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가디언 레이드 (2)
“가디언의… 몸속이라고?”
성현의 입이 쩍 벌어졌다.
꿈틀거리던 통로들의 요동침은 잦아들었지만, 그의 주위로 느껴지는 기척은 여전했다.
그들이 들어선 땅 전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가디언 베히모스의 몸 안에 갇힌 성현과 이즈나.
성현은 외부에서 싸우고 있던 군주들의 시야를 공유할 수 있었고, 놈의 몸 안에서도 거대한 괴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던전 속 괴물들을 상대로 수없이 많은 싸움을 해 오고, 가디언과도 여러 차례 싸워 온 성현이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쿠구구구구!
여태 봐 왔던 그 어떤 대형 보스 몬스터들보다 거대한 짐승이 던전 한복판에 우뚝 솟아난 모습.
그로선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다.
필드에서 대형 몬스터들이 뒤엉켜 있는 건 조그만 개미들처럼 보일 만큼, 거대한 산이 통째로 움직이는 수준이었다.
“피해라!”
군단의 머리 위로 검게 드리워진 그림자.
던전 공략에 앞장 서던 웨어울프 로드 로칸이 소리치며 물러나라며 지시를 내렸지만, 그 범위가 너무 컸다.
쿠우우우웅!
베히모스의 발이 성큼 내리찍히며 수천의 몬스터들이 깔려 죽었다.
던전의 일반 몬스터 쪽이 훨씬 많긴 했지만, 군단의 수하들 역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공격을 하기 위함도 아니고, 단순히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을 뿐인데 벌어진 일이었다.
거대한 짐승의 두 눈이 빙글 돌아갔고, 그제야 던전에 침입한 침입자들을 마주하였다.
“…젠장.”
다른 군주들의 시야를 빌리고 있던 성현은 놈의 그 두 눈을 뚜렷이 응시하게 되었다.
그리곤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 필드 위에서 가디언으로서 모든 힘을 회복한 베히모스를 막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어떻게 하지?’
상식을 한참 벗어난 존재의 등장에 성현이 가장 먼저 느낀 감상은 막막함이었다.
보아하니 프리아와의 연결도 차단된 듯 보였다.
권능의 영향을 받는 가디언의 몸속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차라리 여기서 맞닥뜨린 게 다행이지.’
베히모스가 나타난 장소가 차원의 틈 사이에 위치한 던전 속인 게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만약 지구의 도시 한복판에 저런 거대한 괴물이 나타났다면 그 여파는 엄청났을 것이다.
승패와 상관없이 등장만으로 수십만의 사상자가 터져 나왔을 것이고, 놈을 제압하는 과정은 또 별개였기에 비교도 할 수 없을 피해가 벌어졌겠지.
힘을 모두 회복한 가디언이라면 분명 성현을 제거하기 위해 차원을 넘어오려 했을 것이었기에 여기서 미리 발견한 게 다행이었다.
“…여기서 처리한다. 놈이 밖으로 뛰쳐나가기 전에.”
[헌터, ‘성찬일’의 그림자를 흡수하였습니다!]
[‘뇌신의 눈(S)’ 특성이 활성화됩니다!]
성현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차올랐다.
성찬일의 그림자를 빌려 온 그는 순식간에 주변을 꿰뚫어 보았다.
S급 특성과 성현의 신체 스펙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통로 너머 한참 떨어진 장소까지도 들여다보였고, 수많은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었다.
‘단순한 몬스터가 아니다. 가디언의 일부에 가까운 녀석들이야.’
베히모스의 몸속에서 오가고 있는 몬스터들은 전부 가디언 특유의 권능을 극소량이나마 지니고 있었고, 마력이나 정신마저도 가디언과 동화되어 이어지고 있었다.
따로 움직임에도 다른 개체라곤 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성현이 성찬일의 특성을 빌려 온 이유이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심장인가.’
성현의 시선이 베히모스의 몸속 몇 곳을 향해 꽂혔다.
녀석의 몸속에 집중적으로 마력이 응집해있는 장소.
이렇게나 상식을 뛰어넘는 거대한 괴물이라면 그를 받춰 줄 동력원이 있어야 했다.
