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2화 (2/265)

# 2

2화 첫 시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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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아카데미.

헌터로서의 가능성을 지닌 사람들이 다니는 곳으로서 이곳을 나와 졸업장을 얻어야만 본격적으로 헌터 라이센스가 지급되고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헌터 아카데미였다.

교육 기간은 총 8주. 즉 2달 동안 헌터가 되기 위한 기본 교육을 실시한다.

물론 이게 전반기 교육. 후반기는 전반기 수료 끝나고 2주 후에 실시한다.

‘좀 사람이 적네?’

전국에서 헌터의 능력을 막 각성한 사람들이 몰려들었음에도 수는 300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만큼 헌터로 각성하는 사람들이 드물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70퍼센트가 하위권에 머문다. 즉 210명은 나와 같은 F랭크라는 소리겠지.

“이상으로 여러분의 헌터 아카데미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아카데미에 오는구나.”

“내 친구는 먼저 수료했던데. 아오, 나 보고 후임이라고 비웃겠네.”

“아카데미인데 뭘.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이 속닥거렸지만, 나는 다 들렸다.

저렇게 속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면 아무래도 저 두 사람은 썩 낮은 등급을 받은 건 아니라는 소리겠지. 왜냐하면 F랭크 받은 사람들은 표정이 하나같이 다 썩어 있으니까.

대부분 표정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다 F랭크다.

‘후우. 내 앞가림이나 잘 하자.’

헌터 아카데미 원장의 연설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아카데미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카데미 첫날 일정은 체력 테스트와 클래스를 확인하는 것이다.

헌터는 랭크가 전부는 아니었다. 모든 헌터들은 각자의 방향성을 지닌 클래스라는 것이 있는데 이 클래스 또한 아주 귀중한 요소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클래스와 관련된 것이 바로 <영령>의 존재다.

어떤 <영령>과 계약을 맺느냐에 따라 그 클래스가 결정되고 파워가 결정된다. 즉, 클래스를 평가받는 것 또한 앞으로의 헌터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체력 확인은 끝났다.

군대를 제대하고도 헬스장을 다니면서 꾸준히 운동했기 때문에 체력 테스트는 전부 다 최상급을 찍었다. 물론 나 말고도 덩치나 체력이 좋은 사람들은 많았기 때문에 딱히 눈에 띄는 활약은 아니었지만 나는 일단 소소하게 만족했다.

다음은 대망의 영령과의 계약 차례였다.

대기표를 받았다. 숫자는 232번. 앞 사람들이 다 끝날 때까지 의자에 앉아서 기다려야 했다. 아마 조금 오래 걸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후우.”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나도 긴장된다. 솔직히 F랭크를 받은 시점에서 이미 나라는 인간은 F도장이 찍혔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든 뒤집고 역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다가온다고 생각하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제발, 영웅급 영령은 바라지 않으니 최소 왕급 영령이라도 나와다오!

클래스도 힐러까지 바라지 않는다. 그저 마법사 계열이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와!”

“미친, 영웅급 영령이야.”

혼자서 가만히 쉬고 있는데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런 말이 들려왔다.

영웅급 영령?

그거라면 엄청 높은 게 아닌가.

보통 영령들의 경우에는 급이 정해져 있는데 가장 낮은 순으로 해서 달인-왕-영웅-신으로 총 4개로 나뉜다.

뭔가 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방금 누군가가 영웅급 영령이 나왔다고 한다. 그것도 <잔 다르크>가.

오를레앙의 성녀 <잔 다르크>

그냥 영령이 아닌 무려 귀하디귀한 전투 힐러 계열 영령이다. 그냥 힐러는 헌터 적성 C급이나 D급만 돼도 더 높은 랭크에서 모셔 가려고 하는데 거기에 더해 영령 잔 다르크라니. 같은 영웅급 영령 중에서도 손꼽히는 자가 아닌가.

그것도 프랑스, 심지어 유럽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잔 다르크>가 나올 줄이야.

그런 영령과 함께하는 주인공이 대체 누군가 해서 호기심으로 살펴보니 세미롱 헤어의 가녀린 미인이었다.

표정은 매우 무표정했지만, 걸음걸이나 행동은 당당하기까지 했다. 생긴 것은 정말 청순 미인인데 뿜어내는 분위기나 포스는 여장부가 따로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주변 반응은 다양했다.

“쿨하다.”

