친해진 계기는 별거 없었다. 그저, 훈련 초기에 힘은 좋지만, 여러모로 융통성이 부족했던 강윤이 훈련을 따라가기 힘들어서 내가 말동무도 해 주고 몇 가지 도움도 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성격도 잘 맞아서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중이었다.

참고로 이 녀석의 영령은 그 유명한 <삼손>이다. 그 <삼손>이 맞다. 맨손으로 사자도 찢어 죽이고 탈모가 오면 힘이 약해진다는…… 크흡! 그 삼손.

그나마 다행인 건 강윤이는 생긴 건 곰인데 성격이 매우 온순했고 심지어 모발도 풍부하다는 거다. 다혈질인 <삼손>의 성격을 걱정할 필요는 없으리라.

아마 이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순간 사방에서 강윤이에게 명함이 표창처럼 날아오겠지.

“와. 진짜 이제 여기도 곧 끝이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형은 안 그래요?”

“글쎄다. 아직 마지막 시험이 하나 남아 있잖아. 현장 실습.”

현장 실습.

예비 헌터들이 치러야 할 아카데미의 마지막 시험이다.

매체 속에서만 보던 몬스터와 실제로 싸워야 하는 실전 테스트. 나는 그것이 못내 걱정이 들었다.

“형.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교관님들도 저희랑 같이 가시고 게다가 직접 몬스터가 서식하는 차원이 아니라 ‘통로’로 가는 거잖아요. 그러니 괜찮을 거예요.”

“뭐, 그러긴 하겠다.”

통로.

몬스터가 서식하는 차원과 내가 사는 지구의 차원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 사람들은 그것을 통로라고 부른다.

통로는 지구의 환경과 몬스터가 사는 차원의 환경이 반쯤 뒤섞인 공간인데 몬스터가 서식하기는 해도 상당히 약해서 우리 같은 예비 헌터들이 가서 실전 경험을 키울 겸 사냥하기 딱 좋은 수준이었다.

심지어 몬스터를 잡는데 베테랑인 전직 헌터들이자 현직 교관들도 있으니 위험한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헌터 아카데미에서 사고가 터진 적이 없다는 것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후우. 그러면 뭐하겠냐. 나는 여기 졸업하면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 그래도 형은 필기 만점의 수석이잖아요? 나름 다른 곳에서 신경 써주지 않을까요?”

필기시험 만점.

이걸 맞겠다고 내가 얼마나 머리 싸매고 공부를 했는가. 헌터의 힘을 미약하게나마 각성하면서 강화된 육체로도 코피를 쏟을 정도로 공부를 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고 결국 필기 만점이라는 타이틀을 기록했다.

누가 보면 대단하다고도 하겠다.

실제로 대단한 것도 맞다. 나름 머리도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만점을 맞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결국 F랭크의 언더 클래스다.

지식이 풍부해? 머리가 좋아?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몬스터와 체스로 싸울 것도 아닌 이상 결국 이 필기시험이라는 건 큰 의미가 없었다.

“형.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다 잘될 거예요.”

그래도 좋게라도 말해주니 고맙기라도 하다.

“이열~ 뭐야. 패배자가 왜 이런 곳에 있어?”

아, 저 새끼 또 왔네.

나는 녀석이 들리지 않도록 혀를 찼다.

나를 보며 재수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시비를 거는 녀석의 이름은 백한겸.

노랗게 염색한 머리에 귀까지 뚫고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껄렁거리는 태도를 보이는 양아치다.

나는 녀석을 무시했다. 원래 저런 녀석의 도발에 발끈해서 오히려 달려드는 것은 놈이 원하는 짓이다. 그냥 쌩 까고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나는 백한겸이 껄끄럽다.

왜냐하면, 이 녀석은 B랭크에 계약한 영령이 무려 <조홍>인 자타 공인 엘리트였기 때문이다.

삼국지에서 조조의 충신으로서 이름을 날린 <조홍>은 지닌 무력은 약하지만, 그 업적으로 인해 영웅급 영령에 등극한 존재다. 물론 영웅급 중에서도 하위권이지만 그런데도 영웅급이라는 게 중요했다.

대체 그런 놈이 뭐가 아쉬워서 나 같은 F랭크 나부랭이를 건드는지는 모르겠지만 놈을 볼 때마다 나라는 인간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만다.

“어쭈~ 이거 봐라. 야. 내 말 씹냐?”

녀석이 조금 언성을 높이며 말하자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여성 한 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성녀 <잔 다르크>의 주인인 서다은이다.

“저기. 조금 조용히 해주실래요? 저희가 대화 나누는 거 안 보이세요?”

