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202화 (완결) (202/202)

202화 에필로그 (完)

“이 새끼들이 말로 해선 못 알아먹어?”

쨍그랑!

부서진 유리창이 가게 바닥에 흩뿌려졌다.

험악해진 분위기 속에 주인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제… 제발 이제 그만…….”

“닥쳐! 마지막 기한을 줬으니 돈을 뱉어 내라고!”

남자는 단숨에 가게 주인의 멱살을 잡고서 번쩍 위로 들어 올렸다.

둘의 체형 정도를 생각한다면 이렇게나 쉽게 번쩍 들어 올릴 순 없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인의 기준일 뿐.

‘각성자’인 그의 완력은 비각성자들과 감히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커, 컥……!”

“예전 같았으면 눈도 쳐다보지 못하고 벌벌 떨었을 것들이… 아주 살맛이 났지? 꼭 직접 처맞고 나서야 말을 들어 먹으려 하니.”

주인이 숨이 곧 넘어갈 듯 꺽꺽댔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대로 가게 주인이 죽어 버린다 해도 그로선 상관없었다.

겨우 비각성자 하나 죽는 것만으로도 호들갑을 떨어 대는 게 요즘 세상이라곤 해도, 이런 뒷골목에서 사람 하나 처리하는 건 그에게 있어 일도 아니었다.

“내가 요즘 다른 헌터들처럼 우습게 보여? 너 같은 비각성자 놈 목 하나 날려 버린다고 내가 눈 하나 깜짝할 것 같…….”

“여기 있었구나.”

갑자기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등을 돌렸다.

그러자 그의 앞에 나타나 있는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범한 한국인과는 한눈에 보기에도 다른 하얀 머리칼의 여성.

이즈나의 붉은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남자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너… 너는……!”

“드디어 찾았네. 쥐새끼 같은 자식.”

콰아아아앙!

이즈나는 곧장 주먹을 휘둘러 남자의 안면에 꽂아 넣었다.

찌그러진 안면과 함께 나가떨어진 남자는 벽의 잔해와 함께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물론 주먹에 힘은 한참 빼놓았지만, 그럼에도 눈을 까뒤집은 채 주저앉은 남자는 기절한 채 미동도 하지 못했다.

“헉…….”

그러자 건물 바깥에 한발 늦게 도착한 정부 측 헌터들은 무너진 벽과 남자의 모습을 보고선 흠칫 멈춰 섰다.

“뭘 멍하니 있어.”

“아… 이즈나 님이시군요. 능력 때문에 워낙 잡기 어려운 녀석이었는데,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할 수 있지?”

“무, 물론입니다. 뒤는 맡겨 주시죠.”

바짝 긴장한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들의 말에 이즈나는 별 말 없이 자리를 떠났고, 헌터들은 거품을 물고서 뻗어 있는 남자를 내려다봤다.

“서울 뒷골목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던 A급 범죄자가 주먹질 한 방에 이 꼴이라니. 역시… S급 헌터들은 차원이 다르네.”

“예전 이지스 길드의 간부였으니까. S급 중에서도 비할 사람이 없지.”

“그나저나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직접 보니 신기한걸.”

“그러게. 누가 봐도 사람처럼 생겼는데 인간이 아니라는 거 아냐.”

이즈나의 뒷모습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선 헌터들이 수군거렸다.

던전의 생성이 멈춰 선 지 어느새 3년.

그녀가 인간이 아닌 마족 출신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 * *

“왔구나.”

“얼굴 보기 한번 더럽게 힘드네. 요즘 뭘 그렇게 바삐 싸돌아다니는 거야.”

“뭐 때문인지 다 알잖아.”

한승희의 말에 성현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거의 몇 개월 만에 얼굴을 보는 그들이었기에 둘 다 꽤나 반가운 표정이 되어 있었다.

높은 빌딩 옥상의 난간에 기댄 그들은 훤히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3년 전 마지막 전투로 인해 무너지고 부서졌던 도시는 완전히 재건되었고.

던전이나 몬스터의 기척 같은 건 서울 그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때, 네가 바꾼 세상은?”

“으음…….”

한승희의 물음에 성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모든 일의 원흉인 이차원의 두 신격이 사라졌음에도 지구의 시스템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한번 작동된 차원의 시스템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인지, 각성자는 계속해서 나타났고 헌터들의 시스템 역시 이어졌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상대해야 할 던전과 몬스터는 없었다.

