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가디언 레이드 (4)
츠츠츠츳!
성현이 만들어 낸 불길이 삽시간에 사그라 들었다.
이번은 심장을 노린 것도 아닌, 달려들고 있는 베히모스를 향해 날린 마법이었으나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녀석에게 닿기도 전에 마력 단위로 흩어지고 말았다.
‘흩어진 마력이… 심장으로?’
전혀 다른 곳을 향했음에도 성현이 사용한 마력이 흩어진 뒤 심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것도 원래부터 자신의 것인양 고스란히 흡수된 모습.
베히모스가 심장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마법을 난사하고 있던 것도 바로 저것 때문이었다.
남의 마력조차 저렇게 먹어 치우는데 자신의 마법이 심장에 피해를 입힐 리가 없었다.
‘젠장, 이제야 알겠어. 이 장소 안에서 생겨나는 모든 마력을 흡수해 버리는 거였어.’
심장이 있는 방향을 노리지 않아도 마력이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는 꼴을 보아, 이 장소 자체의 영향인 것은 확실했다.
몸속에서도 베히모스의 영향력이 가장 강한 장소였고, 그 장소의 이점을 녀석이 쥐고 있었다.
쿠구구궁!
‘이걸 어떻게 한다……!’
성현의 시선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생각했다.
베히모스가 쏟아 내는 마법을 정신없이 피해 내고 있는 와중에도 머리를 열심히 굴려야만 했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가디언 베히모스는 약점인 심장을 파괴하지 않는 이상 쓰러뜨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심장이 있는 곳이 가장 녀석의 힘이 강해지는 장소였고, 진퇴양난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었다.
콰드득!
성현은 정면으로 달려드는 베히모스의 목을 잘라 냈다.
본체의 몸뚱이만큼이나 엄청나게 단단한 베히모스의 분신이었지만, 성현의 검엔 손쉽게 잘려 나갔다.
하지만 그렇다한들 잘려 나간 목과 신체 부위들은 다음 공격을 채 취하기도 전에 금방 재생이 되었다.
‘젠장……!’
심장에 담긴 방대한 마력을 고스란히 가져다 쓰는 베히모스의 모습.
사실상 무한한 마력의 원천을 옆에다 끼고서 끌어다 쓰는 것과 같았다.
덕분에 무슨 역공을 당하건 아무런 부담조차 없이 성현을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마법은 금방 흩어져 버리니 의미가 없고… 심장에 물리적인 데미지를 주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도 버겁네.’
성현은 달려드는 분신을 베어 내고서 심장을 검으로 직접 노리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큰 상처를 입혀 놓는다 해도 재생되는 속도가 워낙 빠르고, 움직임까지 너무 빠른 탓에 성현조차 따돌리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베히모스가 끌어올 수 있는 모든 생명력이 바닥날때까지 이 녀석과 싸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통째로 날려 버릴까도 생각해 봤지만 검에 그림자를 불어 넣는 것도 불가능해.’
검에 그림자 속성을 부여해, 마력이 담긴 광역 공격을 선보이려 했던 성현이지만 그것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이 장소는 말 그대로 모든 마력을 흡수해버렸고, 직접적인 마법이나 마력만 흡수하는 어중간한 특성들과는 달랐다.
녀석의 몸속에서는 프리아의 도움도 바랄 수가 없었다.
‘아, 잠깐…….’
그 순간, 한 생각이 성현의 머릿속을 번뜩 스쳐 지나갔다.
성현은 곧장 사방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펼치기 시작했다.
“멍청한 놈, 뭘 해 봐야 네놈의 마력은 내게 흡수될 뿐이다.”
“그래, 어디 한번 실컷 먹어 봐.”
성현이 펼치고 있는 것은 군단에게 주어지거나 소환, 그리고 그림자 전이에 사용하는 그림자였다.
일반적인 마법이나 마력과는 궤를 달리하는 기운이다.
하지만 녀석의 능력은 말 그대로 모든 종류의 마력을 흡수하는 것이었고, 난생 처음 보는 능력이긴 했어도 그의 그림자 역시 마력의 한 종류일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성현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츠츠츠츳!