“멋져.”

“이게 영웅급 영령을 지닌 자의 당당함이라는 걸까?”

별다른 생각이 없는 나조차도 <잔 다르크>의 영향 때문인지 등 뒤에서 후광이 비춰 보인다. 그것이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주변에서 몇몇 남성이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야 능력도 엄청난데 심지어 얼굴도 예쁘기까지 하니 어떻게든 수작이라도 걸어 볼 속셈이리라. 하지만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칼같이 남자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녀에게 매몰차게 거절당한 남자들은 쪽팔린지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벗어났다. 하긴 200명이 모인 곳에 대놓고 차였으니 어지간한 철면피가 아닌 이상 멘탈에 타격이 크리라.

그보다 <잔 다르크>라니. 그만한 영령과 계약을 맺은 시점에서 저 여성의 잠재력은 차고도 넘친다고 볼 수 있었다. 헌터의 적성이 낮아도 영령의 도움으로 다 메꾸는 경우가 흔하니까.

분명히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헌터 클랜이 접촉하겠지.

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저 여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나와는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이다. 그녀는 이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순간 거대 클랜이나 대기업 산하 클랜의 영입 제안을 받겠지. 연봉도 그냥 억대로 받으며 승승장구할 것이다.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기에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기면 그만이었다.

“232번 오세요.”

“아, 네.”

어느덧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미친 듯이 뛰는 마음을 다잡으며 영령과 계약을 맺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 기계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다 비싸고 좋아 보이는 물건들이었다. 햐, 확실히 과학이 발전하기는 발전했구나.

하지만 가장 이질적인 것이 있었으니 바로 방 중앙에 놓인 거대한 마법진이었다.

듣기로는 마녀 계열 영령의 힘을 빌린 헌터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아무래도 이 마법진을 이용해 나와 적성이 맞는 영령을 부르는가 보다.

“이곳에 서 계시면 됩니다.”

“네.”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마법진의 위에 섰다. 내가 그곳에 올라서자 기계가 작동했고 내가 밟고 서 있는 마법진이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

신비로운 푸른빛이 나의 몸 전체를 훑고 지나갔다. 약간 간지러우면서도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빛. 반짝이는 푸른 구슬 조각 같은 그것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지만, 허상처럼 허공에 흩어졌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녕?]

“…… 누구세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깜짝 놀랐지만, 이곳은 계약을 맺게 해주는 방. 아마 지금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이 바로 나와 함께 할 영령이 틀림없었다.

목소리는 소녀 같기도 하고 소년 같기도 해서 성별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다만 발랄하게 느껴지는 말투에서 장난꾸러기라는 느낌이 저절로 전해졌을 뿐.

[아하하. 설마 나 같은 걸 불러내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어. 이거 참. 꽤나 재미있는 녀석과 계약을 맺은 것 같네.]

“이름이 뭔데 그러죠?”

[흐음? 글쎄. 그래. 페네오스(Pheneos)라고 말하면 알아먹으려나?]

페네오스? 처음 듣는 이름이다. 이름만 보면 로마 사람의 이름 같은데 내 기억에는 없는 이름이었다. 문득 강의 신 페네오스(Peneus)가 스쳐 지나갔지만, 철자가 다르기에 알 수 있었다. 둘은 서로 다른 존재라는 것을.

사전에 영령을 공부했다고 해도 떠오르는 이름은 없었다.

나는 솔직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모르겠는데요.”

[뭐, 그렇겠지. 난 그렇게 유명한 영령이 아니니까. 존대도 하지 마. 말도 편하게 해도 돼. 뭐, 그래도 나를 불러냈으니 나를 즐겁게 만들어 줄 수는 있겠지?]

“응? 아, 뭐. 최선을 다해볼게.”

[그래? 썩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지만, 나를 여기로 불렀다는 것은 너에게 그만한 자질과 자격이 있다는 소리겠지. 앞으로 기대하겠어. 계약자 씨.]

“어. 페네오스.”

계약이 끝나자 내 주위를 맴돌던 빛무리가 사라졌다. 몸에서 기묘한 탈력감과 함께 가슴 속에 무언가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수고하셨어요. 혹시 누구와 계약을 맺었는지 알 수 있나요?”

“아, 네. 본인은 페네오스라고 소개를 하던데요.”

“페네오스요?”

안내원은 턱에 손을 괴며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아마 페네오스라는 이름이 어디서 나왔는지 떠올리고 있겠지.

