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덫과 사냥꾼
성현은 그림자를 머금은 칼날을 높이 들어 올렸다.
모든 심장이 파괴되어, 이젠 반파된 마지막 심장부만이 남아 있는 상황.
다른 모든 심장부의 마력 공급이 끊기며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물론 무방비 상태라 해도 아무나 파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권능을 품고 태어나 불멸자인 베히모스였고, 필멸 강제의 힘을 지니고 있는 성현의 검만이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성현이 이곳 핵심 심장부를 다른 군주에게 맡기지 않고 홀로 찾아온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제 그만 사라져라.”
콰드드득!
성현의 검이 베히모스의 심장을 깊숙이 베어 내었고, 대량의 피와 마력이 쏟아졌다.
곧이어 흔들림과 엄청난 충격이 이어졌다.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천장과 벽 사이로 녀석의 신체가 빠르게 붕괴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끄아아악!”
- 그어어어어!
베히모스의 절규가 안팎으로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녀석의 마력이 담긴 마지막 심장이 파괴되며, 그 안에 놓인 봉인석까지 함께 파괴되었다.
녀석의 몸속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장악력과 간섭 또한 사라지는 게 바로 느껴질 정도였다.
쿠우우웅!
완전히 으스러진 베히모스의 몸뚱이가 널브러졌고, 던전 한복판에 거대한 시체가 충격파를 만들어 냈다.
물론 내부에 있던 성현이나 그림자 군단의 수하들은 미리 예상하고 있던 덕에 그 충격을 직접 받진 않아 신체의 붕괴 사이에서도 큰 피해 없이 무사할 수 있었다.
[연계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였습니다!]
[퀘스트 보상을 수령합니다. 대량의 경험치 및 추가 스탯을 획득하였습니다.]
[힘 스탯이 85만큼 증가합니다!]
[민첩 스탯이 85만큼 증가합니다!]
[체력 스탯이 85만큼 증가합니다!]
[마력 스탯이 85만큼 증가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가디언 ‘베히모스’를 처치하였습니다!]
[가디언을 처치해 정수를 획득하였습니다. 새로운 군단 강화 효과가 추가됩니다.]
[새로운 군단 강화 특성이 부가되었습니다!]
[힘 스탯 +200]
[체력 스탯 +250]
[생명력 +17.5%]
[마력 스탯 +50%]
[마나 재생 +300%]
…….
프리아가 내어 준 연계 퀘스트의 완료, 그리고 가디언의 처치와 정수 흡수까지 이어지며 성현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들이 가득 차올랐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듯 엄청난 양의 보너스다.
단순히 종류만 많은 것이 아니라, 보상으로 주어지는 수치부터가 다른 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이번 퀘스트 한 방만으로 레벨이 무려 50이 넘게 치솟아 올랐다.
성현의 스탯 역시 퀘스트의 보상과 군단 강화 효과까지 적용되며 말도 안 되는 수치가 추가되었다.
직접 싸워 볼 것도 없이 다소 지친 지금 성현의 상태로도 이 스탯의 증가가 곧장 체감이 될 정도였다.
‘확실히 다르긴 하네.’
베히모스는 이전까지 상대했던 가디언들과는 다르게 완전히 힘을 회복한 상태였다.
물론 처치하는 데에도 많은 군단까지 동원해 가며 고생을 했지만, 처치하고서 돌아오는 리턴 역시 그만큼 컸다.
‘…특히 마력 쪽으로 엄청나게 치솟아 올랐군. 이 녀석의 능력과 관계가 있던 건가.’
[군단 강화 특성]
[마력 스탯 +50%]
[마나 재생 +300%]
…….
개인도 아니고 군단 전체에 아예 마력 스탯에 대한 +50% 효과가 적용이 되어 있는 모습이다.
생명력이나 재생력 같은 수치에선 많이 봐 온 형식이었지만, 마력 같은 기본 스탯에 적용되는 수치로 퍼센트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처음인 이유는 그만큼 엄청난 보상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 마력 스탯이라면 어지간한 S급 마법계 헌터들을 수십 명씩 모아 둬도 상대가 안 되겠어.’
자신의 상태창을 바라보던 성현이 혀를 내둘렀다.