“어? 다은 씨? 이야 여기서 또 뵙네요. 하하 이거 참. 저희가 좀 인연이 있나 봐요?”

녀석은 다은이에게 접근해 마치 우연인 척 말을 걸며 수작을 부리려고 했다. 저거 속이 너무 훤히 보이는 거 아닌가. 눈빛이 번뜩거리는 게 아주 역겹기 짝이 없었다.

딱 봐도 각이 나왔다. 관심이 있는 여자가 근처에 있으니까 일부러 앞에서 센 척을 한 거다. 무슨 초등학생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요.”

“에이~ 그런 섭섭한 말씀 마시고. 같은 영웅급 영령과 계약을 맺은 사이 아닌가요. 다은 씨. 혹시 아카데미 끝나고 어디 시간 있나요? 제가 근사한 레스토랑 한 곳을 아는데 같이 식사라도 하지 않으실래요?”

“아니요, 죄송하지만 선약이 있어서요.”

하지만 역시 얼음 공주 서다은답게 칼로 싹둑 자르듯이 한겸의 제안을 거절했다. 녀석은 입가를 씰룩거리며 움찔했지만, 미소를 잃지 않았다. 지금까지 거절을 너무 당해서 적응이라도 됐겠지.

다만, 딱 봐도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것이 어지간히도 자존심이 상한 듯싶었다.

“아아~ 그러시구나. 그렇다면 혹시 그다음에는 여유 있으신가요?”

“아니요. 그때도 바빠요.”

“그다음은요?”

“바쁠 예정이라서.”

“푸흡! 크흐흐흡! 바쁠 예정이래.”

“킥킥! 아이고 배야.”

서다은의 원투 펀치에 이은 마지막 어퍼컷에 나와 강윤은 결국 참지 못하고 옆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 이……!”

백한겸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더니 이내 나를 죽일 듯이 쏘아보았다. 이 녀석은 매번 이랬다. 자신이 다은이에게 수작을 부리고 칼같이 거절당하면 나에게 화풀이를 하듯이 쏘아보는 것이었다.

녀석에게 있어서 나처럼 F랭크에 언더 클래스는 화풀이 대상이겠지.

“흥! F랭크 머저리 새끼.”

녀석은 그 말을 남기고서 휴게실을 나섰다. 저놈. 지난번에 내가 필기시험에서 1등을 한 이후로 유독 나를 붙잡고 늘어지는 경향이 강했다. 공부엔 자신이라도 있었나? 자기가 모자라서 성적 안 나온 걸 왜 남에게서 화를 낼 이유를 찾는지 원.

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휴. 저거 진짜 들먹거리는 거 보면 뒤통수를 확 때려 주고 싶어요.”

강윤은 백한겸이 휴게실에서 나가자마자 이를 갈며 말했다.

“야, 됐다. 네가 때리면 같은 튼튼한 헌터라도 살인 미수야.”

맨손으로 사자도 찢어 죽이는 힘을 지닌 <삼손>인데 가볍게 툭 친다면 진짜 억하고 죽는다.

그런데 사실 나도 강윤과 같은 생각을 생각한다. 백한겸 녀석은 인성이 원체 되먹지 못한 녀석이라 그런지 남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매우 심했다.

특히나 자기보다 낮은 등급의 예비 헌터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짓밟으며 자신의 자존감을 세우는 쓰레기였다.

뒤통수를 때려? 나 같으면 아구창을 날리겠다.

“내버려 둬. 원래 저런 놈이야.”

“저런다고 자기는 아카데미 수료 끝나면 바로 화랑 클랜으로 간다며 으스대기까지. 어휴. 대체 왜 저런 양아치한테 헌터 적성이 높게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형이 저 등급을 가져야 하는데.”

강윤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자랑은 아니지만, 이 아카데미에서 나 강현찬이라는 인간의 평가는 상당히 좋다. 언제나 웃고 노력하며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누구와도 두루두루 사이좋게 지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헌터 랭크를 F랭크였고 클래스는 쓰레기였다.

둘은 그것이 안타까운지 자주 그런 이야기를 꺼내고는 했다.

나는 이제 너무 많이 들어서 무덤덤해졌다.

그냥 앞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카데미 생활을 하면서 잊고 지냈지만, 그 끝이 다가오자 눈앞에 닥친 현실이 드디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을 졸업한다고 해서 나는 과연 헌터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럴 리가. 남들에게 비웃음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나는 강윤이 준 캔 커피를 따서 마셨다.

내 손의 온기 때문에 미지근하게 식은 캔 커피의 맛이 유난히 쓰게 느껴졌다.

