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덫과 사냥꾼 (7)
콰드드드득!
성현의 검이 휘둘러지며 공간이 찢겼다.
바닥을 가른 검의 궤도 사이로 균열을 만들어 냈고, 그 위에 선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던전 내부는 포탈의 생성이 불가능할 만큼 강력한 공간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성현은 포탈을 만들어 내거나 사이를 통행하는 것을 넘어 아예 공간 자체에 구멍을 뚫어낸 것이었다.
공허 속에서 차원의 개념을 익히며 새롭게 얻어낸 성현의 힘.
덕분에 꼼짝없이 균열 안으로 빨려 들어간 가디언들은 캄캄한 검은 공간에서 두 눈을 떴다.
- 인간 따위가 어떻게……!
“인간이니까 할 수 있는 거야. 너희 같은 장난감이 아니라.”
두 거신과 마주한 성현이 말했다.
이 드넓고 어두컴컴한 공허 속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은 오직 그들 셋뿐이었고, 싸움을 방해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건물 안으로 들이닥치지만 않았을 뿐, 사방에 드글거리던 몬스터의 기척들은 말끔히 사라진 지 오래였고.
방금까지 유지되고 있던 강력한 공간의 개입 또한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놈들이 신격을 등에 업고서 지니고 있던 공간상의 이점을 없애 버린 것과 다름이 없었다.
- 건방진 놈!
- 고작 장소 하나 바꿨다고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두 거신이 험악한 기세를 뿜어내며 성현을 노려보았다.
아직 모든 힘을 드러내지 않아 보인 것은 그들 또한 마찬가지였고, 권능을 품은 그들에게 공간의 제약 따위는 무의미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차원 사이에 수많은 균열들을 뚫어냈듯이, 얼마든지 차원 사이의 통로를 열어 오갈 수 있었다.
이는 성현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너희들 생각과는 여러모로 다를 거다.”
- 뭐라고?
“주변이나 똑바로 둘러보지 그래.”
성현이 두 팔을 슬쩍 펼치며 말했고, 그러자 어둠 속을 살펴본 거신들의 눈초리에 온통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볼 수 있었다.
미처 셀 수도 없을 놀라운 숫자의 시체들.
이는 지난 며칠간 성현이 밤낮없이 공허 속을 헤매며 쓰러뜨린 수많은 공허의 괴물들의 시체였고, 그를 단 한 장소 주위에 모두 모아둔 것이었다.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서 있는 시체들.
“일어나라.”
그 한가운데에 선 성현은 팔을 뻗으며 그림자를 사방으로 흘려보냈다.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져나간 성현의 그림자는 공허의 괴물들의 신체를 파고들었고,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크아아아아!”
- 이럴 수가……!
흉측한 공허의 괴물들이 일제히 일어서며 가디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물론 두 거신은 무기를 휘두르며 공허의 괴물들을 닥치는 대로 분쇄했지만, 공격 한 번에 수백 수천의 괴물들을 해치우고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가디언들에게 있어 이러한 숫자보다도 무엇보다 당혹스러운 것은 바로 공허의 괴물들을 조종하고 있는 성현의 능력이었다.
- 어떻게 필멸자 따위가… 공허의 존재들을……!
다른 차원의 존재들과는 근원부터가 워낙에 이질적인 존재.
차원의 규칙과 개념에 얽매일 필멸자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러자 성현은 그들의 의문에 간단히 대답해 주었다.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권능이라는 거 나한테도 있거든. 그것도 더 많이.”
원래는 필멸자에 불과한 성현이 이런 차원 밖의 괴물들을 통제하기란 어림도 없었을 일이다.
하지만 그간 가디언이 품고 있던 권능들을 흡수해 오며 성현도 일반적인 필멸자의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성현이 쓰러뜨린 가디언의 숫자는 완전히 회복한 녀석들로만 한정해도 무려 셋이나 되었고.
