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200화 (200/202)

200화 종장 (5)

“주군, 오셨군요.”

“그래.”

성소 내부에 들어선 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벽과 천장, 바닥과 기둥까지.

고대 문자들로 가득한 공간 속 네이아와 그녀의 하수인인 리치들이 마력을 동원한 해석 작업을 벌여 놓은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가디언들이 지하 던전 속에 있던 봉인석을 들고 달아난 시점.

후반부 필드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던전의 성소들은 텅 비어 있었고, 성현은 새로이 확보한 성소들을 가만히 방치하기보다는 내부를 수색하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리치들의 지식과 마법을 동원해 성소에 담긴 모든 문구들의 해석을 알아내게 되었다.

모든 해석 자료들을 건네받고 모두 읽어 본 성현은 잠시 멈춰 선 채 머리를 짚었다.

“…이게 사실이란 말이지.”

“네, 주군. 수차례 확인 작업까지 끝났으니 잘못되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옆에 선 네이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확인해 주었다.

후반부에 발견된 성소들의 문구는 앞선 성소들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품고 있었고, 그 내용 또한 앞서 볼 수 없었던 것들뿐이었다.

갈루스에 대한 것뿐 아니라, 그 대적자인 프리아에 대한 내용들도 품고 있는 모습.

“한데 주군의 곁에 프리아가 있다면 지금 이 모습도 보고 있는 게 아닐지…….”

“아니, 그 부분은 내가 손을 썼으니 괜찮아. 다만… 녀석이 어떻게 나올지 확실하진 않아도 대비를 해 둬야겠어.”

촤륵!

자료들을 내려 놓은 성현의 눈빛이 일렁였다.

신격과 필멸자가 지닌 의식의 간극.

그것이 매우 크게 존재한다는 것이 이 자료들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고, 이것으로 한 가지 확실해졌다.

이번 사태에 있어 프리아가 무조건적인 아군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 * *

쿠구구구구!

뒤흔들리기 시작한 방 안, 돌변한 프리아는 매서운 위압감을 뿜어냈다.

완전한 정신체로서 되찾은 힘은 물론.

무리하게 차원을 넘어온 갈루스와는 달리, 타의로 당한 봉인으로 인해 차원의 제약마저 직접적인 부분들은 모두 빗겨 간 프리아다.

덕분에 갈루스의 화신체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커다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정말 내게 대적할 셈이란 말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네가 조금 더 노골적으로 뒤통수를 쳐 올 줄 알았어. 하지만 그건 아니었네. 물론 그렇다 한들 변하는 건 없지만.”

처음 성현이 경계하던 것과는 달리, 프리아는 나름 호의적으로 끝을 내려 했던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갈루스를 이번 기회에 영원히 봉인시켜 버리기 위해 양보할 수 없는 프리아의 입장이었고.

성현 역시 자신의 모든 수하들이 프리아의 육신이 될 재료 따위가 되도록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좋다. 그렇다면 끝을 보는 수밖에. 그대가 직접 택한 일이니 너무 원망하진 말거라.”

츠츠츠츳!

프리아의 주위로 검은 기운이 거세게 일어났다.

사방으로 뻗어진 어둠은 주변의 벽들을 무너뜨리며 공간을 변형시켰고, 방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크기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어둠으로 잠식된 신전 전체가 훤히 드러났다.

“크르르륵!”

그리고 그 잠식된 어둠 속에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엄청난 숫자의 괴수들.

갈루스도 제약이 넘쳐 나는 화신체의 몸이었기에 소환하지 못했을 뿐, 신격이라면 그를 따르는 권속들이 넘쳐 남은 당연한 일이었다.

반면 성현은 평소 전투에 함께하던 군단이 없었다.

“큭… 죄송합니다, 주군.”

본색을 드러낸 프리아의 앞에 선 탓에 이즈나조차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단순히 그녀뿐 아니라 곁에 선 모든 군주들이 감히 프리아를 향해 대항하려 하지 못했다.

비록 지금은 절대적인 성현의 권속이라 한들, 그녀로부터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같은 차원의 신격일 뿐인 갈루스에게조차 꼼짝을 못했는데, 같은 계열의 직접적인 창조주인 프리아에게 대항하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이쪽은 걱정할 거 없어. 너희는 충분히 해 줬으니까.”

