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종장 (2)
쿠우우우웅!
내던져진 악마종이 차량 지붕 위로 처박혔다.
어찌나 충격이 컸는지 잠깐은 움직임이 멈췄을 정도였고, 찌그러진 차량 위에 형편없는 꼴로 뻗어 버리고 말았다.
물론 통증 따위는 잠깐일 뿐, 끓어오르는 분노에 휩싸인 악마종은 즉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콰아아앙!
몸을 일으키자마자 발에 걷어 차인 악마종은 자신과 부딪힌 건물 잔해를 우르르 뒤집어썼다.
방금은 미처 눈으로 쫓지도 못한 순간에 들어온 발길질이다.
잔해를 힘껏 떨쳐 내며 이를 빠득 간 악마종은 자신을 날려 버린 장본인을 바라봤다.
느긋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그를 마주하고 있는 장신의 남자.
“쓸데없이 질기기만 한 녀석은 반갑지 않은데.”
S급 헌터이자 거대 길드 ‘유성’의 길드장, 유호준이 검을 비스듬히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이전 9대 길드장 중 한 명이자 한국을 대표하던 최강자 중 한 명인 그의 등장에 악마종도 꼼짝을 할 수 없던 것이다.
“네놈……!”
악마종이 이를 빠득 갈며 유호준을 노려봤다.
녀석은 많은 고급 재료를 쏟아부은 최상위 악마종 중 하나였고, 인간의 지식까지 흡수해 헌터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제대로 실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싸움에 질질 끌려가야만 했다.
기본적인 스펙의 격차는 물론, 조금의 빈틈조차 보이지 않는 상대에 압도적인 실력의 격차가 느껴졌다.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거 같으니 슬슬 끝을 맺지.”
유호준은 다시 악마종을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런 그의 뒤편으로 검은 그림자가 새어 나오며 일렁였다.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성현의 그림자로, 그림자 군단을 강화시키는 군단 강화효과를 고스란히 그에게도 부여하고 있었다.
이지스와 산하 길드들뿐 아니라 협력 길드에게도 그림자 전이를 통해 나눠 준 성현이었고, 그렇지 않아도 한국 최강의 전력이었던 각 길드장들과 간부들에게 강화 특성까지 주어지니 이곳에 나타난 악마종들을 손쉽게 압도할 수 있던 것이다.
촤아아악!
유호준이 발을 박차고, 악마종의 두 팔이 날아간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가 더욱 속도를 높이자 녀석으로선 반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이대로는……!’
무섭도록 빠르게 소모되고 있는 생명력.
이 만한 전력차에도 불구하고 빠른 재생력과 넘쳐 나는 생명력 덕에 오래 버텨 왔지만 그것도 슬슬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악마종의 생명력이 완전히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촤아아악!
마지막 발악을 위해 발버둥 치던 악마종의 목이 잘려 나갔다.
털썩하고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작은 생채기 하나 없이 최상위 악마종의 숨통을 완전히 끊으며 제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다른 쪽도 지금쯤 신나게 싸우고들 있겠지.”
슬쩍 고개를 돌린 유호준이 중얼거렸다.
서울 전 지역에서 벌어진 악마종들의 습격.
하지만 이지스 길드와 산하 길드들뿐 아니라, 옛 9대 길드의 세력들이 서울로 진입해 악마종을 저지했다.
인천의 백룡 길드뿐 아니라 태산, 유성 길드 등.
예외 없이 소속 길드원들을 대거 이끌고서 이지스를 돕기 시작했다.
이전에야 청성과 화신 길드를 무너뜨리고 외국 헌터들을 무찌르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협력했을 뿐.
그들이 이지스의 산하 길드로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다만,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이상 현상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은 것은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 사태가 일어날 것을 예견한 성현의 말을 전해 들은 한승희는 자신의 주도로 이 세력들을 모두 협력하도록 만들었다.
이번에 악마종이 나타난 것은 서울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기에 유성을 비롯한 길드들도 자신의 영역을 생각할 필요 없이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런 괴물들을 토해 내고 있는 녀석이 있단 말이지.”