가디언들이 지니고 있던 권능들은 그들을 쓰러뜨린 성현이 가져가며 자신의 것으로 알게 모르게 소화를 마친 후였다.
덕분에 몬스터가 아닌 공허 속 괴물들을 상대로도 그림자 전이를 통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도록 통제할 수 있는 것이었다.
“크아아아!”
쓰러뜨리면 쓰러뜨릴수록 더욱 광분하며 달려들고 있는 공허의 생물체들.
놈들은 마구 달려들며 가디언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들을 남기고 있었다.
거신이라는 명칭답게 워낙 덩치가 커 치명상을 남기기에 아주 불리하다곤 해도 움직임을 봉쇄하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쩌어어엉!
공허의 괴수들이 가디언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사이, 시야에서 간단히 벗어난 성현은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일격을 날려 주었다.
검에 달린 육중한 힘에 가디언의 몸이 휘청일 정도였고, 그로 인한 상처 역시 깊숙이 파고들었다.
물론 엄청난 양의 생명력을 지닌 가디언들답게 빠른 속도로 재생이 되긴 했지만, 던전 안에서 보였던 재생 속도에 비하면 훨씬 느려진 게 보였다.
‘좋아, 이 정도라면 가능해.’
갈루스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차원의 틈 사이 공허의 공간.
공허는 신격의 권능을 품고 있는 가디언들에게조차도 낯선 차원 사이의 이질적인 공간이다.
반면 앞서 혹독한 경험을 치르고서 적응을 마친 성현에겐 보다 익숙한 공간이었다.
차원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공허의 괴수들조차 통제하에 두도록 만들며 오히려 자신의 힘처럼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직 전체에 비해선 얼마 되지 않더라도 빠르게 소모되고 있는 생명력과 점점 깊어져 가는 상처.
예상치 못한 변수와 급변한 상황 속에서 거신들은 점차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 그아아아아!
철퇴를 든 거신의 포효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고, 곧이어 녀석의 뒤편에서 커다란 균열이 생겨났다.
검은 공허의 한켠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크기의 붉은빛의 균열.
던전으로 통하는 또 다른 게이트를 열어낸 것이었다.
이 이질적인 공간만 빠져나간다면 다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기에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놈들이 차원을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는 성현이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리 없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우우우우웅!
마력을 끌어올린 성현이 다리를 굴렀고, 그의 발치 아래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바닥에 감춰져 있던 거대한 마법진이 푸른빛을 발하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자 곧이어 뿔뿔이 흩어져 버린 가디언의 게이트.
“쉽게 보내줄 거라 생각해?”
- 네놈이 감히……!
분노한 거신의 포효가 쩌렁쩌렁 울렸다.
네이아와 그녀의 수하인 리치들까지 대규모로 불러 만들어 뒀던 특별한 마법진이자 함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질적인 환경 속에서 급하게 만들어 낸 게이트인지라 불안정한 상태였는데, 마법진이 발동되며 기껏 만들어낸 균열을 흩어지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여기서 이놈들을 붙잡아 뒀으니… 던전의 몬스터들이 바깥으로 튈 일은 없어졌다고 봐야겠지.’
성현이 가디언들을 이 어두침침한 공허 속으로 처박은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가디언들이 지닌 차원 도약 능력이었다.
아주 손쉽게 차원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놈들의 능력은 기껏 몬스터들을 지하 던전으로 통하게 한 성현의 계획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놈들을 이곳으로 불러와 나갈 수 없도록 만든 것이었다.
“그럼 이제 천천히 요리해 주지.”
* * *
쿠구구구구!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는 괴수들의 파도.
그 거센 파도를 맞고 있는 두 가디언이 있었고, 셀 수도 없는 수의 공허 괴수들이 두 거신에게 당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괴수들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단순 그림자만이 전이되어 성현의 뜻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들의 행진.