성현은 이즈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며 미소를 지었다.

위압감을 극복하며 또 다른 신격인 갈루스의 화신체를 무찌른 것만으로도 그들로서는 역할을 다한 셈이다.

따악!

성현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의 곁에 서 있던 군주들은 일제히 그림자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수만 마리가 넘는 괴수와 프리아의 정신체를 앞두고선 스스로 혼자가 된 성현의 모습.

“권속들을 돌려보내다니. 무슨 꿍꿍이지? 이제 와서 자포자기한 것은 아닐 테고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고개를 갸웃거린 프리아가 성현을 내려다보았다.

물론 성현은 이번 싸움을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단지 그림자 군단의 구성원들로선 이 싸움에 참여하기엔 무리임을 알고 있었고, 프리아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이들이 필요했다.

수만 마리의 괴수들로부터 둘러싸인 성현은 단숨에 검을 휘둘렀다.

카가가각!

그림자를 머금은 성현의 검이 휘둘러지며 허공을 갈랐고, 그 궤적 그대로 커다란 상처가 생겨나며 공간의 균열이 발생하였다.

주변 공간 전체가 프리아의 어둠으로 잠식되었음에도 공간을 베어 버린 성현.

공간의 균열 속에서 나타난 것은 그림자 군단이 아니었다.

“…여기인가.”

“젠장, 역시 괴물 놈들이 잔뜩 모여 있잖아.”

“평범한 몬스터 같진 않네.”

균열 사이로 나타난 수많은 길드의 헌터들.

프리아가 소환해 낸 권속들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는 숫자였고, 이들 모두가 성현의 그림자를 품고 있는 이들이었다.

“언제 부르나 기다리고 있었다고.”

“왔구나. 바깥쪽은?”

“네가 부탁했던 대로 정리는 다 끝났어.”

성현의 옆에 선 한승희가 말했다.

서울 지역에 기습적으로 나타났던 악마종들의 퇴치는 모두 마무리가 된 뒤였고, 덕분에 이만한 수의 길드원들이 미리 대기하며 곧장 넘어올 수가 있었다.

물론 여기 있는 이들은 이지스의 산하 길드원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성현, 저번에 진 빚은 이걸로 완전히 끝이다.”

백룡의 길드장, 진서연이 성현의 옆에 함께 서며 말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하얀 코트를 걸친 백룡의 직속 길드원과 산하 세력까지 합류해 균열을 넘어왔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성현은 피식 웃었다.

“그래. 나야 환영이지.”

백룡 길드 외에도 태산, 유성 등.

김진욱과 유호준 같은 다른 거대 길드장들도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선 성현에게 합류했다.

이들 모두 한 번쯤은 성현에게 빚을 진 이들인데다, 이번 사태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더군다나 성현이나 직접 설득에 나섰던 한승희는 단순히 서울을 지키기 위해서 저들을 끌어들인 게 아니었다.

혹시 모를 지금의 사태를 위해서 준비해놓은 성현의 패였고, 이들 역시 성현에게 기꺼이 힘을 빌려주었다.

“후후, 그렇군. 공허에 다녀온 뒤로 가끔씩 연결이 끊어지더니. 뒤에서 이런 걸 꾸미고 있던 거였구나.”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 것뿐이지. 협력 관계라면서도 먼저 사실을 숨겨 왔던 건 너니까.”

협력을 하면서도 프리아는 자신의 패를 가급적 숨기는 모습을 보였고, 성현도 모든 패를 내보일 필요 따윈 전혀 없었다.

그 덕에 프리아조차 이런 변수에 대해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에겐 이차원의 존재인 인간 헌터들이었고, 군단의 구성원들처럼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칠 순 없었다.

실제로 당장 눈앞에 여태 본적 없을 거대한 존재가 위압을 뿜어내고 있음에도 간부들과 길드원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과연 내가 선택했던 인간답군. 마지막 순간마저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하지만 나의 권속 앞에서 고작 인간 몇몇이 끼어든다고 해서 바뀔 것 같으냐?”

“얕보다간 큰코다칠걸. 그리고 네 상대는 나 하나야.”

터엉!

성현은 순식간에 프리아를 향해 발을 박찼다.

