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무한계약-1화 (1/265)

# 1

1화 첫 시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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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반갑구나. 계약자여. 나는 중국 진나라의 환관이자 조나라의 왕족인 조고라고 한다. 나를 불러내다니 그대는 운이 아주 좋은 자로구나?]

진나라의 조고.

중국 전역을 통일하고 진나라를 세운 진시황 사후 그 아들 호해를 즉위시켜 나라를 말아먹은 희대의 간신이 아니던가. 나는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야. 체인지.”

[응?]

“아니, 데려와도 뭘 이런 걸 데려왔어? 조고? 그거 완전 유명한 간신이잖아. 지금 나한테 필요한 영령이라고 생각해? 응?”

[아하하. 미안해. 현찬아. 그냥 어쩌다 보니 한 사람을 잡았는데 그게 이런 녀석일 줄이야.]

[어, 응. 저기…….]

조고는 나의 폭언에 상당히 당황한 눈치다. 하기야 영령이나 되는 자가 고작 나처럼 현대에 살아있는 사람에게 직접 욕을 먹을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니 이참에 시원하게 쓴소리 한번 들어라.

“아 꺼져. 아무튼, 너처럼 나라 말아먹은 간신은 필요 없어. 다른 사람으로 바꿔! 훠이!”

[계약자?! 계약자여……!]

나의 축객령에 조고는 별다른 변명의 말도 꺼내지 못한 채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후우. 이번엔 누구랑 계약할까.”

나는 헌터 중에서도 조금 독특하다.

다른 헌터는 오직 한 대상과 계약을 맺을 수 있지만, 나는 동시에 여러 대상과 계약을 맺을 수 있는 헌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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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필요한 것이 딱 두 가지가 있다.

빽.

그리고 재능.

재능이 있는 자는 빽이 필요 없다. 그들은 뭘 해도 스스로 잘 해나갈 수 있고 누군가의 머리 위에 서기 때문에 모두의 부러움과 우러름을 함께 받는다.

빽이 있는 자들은 더하다. 그들은 재능 따윈 필요 없다. 부족한 것? 다 돈으로 사라고 그래. 능력이 없어도, 재능이 없어도, 의지조차 없어도 전부 다 돈의 힘으로 연줄을 뽑아서 자신의 지위를 만들어 낸다.

남들이 보면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데도 그게 가능하다는 거다.

그렇다면 둘 다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F등급입니다.”

“…….”

젠장.

나는 나지막이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F라니. 가장 낮은 점수를 줄 때 나오던 알파벳이 아닌가. 그런데 그 대상이 바로 나였다. 나는 얼굴이 구겨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나에게 F라고 알려준 안내원 여성은 나 같은 사람을 많이 봤는지 표정에 변함이 없다.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만 남기고서 나는 이를 악물고 건물 밖을 나섰다.

세상은 변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다른 ‘차원’들의 등장 그리고 그 차원들이 우리 지구와 한데 합쳐져서 뭉친 ‘대통합’이 시작한 지도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전국에서는 몬스터들이 나타나거나 게이트를 통해 다른 차원의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각성자라는 존재가 생겨났으며 그들과 계약을 맺는 <영령>의 존재 또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충분했다.

그리고 설명해봤자 입만 아픈 그 직업인 헌터. 영령의 축복을 받은 그들은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는 귀중한 직업이 되고 말았다.

세상은 크게 바뀌었다.

의사, 판사, 검사 같은 사자 돌림의 직업보다 더 선호하는 것이 바로 헌터다. 그렇게 세상은 바뀌었고 사람들 또한 바뀌었다. 나 또한 나의 인생은 바뀔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바뀌지 않았다.

재능도 빽도 없는 나는 각성자가 됐음에도 헌터 적성이 너무나도 낮아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후우.”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을 걸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F랭크란다. 헌터가 받는 등급 중에서 최하이자 최악이라는 등급. 그것을 내가 받았다.