“요즘 범죄 길드 문제 때문에 골치가 많다고 들었어.”

“그래,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지. 몬스터는 없는데 헌터들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으니.”

헌터들은 신체의 기본 스펙부터가 다르니 일반인과 비교해선 훨씬 벌이가 좋은 편이 많은 게 당연했다.

일단 각성을 했다면 먹고 살 걱정은 없다고 봐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과거 던전으로부터 돈을 쓸어 담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모두의 선망을 받던 때와 비할 바는 아니었다.

던전과 몬스터가 모두 사라진 지금.

꽤나 많은 수의 헌터는 불법적인 방면으로 많이 나아갔다.

이는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그나마 국내에선 우리가 무서워서 대놓고 활동은 못 한다지만, 외국에선 아주 난리잖아. 그것 때문에 내 길드를 비롯해서 한국의 헌터들이 해외로 나가서 활동까지 하는 거고.”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헌터 전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였다.

굳이 성현과 군주들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그와 함께 싸워 오며 강해진 한승희나 성찬일, 그 외 길드장급들만 따지더라도 S급 중에서도 최상위 전력이 줄줄이 포진해 있었다.

어떻게 봐도 범죄자들이 대놓고 설칠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오히려 던전 발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감소로 이전보다 훨씬 나아진 치안으로 인해 음지에서 조용히 숨어 지내는 녀석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국내와는 달리 외국에선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정부나 법의 통제를 거부하는 각성자의 수가 늘어나며,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악당들이 세력까지 만들어 가며 곳곳을 들쑤시는 중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길드와 헌터들이 해외로 진출해 그들을 소탕하는 일까지 맡을 정도였다.

이젠 헌터들이 상대하게 된 주된 적은 몬스터가 아니라 같은 헌터가 되었다는 것.

“설마 그래서 후회라도 한다는 거야?”

“하, 그럴 리가.”

성현이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헌터들의 범죄 문제라면 이전에도 존재하던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범죄랄 것도 없이 둘 사이의 계급이 대놓고 존재하는 사회였고, 정부가 아닌 각 지역을 차지한 길드들이 모든 걸 쥐고서 통제하는 사회였다.

그로 인한 폐단이 곳곳에 존재함은 당연한 일.

반면, 지금은 성현이 나서서 국내뿐 아니라 각국의 정부들이 허수아비가 되지 않도록 뒤편에서 영향력을 끼쳤다.

성현의 존재를 무시하고 날뛸 만한 세력은 전 세계 그 어디에서도 없었기에 최소한 과거처럼 길드가 정부의 위에선 나라는 단 한 곳도 없게 된 것이다.

양지의 헌터 길드와 정부가 협력해 나가는 중이었고, 어느 쪽도 한쪽을 집어삼키지 못하게 균형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몬스터라는 공공의 적이 사라진 이상, 각성자든 비각성자든 서로에 대해 반목하는 일은 없어져야 했다.

그렇기에 성현은 전면에 나서지 않는 그림자로서, 그들의 균형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맞추고 있었다.

“후회할 것 따윈 조금도 없어.”

성현이 확신에 찬 채 말했다.

무엇보다 매일같이 이어지며 일상이 되었던 던전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는, 지난 3년간 완전히 사라졌다.

“또 어딜 가려고?”

“아직 마무리해야 할 게 하나 남아서 말이야.”

“하아, 정말… 이제 끝인 거 맞지?”

“그래, 확실히.”

* * *

“주군……! 돌아오셨군요!”

집으로 돌아온 성현을 반기는 것은 이즈나였다.

한동안 험난한 외지에 나가 있다 돌아온 것이었기에, 손까지 덥석 잡아채며 반기는 그녀의 모습에 성현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잘 지냈지?”

“그야 물론이죠.”

“다른 녀석들은?”

“지하에 있습니다. 오늘 돌아오신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여기에 다 나와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즈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성현은 짐을 내려놓고는 곧장 지하실을 향해 내려갔다.

예전엔 밥 먹듯이 들락거리던 그의 지하실이 반겼다.

다만, 예전의 모습과는 다소 달라진 부분이 있었다.

“전엔 저기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는데 말이야.”

지하실의 앞에 선 성현은 사라진 지하 던전의 흔적과 마주했다.

한때 거대한 초거대 던전으로 통하는 통로가 위치해 있었지만, 지금은 메꿔진 구멍뿐이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던전이 사라졌다.

그 말은 당연하게도 성현의 집 지하에 있던 초거대 던전 또한 포함이 되어 있는 말이었다.