심장이 그의 그림자를 가차 없이 빨아들였다.
성현의 마력량은 일반적인 인간의 수준을 한참 넘어선 수준이었고 그 만큼 엄청난 양의 그림자를 뽑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림자들은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흩어져 흡수되고 말았다.
되려 그런 모습을 보고서 성현은 실컷 가져가라는 듯 뿜어내는 그림자의 양을 늘렸다.
“엄청나게 먹어 대네. 하지만 그렇게 아무 거나 주워 먹다간 배탈 날 걸.”
“우윽……?”
쿠구구구구!
갑자기 그들이 서 있던 중심부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성현을 향해 달려들려던 베히모스의 분신이 우뚝 멈춰 선 것은 물론, 아예 휘청이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줬다.
“젠장……! 네놈 무슨 짓을 벌인 거냐!”
멈춰 선 베히모스에게서 갑작스레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성현의 입가가 씩 올라갔다.
‘벌써 반응이 오는 건가. 반쯤은 도박이었는데.’
성현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프리아의 봉인석을 머금고 있는 녀석의 심장이었다.
무려 한 차원의 신을 봉인해 둔 물건이다.
그런 엄청난 물건을 억지로 몸속에 집어삼켜 놓았으니 약간의 자극만으로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자극의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성현의 그림자였다.
‘프리아가 말했었지. 내가 다루는 그림자가 자신과 아주 비슷한 힘이라고. 그렇다면 봉인석을 자극하기엔 안성맞춤이겠지.’
한마디로 어둠의 여신인 프리아의 힘과 유사한 성현의 그림자가 흘러 들어감으로서 가까스로 안정화시켜 둔 봉인석이 불안정해졌다는 것이다.
이전에 성현이 검을 휘두른 것만으로 봉인석을 손쉽게 파괴할 수 있었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츠츠츠츳!
효과가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성현은 더욱 많은 그림자를 몸 밖으로 쏟아 냈다.
밖으로 나오는 족족 걷잡을 수 없이 녀석의 심장으로 빨려 들어가는 성현의 그림자들.
마력을 빼앗는 것임에도 낯빛이 더욱 빠르게 창백해지는 건 녀석의 쪽이었다.
몸속의 봉인석이 이 이상 폭주하게 된다면 안정화에 엄청난 힘을 써야 했고, 수많은 악마종을 먹어 치우고서 원래의 힘을 되찾은 게 아예 무위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최악은 프리아의 세 번째 봉인이 완전히 풀려 버리는 것이었다.
“크아아아!”
당황한 베히모스는 심장의 마력 흡수를 잠시 멈췄다.
그리고 정확히 그 순간만을 노리고 있던 성현은 온몸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성현은 사방으로 뻗으며 방출하고 있던 검은 그림자를 자신의 검에 고스란히 담았다.
검게 물든 검신을 베히모스가 목격한 순간엔 이미 늦어 버린 뒤였다.
“이만 비켜.”
콰아아아아!
성현이 검을 휘둘러 날아간 칠흑의 검기가 전방을 향해 쏟아지며 공간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뻥 뚫린 벽과 천장.
그리고 가장 중요한 베히모스의 중심부 심장 역시 감싸고 있던 뼈가 완전히 파괴된 채 반파되어 있었다.
후두둑!
베히모스의 얼굴이 쩌저적 갈라지며 부스러기처럼 파편들이 흘러내렸다.
철저히 심장을 노린 그의 검격에 직접 휘말린 것도 아닌데 엄청난 타격을 입은 듯한 녀석의 모습.
이는 단순히 그의 앞에 선 분신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 그아아아아!
엄청난 진동과 소음을 동반하며 베히모스의 몸 전체가 휘청거렸다.
불안정해진 놈의 본체 역시 일부가 녹아내리듯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도 성현의 표정은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건가?”
“이놈……!”
베히모스의 얼굴에 분노가 일렁였다.
성현이 심장을 바라보자 남은 심장 반쪽은 엉망인 꼴이긴 했지만, 제대로 부서지지 않아 있었다.