1000을 훌쩍 넘고도 남은 성현의 마력 스탯을 생각한다면, 최소 7~800에 가까운 보너스 스탯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 효과는 그가 강해질수록 더더욱 커지며 빛을 발할 것이다.
물론 이 엄청난 효과에 그치지 않고서 마력 재생까지 300퍼센트란 수치로 대폭 올랐으니, 자신뿐 아니라 마력을 다루는 군단의 수하나 마법계 헌터들에겐 모두 좋은 소식이었다.
더 이상 그의 군단 버프 효과를 받는 건, 수하들뿐이 아니라 이지스 산하의 모든 구성원이 해당되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콰드드득!
성현은 널브러진 베히모스의 몸속을 해치고 나왔다.
가장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던 그였던지라, 그가 나왔을 때 즈음엔 이미 그의 군단이 모두 한데 모여 있었다.
“주군……!”
“크르르륵!”
“모두들 수고했어. 덕분에 살았네.”
이즈나와 로칸, 안타라스를 비롯해 주변을 둘러싼 군주들의 모습에 성현은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실제로 이들이 없었더라면 성현은 이번 싸움에서 훨씬 더 고전을 면치 못했을 테고, 어쩌면 베히모스를 저지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나저나 주변은 완전히 조용해졌네.”
성현이 주변을 슬쩍 둘러보며 말했다.
처음 들어섰을 때만 해도 온 사방에 몬스터들의 기척으로 가득하던 던전 속 정글이었다.
하지만 고요한 던전 속에서 느껴지듯 몬스터들은 이미 대부분 당해 버린 뒤였다.
가디언 베히모스의 등장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게 바로 던전의 몬스터들이었고, 그 여파로 악마종을 만들어 내기 위한 생산 시설들까지 이미 모두 파괴되었다.
“던전 안에 아직 남은 몬스터들이 있긴 하지만, 유의미한 숫자나 전력은 아닙니다.”
“가디언도 처치하고 생산 기지도 부숴 놓았으니. 원래 목적은 모두 달성한 건가.”
어차피 던전 내에 있는 보스 몬스터들은 가디언 공략에 나서기 전에 미리 잡아 둔 상황.
목적을 모두 달성한 이상 어차피 끝까지 공략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너흰 먼저 돌아가 있어.”
“네, 주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따악!
성현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당장 그의 앞에 서 있던 군주들과 심장부를 공략한 핵심 군단들은 물론, 그 외 모두를 합쳐 수십만이 넘는 군단의 모습이 거무스름한 그림자와 함께 일시에 사라졌다.
그의 손짓 한 번에 차원을 넘어 다시 지하 던전 속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전 같았더라면 분명 불가능했을 일.
“그럼 어디 이것도……!”
후우우웅!
성현은 자신의 검에 마력을 힘껏 실어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검로가 닿은 허공엔 커다랗게 뚫린 차원 간 포탈이 만들어졌다.
웅웅 소리와 함께 안정적으로 생성된 그의 포탈.
“음, 좋네. 전보다 힘도 확실히 덜 들고.”
그 모습을 본 성현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공간을 갈라 내서 차원 사이를 통하는 포탈을 만들어 내는 것은 굉장한 집중력을 요하는 데에다, 막대한 힘이 드는 탓에 함부로 사용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성현은 이번 베히모스의 권능을 흡수하며 공간에 대한 감각이 훨씬 정교해졌다.
차원 간 포탈을 여는 행위도 더욱 익숙해져 그로 인한 힘의 소모나 부작용이 덜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가기 전에… 이제 슬슬 나오지?”
지구로 향하는 포탈을 앞둔 성현이 허공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한층 짙어진 검은 안개가 그의 주위를 감쌌고, 곧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스르륵 나타났다.
“으음, 벌써 세 번째 파편이로구나. 나의 힘이 일부나마 돌아온 것이 느껴진다.”
프리아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렸다.
세 번째 봉인석을 파괴함으로서 프리아는 자신의 힘을 대폭 되찾게 되었다.
그녀가 꽤나 안정적인 상태에 들어섰다는 것은 성현이 보기에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공략으로 갈기갈기 찢겨졌던 그녀의 영혼 중 절반 이상을 되찾은 것이니, 확실히 체감이 될 만한 수치였다.