* * *

카가가각!

성현이 검이 휘둘러지며 바닥에 커다란 상처가 생겨났다.

그림자이 서린 그의 칼날은 위력은 물론 베어 내는 범위까지도 크게 강화시켰고, 빗겨 나간 검격 만으로 뒤편에 있던 수십 여 마리의 권속들이 쓸려나갔다.

물론 성현이 노리는 것은 오직 프리아의 본체뿐.

곧이어 이어진 성현의 검격은 프리아의 가슴팍을 깊숙이 베어 내는 데 성공했다.

‘…역시.’

하나 공격을 성공시킨 성현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여유로운 프리아의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

‘화신체를 상대할 때와는 완전히 달라. 상처를 입혀도 잠깐일 뿐, 데미지가 전혀 누적되지 않는다.’

성현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프리아의 정신체.

모든 봉인석을 파괴함으로서 지구 차원에서 완전한 정신을 구축한 프리아는 여전히 육신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다만 그랬기에 일반적인 육신을 가진 상대와 싸우는 것과는 전투의 양상이 완전히 달랐다.

아무리 가르고 베어 내도 금세 회복하며 원 상태를 되찾았다.

“그만 단념하거라. 필멸자로선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기 마련이지.”

“시끄러워!”

콰아아아앙!

특성을 가져온 성현이 프리아의 머리 위로 커다란 화염구를 떨구었다.

요란한 폭발과 함께 쏟아지는 열기.

물리적인 공격보다는 효과가 있는 듯 했지만, 그것마저도 제대로 된 데미지를 입힐 순 없었다.

그리고 그런 성현의 마법에 답례라도 하듯 공격이 돌아왔다.

카가가가각!

수십여 갈래의 검은 낫이 성현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오싹한 소리와 함께 땅을 헤집어 놓은 어둠의 낫들.

성현은 간신히 피해 내긴 했지만, 피부가 살짝 베였을 만큼 아슬아슬한 차이였다.

‘후우…….’

피를 슥 닦아 낸 성현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전투를 시작한 이후로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으면 잘려 나갈 뻔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대로는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반면 프리아의 쪽은 차원 건너편에서 화신체를 이용해 개입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상태였기에, 자신의 힘을 사용한다고 해서 먼저 지치거나 부담이 가는 일도 없었다.

그나마 길드의 헌터들이 프리아의 권속을 상대해 주는 덕에 싸움에 심각한 방해를 받진 않을 수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전투를 이어 가다간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한 가지뿐인가.’

자리에 멈춰 선 성현은 잠시 심호흡을 했다.

처음 프리아와 전투를 시작했던 이후로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그려오던 한 가지 방법.

어쩌면 완전한 정신체를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를 직접 실행하기로 한 것이다.

‘성공하길 바라는 수 밖에.’

콰과과과과!

정면을 향해 쏟아지는 프리아의 어둠 줄기들.

성현은 그 타이밍에 정확히 맞춰 앞으로 쏜살같이 튀어나갔고, 줄기들을 피해 오히려 간격 안으로 쇄도했다.

칼날에 가득 담긴 그의 그림자와 마력이 검게 물들었고, 프리아를 향한 검격이 정확히 휘둘러졌다.

촤아아아악!

“크윽……! 이, 이건?”

멈춰 선 프리아의 시선이 밑으로 향했다.

잘려 나간 그녀의 어깨 죽지 사이로 커다란 상처가 훤히 드러났다.

원상태를 되찾지 못하고서 찢겨진 그녀의 어깨.

성현의 검이 정신체를 베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게 어떻게…….”

“네가 쓰러뜨린 갈루스의 영혼을 잘게 조각내는 걸 직접 봤으니. 그저 비슷하게 따라해 본 것뿐이야. 보아하니 성공한 것 같네.”

성현의 입가에 씩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자 시종일관 여유롭던 프리아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눈으로 한 번 본 것만으로 정신체를 파괴하는 법을 따라할 수 있다니… 그럴 수는…….’

콰아아앙!

그때,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온 요란한 폭음이 프리아에게 주변 상황을 인지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성현과의 전투로 인해 눈치 채지 못하고 있던 사이.

어느새 길드의 헌터들이 수 만에 달하던 프리아의 권속을 제압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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