대한민국 헌터계에서 무려 7할을 차지하는 이들이 바로 F랭크 헌터들이다. 그들은 헌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데도 다른 헌터들보다 너무 약해서 제대로 된 벌이조차 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계급을 나누자면 천민 중의 천민.

그게 바로 나라는 인간의 등급이었다.

“아니다, 강현찬. 단지 초반 등급이 낮을 뿐이야. 노력하자. 노력하면 돼. 어떻게든 아득바득 기어올라서 랭크를 올리는 거야.”

랭크는 오를 수 있다. F랭크로 시작했던 사람이 꾸준히 올려서 B까지 올라갔다는 자수성가 이야기는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 실제로 존재했으니까. 물론 B랭크처럼 엄청나게 높은 수준은 아니고 한두 단계 정도 올라가는 수준도 있기는 했다.

물론 그 수는 극히 적었지만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기만 하면 된다.

여기까지 밀려나면 나는 정말 무언가를 할 수 없을 지도 모르니까.

“반드시 해야만 해.”

나는 스스로 다짐하듯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직도 생각난다. 내가 헌터가 되겠다고 하자 걱정스러워하며 반대하던 어머니와 화가 잔뜩 나신 아버지의 모습이. 그나마 철없는 동생은 오빠가 헌터가 된다고 좋아하기는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그 표정은 잊을 수가 없었다.

두 분은 나를 말리셨지만 나 또한 물러설 수 없었다.

아버지는 이제 정년퇴직이 코앞인데 자식새끼들 먹여 살리겠다고 몸도 안 좋으시면서 현장에 나가서 감독 뛰고 새벽에도 일하러 나가신다. 어머니도 일하시기는 하지만 아버지께서 일을 그만두면 두 자식 대학 등록비 감당이 안 될 거다.

우리 집안이 그렇게 못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잘사는 집안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인 헌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잘해 보이겠다고.

돈도 많이 벌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다.

그런데 나온 결과가 F랭크다.

학창 시절에 모의고사 등급을 나름 2~3등급 위주로 받았고 대학 학점도 이렇게까지 나오지는 않았는데 여기서는 그야말로 최하.

나는 이 침울한 마음을 견디기 힘들었다.

우우웅~

핸드폰이 진동하자 확인해 보니 액정 위로 김형준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친구인 형준이었다. 나는 즉시 전화를 받았다.

“어. 형준아. 무슨 일이냐.”

“야 현찬아. 너 헌터 자격 있다면서? 그런 걸 왜 이제야 말했냐. 술이나 한잔하자! 친구들도 불렀어!”

술? 술이라. 그래, 이런 꿀꿀한 기분에는 술을 마시는 게 어쩌면 조금이라도 나을지도 몰랐다.

“그래. 마시다 죽자.”

&

“아오. 인생 진짜 왜 이러냐.”

“야야. 너무 낙담하지 마. 그래도 너처럼 가능성이 있는 거라도 다행이지. 혹시 알아? 등급이 낮아도 빵빵한 영령 만나면 인생 피는 거잖아.”

술자리에는 형준 말고도 다른 친구들이 몇몇 더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위한 축하 술자리였지만 내가 초기 평가 적성을 F랭크를 받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자 술자리는 나의 위로연이 되고 말았다.

“야. 차라리 없는 게 낫지. 그러면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잖아.”

“야. 없으면 뭐. 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우리가 퍽이나 바로 직장을 얻겠다.”

“맞아. 어차피 헌터 등급 낮아도 어지간한 월급쟁이보다 돈은 조금이라도 더 받을 거 아니야.”

“아닐걸? 나도 이야기 들어본 적 있는데 진짜 등급 낮은 헌터는 몬스터 사냥도 제대로 못 하고 그냥 공사장에서 막노동 뛴다더라. 그래도 영령과 계약 맺고 뭐 하면 일반인보다 힘이 세니까 그걸로 돈을 번다고 하더라고.”