거기다 여태 마주했던 모든 가디언들은 마력을 기반으로 움직였기에, 이 녀석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보통 몸 깊숙이 숨겨져 있어 공략이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아예 몸속으로 들어와 있는 꼴이니까… 이 녀석을 잡아내려면 저길 모두 파괴해야 하는 거로군.’
성현은 베히모스의 몸속에 놓인 9개의 심장부를 응시했다.
이 말도 안 되는 괴물은 어마어마한 생명력까지 지니고 있을 터라, 외부에서의 충격만으로 쓰러뜨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몸속으로 들어온 침입자를 제거하기 위해 몰려들고 있는 몬스터들의 모습.
가디언의 일부가 아니랄까 봐 필드의 몬스터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몬스터들의 수준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거기다 보통 숫자도 아닌지라 저 많은 괴물들을 일일이 상대해 줄 시간은 없었다.
“나와라.”
츠츠츠츳!
넓은 통로로 나온 성현은 단숨에 그림자를 뻗었다.
그의 등 뒤편으로 쏟아지는 수많은 기척들.
로칸, 네이아, 카론을 비롯한 마족들은 전원 소환되었고, 다른 군주들 역시 전력이 높은 정예들로만 추린 군단이었다.
가디언의 각 심장부를 노릴 타격대이기도 했다.
“크르르륵!”
“다들 어떤 상황인지는 알겠지? 힘 좀 써 줘야겠다.”
베히모스의 몸집은 너무나도 컸고, 포탈을 활용하기도 어려운 지금 시점에 성현이 9개의 심장부를 일일이 격파하고 다닐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그의 군단이 필요했다.
“알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주군!”
성현의 지시와 함께 이즈나를 포함해 군주가 이끄는 각 군단들이 흩어져 심장부로 전진했다.
나뉘는 각 군단의 전력만 해도 수천에 달했기에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인 바.
“…그럼 나도 가볼까.”
그렇게 모든 군단이 흩어지자, 마지막까지 서 있던 성현이 홀로 정면 통로를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심장을 노리는 노골적인 움직임을 보이면 가디언 쪽에서도 반응이 있을 터.
이 본대들이 잘 전진하도록 시선을 끌고 보조해 주는 역할이 필요했다.
물론 결정타를 먹일 자신이 그런 역을 떠맡을 순 없었고, 그 몫은 이번 던전에서 새롭게 합류한 신참들이었다.
“어디 남의 몸속에서 실컷 날뛰어 보라고.”
츠츠츠츳!
성현의 그림자가 거세게 일렁이며 괴수들을 토해 냈다.
* * *
- 그아아아아아!
베히모스의 포효에 던전 전체가 뒤흔들렸다.
모든 힘을 되찾고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잠시동안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녀석이었지만, 방금 짜증스런 반응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바로 속을 헤집고 다니며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존재들 탓이었다.
콰아아아앙!
“키이이익!”
이번 던전에서 새롭게 합류한 성현의 수하들이 베히모스의 몸속 곳곳에 파고들며 닥치는 대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물론 베히모스의 신체 내부도 암석 덩어리인 것처럼 단단해 애를 먹었고, 베히모스의 덩치가 어마어마한 탓에 몇 군데 파괴를 한다고 해도 유의미한 피해를 입는다고 말하기에도 뭐했다.
그렇지 않아도 가디언으로서 재생 능력까지 엄청난 녀석이었기에 상처 쯤이야 금방 아물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난동이 베히모스의 신경을 긁는 데에는 성공한 모양이었다.
“…잔뜩 몰려드는군.”
키이이이익!
난동을 부리는 침입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베히모스의 체내 몬스터들이 사방에서 잔뜩 몰려들었다.
그들에게 신경이 쏠린 덕분에 각 심장부를 노리는 성현의 본대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작전이 나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
이를 눈으로 확인한 이상, 이제 성현이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파앗!
그림자 속으로 숨어든 성현은 한창 싸우고 있던 군단과 갈라져 베히모스의 몸속 더욱 깊은 곳으로 향했다.
퀘스트 마커로 보아 봉인석의 위치는 가장 깊숙이 위치한 심장 안에 놓여 있었다.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채, 가장 많은 마력을 머금고 있는 아홉 번째 심장이기도 했다.
