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196화 (196/202)

196화 종장

“크르르르!”

주위를 서성이는 안타라스를 뒤로 한 채, 성현은 눈앞에 놓인 봉인석 파편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의 칼날에 부서진 봉인석이었지만, 그가 준 충격이나 베어낸 단면 이상으로 산산조각 나 바스러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봉인석이라면 여러 차례 마주한 적 있기에 부자연스러운 점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역시… 가짜 봉인석을 지니고 있던 건가.”

프리아의 영혼 파편을 가둬 둔 진짜 봉인석이 아닌 가짜라는 것.

물론 엄밀히 말하면 이것들도 진짜 봉인석은 맞았다.

봉인석은 특유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기에 성현이 그것도 구분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 이 녀석은 크기만 키웠을 뿐, 실제 봉인석의 극히 일부 부위에 불과했다.

실질적인 기능보다는 그저 눈속임용으로 만들어 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단 여기까진 예상대로네.”

성현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당황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게 가디언들은 모든 힘을 되찾았고, 지구 차원 전체를 청소하기 위해 성현과 맞붙을 게 뻔한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굳이 프리아의 영혼이 갇힌 봉인석을 몸 안에 품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분명 다른 어딘가에 숨겨 둔 것이 분명할 터.

‘일단 이쪽은 정리해야겠군.’

따악!

성현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주위로 뻗었던 그림자들이 회수되었고, 그로 인해 주위를 빼곡히 메우고 있던 공허의 괴수들이 풀썩 쓰러졌다.

정식으로 이들을 되살려 군단에 합류시킨 것이 아니니만큼, 이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유지하고 있는 데에도 마력이 소모되었다.

그래서 가디언과의 싸움이 끝나자 그림자를 돌려받으며 불필요한 마력 소모를 줄인 것이었다.

‘봉인석은 어차피 차원의 틈 사이에 숨겨 두진 않았을 거다. 애초에 굳이 개입하기도 어려운 지구에 봉인석을 두고 있던 이유부터가 프리아가 힘을 회복하는 걸 막기 위함이었으니까.’

갈루스가 프리아의 봉인석을 던전과 함께 지구에 놓았던 이유.

한 차원의 신격이자 완전한 불멸자인 그녀를 영구적으로 소멸시키기란 같은 격의 신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고, 심지어 갈기갈기 찢어 봉인을 해 두어도 언젠가는 다시 힘을 회복하였다.

이는 자신의 차원이든 차원 사이의 공간 혹은 공허 속에서든 마찬가지였다.

변할 수 없는 절대적인 우주의 법칙이었다.

다만, 한 가지 예외가 바로 다른 시스템이 적용받고 있는 이차원에서의 일이었다.

중립적인 차원의 틈이나 자신의 차원과는 다르게, 다른 차원 안에선 수많은 제약을 주렁주렁 달게 되었고 이는 봉인당한 상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즉, 놈들이 빼돌린 봉인석은 반드시 지구 차원 내부에 있다.

물론 지구로 돌아가서도 여기 있는 공허의 괴수 무리를 불러와 전력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지만, 이 괴수들은 일반적인 소환수가 아닌 공허 속의 이질적인 존재들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이차원의 존재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옮겨 놓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원 건너편의 강대한 신격조차 제약에 얽매이고 적잖은 힘을 소모하게 만드는 과정.

차원의 틈 내부에서 직접 싸우는 게 아닌 이상, 굳이 성현이 그런 비용을 감수해 가면서 동원할 필요는 없었다.

여러모로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것이다.

츠츠츠츳!

성현은 검을 가볍게 휘둘러 지구로 통하는 차원의 틈을 열었다.

방금 두 가디언이 지니고 있던 권능의 힘까지 흡수한 덕에, 거의 힘도 들이지 않고서 이런 포탈을 열어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차원을 통하는 포탈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면 아무리 성현이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가디언들이 해 왔던 것 이상으로 힘을 들이지 않고서 차원의 개념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돌아가자.”

후우우웅!

