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종장 (4)
콰아아앙!
요란한 폭음과 함께 뿌연 안개가 피어났다.
신전의 내부, 포화가 쏟아지고 있는 정중앙엔 갈루스의 화신체가 서 있었다.
“계속해서 쏟아 부어!”
임시 차원을 무너뜨린 성현은 주저 없이 화신체의 공략에 나섰다.
지구 차원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인 만큼, 상대로선 공격을 막거나 반대로 공격을 퍼붓는 것도 모두 큰 힘을 소모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한 쪽은 놈이라는 것.
하지만 마냥 성현이 시간만을 끌기 위해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놓고 방어만을 취하며 상대를 자유롭게 내버려 두는 것보단 놈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 필요했다.
콰아아앙!
연달아 폭발이 일어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 성현을 서포트하고 있는 이즈나와 로칸은 물론.
열에 넘는 수의 군주들이 성현과 함께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네이아의 저주가 화신체의 육신을 약화시켰고, 고르곤이 덩굴을 뿜으며, 니아드라는 산성맥과 거미줄을 쏟아 내며 갈루스의 움직임에 지장을 주었다.
“이놈……!”
덕분에 갈루스는 이전처럼 자유롭게 번개를 흩뿌리지 못하고 압박을 당하는 중이었다.
신격의 화신체인 만큼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더라도 얼마든지 재생을 시킬 수 있었지만, 차원의 페널티 덕에 상처를 회복하는 행위 역시 큰 부담을 안겨 주었다.
제약을 무효화하기 위해 임시 차원을 만들어 큰 힘을 소모한 갈루스였지만, 오히려 그 차원이 성현에게 허무하게 부서져 버리며 계획은 완전히 흐트러지게 되었다.
되레 힘만 소모한 채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었다.
“주군……!”
“또 쏟아지려 한다! 조금 더 밀어붙여!”
새하얀 전류들이 천장에 아른거리자, 그의 지시와 함께 공격들이 퍼부어졌다.
완전히 공격을 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방어에 신경 쓰느라 녀석이 쏟는 공격의 화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감히!”
갈루스조차 무시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군주들의 견제들.
방금까진 그를 상대로 맥을 추지 못하고 있던 군단의 군주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의 등 뒤를 감싸고 있는 어둠의 신격, 프리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후후, 녀석이 초조해하는 게 눈에 보인다.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전투에 나서고 있는 모든 군주의 그림자 뒤편엔 프리아의 가호가 감싸고 있었다.
동격의 존재인 그녀의 도움 덕분에 군주들은 갈루스를 상대로도 처음처럼 동요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이는 엄연히 군주급에 한한 이야기였고, 어느 정도 한계도 있었기에 보조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원거리에서 화력을 투사할 수 있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번 공략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유일한 지구 차원의 존재이자, 신격의 영향을 받지 않는 ‘성현’이었다.
촤아아악!
앞장 선 성현이 갈루스의 팔을 베어 냈다.
피를 뿜어 내며 나가떨어진 녀석의 팔은 금세 재생되어 회복되었지만, 성현은 더욱 파고들며 놈의 가슴팍을 향해 검을 박아 넣어 주었다.
깊숙이 파고들어간 성현의 칼날이 관통하여 반대편으로 삐져나왔고.
상반된 성현과 갈루스의 표정이 교차하였다.
“드디어 하나 잡았다.”
“네놈……!”
화신체의 몸속에 놓여 있던 봉인석이 방금의 일격으로 부서졌다.
그와 동시에 봉인석에 담긴 정신의 파편이 프리아에게 돌아오며 그녀의 힘이 더욱 커졌다.
그로 인해 그녀의 가호를 받고 있는 각 군주들은 갈루스의 압박으로부터 더욱 자유로워지며, 갈루스를 향해 쏟아지는 화력 역시 눈에 띄게 강해졌다.
덕분에 성현은 더욱 편히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그럼 나머지 한쪽도 가져가겠어.”
“건방진 놈……! 네놈도 결국 녀석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뿐이다.”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해 봤자지. 그런 건 싸우기 전에 그럴싸한 제안과 함께 말하라고.”