“이제 우리가 얼굴 볼 일도 얼마 남지 않았네. 국내에 숨어 있던 대악마들이라면 지금쯤 지구에서 추적해 붙잡았을 테고, 놈을 심문해 가디언들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도 금방이니까.”
“글쎄, 그렇게 쉽게 해결될 일은 아닐 거다.”
“…뭐? 왜?”
“악마종을 먹어 치우고서 모든 힘을 회복한 수호자들이 원래의 위치에서 가만히 기다려 줄 거라 생각하느냐? 그럴 리가 없지.”
프리아가 성현의 곁을 슬쩍 맴돌며 말을 이어나갔다.
“각개격파를 당해 줄 이유도 없고 그대를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행동에 나설 것이다. 두 수호자들이 동시에 그대들의 차원에 들이닥칠 테고, 그것도 엄청난 수의 악마종들을 동반하겠지.”
“…그건 좀 곤란한데.”
그녀의 말에 성현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방금 처치한 베히모스 하나만 해도 역사상 등장한 적이 없는 무지막지한 괴물이었다.
헌데 그런 체급의 가디언이 둘이나 동시에 지구로 난입해서 깽판을 쳤다간,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피해가 막심할 것이었다.
“혹시 그 전에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있어?”
“후훗, 그대라면 그렇게 물어올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프리아가 옅은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무턱대고 뒤를 쫓기만 하는 것도 상책은 아니다. 그대가 사냥꾼이라면 덫을 놓을 줄도 알아야겠지. 이 몸이 방법을 알려 줄 수 있다.”
* * *
“후우.”
베히모스를 처치하고서 지구로 통하는 포탈까지 열어 낸 성현.
그는 일이 모두 끝났으니 우선 지구로 돌아가 다음 계획을 곧장 넘어갈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현은 기껏 열었던 차원 간 포탈을 닫아 버리고선, 던전 속의 엉뚱한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봉인석만 모두 파괴해 주면 되는 거 아니었어? 그 뒤로는 알아서 하겠다고 들었는데.”
성현이 살짝 불만이 찬 모습으로 옆을 흘겨보았다.
그러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프리아의 말이 돌아왔다.
“갈루스는 날 영원히 이차원 속에 가둬 둘 생각으로 이번 일을 저지른 것이다. 차원의 몇 가지 규율을 어겨 가면서까지 말이다. 한데 녀석이 이번 계획을 그리 쉽게 포기할 리가 없지. 분명 낯선 차원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직접 개입해 올 것이다.”
“단순히 가디언 둘을 상대한다고 끝이 아니란 거지?”
“그렇다.”
“…그래서 나더러 어떻게 하자는 건데?”
성현이 그녀를 향해 물었다.
원래의 약속이 삐뚤어진 것은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그로선 선택지가 없었다.
만약 프리아의 말대로 정말 빛의 신이라는 녀석이 직접 나서서 개입을 해 온다면 위험해질 수 있었고, 동격인 존재인 그녀와 협력하지 않으면 인류가 통째로 멸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조금 전 이야기했던 것과 다를 것 없다. 그대들의 차원에 들이닥칠 게 뻔한 상대들이라면 덫을 놓으면 그만이니.”
“아까부터 무슨 덫을 말하는 건지…….”
터억!
갑작스런 손길이 걷고 있던 성현의 어깨를 낚아채며 멈춰 세웠다.
흠칫 놀란 성현이 뒤를 돌아보자, 그의 어깨를 잡은 것은 직접 실체화한 프리아의 손이었다.
“뭘 하려는 거야?”
“그대가 들어선 차원의 틈 사이엔 갈루스가 추방한 공간의 파편인 던전들이 부유하고 있지만, 고작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지기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넓은 공간이다. 두 차원 사이로 한정을 짓더라도 말이지. 그리고 우린 그 장소를 이용할 거다.”
파아아앗!
성현의 뒤에 선 프리아의 가벼운 손짓과 함께, 그의 발치 아래 칠흑의 입구가 생겨났다.
그 속엔 새까만 어둠으로 가득 찬 채 일렁이고 있는 정체불명의 공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