성현은 안타라스와 함께 차원의 틈 속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바깥으로 나온 그를 맞이하는 수많은 괴수의 울음소리.

‘요란하게 한바탕하고 있군.’

필드들을 내려다보는 성현의 시야 아래, 지하 던전 안에선 여전히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붉은 균열 사이로 쏟아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수의 몬스터와 그들을 정면에서 받아 내고 있는 그림자 군단.

견고한 군단의 방어에 아직 1차 방어선조차 뚫리지 않고서 막아 내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점점 늘어나는 게이트와 그 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의 기세가 끝이 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우우우웅!

‘게이트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어.’

지하 던전으로 돌아온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또 다른 균열이 번쩍 생겨나는 모습을 본 성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가디언을 쓰러뜨렸음에도 게이트가 유지되고 있다는 건 어디선가 저 균열을 유지할 힘이 작용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성현은 바로 그 힘을 찾아내야 했다.

“이제부턴 시간 싸움인 건가.”

* * *

“꺄아아아악!”

“도망가!”

서울 한복판에서 울려 퍼진 사람들의 비명 소리.

이는 대낮의 길거리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괴물들의 등장 때문이었다.

“저… 저게 뭐야!”

“던전이라면 이제 나타나지 않는 거 아니었어?”

최근 던전과 몬스터의 등장이 멈추었던 시기였기에 시민들은 더욱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거기다 그들의 앞에 나타난 괴물들은 일반적인 몬스터가 아니었다.

단순 상위 등급 몬스터조차 아닌 악마종의 등장.

악마종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시민들조차도 일반 몬스터와는 무언가 다르다는 걸 알아차릴 정도였다.

콰드드드득!

“키이이익!”

악마종의 울퉁불퉁한 팔이 기이하게 늘어지며 차량 유리창을 깨부쉈다.

본능대로 생명력을 빨아들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인간들을 사냥하고 있는 녀석들.

하지만 쩍 벌어진 놈의 입으로 또 다른 시민이 들어가기 직전, 놈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촤아아아악!

“키에에엑!”

팔이 잘려 나간 악마종이 거세게 몸부림 쳤다.

그사이 녀석의 팔에 감겨 기절해 있던 시민을 한 헌터가 낚아채 뒤로 빼냈고, 팔을 잘라 낸 장본인인 남자가 검을 치켜세운 채 앞으로 나섰다.

서울에 지부를 두고 있는 이지스의 산하 길드 측 헌터들이었다.

“하, 이 자식들은 또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서울 전역에 완전히 비상이 걸렸어. 어쩐지 요즘 들어 던전도 안 나타나고 있는데 웬 대기가 걸려 있다 했더니만…….”

난장판을 벌여 놓은 악마종들의 모습에 헌터들이 궁시렁거렸다.

갑작스러운 이번 습격이 일어나기 전, 서울 뿐 아니라 이지스 산하 길드 전체에 이미 비상 대기 명령이 걸려 있었고 그 덕에 갑작스러운 괴물들의 등장에도 이렇게 빠른 대처가 가능했던 것이다.

더 큰 피해로 이어지기 전에 즉시 현장에 나타난 길드원들.

“키이이이익!”

“온다!”

악마종들은 눈앞에 나타난 헌터들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주변 시민들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고서 보인 놈들의 움직임이다.

그도 그럴게 헌터들은 일반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인간의 생명력을 탐하는 악마종들에게 있어 더욱 탐이 나는 먹거리인 셈이다.

물론 그런 만큼 순순히 먹혀 줄 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콰드드득!

“죽어!”

헌터들은 즉각 놈들에게 응수하며 악마종들의 몸뚱이를 갈기갈기 잘라 놓았다.

매서운 기세로 달려들긴 했지만, 이지스의 산하 길드원들은 모두 성현의 그림자를 받아들여 군단 강화 효과를 함께 받는 이들이었다.

덕분에 원래 B나 C급에 불과했을 산하 길드측 헌터들조차 저런 악마종들을 상대로도 굉장히 잘 싸울 수 있었다.

