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193화 (193/202)

193화 덫과 사냥꾼 (5)

쿠구구구구!

지하 던전에서 열린 거대한 붉은 균열.

열린 게이트 사이로 나타난 몬스터들은 어느새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불어나 있었고, 필드를 한가득 메우며 쏟아졌다.

온갖 지형 사이로 밀고 들어오는 괴물들의 모습.

그런 녀석들의 모습을 코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시선이 있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군.”

“그래 봐야 아직은 오합지졸들이지.”

성벽 위에선 이즈나와 로칸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고지대에 놓인 성채로 그들 말고도 수천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필드의 협곡 사이로 몰려들 괴수들을 1차적으로 막아설 주요 방어선 중 하나이기도 했다.

키이이이익!

귓청을 찢을 듯이 괴성을 토해 내는 몬스터 무리들.

거의 수만이 넘는 숫자가 끝도 없이 몰려들고 있었고, 거리상으로 가까워져 벌써 코앞에 닿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이즈나와 로칸은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한 눈빛으로 놈들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지형상 이점인 고지대를 대부분 넘어오기 시작한 놈들의 모습에 뱀파이어 수하 중 한 명이 먼저 입을 열 정도였다.

“이즈나님, 슬슬 공격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아니, 굳이 저런 잔챙이들을 상대로 먼저 힘 뺄 필요 없어. 애초에 힘이나 빼려고 먼저 내보낸 잡스런 놈들이니까.”

이즈나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지금 그들의 앞에 몰려들고 있는 몬스터들의 무리는 최소 A급 이상에 S급에 가까울 몬스터들이다.

어디 가서 떨어지는 수준의 몬스터로 취급받기는커녕, 예전 같았더라면 고위 헌터들이 잔뜩 모이며 난리가 났을 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저 몬스터들이 마주하고 있는 것이 성현의 그림자 군단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성현의 군단은 그동안 성현과 함께 성장해온 데다, 그림자의 군단 강화 효과까지 적용받고 있었다.

특히 어느 정도 지난 시점부터는 본판부터가 최소 S급 이상의 수준이 아니라면 애초에 수하로 들이지도 않았을 정도였으니 군단 내의 수준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감히 일반적인 S급 던전의 몬스터들 따위는 비교될 바가 아니었다.

저 많은 몬스터들 사이로 아직 악마종도 끼어 있지 않은 걸로 봐선, 지금 쏟아지는 녀석들은 그저 숫자로 밀어붙여 상대를 지치게 하기 위해 던져지는 미끼에 불과했다.

물론 미끼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

“저 녀석들한텐 이 정도면 충분하지.”

이즈나는 자신의 왼손에 마력을 흐르게 했다.

그리고선 왼손을 그대로 바닥에 짚으며 마력을 흘려보냈다.

이즈나가 지닌 마력에 비해선 애들 장난처럼 느껴지는 수준에 불과한 마력의 양이었지만, 그녀가 방금 보인 것은 공격 마법이 아니었고 시동을 걸기엔 충분한 양이었다.

우우우우웅!

이즈나의 마력이 흘러 들어가며 성채 아래에 미리 준비해 둔 마법진이 발동되며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성채를 제대로 보수하고 병력 배치하는 와중에, 리치들이 마법진으로 손을 본 것 중 하나였다.

“음, 역시 쓸 만하긴 하네.”

이즈나가 자신의 손을 슬쩍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마력 운용에 있어 훨씬 편한 감각으로 다가왔고, 소모되는 마나의 양까지 줄어들게 되었다.

성채 내부로 원활한 마력의 흐름을 만들고, 마법의 위력을 증폭시켜 주는 마법진의 효과.

이즈나는 그 효과를 느끼자마자 그 즉시 커다란 마력을 끌어올렸다.

츠츠츠츳!

그녀의 주위로 한가득 맴돌기 시작한 붉은 빛의 마력.

이즈나는 엄연한 보스 몬스터 출신이었고, 그에 걸맞는 무식한 깡스탯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다 고귀한 피나 마력의 심장 같은 관련 특성에, 군단 강화 효과에 존재하는 마력량 버프까지 받고 있었다.

인간으로선 불가능한 수준의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을 지닌 그녀가 마법진의 도움까지 받게 되었으니.