가볍게 말을 무시해 준 성현은 힘껏 발을 내딛었고, 또 다시 갈루스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남았던 봉인석 한쪽마저 파괴되며 그들의 주위로 짙은 어둠이 드리워졌다.
“이제 되었다.”
모든 파편을 되찾은 프리아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갈기갈기 찢겨졌던 그녀의 정신은 하나가 되어 완전한 형태를 이루었고, 아직 육신은 없다 하나 이전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고맙구나, 그대 덕분에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군.”
“그보단 저 녀석부터 마무리 짓지 그래. 약속했던 대로 말이야.”
성현이 갈루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금이 간 피부들만 봐도 알 수 있듯, 화신체의 육신은 서서히 부서져 가고 있었다.
단순히 베이고 찔려서가 아닌, 차원의 제약으로 인한 부담이 누적되며 육신이 붕괴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화신체를 쓰러뜨린다 한들, 차원 너머의 갈루스를 완전히 쓰러뜨렸다고 볼 수는 없었다.
타격을 입은 갈루스가 직접 개입해 오진 못한다 한들, 차원의 틈 사이에서 계속해서 악마종과 몬스터를 보내올 수도 있었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또 다른 수작을 벌일지 몰랐다.
이곳에 직접 나타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수단과 방법을 가릴 녀석이 아니니 말이다.
그랬기에 성현에겐 모든 봉인석을 파괴해 프리아의 협조를 얻어내는 과정이 필요로 했던 것이다.
“널 도와준다면 확실한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했어. 이제 와서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그동안 신격들이 함부로 화신체를 통해 이차원에 개입하지 않던 이유라면 간단하다. 본체와는 비할 수도 없을 만큼 약화되지만, 본체가 직접 나선 것과 다를 것 없이 리스크는 그대로라는 것 때문이지.”
“…네년이……!”
츠츠츠츠츳!
일그러지는 차원의 공간과 그 사이로 빛이 새하얗게 뿜어졌다.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한 갈루스는 다급히 육신을 포기하고서 원래의 차원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갈루스가 그 틈으로 사라지기 전, 프리아의 팔이 뻗어졌고 검은 어둠이 놈을 휘감았다.
“어딜 달아나려고.”
“크아아아악!”
프리아의 어둠이 스며들며 화신체의 육신을 파괴하였고, 그 안에 깃들어 있던 갈루스의 정신까지 조각내기 시작했다.
그리곤 팔을 한차례 휘둘러 방 안의 중심부에 커다란 봉인석을 만들어 냈다.
그동안 성현이 부숴 놓았던 여러 봉인석의 파편들을 그녀가 직접 회수해 두었다가 지금 꺼내 들어 재조합한 것이다.
“이건……? 지금 뭘 하는 거지?”
“빚을 졌으니 돌려주려는 것뿐이다. 내가 당했던 만큼 말이지.”
프리아의 입가에 씩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로부터 흘러나오는 검은 기운은 더욱 짙어졌고, 찢겨지고 있는 갈루스의 비명 소리가 더욱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돌려준다니. 저 녀석도 봉인석에 가둬 두겠다는 건가?”
“물론이다. 먼저 선을 넘어선 건 녀석이니 원망할 것도 없겠지.”
“잠깐, 그만둬. 집안 싸움이라면 너희 차원에나 가서 해. 애꿎은 남의 동네에서 난리를 피우지 말고.”
인상을 찌푸린 성현이 검을 덥석 움켜쥐며 나섰다.
던전과 몬스터, 악마종과 각성자들까지.
결국 이 모든 사단이 다른 차원의 신인 프리아가 지구에 갇혀 버리며 시작된 것이었고, 그녀가 호언장담한들 또 다른 변수가 터져 나오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없었다.
“후후, 그 점에 대해선 걱정하지 말거라. 상대가 이차원의 필멸자들이라 한들 조력자에 대한 예우 정도는 갖출 줄 안다. 갈루스를 가둬 둘 것은 이곳이 아닌 다른 차원이니. 다만… 한 가지 양해는 구해야겠군.”