“꿈의 직업인 헌터라고 해도 결국 시궁창은 있는 법이구나.”

친구들이 옆에서 뭐라고 재잘재잘 떠들지만, 나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빈 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서 그것을 원 샷 했다. 친구들은 내가 너무 술을 많이 마시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는 원래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마시더라도 맥주를 마시지 소주는 그 특유의 알코올 향 때문에 화장품 먹는 느낌이 들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소주를 계속해서 들이켜고 있었다.

“크으!”

벌써부터 알딸딸하게 취해 간다. 하긴 소주를 병으로 2병 반을 마셨으니 취하는 게 당연한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 숨결을 타고 술기운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인생 엿 같다.”

술집의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곳에서 헌터에 관련된 뉴스가 진행 중이었다. 아무래도 새로운 몬스터가 등장했고 헌터가 그것을 때려잡은 듯싶었다.

“어, 저거 이한율 아니냐?”

“와, 겁나 예쁘다.”

앵커의 질문을 받고 있는 미모의 여성 헌터,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아이돌보다 더 인기가 많다고 하는 A급 헌터 이한율이었다. 얼굴은 어린 소녀처럼 보였는데 몸매는 상상 이상이었다.

심지어 그녀의 <영령>은 무려 그 유명한 <강감찬>이 아닌가.

영령 중에서도 영웅 등급의 영령이었다.

얼굴도 예쁜 데다가 몸매도 좋고 능력까지 출중하니 인기가 많을 수밖에.

아, 이번 새로 출현했다는 몬스터도 저 여자가 잡은 거였구나.

부럽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였다.

인터뷰를 받으며 주변 시민들의 환호성이 들려온다. 이한율 헌터는 그런 사람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부럽고 너무나도 눈부시게 보였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에이~ 아무리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니지. 꿈 깨라. A급은 되고 싶다고 개나 소나 되겠냐.”

“야야, 그래도 여자 친구한테 차이는 것보단 낫지. 요즘 이야기 들어보면 대부분 여자들 헌터들이랑 바람나서 기존 남친이랑 헤어진다고 하더라. 그런데 헤어졌던 전 남친이 나중에 헌터로 각성해서 더 높은 등급으로 뙇!”

“무슨 소설 속 이야기야?”

“진짜야. 원래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 많잖아.”

“그래도 현찬이는 괜찮겠다. 여친 처음부터 없었잖아.”

“팩트 폭격 고맙다 새끼들아.”

“푸흐흐흫! 아씨, 진짜 중요한 분위기인데 그렇게 웃길래?”

“푸하하하!”

나는 애써 이 우울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장난스레 웃었다.

A급 헌터.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얻는 최고의 스타들.

나에게 있어서 감히 올려다보지 못할 높은 나무였다.

나도 저런 꿈을 품었었다. 헌터 자격을 얻어서 마치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되고 싶었다.

그러나 역시나 현실은 달랐다.

이대로 그냥 헌터를 포기할까?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젓고는 무너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에게 있어서 미약하게나마 가지고 있는 헌터로서의 가능성은 포기할 수 없었다. 아직 시도도 하지 않고 단지 초기 확인 랭크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그만두는 건 너무 심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여기서 물러나면 끝이다.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그래. 아카데미에서 잘 하면 돼.”

그리고 계약도.

헌터의 가능성을 지닌다고 해서 전부 다 헌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카데미, 정확히는 전국 헌터 육성 아카데미를 졸업해야만 헌터 자격증이 나오고 헌터로서 게이트를 돌아다니며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친구들은 내 각오를 들었는지 힘내라며 내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래, 짜식아. 넌 할 수 있어.”

“나중에 잘되면 우리 잊지 마라?”

“현찬이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 건배!”

“건배!”

나는 친구들과 낄낄대며 웃고는 소주를 마셨다.

하.

역시 소주는 너무 맛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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