어지간히 마법을 쏟아 내는 것 정도는 사실상 마력이 소모되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언제나처럼 마법의 위력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콰아아아아!

“키이이이익!”

“크아아아!”

성채 아래로 거대한 지옥의 불길이 쏟아졌고, 협곡 사이로 몰려들던 몬스터들은 꼼짝 없이 불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위력은 몬스터의 수준대로 맞추고 범위는 최대한 키운 덕에 불길이 휩쓰는 범위는 엄청났고, 몇 만의 몬스터 무리가 일시에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재미없긴.”

쯧하고 혀를 찬 이즈나는 따분하다는 듯 성벽에 몸을 기댔다.

물론 게이트가 쏟아 내고 있는 엄청난 몬스터들의 숫자상, 겨우 이 정도가 끝은 아니었다.

잿더미가 된 협곡을 보고도 몬스터들은 죽음의 공포도 없이 또 다시 몰려들었다.

하지만 전과 비슷한 몬스터들이 또 다시 밀고 들어와 봤자였다.

이즈나가 나서며 몇 번의 반복 작업을 거칠 뿐이었고, 셀 수 없는 숫자의 괴물들이 그녀의 경험치가 되어 주며 산화되었다.

1차 방어선의 다른 거점들도 아마 지금쯤 이러한 반복 과정을 거치고 있을 것이다.

모든 거점에 이즈나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 해도 각 거점으로 통하는 길목마다 엄청난 수의 마법 함정을 깔아 뒀고, 요새엔 방어 마법까지 덕지덕지 붙여 둔 덕에 셀 수도 없을 몬스터가 계란으로 바위치듯 맥없이 시체가 되고 있었다.

우우우우웅!

“게이트가 또 나타났군.”

“…그렇네.”

로칸과 이즈나의 시선이 저 너머로 향했다.

필드 위에 새로이 생성된 붉은 기운의 균열.

거리가 꽤나 떨어진 곳임에도 워낙 하늘을 일부 메울 만큼 크기가 거대한 균열들인지라 바로 눈에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처음 생겨난 그 균열과는 달리, 저것이 무려 다섯 번째로 생성된 게이트라는 것이었다.

“벌써 다섯 개로 불어나다니 예상보다 꽤 빠르군.”

로칸이 게이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게이트가 생겨날 거란 건 그들도 예상을 하고 있던 바였다.

놈들은 몬스터들을 전 지구에 뿌릴 작정이었던 만큼 여러 개의 통로가 나타나는 것이 당연했다.

단지 프리아의 도움을 받은 성현이 생성되려는 모든 게이트의 좌표를 모조리 이곳으로 끌고 왔을 뿐이다.

“바꿔 말하면 이제 다섯 개에 불과하다는 거겠지. 아직도 쏟아질 몬스터가 넘쳐 난다는 거니까.”

이즈나가 미간을 슬쩍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리 군단의 규모가 큰 데다 방비를 잘해뒀다고 한들, 가만히 앉아 방어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잠깐, 저길 봐라.”

그때, 로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균열을 보고있던 와중 건너편에서 나타난 강렬한 그림자의 기운과 군단.

몬스터의 공세를 방어중인 거점들과 다르게 유일하게 앞으로 치고 나가고 있는 군단의 모습이었다.

쿠우우우웅!

“키에에엑!”

끝없는 몬스터 무리를 헤치며 전진하고 있는 성현의 그림자 군단.

그 선두에 서있는 것이 바로 성현이었고, 무려 수만의 군단 수하들을 앞에서 이끌며 거침없이 나아갔다.

‘정말 징그럽게도 토해 내네.’

저 너머의 균열에서 쏟아지는 몬스터들의 모습을 본 성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로 불평하기엔 진짜 싸움은 시작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게이트를 뻥뻥 뚫어 대는 주범인 가디언은 아직도 던전 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베히모스와 비슷한 덩치를 지녔을 놈들이 던전에 나타난 것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고, 아직 둘 중 한 녀석도 게이트를 직접 넘어오진 않았다는 것이다.

‘슬슬 놈들도 이상한 점을 느끼겠지. 내가 게이트를 빼돌렸다는 사실을 곧 알게될 거다. 가급적이면 놈들이 직접 나타나기 전에 빨리 접근해야 해.’

