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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201화 (201/202)

201화 종장 (6)

성현과 프리아 사이에 벌어진 격렬한 전투는 쉽사리 결판이 나진 않았다.

본래 화신을 통해 억지로 넘어온 것이 아니라 정신체의 형태를 취한 프리아에겐, 필멸자에 불과한 성현의 공격들 따위 움직여 피할 가치도 없던 것이었다.

이는 어떤 능력을 지닌 게 문제가 아니라 필멸자라면 누구든지 마찬가지인 이야기였다.

물리 저항력이 높다 수준인 영혼 계통의 언데드 몬스터들과는 달리, 신격의 정신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느 차원에서나 당연해야 할 그 이야기는 완전히 뒤집혀 버렸고, 그로 인해 결코 예상치 못한 일이 펼쳐지고 있었다.

“크윽……!”

주르륵 밀려난 프리아의 어깨가 주욱 갈라진 채 검은 기운을 쏟아 내고 있었다.

누가 봐도 분명한 상처.

원래대로라면 이런 상처 따위 얼마든지 원상 복구가 되어야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녀의 상처는 조금도 아물지 않았다.

콰아아악!

더욱 거세게 검을 휘두르는 성현은 프리아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겨 주며 영혼을 찢어 놓았다.

이전까지처럼 단순히 형체를 베는 것이 아닌, 신격인 그녀의 영혼을 직접 베어 가르는 것이었다.

회복조차 되지 않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계속 늘어나자 프리아는 초조함과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성현을 향해 마구잡이로 떨어져 내리는 어둠의 마법들.

“소용없어.”

파앗!

성현은 단숨에 검을 휘둘러 그녀의 마법들을 베어 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충격으로 공격을 상쇄해 냄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예 마법 자체를 검으로 잘라 내었다는 뜻.

새로운 기운을 품게 된 성현의 검은 그녀가 구사하는 반격이나 방어마저도 베어 냈다.

이는 차원의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고 힘을 다룰 수 있게 된 성현이 공간과 함께 검로에 닿은 모든 것을 통째로 갈라 버린 것이었다.

아무리 견고하거나 위력적인 마법이라 한들 공간 자체가 뜯겨져 나간다면 존재할 수가 없는 법.

갑작스러운 성현의 그런 변화에 프리아로선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여지껏 그 어떤 필멸자조차 이런 능력을 내보인 적은 없었다. 한데 어째서……?’

지난 영겁의 세월 동안 자신의 차원을 관장하면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며 가능할 리가 없을 일.

동요하는 프리아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그녀는 화신체 상태만큼은 아니더라도 차원의 제약을 받고 있었고, 온전한 육신마저도 없는 상태였다.

신체 스펙이나 능력만으론 이미 필멸자의 범주를 한참 벗어나 있던 성현이 저런 힘까지 구사하게 된 이상 그녀만으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하나 이런 와중에 다른 상황조차도 좋은 게 없었다.

쿠웅!

“이것들도 거의 다 끝났군.”

다른 헌터들의 손에 쓰러진 프리아의 권속들이 시체가 되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일반적인 몬스터보다는 훨씬 까다롭기는 했으나, 크게 밀리지 않았고 숫자도 부족하지 않았다.

모든 정신의 파편을 얻어 힘을 회복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프리아였기에 더 많은 권속들을 불러들일 수도 없었다.

연달은 성현의 공격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그녀의 상태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이… 이대로는…….’

당황한 프리아가 입술을 까득 깨물었다.

뒤집혀 버린 상황으로 인해 갈루스를 봉인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대론 간신히 되찾은 정신체의 형체마저도 산산조각이 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평정심을 잃고서 주의를 놓친 순간, 성현의 검이 그녀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 * *

“크윽……!”

검은 기운을 한껏 쏟아 낸 프리아가 성현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목과 심장에 이은 치명적인 일격까지 당하자 그녀는 더 이상 전투를 이어 나갈 수조차 없었다.

육신이 없다곤 해도 정신체로서의 형체조차 흐릿해진 프리아의 모습은 방금까지의 그 강력한 힘들을 모두 잃어버린 뒤였다.

