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덫과 사냥꾼 (6)
“…이곳인가.”
홀로 게이트를 건너온 성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게이트를 장악해 일방통행이던 통로를 반대편에서도 넘어갈 수 있도록 만들었고, 성공적으로 게이트 너머의 세상으로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놈들을 향한 첫걸음에 불과했다.
“역시나 이런 구조로 되어 있군.”
드넓은 던전의 한복판에 서 있는 성현.
그의 아래론 지하 던전에 버금가는 거대한 필드들이 줄지어 이어져 있었고, 셀 수도 없는 몬스터와 악마종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거의 성현의 지하 던전에 버금갈 정도의 장소였다.
이곳의 정체는 빛의 신 갈루스가 개입해 수많은 던전을 임시적으로 맞붙여 놓은 엄청나게 거대한 공간이었다.
차원을 넘어 이렇게 많은 수의 몬스터를 한 번에 쏟아 내려면 이런 편법이 필요했다.
덕분에 프리아에게서 미리 이야기를 들은 성현도 예상하고 있던 점이다.
일반적인 던전 생성이 아닌 게이트 방식으로 몬스터를 쏟아 내는 것부터가 이런 하나의 큰 던전을 만들어 놓았다는 셈이었으니까.
“게이트들도 한가득이고.”
주위를 둘러보는 성현의 시야에 수많은 붉은 균열들이 가득했다.
사방에 커다랗게 찢어져 있는 균열들은 이미 생성되어 있던 것들을 제외하고도 빠른 속도로 더욱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여기에 들어온 이상 저것들은 내가 신경 쓸 게 아니야. 어차피 게이트들은 모두 지하 던전으로 이어질 테니까. 몬스터 쪽은 녀석들에게 맡긴다. 내가 신경 써야 할 건 두 놈이지.’
츠츠츠츳!
[헌터, ‘성찬일’의 그림자를 흡수하였습니다!]
[‘뇌신의 눈(S)’ 특성이 활성화됩니다!]
번쩍 뜬 성현의 두 눈이 황금빛으로 차올랐다.
곧이어 읽혀 드는 마력의 흐름들.
물론 이곳은 필드들이 뒤섞인 워낙에 거대한 던전인 데다, 온갖 몬스터와 악마종까지 뒤엉키며 많은 마력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하나 성현의 초인적인 감각과 마력은 그 수많은 마력의 흐름들 사이로 원하는 것만을 정확히 짚어 낼 수 있었다.
한참 떨어진 먼 거리에서조차 말이다.
“찾았다. 저쪽이군.”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는 거대한 마력의 흐름.
그것도 두 개의 거대한 마력이 한곳에 모여 있는 덕에 더욱 찾기가 쉬웠다.
두 차원 사이에 균열을 뻥뻥 뚫어 대고 있는 주범이기도 했다.
“어떤 녀석을 먼저 처리할 건지 고민할 필요는 없어서 좋네.”
스릉!
성현은 다시 검을 부드럽게 뽑아 들었다.
놈들의 위치를 안 이상 낯선 환경이라고 주저할 것 없었다.
물론 저 너머를 응시하고 있는 그의 시선 사이엔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온갖 몬스터와 악마종들로 가득 차 있었다.
놈들은 이 거대 던전 내부 곳곳에 뚫려 있는 게이트로 몰려들었고, 열심히 이차원으로의 침공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막 게이트 하나의 통제권을 빼앗고, 차원을 건너와 버린 성현의 주위로는 이야기가 달랐다.
게이트를 넘기 위해 바로 앞까지 몰려들어있던 녀석들은 물론, 시야에 보이지 않을 거리에서도 수많은 녀석이 새롭게 나타난 그의 기척을 즉각적으로 눈치챘다.
“크르르륵!”
“키에에에엑!”
성현의 존재를 눈치 챈 몬스터와 악마종들이 괴성을 토해 내며 그에게 몰려들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침입자를 본능에 따라 제거하기 위함이다.
“미안하지만 너희까지 일일이 상대해 줄 시간 없거든. 그럴 시간이 있었다면 굳이 이렇게 넘어올 것도 없이 던전 안에서 하나하나 다 상대해 줬겠지.”
마구 달려들고 있는 몬스터들의 모습에 성현이 콧방귀를 뀌며 놈들을 바라보았다.
성현은 차원을 건너오면서 군단의 병력들은 전혀 동반해 오지 않았다.
이즈나나 로칸 같은 주요 전력이자 군주도 마찬가지다.