&

“오늘은 마지막 훈련이다. 마지막이라고 해서 모두 마음 놓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라! 알겠냐!”

“네!”

갑옷을 차려입고 무기까지 갖춘 교관의 말에 200명의 예비 헌터 모두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교관은 그 태도가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게이트의 앞에 섰다.

희고 검고 회색의 빛이 이리저리 뒤섞인 차원의 문. 저곳이 바로 우리가 마지막으로 가야 할 실습의 장소였다. 이제 저곳에 들어가면 몬스터와 싸운다. 우리가 지금까지 영상으로만 보았던 놈들과 실제로 마주해야 했다.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켰다. 모두 워낙 긴장해서 그런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간다!”

가장 먼저 교관들이 앞장서서 차원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먼저 들어가서 안전을 확보한 뒤 들어와도 좋다고 신호를 보냈다. 200명의 예비 헌터들이 게이트를 통과했다. 나 또한 기본적인 무구를 챙겨서 그 뒤를 쫓았다.

게이트를 넘어서자 묘한 기분이 몸을 집어삼켰다.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무겁다.

타 차원으로 가면서 겪게 되는 ‘부하’라는 현상이었다.

몇몇 예비 헌터들은 적응이 되지 않은지 자리에 털썩 주저앉거나 무릎을 꿇기도 했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헛구역질까지 한다. 나 또한 머리가 어질했지만 견뎌 냈다.

“모두 부하 효과를 최대한 진정시키도록. 원래 처음 게이트를 통과하면 다들 겪는 일이다. 앞으로 자주 들락날락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참고로 이곳에서부터는 이제 목숨이 오가는 전장이다. 단 한시라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일단 10분간 휴식을 취하도록. 다만, 경계는 확실하게 할 수 있도록 한다.”

“예!”

잠시 휴식의 시간이 주어졌다. 대부분의 예비 헌터들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나는 그 대신 주변을 살폈다. 강윤이 녀석, 완전히 뻗었네. 저기 멀리 서다은도 보인다. 멀쩡해 보이지만 표정이 살짝 굳어있는 게 참고 있는 것 같았다.

후. 그보다 이곳이 바로 지구와 몬스터들의 차원이 섞여 있는 통로라는 곳이구나.

그래서일까 확실히 풀이 자라나는 대지를 제외하면 다른 것들이 모두 이질적이었다.

나무들은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고 나뭇잎이 없이 앙상했다. 지면은 상당히 넓었지만, 곳곳에 끝이 보였으며 그 아래로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하늘은 짙은 회색에 우중충했으며 불길한 기운을 내뱉고 있었다.

나는 궁금해져서 옆에 있던 교관에게 물었다.

“교관님. 저희가 사냥을 하는 통로와 이어진 차원은 대체 어딥니까?”

“심연이다.”

“네? 심연이요?”

들은 적 있는 차원이다.

심연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차원으로 알고 있다. 수업 때 배워서 확실히 기억한다.

대통합 이후로 이 세상에는 다양한 차원이 존재하는데 그중에서도 이 심연은 어둠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깊고도 어두워서 아무도 그 내부를 살펴본 적이 없는 거로 알고 있다. 특히나 이곳에서 사는 생명체, 몬스터들은 그 급이 다른 차원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위험하다고…….

그런데 지금 우리가 있는 통로가 바로 심연과 연결된 통로라니?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닌가?

내가 그렇게 묻자 교관님은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거였다.

심연과 이어진 통로는 상당히 길고 넓다. 심연 쪽에서 이 통로를 통해 올 수 있지만 그럴 경우에 엄청나게 약해진 상태라 주기적으로 이곳을 정리한다. 이곳의 몬스터들은 본래 심연보다 훨씬 약하기 때문에 현장 실습의 장소로는 가장 적합하다.

딱 이거였다.

“현장 실습에 최적화된 장소가 통로인데 어지간한 차원은 <통로>가 엄청나게 짧고 작거든.”

“아아. 그래서 여기로 선택하신 거군요.”

“그런 거지. 이만한 크기의 <통로>는 우리나라에서 찾을 수 없으니까. 그래도 심연이라는 차원이 불안하기는 한데, 직접 가지만 않으면 되고 지금까지 사고도 없었으니까 아직 애용하는 장소지.”

주기적으로 이 통로의 위험 요소로 추정되는 몬스터들을 제거했고 실습을 하는 곳은 통로의 입구일 뿐.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빠르게 복귀할 수 있다.

나는 아주 멀리 존재하고 있을 심연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분명히 이곳은 안정성이 검증된 곳임에도 어째서인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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