“그러게 과욕은 부리지 말았어야지.”

“하아… 그래, 결국 갈루스와 같은 꼴이 되었구나. 한 차원의 필멸자가 이만한 저력을 보일 줄이야. 그동안 이어져 온 싸움을 끝낼 생각에 내 눈조차 멀었군.”

성현의 말에 프리아는 담담히 대꾸했다.

더 이상 싸우려 들 수도 없었기에 체념한 듯한 그녀의 모습이었다.

“이제 와서 피조물들로 네 육신으로 만들겠다는 결정을 무른다 해도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어. 하지만 너를 여기서 죽여 봤자 언젠가 다시 되살아나겠지.”

성현이 프리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금이야 이런 꼴이 되었다고는 해도 한 차원의 신격인 그녀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건 무리였다.

같은 차원의 신격조차 서로를 소멸시킬 수 없어 영원히 싸워 왔을 정도니 아예 불가능한 일임은 자명했다.

“잘 알고 있구나. 그렇다면 이제 날 어떻게 할 생각이지?”

“글쎄.”

성현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의 시선은 공간의 중심부에 프리아가 만들어 놓은 새로운 봉인석으로 향했다.

“너희 모두 저기에 함께 가둬 버릴까 하는데.”

“뭐라고? 그… 그것만큼은 안 된다!”

성현의 말에 프리아가 깜짝 놀라며 반응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녀에게 있어 갈루스와 함께 봉인석에 갇히는 일만큼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흐음… 그래?”

물론 말로만 그리 말했을 뿐, 성현부터가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마음 같아선 모조리 봉인시켜 버리고 싶은 심정이긴 했지만 애꿎은 지구 차원 내에 골칫덩이를 품고 있는 것도 이젠 지긋지긋했다.

프리아 하나만 해도 봉인석에 갇힌 채로 온갖 수작을 부려 왔는데, 둘이나 갇혀 있다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뿐이네. 순순히 나한테 협조해 줘야겠어.”

“협조… 라고?”

“우선 차원의 틈과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던전과 몬스터부터 다시 너희의 차원으로 되돌려 놔. 그런 상태라도 이 정도는 가능하겠지?”

성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모든 던전은 갈루스가 강제로 찢어 차원의 틈으로 추방시켰던 세계의 파편이다.

그런 불완전한 상태의 것들을 다시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뿐이었기에, 지금 그녀의 상태로도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알았다.”

갈루스와 함께 영겁의 세월 동안 봉인을 당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에서 타협의 여지 따위는 없었고.

프리아는 고개를 끄덕인 뒤 차원의 틈을 떠도는 던전들을 먼저 되돌려 놓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자, 잠깐!”

그때, 한 발 뒤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승희가 성현의 앞에 불쑥 끼어들었다.

“이성현, 너 정말 던전이 영원히 생겨나지 않게 할 셈이야?”

“그래, 이러기 위해 찾아왔던 거니까. 사실 애초부터 이걸 위해서 여태껏 싸워 온 셈이지.”

“…정말이야?”

성현의 대답에 한승희는 잠시 멈칫하며 주저했다.

그녀 역시도 이지스 길드의 일원으로서 던전이 폭주하는 이상 현상을 멈추기 위해 이 고생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예 모든 던전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신중하게 생각해. 모든 던전이 사라진다면 헌터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릴 거야. 과거 과도기에 정부와 헌터들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또 그로 인해 이어진 결과에 대해선 알고 있지?”

“그래, 아주 잘 알고 있지.”

성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굳이 길게 듣지 않아도 그녀가 무슨 걱정을 하는 지는 잘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사회에서 모든 헌터의 존재 의의와 정당성이나 다름없는 던전이 사라지게 된다면 갈 길을 잃은 그 힘이 과연 어디로 향하게 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또, 잃어버린 명분으로 인해 이전에 나타났던 각성자와 비각성자와의 갈등이 훨씬 심화될 것도 뻔했다.

하지만 성현의 뜻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애초에 헌터들이 필요한 세계인 것부터가 문제였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뿐이야. 물론 그러기까지 쉽진 않겠지만…….”

