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191화 (191/202)

191화 덫과 사냥꾼 (3)

“이쪽이에요.”

“…….”

지하 던전 안으로 들어온 한승희는 앞서가는 네이아의 안내를 받으며 산맥을 따라 걸었다.

성현의 집 지하실에 위치한 이 지하 던전에 대해서만큼은, 길드 내부라 해도 누구에게도 알려 주지 않았던 사실이다.

위치 같은 자세한 정보는커녕 아예 존재에 대해서도 몰랐을 만큼 전혀 알리지 않았다.

덕분에 이 갑작스러운 초대에 불려 온 한승희는 어안이 벙벙한 채 주변 광경을 눈에 담아야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산맥을 따라 걷는 와중에 계속해서 내려다보이는 광경들.

이곳은 결코 단순한 던전이 아니었다.

광활한 필드와 지형 사이로 보이는 각종 거점들과, 그 주위로 모여 살고 있는 몬스터와 마족들의 모습은 마치 자리를 잡은 하나의 문명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거기다 꼭 아래를 내려다볼 필요도 없었다.

철컹!

“크르르륵!”

대규모 언데드 군단의 무리가 그들의 곁을 지났다.

산맥을 가로질러 통과하며 진군하고 있는 녀석들의 모습에 한승희는 한참이나 시선을 빼앗겼다.

두 발로 서 있지만 날렵한 짐승의 몸을 한 정체 모를 언데드들은 일반 몬스터라곤 생각되지 않을 만큼 무장까지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대량 생산이 된 듯한 모양새임에도 훌륭한 재료, 정교한 제련 실력과 마법 부여까지.

어지간한 고가 헌터 장비 이상의 성능을 지니고 있는 게 한눈에 들어왔고, 그 모습에 한승희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보나마나 그 녀석이 쥐여 준 거겠지. 사치스럽기는.’

자신의 소환수들에게 주렁주렁 최고급 장비를 쥐여 줄 수 있는 네크로맨서라면 전 세계에 성현밖에 없었다.

아니, 굳이 앞에 조건을 붙일 것도 없이 현재 지구상에 그보다 더 많은 부를 쥐고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이런 거대한 세상을 독점하고 있었을 줄이야. 쏟아지는 자원도 엄청나겠지.’

한승희 역시 그 치열했던 경쟁 속에서 자신의 대형 길드를 이끌고 있던 길드장이었다.

길드에서 확보하고 있는 최상위 던전의 중요성이라면 잘 알고 있는 바.

이런 거대한 던전에서 얼마나 많은 자원이 잠들어 있고, 그 가치가 천문학적일 거란 것쯤은 지금 본 것만으로도 판단이 가능했다.

덕분에 그동안 성현의 주머니에서 나오던 그 엄청난 자금원들이 다 어디서 나온 건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이 정도 규모라면 소환수만 최소 백만 단위는 넘겠는데.”

“필드 전역으로 따진다면 그 정도 숫자는 넘어선 지 꽤 되었죠.”

네이아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성현이 바깥에서 싸우고 구를 동안에도 던전의 공략과 병력 충원은 한시도 멈춘 적이 없었다.

기존 필드에서 리젠되거나 다음 필드에 맞닥뜨려 쓰러뜨린 적은 군단에 편입되어 더욱 규모를 키울 뿐이었고. 던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필드의 규모가 커지고 몬스터가 많아지면서 군단의 규모는 시간이 흐를수록 눈덩이가 굴러가듯 더욱 빠르게 불어났다.

물론 그러한 과정 속에서 규모뿐만이 아닌 병력의 질까지 함께 상승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었다.

방금 그들을 스쳐 지나간 언데드 군단도 평균대의 S급 던전 정도는 가뿐히 짓밟을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수준대의 전력이었다.

“매번 어디론가 사라지는 데다, 몬스터들은 또 어디서 그렇게 붙잡아 오나 했더니… 이런 장소가 있었단 말이지. 그나저나 대체 여긴 어디야? 지구는 맞겠지?”

“정확한 위치를 알려 드릴 순 없네요. 하지만 지구 차원은 맞아요. 아무리 제 마법이라도 차원을 넘어 다닐 순 없으니까요. 저희 같이 일반적인 필멸자로선 무리죠.”