던전이나 게이트의 생성조차 없이 갑작스레 나타난 악마종들의 출현.
원래대로라면 차원의 틈으로부터 생겨난 게이트들을 성현이 지하 던전 안으로 끌어들인 덕에 지구의 다른 지역에서는 몬스터들이 생겨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타나고 있는 악마종들은 차원의 틈을 통해 넘어온 게 아니었다.
[퀘스트 마커가 생성되었습니다!]
“찾아낸 건가… 이쪽도 서둘러야겠어.”
눈앞에 번쩍 떠오른 메시지에 유호준은 곧장 발걸음을 내딛었다.
* * *
성현은 가디언의 권능들을 흡수하고, 공허를 통해 차원과 공간에 대해 능숙해질 수 있었다.
그 결과, 성현은 던전이나 균열의 생성에 대해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
어렴풋이 기척을 느껴야 던전을 찾아낼 수 있는 단순한 헌터들과는 결을 달리했다.
“찾았군.”
서울 중심부, 한 건물의 깊은 지하에 발생한 거대 던전.
성현은 바로 그 꽁꽁 숨겨져 있던 입구의 앞에 서 있었다.
“이만한 던전인데도 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진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니… 정말 꽁꽁 숨겨 두기도 했네. 어쨌든 여기서 악마 놈들이 넘어왔다는 거지?”
“그래.”
한승희의 물음에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대답을 듣고 직접 입구를 앞에 두고 있음에도 그녀의 의문점은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현재 서울에 나타나고 있는 악마종들의 규모를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악마종들이 입구를 통해 잔뜩 쏟아져 나와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들 둘이 던전의 입구를 찾아와 서있는 동안, 던전 내부에서 몬스터는 단 한 마리도 쏟아지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네. 놈들이 최대한 위치에 혼동을 주기 위해서 던전의 입구를 비틀어 놨거든. 몬스터가 여기로 나타나지 않는 게 오히려 당연한 셈이지.”
성현은 말을 하며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뻥 뚫려 있는 던전의 입구와 가까워진 성현의 앞에선 공간이 소용돌이치듯 뒤틀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뒤편에 있던 한승희 역시 뒤틀린 공간을 목격한 건 마찬가지였고, 깜짝 놀라며 흠칫 물러섰다.
“뭐, 뭐야 저건?”
“말했잖아. 공간을 뒤틀었다고.”
“허…….”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는 성현의 말에 한승희가 반응했다.
지하 던전으로 통하도록 만든 성현의 수조차 무력화시키고 이 던전을 만들어 낸 녀석은 던전의 입구를 직접 비틀어 냈고, 그를 이용해 서울 전역에 악마종을 흩뿌리고 있던 것이었다.
한눈에 봐도 위험해 보이는 이 입구의 모습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진입이 불가능했다.
“이번 일을 완전히 마무리 지으려면 이 던전을 공략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그럼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있는 거야?”
우려 섞인 한승희의 말에 성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방식의 비틀린 공간은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낯설긴 했지만, 풀어내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것 없이 빨리 들어가자고. 다른 길드원들한테도 당장 연락을…….”
“아니.”
앞으로 성큼 나서려던 한승희를 성현이 팔을 뻗어 멈춰 세웠다.
“지금은 나 혼자 들어갈 거야.”
“뭐? 왜?”
“너희는 이미 도시로 빠져나간 악마종들을 정리해 줘. 더 이상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내가 틀어막기야 할 테지만, 이미 난입한 녀석들만으로도 방치했다간 큰 피해가 발생할 거야.”
“우리도 같이 싸워 달라는 거 아니었어?”
“맞아,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성현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마 그들의 힘이 필요한 순간이 오겠지만 당장 함께 진입해 싸우는 것은 그의 계획이 아니었다.
그러자 그의 눈빛을 읽은 한승희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하아, 네 속을 내가 어찌 알겠냐.”
“내 속을 왜 몰라. 그림자 덕에 서로 텔레파시도 통하는데.”