그가 날린 검은 검기의 위력을 봐선 흔적조차 없이 파괴되었어도 모자랄 상황.
이는 다른 무언가가 작용한 것이었다.
“다른 심장부의 방어 마법이 작용한 거였군.”
뇌신의 눈을 활성화시킨 성현이 심장의 상태를 파악했다.
중심부의 심장은 성현이 강력한 데미지를 입히는 데 성공했지만, 아직 베히모스에게 남은 8군데의 심장부는 멀쩡했다.
각 심장과 긴밀히 이어진 방어 마법이 작용하고 있어, 놈의 중심부 심장을 아예 완파를 하기 위해선 다른 심장들까지 모두 파괴해야 했던 것이다.
“무슨 약점이 이런지… 질기기도 하네.”
“닥쳐라 인간! 다시 복구 시간이 걸리겠지만, 네놈만큼은 확실히 끝장을 내주겠다. 아직 나와 같은 수호자가 둘이나 더 있으니, 네놈만 없다면 남은 인간들을 절멸시키는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우득! 우드득!
분노에 찬 베히모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위로 놈의 또 다른 분신들이 잔뜩 생겨 났다.
이 녀석과 같은 본체급의 분신들이 무려 수백이 넘게 생겨 난 모습.
중심부의 심장이 반파되면서 그 안에 잠들어 있던 마력이 일시에 쏟아져 나오는 폭주가 벌어진 참이었고, 그로 인해 성현을 제거하기 위해 이만한 분신들을 쏟아 낸 것이었다.
“곱게 죽이진 않을 거다. 필멸자로서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 속에서 죽게 해 주지.”
그렇게 분신들에게 포위를 당하게 된 성현.
아무리 성현이라 해도 이 많은 분신을 상대로 빠져나가거나 버텨 내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믿고 있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벌써 싸움에서 이긴 것처럼 말하고 있네. 내가 발목을 묶인다 한들, 남은 심장을 다른 쪽에서 파괴하면 되는 거잖아. 이미 군단들이 각 심장부에 닿았어. 너도 느끼고 있을 텐데?”
“고작 그런데 희망을 걸 만큼 절박한가?”
성현의 말에 돌아온 것은 조소뿐.
심장을 지키는 베히모스의 분신은 성현이 상대한 것 말고도 다른 심장부에도 한 자리씩 있었다.
물론 온몸에 마력을 공급하는 중심 심장부가 반파되며 약화되긴 했지만, 일개 소환수 정도가 주요 분신들을 당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은 안 했다.
하지만 베히모스가 입을 열려던 그 순간.
“커억……?”
강렬한 통증과 함께 분신의 입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다른 분신들 역시 피를 토해 낸 것은 마찬가지였고, 그 믿기지 않는 일에 그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뭔가 잘못 되었나 봐?”
놈을 바라보고 있는 성현이 얄궂은 반응을 보였다.
이즈나와 그녀가 이끈 군단이 가장 먼저 최상층 심장부를 박살 내었고, 베히모스에겐 또 다시 막대한 타격과 함께 온몸이 뒤흔들려 왔다.
그리고 첫 심장이 파괴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또 다시 다른 심장이 파괴되었고, 연쇄적으로 하나둘 심장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 그아아아아!
쿠우우웅!
거대한 괴수, 베히모스의 네 다리가 주저앉고 말았다.
던전의 주변 지형까지도 바꿔 버린 녀석의 주저앉음이었다.
요란한 충격이 베히모스의 온몸을 뒤흔들었지만, 가장 영향을 받는 건 역시 베히모스 그 자신이었다.
“커억… 이, 이건 있을 수…!”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어.”
베히모스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긴 성현은 어느새 녀석의 심장을 향해 다가서 있었다.
성현은 혼자 있을 때조차 결코 혼자서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나 빨리 다른 심장부의 분신들이 쓰러지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베히모스의 반응이었고, 군단의 전력을 과소평가한 놈의 실책이기도 했다.
“내가 얕보면 큰코다칠 거라 했지.”
베히모스를 내려다보는 성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