가디언들이 보이는 공간의 간섭이 심해 그림자의 힘만으로 도중에 소환하는 게 불가능함에도, 유일한 통로나 다름없는 균열을 통해 데려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군단을 대동한다면 오히려 번거로워질 뿐이다.
이 거대한 던전과 수많은 괴수의 행진을 군단과 함께 정면 돌파로 뚫어 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오히려 혼자라면 그 과정을 확 줄여 버릴 수 있었다.
콰아아아아!
“키이이이익!”
성현의 뒤편에 놓인 게이트의 안쪽.
커다랗고 강력한 화염 줄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 맹렬한 화염에 휩쓸린 몬스터들은 꼼짝없이 잿더미가 되었고, 그 범위 또한 굉장했다.
이글거리는 열기 사이, 초토화된 땅 위에 성현만이 멀쩡한 채로 서 있었다.
“여기선 딱 한 녀석이면 충분하지.”
“크르르르!”
균열 사이로 고개를 내민 비룡 ‘안타라스’.
모든 와이번들의 군주인 녀석의 날개와 거체가 쿵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 쏟아졌던 화염 브레스의 범위 바깥에선 또 다른 몬스터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지만, 저런 뚜벅이들이 달려오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었다.
“가자.”
후우우웅!
성현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안타라스의 두 날개가 활짝 펴졌고, 그를 등에 태운 채 단숨에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이전보다도 훨씬 빨라진 안타라스는 엄청난 속도로 필드를 빠르게 주파했다.
정확히 성현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물론 하늘 위로도 빼곡한 비행 몬스터들이 날아들어 그들을 방해하려 했지만, 안타라스의 속도가 워낙 빠른 데다가 정면을 막아서려 해도 강력한 화염 숨결 앞에선 맥없이 나가떨어질 뿐이었다.
뭣보다 비행 몬스터라 해 봤자 드글드글한 지상의 몬스터만큼은 숫자가 되지 못했기에 정면 돌파보단 훨씬 수월하게 필드를 돌파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가디언의 위치로 찾아간 성현과 안타라스는 협곡 사이에 놓인 커다란 신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던전 속에서 으레 발견될 법한 단순 건축물이라기엔 지형을 통째로 이용해 깎아 만든 듯한 구조였고.
그 크기 또한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다.
“이 안쪽에 있는 건 확실해 보이네.”
콰드드득!
성현은 굳게 잠긴 신전의 문을 일부 잘라 내 버리고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천장과 탁 트인 내부 공간이 그들을 맞이했다.
이젠 굳이 특성을 사용하지 않아도 이 안쪽에서 느껴지는 기척만으로 놈들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성현과 안타라스가 신전의 안으로 들어서자, 맹렬히 그들의 뒤를 쫓던 비행 몬스터들은 더 이상 추적해 오지도 않았다.
기세로 봐선 이런 신전 안쪽이든 땅속 끝까지 따라붙을 기세였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깔끔히 포기해 버린 녀석들의 움직임.
그 이유라면 대강 알 것 같았다.
쿠구구구궁!
지천을 울리는 커다란 소음과 떨림이 터져 나왔다.
땅 전체가 덜덜 떨려 오고, 양 옆으로 나타난 커다란 기척의 등장에 성현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제야 손님을 반겨 줄 생각을 하는군.”
콰아아앙!
양쪽 벽의 한쪽 면씩을 부수고 나타난 두 명의 거신.
마치 석상과도 같은 질감을 가진 거신들은 성현을 내려다보았고, 성현도 놈들의 모습을 응시했다.
놈들은 아니나 다를까 엄청난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전에 상대하던 베히모스보다는 덩치가 작지만, 그럼에도 그때와 같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거대한 덩치를 뽐내며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저기 있네.’
성현은 놈들의 가슴팍 깊숙이에 박혀 있는 봉인석의 기운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가장 많은 양의 마력이 흐르고 있는 장소이기도 했고, 엄청난 생명력을 지닌 놈들의 약점 부위이기도 할 터였다.
‘다만 저번처럼 몸속으로 비집고 들어가기엔 무리일 듯한데.’
조금은 형태가 다른 두 거신의 생김새.
하지만 양쪽 다 몸속으로 비집고 들어가기엔 구조상 여의치 않아보였다.
그렇게 성현이 머릿속으로 공략 방법을 마구 시뮬레이션하고 있던 사이, 두 거신은 기다려 줄 생각이 없다는 듯 무기를 들어 올렸다.