‘…그럼 이성현은 일반적인 필멸자가 아니라는 건가?’

네이아의 말에 한승희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가 초대를 받았다곤 해도 입구로 들어온 것이 아닌, 생성된 포탈을 통해 넘어온지라 자신이 선 던전의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했다.

덕분에 성현의 집 지하실에 이런 거대한 던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할 것이었다.

“아, 다 도착했네요.”

앞서가던 네이아가 수풀을 한차례 헤쳐 나오더니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자 한승희는 멈춰 선 자리 앞에 놓인, 산 정상에 위치해 있는 거대한 요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긴?”

이런 산맥 위에 이만한 규모의 요새가 세워져 있다니.

물론 던전 속에 이런 시설 같은 게 있다고 아주 이상한 일인 건 아니었다.

던전에서 사원이나 성채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정교한 시설들이 발견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앞에 놓인 것은 보통 던전에서 발견되는 방치된 폐허와는 거리가 멀었다.

말끔하게 증축 및 보수 작업이 이루어진 데다가, 방어 마법까지 둘둘 두르고 있는 것이 그녀의 눈에 보였다.

“너희 솜씨지?”

“그야 물론이죠.”

네이아가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요새 지하엔 거대한 마법진이 깔려 있어 마력의 흐름이 가득 흐르고 있었고, 그는 전부 리치들의 정교한 솜씨가 뒷바탕되어 있었다.

‘걸어오는 동안 절벽 아래를 내려다볼 때에도 거대한 관문이나 성채들이 길목마다 놓여 있는 걸 봤어. 멀리서 봤을 땐 단순히 폐허들을 임시 거점으로 사용한 정도로 봤지만… 그게 아니었네.’

이곳은 던전을 지날 때 잠시 머무를 거처 정도가 아닌, 무언가에 대해 방어를 하기 위해 제대로 마련해 둔 요새였다.

그런 의도가 아니라기엔, 어지간한 인력이나 자원이 든 게 아닐 터였다.

덜컹!

네이아의 손짓과 함께 커다란 성문이 열렸다.

“따라오시죠.”

“무슨 전쟁이라도 준비하는 건지…….”

“그건 비슷하네요.”

성문을 통과한 그들 둘은 요새의 안으로 들어섰고, 건물의 기다란 복도를 걸었다.

“비슷하다니 그건 무슨 소리야?”

“이곳도 엄연한 던전인 만큼, 바깥세상과 입구로 연결되어 있어요. 하지만 몬스터가 밖으로 나와 던전의 위치가 다른 인간들에게 알려지는 걸 주군께서 반길 리가 없죠.”

“…그야 그렇겠지. 나 같아도 그랬을 테니까.”

온갖 몬스터와 자원들로 가득 차 있는 S급 이상의 초거대 던전이다.

이런 정보가 알려진다면 9대 길드를 포함한 온갖 하이에나 떼들이 몰려들 게 뻔했고, 한승희 자신이 같은 상황에 놓인다고 해도 던전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든 숨겼을 것이다.

“그래서 몬스터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대비해, 이런 거점까지 세워 가며 각 길목을 지키게 한 거예요. 던전이 활성화되면 몬스터들은 본능적으로 밖으로 나가려하니 혹시나 빠져나가는 몬스터가 없도록 한 거죠.”

“…하지만 그런 것 치곤 좀 과한 거 아냐? 요새에 이 정도 방어 마법들을 둘둘 둘러 두다니. 몇몇 빠져나갈 수 있는 몬스터를 의식했다기엔 이렇게까지 투자할 필요는 없을 텐데.”

“맞아요,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죠. 이 요새를 비롯해 방어 거점들은 곧 닥칠 거대한 파도를 막기 위함이에요.”

“거대한… 파도?”

네이아의 말에 한승희의 고개가 갸웃 돌아갔다.

하지만 그녀가 네이아에게 질문을 던지기 전, 복도의 맞은편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이 지하 던전의 주인이자 이지스의 길드장, 성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그의 등장에 한승희는 깜짝 놀라며 반응했다.