조금 전부터 계속해서 성현의 시선이 닿고 있는 곳은 게이트였다.

군단을 이끌고서 나아가고 있는 이유부터가 수를 줄이기 위함이 아니라, 몬스터들이 쏟아지고 있는 저 장소에 닿기 위해서였다.

공간의 간섭이 심한 탓에 포탈을 이용하는 게 불가능했기에, 이렇게 직접 돌파할 수 밖에 없었다.

“주군, 저희도 합류하겠습니다!”

그때, 요새를 뛰쳐나온 이즈나와 로칸이 마족 수하들을 이끌고선 성현에게 합류했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거점에서 1차 공세를 받아낸 칼라일이나 메이트리아 등의 다른 군주들도 시시각각 합류했다.

“그래, 다들 가자!”

성현은 군주들과 함께 거침없이 괴수들을 베어 가며 나아갔다.

고작 어중간한 A와 S급 사이대의 몬스터들이 막아서 봐야, 군주와 군단의 최정예들이 모인 그들의 발목을 잡기란 역부족이었다.

아예 물살을 가르듯 나아가는 그들은 균열들을 향해 매우 빠르게 다가설 수 있었다.

“주군, 새로운 게이트입니다!”

“마침 잘 됐어.”

어느새 필드 내에서 열 개 이상으로 불어난 게이트들.

성현은 그중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새롭게 생성된 게이트를 향해 다가섰다.

그렇게 게이트의 바로 앞에 닿은 성현은 붉은 빛으로 일렁이는 거대한 균열을 바로 앞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역시 던전과는 차원이 다르군.”

그동안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방식은 ‘던전’으로, 지형과 함께 통째로 전송하듯 차원을 넘어 보내지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게이트는 일반적인 던전과는 기본적인 방식부터가 달랐다.

차원의 틈과 이어진 게이트는 차원의 벽 너머에서 즉시 몬스터를 토해 내는 것이었고, 던전처럼 내부로 들어가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영구적으로 이어져 사라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이 단순한 포탈과도 결을 달리했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게이트는 엄청난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는 그 특성상, 원래대로라면 인간으로선 주위로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우우우우웅!

‘큭…….’

아니나 다를까 게이트는 격한 거부 반응을 보이며 접근한 성현을 뒤로 밀어냈다.

거센 저항에 그의 발이 주르륵 미끄러질 정도였다.

하지만 성현은 게이트의 거부 반응을 온 몸으로 받아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츠츠츠츠츳!

더욱 심해진 반발에 타오르는 불꽃처럼 일렁이고 있는 게이트의 모습.

평범한 수준 대의 헌터라면 진즉에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기고도 남았을 반발력이었다.

하지만 성현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서 발걸음을 내딛을 뿐이었고, 결국 게이트의 바로 앞까지 다가설 수 있었다.

“잡았다.”

성현은 공간의 균열을 향해 팔을 뻗었다.

차원을 잇는 균열 사이를 통해 그의 팔이 쑥 들어갔고, 성현은 보이지 않는 팔의 감각에 집중했다.

무려 차원을 넘는 통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일.

차원에 대해 무지한 필멸자로선 꿈도 못 꿀 그런 일을 성현은 단숨에 해내었다.

파아아아앗!

‘됐다……!’

짙은 붉은 빛으로 일렁이던 거대한 공간의 균열이 새하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차원을 잇는 통로의 구조 자체에 변형을 준 것이다.

방금까지도 이 게이트를 통해 쏟아지던 몬스터들의 행렬이 완전히 멈춰 서게 되었다.

다른 게이트들은 여전하지만 이쪽 통로의 주도권을 완전히 성현이 갖게 된 것이었다.

“제법이구나. 꽤나 깔끔한 솜씨였다.”

곁을 맴돌며 지켜보고 있던 프리아가 미소를 띄었다.

그러자 성현은 짧게 대꾸했다.

“차원 사이의 공허 속에서 며칠을 고생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하지만 기뻐하기엔 이르구나. 아직은 첫 단추에 불과하니.”

“하, 나도 알아.”

콧방귀를 뀐 성현은 망설임 없이 게이트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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