갈루스로부터 찢겨진 세계의 파편 중 가장 큰 부분인 만큼,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데에 있어 빠지지 않음은 당연한 일.

하지만 그의 지하실이 아예 텅 비어 버린 것은 아니었다.

“이쪽입니다.”

“그래.”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있던 성현의 시선이 빙글 돌아갔다.

그러자 예전 통로가 있던 벽의 위치의 정반대편에 다른 통로가 뚫려 있었다.

이전의 통로에 비해선 비교적 작은 크기였지만, 지하실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과 이어지는 통로의 역할 자체는 똑같았다.

이 통로의 정체는 다름 아닌 성현 자신이 직접 만들어 낸 또 다른 통로였고, 그 안으로 주저 없이 들어섰다.

파아아앗!

통로의 안으로 들어서자 성현의 눈앞엔 화창한 하늘과 함께 드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방금까지 있던 지하실과는 분위기부터가 완전히 다른 공간.

이렇게나 급격한 환경 변화는 전형적인 던전의 모습과 같았지만, 이곳은 이차원의 던전이 아닌 ‘성현이 직접 만들어 낸 공간’이었다.

과거의 초대형 던전에 비할 정도는 아니라 한들, 어지간한 대형 던전 이상의 커다란 크기를 자랑하는 공간.

지하 던전이 사라져 버린 이후, 성현의 그림자 군단 중 대부분은 바로 이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즈나나 로칸을 비롯한 마족들이야 바깥세상에서도 멀쩡히 지낸다 한들, 다른 몬스터들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섞여 살기엔 이래저래 지장이 많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군. 말씀하신 것들이라면 미리 준비해 뒀습니다.”

리치들의 군주, 네이아가 성현을 반기며 고개를 꾸벅였다.

그녀의 발치 아래엔 거대한 마법진이 놀라울 정도로 촘촘히 짜여 있었고, 상당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거기다 성현을 기다리고 있던 군주들 전원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다들 그동안 고생했어. 이번 작업이 마지막이야. 알고 있지?”

“크르르륵!”

두 신격이 성현의 손에 당해 사라지고, 차원의 틈과 지구 안의 모든 던전이 사라진 지금.

내부의 문제들을 제외하면 세계는 잠시 평화로움을 되찾았다.

하지만 새로운 개념과 세계들을 알게 된 이상, 성현은 이게 영원한 평화라 생각할 순 없었다.

‘우주 안의 차원은 셀 수도 없이 많이 존재해. 그런 만큼이나 외부의 신격이나 그에 준하는 존재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됐지. 재수가 없다면 또 언제 이런 일들이 벌어질 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땐 지금처럼 무사히 넘어갈 수 없을지 몰라.’

성현이 얻고 싶은 건 재발 가능성 없는 근본적인 해결책이었다.

그렇기에 성현은 지난 3년간 스스로 공허에까지 수시로 찾아가며 차원의 개념과 감각에 대해 더욱 깊이 익혔다.

그 결과, 성현은 차원의 틈을 경유해 외부 차원에서 지구로 통하는 모든 공간의 틈이자 통로를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성현은 그동안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차원의 통로를 직접 닫아 가고 있었고, 이제 남은 통로는 단 한 곳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통로는 그가 지금 서 있는 바로 이곳에 있었다.

성현의 집 지하실.

모든 것이 시작된 장소이자, 마무리를 지을 곳.

가장 큰 던전이 전이되어 올 수 있었던 만큼, 외부와 이어진 공간의 틈 역시 가장 크게 벌어져 있던 것이다.

츠츠츠츠츳!

성현이 크게 검을 휘두르자 마법진 위에 차원의 틈으로 향하는 대형 포탈이 생겨났고.

주저 없이 포탈을 통해 공허 속에 발을 들였다.

키이이이익!

“…역시 잔뜩 반겨 주네. 하긴 마지막인데 이 정도는 되어야지.”

성현은 자신의 눈앞에 늘어선 셀 수도 없는 괴수들을 마주했다.

차원의 통로 사이에 기생하고 있는 공허의 괴물들.

공허의 지평선 너머까지 끝이 보이지 않고서 우글거리는 녀석들의 앞에 홀로 선 성현은 씨익 웃어 보였다.

“주군.”

“그래, 가자.”

어느새 성현의 뒤편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사이, 수백만에 달하는 눈동자들이 일렁이며 그와 함께하고 있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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