“뭐… 뭐야 너… 돌아와 있던 거였어?”

“그래, 나도 방금 돌아왔지.”

성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가디언 베히모스를 쓰러뜨리고도 며칠을 넘도록 또 다른 차원의 틈 속에 갇혀 지내던 그였다.

하지만 몇 시간 전 차원의 틈을 직접 빠져나오며 다시 돌아오게 되었고.

한승희를 여태 감추고 있던 지하 던전에까지 직접 부른 것도 그의 뜻이었다.

“사지는 멀쩡해 보여서 다행이네.”

“덕분이지.”

“뭐, 안부는 이쯤이면 됐고. 너도 돌아왔다면 듣긴 했겠지만, 바깥쪽에선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그래, 나도 알고 있어.”

성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가 맡기고 떠났던 국내에 숨은 악마종의 소탕은 한승희를 비롯한 산하 길드원들이 잘 처리하며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악마종과 달리, 다른 사안에 대해선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던전에 대한 문제 맞지?”

“…맞아.”

가디언 베히모스와의 싸움이 끝났지만 성현의 복귀는 며칠이나 걸리고 있던 사이.

그동안 점점 증가세를 보이고 있던 던전은 어느샌가 뚝하고 멈췄고, 국내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단 한 건의 던전도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여태 단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는 이상 상황.

최근 들어 증가세가 도드라지며 관계자들의 우려를 샀던 것과는 정반대로 아예 던전의 생성이 멈춰 버렸다.

하지만 던전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좋아할 순 없었다.

폭풍전야라는 말이 있듯, 오히려 심상치 않은 낌새가 느껴졌다.

이번 사태를 접한 성현과 한승희 역시 헌터로서의 본능적인 직감이 다가오는 위협을 감지하고선 경고해 오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힘을 회복한 가디언들이 곧 이쪽으로 나타날 거야. 갑자기 생성이 멈췄던 던전들은 그 이상으로 일시에 쏟아지겠지.”

“…확실해?”

“내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어.”

그동안 갈루스가 지구를 향해 던전과 몬스터들을 보내던 차원의 틈 사이였다.

성현은 그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상한 낌새를 확인할 수 있었고, 놈들의 계획을 읽어 낼 수 있었다.

“후우, 그렇게 되면 재앙이 따로 없겠네.”

“그렇지.”

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이상 사태가 생겨난 이상, 프리아가 경고해 왔던 대로 갈루스의 개입이 일어날 것이 분명해졌다.

차원의 사이를 넘는 통행량엔 어느 정도 제한이 있었고, 그 이상으로 던전의 생성을 한 번에 쏟아 내기 위해선 훨씬 큰 힘이 가해져야 한다.

두 가디언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었고, 차원 개입에 따른 페널티를 감수한 갈루스의 직접적인 개입이 이루어져야 했다.

가디언과 악마종, 몬스터들까지 여태까지 보지 못했을 만큼 엄청난 수의 괴물들이 쏟아질 테고, 아예 이번 기회에 인류를 절멸시킬 작정이었다.

“어찌어찌 공격을 막아 낸다 해도 궤멸적인 피해를 피할 순 없어. 우리 전부가 나선다 해도 일시에 전 지역에서 쏟아지는 대군을 피해 없이 막아 내기란 불가능하니까.”

“그럼 방법이 없는 건가?”

“아니, 생각해 놓은 방법은 있어. 너희와 길드원들의 도움이 필요해. 그래서 널 여기까지 불러온 거고, 한 번 들어 보겠……?”

“들어 보고 자시고 당연히 함께해야지. 뭘 물어보고 앉아 있어. 몬스터 놈들한테 죽고 싶어서 청성 놈들과 싸우면서 개고생하던 게 아니거든? 다른 9대 길드 놈들도 멱살이라도 잡아서 끌고 오면 돼.”

성현의 어깨를 툭 치고 간 한승희가 복도 안쪽으로 먼저 성큼성큼 나아갔다.

“아까부터 이 아래에 마력이 느껴지는데, 이쪽으로 가는 거 맞지?”

“그래, 맞아.”

고개를 저은 성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한승희와 함께 요새의 지하를 향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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