“아씨, 시끄러워. 위쪽은 우리가 정리해 둘 테니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말해. 괜히 무리하다 죽지 말고 알았지?”
“그래, 부탁할게.”
피식 웃은 성현이 손을 휘휘 저었다.
한승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지하를 빠져나갔고, 건물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길드원들을 이끌고 악마종들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성현은 던전의 입구를 향해 다가가 팔을 뻗었다.
“어디… 시작해 볼까.”
츠츠츠츠츳!
뒤틀린 공간 속으로 닿은 그의 손길.
권능과 마력을 함께 품은 성현의 손길은 뒤틀린 공간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꽤나 묵직한 반발 작용이 나타났다.
더욱 심하게 뒤틀리는 공간과 그로 인한 충격이 손을 타고서 전신으로 전해져 왔다.
“흡……!”
하지만 눈 깜빡하지 않고 반발을 몸으로 견뎌낸 성현은 더욱 마력을 끌어 올리며 속도를 내었다.
그리고는 잠시 뒤, 심하게 뒤틀리던 공간이 잠잠해졌다.
이곳에 일어났던 공간의 뒤틀림을 잠재운 것은 물론, 비틀림으로 인해 던전이 서울 전역과 이어져 있던 왜곡 현상까지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것으로 악마종이 입구를 통하지 않고서 마구잡이로 나타나는 것은 막은 셈이다.
“완전히 멀쩡해졌군. 그렇다면 머뭇거릴 것 없지.”
후우우웅!
성현은 주저 없이 던전의 입구로 안으로 들어섰다.
일반적으로 통로를 통해 꽤나 들어가야만 하는 일반 던전들과는 달리, 한 순간에 뒤바뀐 주변 풍경이 그를 맞이했다.
녹색 빛으로 가득 찬 울창한 숲으로 이어져 있는 던전의 필드.
마치 차원 사이 게이트를 넘어오듯, 그가 넘어온 작은 크기의 균열이 허공에 벌어져 있었다.
[퀘스트 마커가 생성되었습니다!]
‘…바로 느껴지네.’
나타난 메시지와 함께 성현의 고개가 돌아갔다.
프리아의 영혼이 담긴 두 개의 봉인석이 바로 이 던전 안에 놓여 있었다.
떠오른 퀘스트 마커의 위치, 그리고 감각으로 느껴지는 수준으로 보아 생각했던 것보단 던전의 크기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물론 일반 던전을 생각한다면 큰코다치겠지. 가디언 이상의 존재가 찾아와 있을 테니까.’
아직 몬스터 한 마리조차 나타나지 않은 시점.
던전의 난이도에 대해 알 수 있을 때는 아니었지만, 성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그림자를 길게 뻗었다.
그림자 속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그림자 군단의 주 전력인 두 명의 마족 군주 이즈나, 로칸이었다.
“던전 쪽 상황은 어때?”
“아직까진 충분히 버틸 만합니다. 다만 게이트와 몬스터들의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지라 피해는 점진적으로 계속 커질 겁니다.”
“좋아, 그럼 빨리 해치우자고.”
검을 뽑아 든 성현은 고개를 돌려 이즈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이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력을 한껏 끌어 올렸다.
그녀의 머리 위편으로 둥실 떠오른 거대한 불의 구체.
단순 크기 이상으로 그 안에 담긴 열기와 폭발력은 막대한 위력을 품고 있었고, 앞으로 쏘아지며 커다란 빛을 발했다.
콰아아아아아!
“키이이이익!”
“크아아아악!”
필드의 숲 중 절반이 통째로 쓸려 나가며, 그 안에 기척조차 없이 숨어 있던 악마종들이 산화되었다.
불길로 인해 뻥 뚫려 버린 숲 속의 통로 사이.
쥐새끼 하나 없이 고요한 듯 보였던 던전 전체에 온갖 기척이 가득 들어차는 데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즈나의 마법으로 숲 속 전체에 걸려 있던 왜곡이 풀린 덕이다.
“이제야 느껴지네. 이 안에 자리잡고 있는 녀석이.”
수만 마리가 넘는 괴물들의 기척 사이, 성현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단 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