마치 두 번째 생명을 얻은 것과 같은 군단의 군주나 수하들과는 달리, 정석적인 네크로맨서의 소환수와 같은 모습이었다.
성현이 이곳의 존재들에게서 얻은, 힘의 새로운 활용법이기도 했다.
카가가가각!
거신의 어깻죽지를 길게 가른 성현이 바닥에 사뿐히 착지했다.
분노한 거신이 양옆에서 무기를 휘둘러왔지만, 성현의 움직임은 수많은 무리의 방해를 받고 있는 녀석들보다도 훨씬 빨랐다.
눈으로 쫓기조차 어려울 정도.
함정에 몰아넣었으니 달아날 여지도 없었고, 본 실력을 망설임 없이 드러낼 수 있었다.
“슬슬 힘이 빠지는 게 느껴지는군.”
놈들의 온몸에 난 커다란 상처를 본 성현이 중얼거렸다.
처음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었고, 그건 두 거신 모두 마찬가지였다.
물론 가디언들이 지닌 엄청난 생명력은 변함없어 회복되고는 있었지만 지금의 재생 속도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제 끝을 내주지.”
터엉!
성현은 단박에 발을 박차 뛰어올랐다.
거신이 휘두른 대검이 정면에서 날아오고 있었지만, 몸을 가볍게 비튼 성현은 서슬 퍼런 칼날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렇게 거신의 목덜미 부근까지 닿은 성현.
그는 곧장 특성을 활성화시키며 묵직해진 감각을 느꼈다.
[군주, 오우거 왕 ‘몰고르’의 그림자를 흡수하였습니다!]
[‘괴력’ 특성이 활성화됩니다!]
성현은 검게 물든 검을 힘껏 내리찍었다.
이미 수차례 중첩이 된 상처 위에 떨어진 그의 일격은 가슴팍을 깊게 가르며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크게 갈라진 균열은 물론, 그 안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봉인석까지 함께 파괴되었다.
- 그아아아아!
마력의 중심부인 약점 부위를 파괴당하고, 생명력마저도 소진되며 거신의 몸이 산산조각 났다.
물론 성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바로 뒤편에서 철퇴를 날리는 거신이 있었고, 재빨리 몸을 날려 녀석에게도 마지막 결정타를 날려 주었다.
쿠구구구궁!
무너져 내린 두 가디언의 거대한 파편 더미.
그 위에 내려선 성현은 부드럽게 검을 집어넣었다.
[가디언을 처치하였습니다!]
[대량의 경험치와 스탯을 획득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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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디언을 동시에 처치하며 엄청난 양의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큰 폭으로 증가한 레벨과 스탯이다.
하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디언의 정수를 흡수해 새로운 군단 강화 특성을 획득하였습니다!]
[힘 스탯 +255]
[민첩 스탯 +205]
[체력 스탯 +295]
[마력 스탯 +155]
[생명력 +104%]
[재생력 +152.5%]
[물리내성 +25%]
[상태이상 저항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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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디언을 동시에 처치함으로써 획득한 온갖 군단 강화 효과 또한 그의 시야를 한가득 채웠다.
다양하게 들어차는 것은 물론 주어지는 수치와 폭도 매우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스템상으로 표시되지 않는 보너스가 있었다.
‘느껴진다. 녀석들이 품고 있던 권능이 내게 흡수됐어.’
성현이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두 가디언을 동시에 쓰러뜨리며 권능까지 흡수한 성현.
예전 같았더라면 권능을 흡수했음에도 큰 변화를 느끼지 못했겠지만, 권능을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된 성현은 자신의 몸속에 흡수된 힘을 누구보다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앞서 증가한 레벨과 스탯들보다도 이 권능의 비중이 가장 크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메시지를 바라보고 있는 성현의 표정엔 묘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가디언을 처치하고 두 봉인석을 모두 파괴했음에도, 그에게 주어졌던 퀘스트는 여전히 완료되지 않았다.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