‘S급의 네크로맨서’이자 ‘최강의 헌터’인 성현으로선 분명 던전이 계속해서 나타나주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어차피 앞으로 나타났을 모든 몬스터를 끌어와도 지금의 성현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은 되지 못했고.

네크로맨서로서 이끄는 군단의 규모를 더욱 키우고 싶다면 몬스터들의 출몰이 없어선 안 되었으니 말이다.

뭣보다 몬스터가 있는 세상이어야 세계 최강의 헌터로서 큰 영향력을 움켜쥔 채, 영웅이자 강대한 거대 길드의 수장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성현은 그런 것 따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성현이 처음으로 각성하게 된 계기이자 항상 지니고 있던 목적 의식은 이 미쳐 가던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함이었으니까.

물론 던전과 몬스터가 사라진다 한들 헌터와 각성자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완전히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건 결코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천천히 바꿔 나갈 수 있으니까.”

파아아아앗!

성현의 말을 마지막으로 차원의 틈과 지구에 남아 있던 모든 던전과 몬스터의 회수가 끝이 났다.

그의 말대로 순순히 이루어진 프리아의 협조가 있었으니, 이젠 약속을 지켜 줄 때였다.

“앞으로 늙어 죽을 때까지 볼 일은 없겠네.”

“…그렇겠지.”

“그럼 이만 사라져.”

촤아아악!

성현은 단숨에 검을 휘둘러 프리아를 베었고, 그녀의 정신체를 완전히 양단하였다.

프리아에게 당해 엉망이 된 갈루스 또한 마찬가지.

두 신격과의 싸움에서 완전히 종지부를 찍은 성현의 눈앞엔 빼곡한 메시지와 레벨업 창이 가득 차올랐다.

하지만 성현은 그런 메시지들을 자세히 읽지도 않고 옆으로 휙 치워 버렸다.

“…….”

어느새 프리아와 갈루스의 두 정신체는 완전히 소멸되었고, 흔적조차 남지 않은 채 차원에서 사라졌다.

물론 마지막 순간에 봉인이 아닌 소멸을 택했기에, 녀석들은 다시 원래의 차원에서 부활할 것이었다.

하지만 성소에 남겨져 있던 기록만 보더라도 소멸당한 신격이 되살아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최소 수만 년이 넘음은 물론.

필멸자의 관념을 가진 성현으로 짐작할 수도 없는 세월이 흘러야 할지도 몰랐다.

최소한 성현이나 다른 사람들이 되살아난 차원 너머의 신격들과 엮일 일 따윈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쿠구구구궁!

“뭐, 뭐지?”

“흔들리고 있잖아?”

지진이라도 난 듯 요란하게 뒤흔들리기 시작한 공간에 헌터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이 흔들림은 지진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이 그들이 서 있는 장소,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던전이 무너져 내리려 하는 것이었다.

“한승희, 다들 챙겨. 돌아가자.”

“알았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운 던전의 모습에 성현은 곧장 검을 휘둘러 공간을 베어 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여러 개의 공간의 틈 사이로 모든 헌터들은 빠르게 던전을 빠져나왔다.

서울 한복판 곳곳에 우르르 쏟아져 나온 헌터들.

“…엉망이지?”

“그러게. 치우려면 고생 좀 하겠어.”

대로변의 양옆으로 무너진 빌딩의 모습에 성현과 한승희가 이야기했다.

이곳뿐만이 아니라 서울 전역에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악마종들의 습격으로 인해 엉망이 된 곳이 많았다.

하지만 무너져 내린 건물과 도로 따위는 얼마든지 다시 세우면 그만이었다.

지금 그들의 시야엔 시뻘건 거대 균열은커녕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뿐이었고.

아무리 감각을 넓혀도 어느 동네건 으레 있을 법한 던전과 괴물들의 기척 따윈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럼 이제… 우린 우글거리는 괴물들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건가?”

“아마도 그렇겠지. 평화로울진 모르겠다만.”

“큭큭, 하긴.”

둘은 잠시 헛웃음을 흘렸다.

아직 뒤바뀐 세상은 기지개도 펴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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