거대한 그들의 팔위로 한껏 치켜 올려진 철퇴와 대검.
콰아아아앙!
엄청난 힘이 실려 있는 두 무기가 내리꽂히며 충격파를 만들어 냈고, 내부를 완전히 초토화시켰다.
놈들이 팔을 들어 올리자마자 일찌감치 뒤로 물러났던 성현마저 그 여파에 휩쓸릴 정도였다.
“후, 살벌하네.”
안타라스가 날개를 펼치며 성현을 보호해 충격파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지만, 얼얼한 기운이 남아 있을 만큼 그 여파는 대단했다.
자신이 처음 서 있던 자리가 움푹 파여 험악한 구덩이가 만들어졌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가디언을 두 놈이나 동시에 상대하는 건 처음이지만… 어디 해 보자고.”
일단은 정공법부터였다.
또 다시 날아드는 거신의 대검이 그를 노렸지만, 코앞까지 들이닥친 대검이 닿기 전.
이미 움직이고 있던 안타라스가 성현을 낚아채고선 위로 솟구쳤다.
왼편에 있던 거신의 철퇴가 날아오른 그들을 노리고서 휘둘러졌지만,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비룡 안타라스의 민첩한 움직임에 철퇴는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지금 내가 노려야 할 곳이라면 하나뿐……!’
타악!
뒤이어 휘둘러진 거신의 대검까지 피하며 성현은 안타라스의 등 뒤에 힘껏 발을 박찼다.
짧은 순간에 거신의 붉은 외눈과 마주한 성현이었지만, 성현은 거리낄 것 없이 놈의 가슴팍으로 향했다.
[군주, 오우거 왕 ‘몰고르’의 그림자를 흡수하였습니다!]
[‘괴력’ 특성이 활성화됩니다!]
콰드드드득!
성현의 검이 놈의 가슴팍을 향해 깊숙이 내리꽂혔다.
정확히 봉인석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틀어박힌 그의 칼날.
그림자의 힘까지 머금어 성현은 검 자체의 길이보다도 훨씬 깊은 상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역부족이었다.
‘아직 한참 부족하네.’
검을 한껏 꽂아 넣은 성현의 표정이 슬쩍 찌푸려졌다.
어지간한 거체의 몬스터라도 깊숙한 치명상을 안겨 줬을 그의 일격이었지만, 거신의 몸뚱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너무나도 거대하다는 게 문제였다.
자체적인 내구력도 엄청나 깊이 꽂기도 어려운데, 이렇게나 깊이 찔렀음에도 봉인석에 닿기는커녕 턱도 없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다시 회복하는 재생 속도조차 매우 빨라, 검이 꽂혀 안쪽으로 파고들고 있는 와중에서도 표면이 매워지는 감각이 느껴졌을 정도였다.
쩌어어엉!
‘미친……!’
그때, 철퇴가 휘둘러지며 성현이 안착했던 거신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성현은 가까스로 뒤로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지만, 그 엄청난 충격에 거대한 거신의 몸뚱이가 통째로 휘청일 정도였다.
- 그아아아아!
하지만 충격에 잠시 휘청이던 것이 전부였을 뿐.
철퇴가 강타하며 파괴된 표면과 성현의 검이 찔러진 깊은 상처 또한 금방 아물어 말끔해졌다.
같은 거신의 철퇴를 정통으로 맞았음에도 멀쩡한 놈의 모습.
타악!
“역시 이 공간 안에서는 제대로 싸우기엔 무리로군.”
안타라스의 등 위로 안착한 성현은 그런 놈의 모습에 확신했다.
빛의 신 갈루스가 여러 던전들을 뭉쳐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공간이 바로 이곳이었다.
덕분에 이곳은 갈루스의 강력한 영향력으로 뒤덮여 있는 장소였고, 그 피조물인 가디언들에겐 큰 폭의 힘과 생명력을 부여해 주었다.
게이트가 뻥뻥 뚫리고 있는 여기선 공간의 왜곡과 간섭력까지 심해 그림자를 통해 군단을 불러올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괴물 같은 놈들을 지구 차원으로 끌어들일 수도 없는 상황.
지하 던전에 데려오는 것은 그나마 낫겠지만 그 또한 군단에 피해가 커질 터였고, 그보다 더 좋은 수가 하나 있었다.
‘그렇다면 원래 계획대로 가볼까.’
츠츠츠츠츳!
쥐어 든 성현의 기다란 칼날이 검은 기운으로 물들었다.
가디언 녀석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 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