콰과과과!
프리아가 손을 뻗자 주위를 통해 검은 기운이 쏟아지며 성현의 군주들을 휘감았다.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그녀의 돌발 행동에 군주들은 꼼짝없이 어둠에 붙들리고 말았다.
“커억……?”
“너 이 자식, 갑자기 무슨 짓을……!”
“갈루스를 봉인석에 영원히 가둬 두기 위해선 지금 이 상태로는 부족해. 나의 육신을 다시 되찾아야 하지. 하지만 한 번 소멸당한 육신을 자연히 회복하는 데엔 최소 몇 천 년의 세월이 걸린다. 물론 나에겐 전혀 긴 세월이라 할 수 없지만, 그때가 되어선 지금의 이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만다.”
싸늘해진 프리아의 시선이 성현과 마주 닿았다.
신격조차도 진절머리가 날 만큼 이어져 온 이 영원의 분쟁을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그녀는 그런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시간에 맡기지 않고서 육신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이라면 하나뿐. 내가 만들어 냈던 피조물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대의 권속들 또한 마찬가지지.”
“피조물들로 새로운 육신을 만들겠다고……?”
“그래, 던전과 차원의 틈을 떠도는 이들까지 모두 회수해 갈 생각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그대의 차원엔 손댈 생각이 없다.”
“크으윽……!”
어둠에 묶여 있던 이즈나가 격하게 몸을 틀었다.
하지만 프리아의 어둠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되려 생명력을 빠르게 앗아 가며 이즈나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프리아는 자신이 만든 모든 몬스터와 마족들을 흡수해 자신의 육신으로 만들어 낼 생각이었다.
“주… 주군!”
졸도하듯 이즈나의 눈이 뒤집히려는 순간.
성현은 단숨에 발을 박차 프리아로부터 뻗어진 어둠의 줄기를 베어 냈다.
쿠웅!
검은 기운에 붙잡혀 있던 군주들이 풀려나며 바닥에 떨어졌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그딴 걸 말이라고 해?”
“내가 직접 만들어 낸 피조물이고, 내가 관장하는 차원의 존재들이다. 그대가 끼어들 권리는 없을 텐데.”
“웃기지마. 이 녀석들은 네 장난감이 아니야.”
덜덜 떨리는 팔로 바닥을 짚고 있는 이즈나와 로칸, 다른 군주들의 모습에 성현이 이를 빠득 갈며 말했다.
부모라고 한들 자식을 멋대로 휘두를 권리는 없다.
이는 신이라는 존재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멋대로 마족과 몬스터들을 끔찍한 과정으로 짜집어 악마종으로 만들었던 갈루스의 행동과 별다를 게 없었다.
“이해할 수 없구나. 권속들 따위 없어도 이미 지구 차원 안에선 그대에게 대적할 수 있을 상대가 없을 텐데. 이 모든 사태를 끝내고 싶은 것 아니었나? 한데 고작 권속들 때문에 내게 대적하겠다고?”
“다물어.”
여태 성현과 함께해 온 그림자 군단은 마법으로 되살린 텅 빈 껍데기와 시체들이 아니다.
시스템에서 나타났듯, 그의 특성을 통해 두 번째 생명을 얻은 존재들이었고 단순한 소환수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뭣보다 이젠 네 차원의 존재들인 것도 아니잖아.”
츠츠츠츳!
각 군주들의 뒤편에서 일렁이기 시작한 그림자들.
성현이 그들에게 주었던 그림자가 선명하게 부풀어 올랐고, 등 뒤로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던 프리아의 어둠을 튕겨 내듯 떨쳐 내었다.
이들이 처음 그림자를 받아들인 순간부터 그들의 주인은 더 이상 프리아가 아닌 ‘성현’이었다.
“후회할 텐데. 이 몸이 우둔한 빛의 신격과 같을 거라 생각하진 마라.”
성현에게 얼어붙은 듯 차가운 말투가 돌아왔다.
하나 그런 프리아에게 성현은 코웃음 치며 대꾸할 뿐이었다.
“내 쪽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동안 마냥 순진하게 있던 건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