“젠장, 이야기 들었던 대로 엄청 질긴 자식들이네.”

“그래도 이제 네다섯 마리밖에…….”

콰드드득!

악마종들을 제압하고 있던 한 헌터의 머리가 뜯겨져 나갔다.

합을 맞추며 부상자 한 명 없이 싸움을 주도해 나가고 있던 와중,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

죽어 버린 남자의 동료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크큭, 모조리 먹어 치워 주마.”

사망한 헌터의 팔 한쪽을 잘근잘근 씹어 먹는 한 남자의 등장.

자신들과 같은 헌터, 아니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본능적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콰아아앙!

휘둘러진 남자의 팔이 갑작스레 변형되며 주위를 휩쓸었다.

거기에 함께 휩쓸려 튕겨져 나간 헌터들은 거의 절반 이상이 전투 불능의 상태에 빠졌고, 나머지 또한 충격이 커 바로 일어나지 못할 정도였다.

“컥… 저 녀석은……!”

방금까지 상대했던 실패작들과는 다른 제대로 된 악마종의 등장.

놈은 인간의 몸뚱이를 차지하고서 인간의 지식까지 습득한 개체였다.

악마종들이라면 기본적으로 S급 던전의 몬스터조차 가뿐히 뛰어넘는 스펙을 지니고 있었고, 그림자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실패작들을 상대하는 게 한계였다.

그보다 훨씬 강한 악마종 개체들은 아무리 군단 강화 효과를 받는다곤 해도 산하 길드원들로선 감당이 불가능했다.

콰아아앙!

“그러게 방해를 하면 안 되지. 인간들 따위가.”

비틀거리던 남은 헌터들까지 모조리 쓰러뜨려 버린 악마종이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먹음직스러운 인간 헌터들이 잔뜩 깔려 있었고, 그는 주저 없이 헌터들을 먹어 치우기 위해 팔을 뻗었다.

“괴물 주제에 건방진 소리를 하는구나.”

“뭣……?”

촤아아아악!

기척조차 느끼지 못한 와중에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

깜짝 놀란 악마종이 등을 돌렸지만, 이미 놈의 양팔이 잘려 나가고 목에 칼날이 쑤셔 박힌 뒤였다.

“커헉……!”

흩뿌려지는 피와 몰려드는 통증.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악마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물론 다른 실패작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악마종 특유의 강력한 재생력이 발동되었고, 잘려 나갔던 녀석의 팔은 곧장 자라났다.

하지만 재생된 팔을 미처 휘두르려 하기도 전.

악마종의 팔은 또 다시 산산조각이 나며 넝마가 되었고 다리의 신경까지 절단 났다.

완전한 재생은커녕 균형을 잡을 틈조차 주지 않고서 검격이 쏟아졌다.

“끄아아악! 네놈……!”

“시끄럽다.”

콰지지직!

비명을 토해 내던 악마종의 머리가 무자비하게 으깨졌다.

악마종이 지녔던 커다란 생명력이 순식간에 모두 소진되었고, 엉망이 된 놈의 시체가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다… 당신은……?”

인간의 몸을 차지한 악마종조차 속수무책일 만큼 압도적인 전력의 차이.

쓰러져 있던 산하 길드원은 나타난 여성의 정체에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백룡 길드의 길드장, 진서연.

그녀의 뒤편으론 수백여 명이 넘는 백룡 길드의 헌터들이 하얀 코트를 휘날리며 함께하고 있었다.

“길드장님, 악마종들의 기척이 사방에서 느껴집니다. 숨어 있는 녀석들까지 합치면 이 부근에서만 최소 수천은 넘어 보입니다. 서울 전역으로 따진다면…….”

“아무래도 좋아. 저번에 진 빚들을 갚기 위해서 찾아온 거니… 그 정도는 되어야지.”

진서연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옆으로 시선을 돌린 그녀는 먼 거리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척에 슬쩍 미간을 좁혔다.

“다른 녀석들도 지금쯤 도착했겠지. 바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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