성현이 직접 노리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다른 본대들도 그렇고, 제법 위치가 가까워졌어. 막 깨어난 녀석이라 그런지 당장 외부적으로 큰 움직임은 안 보이고 있는 것 같은데… 잘 하면 쉽게 제거할 수 있겠는데.’
생각보다 미적지근한 가디언 베히모스의 대응.
피해 없이 놈의 숨통을 끊을 절호의 기회였고, 성현은 발걸음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그가 새로운 통로로 옮겨간 순간.
- 일이 잘 풀려 가고 있다고 생각하나?
“…!”
베히모스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던전을 쩌렁쩌렁 울리는 포효가 아닌 성현이 서 있는 통로, 즉 녀석의 신체 일부 속에서만 들리는 목소리였다.
이건 녀석이 성현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 숨어든 쥐새끼가 헛된 희망을 품는구나. 나의 몸속에 발을 들인 이상 빠져나갈 순 없다.
이곳은 베히모스의 체내.
일반적인 거대 생명체일 뿐이라면 통제 불가능한 신체 내부일 뿐이겠지만, 가디언이자 권능을 품은 불멸자인 녀석에게는 달랐다.
단순히 신체의 일부를 이루는 게 아닌, 완전한 녀석의 장소이기도 했다.
우득!
우드드득!
성현이 서 있던 통로들이 마구 뒤틀리기 시작했다.
양쪽의 출입구엔 단숨에 살점이 들어차 틀어 막히고 말았고, 내부의 공간도 변형되며 벌어지더니 모습이 뒤바뀌었다.
곧이어 인간의 모습을 한 남자가 성현의 앞에 나타났다.
베히모스가 자신의 몸속에서 만들어 낸 분신이었다.
“…그게 네 본모습인가?”
“이 안에 있는 건 모두가 내 본모습이지.”
남자의 입가가 기이하게 씩 올라갔다.
곧이어 단단한 살점으로 이루어진 바닥에서 수천여 명의 분신들이 팔부터 솟아나며 나타났다.
눈도 희멀건 게 살점을 비집고 나오는 징그러운 녀석들의 모습.
“…골치 아픈 자식이네.”
“크아아아아!”
분신들이 일제히 성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물론 성현은 가볍게 몸을 놀리며 검을 휘둘렀고, 휘두를 때마다 수 명의 분신들이 나가떨어졌다.
그동안 성장을 거듭해 오며 그 어떤 군단보다도 강력해진 그의 몸뚱이.
압도적인 그의 움직임과 솜씨 덕에 분신들로선 성현의 옷자락 하나 붙잡을 수 없었다.
촤아아악!
“크아아아!”
“어디 더 발버둥 쳐 봐라!”
하지만 아무리 베고 또 베어도 분신들은 계속해서 생성되었다.
똑같은 모습을 한 남자들이 끊임없이 살점을 비집고 나와 성현을 향해 달려들었고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악마종들을 먹어 치우고선 완전한 힘을 회복하게 된 가디언, 베히모스다.
녀석은 당연하게도 성현이 봐 온 그 어떤 존재보다도 압도적인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가짜들을 수천 명을 다시 만들어 내는 것쯤이야 호수에서 물 한 덩이를 퍼내는 수준이었다.
‘이대로는 끝이 없겠어. 슬슬 해 볼까.’
검을 휘두르던 성현의 몸이 잠시 우뚝 멈춰 섰다.
변형된 통로의 움직임과 견고함, 분신의 생성 속도와 몸속의 주변 구조들까지.
견적이라면 이미 싸우는 동안 뇌신의 눈 특성을 통해 알아본 참이었다.
이제 실행에 옮길 차례다.
[군주, 뱀파이어 로드 ‘이즈나’의 그림자를 흡수하였습니다!]
[‘마력의 심장’ 특성이 활성화됩니다!]
특성이 전환되며 성현의 손 위에 차오른 대량의 마력.
화염과 폭렬의 마력을 한가득 머금은 그의 손아귀가 번뜩였다.
“나를 안쪽으로 들인 걸 후회하게 해 줄게.”
콰아아아앙!
터져 나온 폭발과 함께 통로가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