“흐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처음 듣는 이름이네요. 혹시 출신의 나라라던가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 네. 그럴게요.”

나는 마음속으로 페네오스를 불렀다. 그와 계약을 하게 되면서 저절로 익히게 된 기술인데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내 안에 잠들어 있는 페네오스를 부를 수 있었다.

[왜 불러? 계약자?]

‘다른 사람이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네 능력이나 특성을 말해줄 수 있어?’

[나? 흐음. 뭐, 굳이 궁금하면 알려줄게. 나는 소를 몰고 악기를 다뤘어. 그리고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지. 형이 그런 나를 많이 혼내고는 했어.]

…… 어째 이거, 아무리 봐도 그냥 시골 농부의 자식 중에서 막내아들 느낌 나는 거 같은데.

‘혹시 전투에 관련된 능력은 없어?’

[전투? 에이~ 그런 살벌한 걸 내가 왜 해? 나는 싸움에 대해서 잘 몰라.]

…… 어째 가면 갈수록 쎄~ 한데.

일단 나는 들은 그것을 그대로 안내원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안내원은 나를 불쌍한 사람 바라보듯이 동정심이 가득 담긴 시선을 보내왔다.

“어, 음. 힘내세요. 간혹 그런 경우가 있거든요. 사람들의 기억에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 달인급 영령이요. 그 왜 있잖아요. 삼국지에서 나오는 고람이라는 장수처럼 말이죠. 그, 여기 결과물이 있는데요.”

안내원은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홀로그램 패드를 내밀어 보였다.

그곳에는 내 신상 정보와 여러 가지가 적혀 있었다.

이름 : 강현찬

레벨 : 1

클래서 : 언더 클래스

근력 : 14

체력 : 18

민첩 : 17

마력 : 2

아카데미 막 들어온 예비 헌터의 평균 스텟이 10이라고 보면 근력, 체력, 민첩은 다른 동기들 보다 월등히 뛰어났지만, 마력이 거의 바닥을 기고 무엇보다 클래스가 없다.

즉 저 말을 번역한다면 그거다.

나는 제대로 꽝을 뽑았다는 것이다.

들은 적이 있다. 헌터 클래스의 아래에서도 아래가 있다고. 그중에서 어떠한 클래스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자들을 <언더 클래스>라고 부른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언더 클래스>였다.

“하, 하하. 하하하하.”

나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상황이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런지 화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온몸을 맴도는 탈력감과 함께 힘없는 웃음만 나올 뿐.

헌터 적성 F랭크.

거기에서도 언더 클래스다.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이 있을까? 최소한 전투 계열 클래스라면 같은 F랭크 헌터들끼리 샤바샤바 하면서 함께 몬스터를 토벌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언더 클래스는 다르다.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룰 줄 아는 무기도 없고 사용할 수 있는 전투계열 스킬도 없다.

할 줄 아는 게 소몰이?

설마 내 F랭크는 농부(Farmer)의 약자였나?

나는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눈앞에 새하얗게 변하는 경험은 내 인생에 있어서 처음이었지만 어떻게든 주먹을 꽉 쥐며 견뎌 냈다.

“감사…… 합니다.”

“네. 수고하세요.”

나는 그 말만 남기고서 방을 나왔다.

적성이 F랭크를 받았을 때 이미 나는 바닥이었다. 그래, 어차피 나는 바닥이었어. 거기서 더 아래로 떨어진다고 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바닥은 다 바닥이지.

“후우.”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털썩 주저앉았다.

페네오스가 그런 내 상태를 살피더니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계약자. 괜찮아?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어. 괜찮아. 그냥, 잠시. 좀 피곤해서 그랬어.’

솔직히 페네오스에게 화내고 싶었다. 왜 너 같은 게 내 영령으로 왔냐며 성질을 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성별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무튼 페네오스는 자신의 의지로 온 것이 아니다. 순전히 그의 탓이라고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잘못이 있다면 자질이 낮은 나의 책임이 크겠지.

그러니 이런 내가 대체 누구에게 화를 내겠는가. 모든 게 모자란 나의 잘못인데.

하지만 그래도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포기하면 나라는 인간은 고작 그것밖에 되지 않으니까.

그래. 아직 미래는 모르는 일이야.

그러니까 힘내자.

[흐응~]

페네오스가 그런 내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콧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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