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추적 (3)
“여길 어떻게 찾아낸 거지?”
어둠 속에서 남자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커다란 덩치와 근육질을 가진 남자.
겉보기엔 멀쩡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 주위론 다른 악마종들을 가볍게 압도할 만한 위압을 가지고 있었다.
‘저 녀석이군.’
성현의 눈빛이 상대를 꿰뚫어 보았다.
녀석의 정체는 대악마, 벨레드.
심문을 통해 얻었던 정보대로 미국 최강의 헌터 중 한 명이라 불리는 아멜리오의 몸뚱이를 차지한 녀석이었다.
방금 성현이 쓸어버렸던 악마종들 역시, 아멜리오가 이끌던 대형 길드의 간부들의 몸뚱이를 차지한 상태였다.
“네가 여기 숨어 있을 거라고 말해 준 녀석이 있었거든. 날 암살하라고 그 녀석들을 보낸 게 너라면서.”
“나에 대해 말했다고? 웃기지 마라 인간.”
벨레드가 가소롭다는 듯 대꾸했다.
악마종이 인간에게 순순히 협력을 하다니, 그건 결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태어난 본질 자체가 인간에게 적대적인 존재들이었기에 회유가 통하지 않음은 당연한 일.
거기다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따위도 느끼지 않았으니 심문에 당할 리도 없었다.
“그나저나 넌 용케 가디언한테 잡아먹히지 않았네. 별로 맛이 없어 보였…….”
콰아아앙!
달려든 벨레드가 벽을 통째로 박살 내었다.
성현과 이즈나는 양옆으로 흩어지며 녀석을 피했다.
“네놈이 여길 어떻게 찾아왔는지는 관심 없다. 결국 네놈만 죽이면 모두 끝이니까.”
“그게 가능하겠어?”
콰아아앙!
성난 벨레드가 달려들며 연달아 바닥을 움푹 파이게 만들었다.
가벼운 인사 수준이었지만 확실히 다른 녀석들과는 결부터가 다른 움직임이다.
우득! 우드드득!
기이한 소리와 함께 벨레드의 몸이 하나둘 변형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취하던 인간의 모습과 반쯤 결합된 모습으로 덩치 자체는 인간의 두 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그 정도 크기만 해도 평범한 헌터를 상대로 위압감을 뿜어내기엔 충분했다만, 다른 대형 몬스터나 이전에 보았던 대악마급을 봤을 땐 그리 요란하지 편이다.
카가가각!
벨레드의 등 뒤에서 촉수들이 뻗어졌다.
크고 작은 수십여 갈래의 촉수들이 그들을 집요하게 노리며 달려들었고, 성현과 이즈나는 검으로 촉수들을 잘라 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잘라 내어도 계속해서 재생되는 촉수들이 그들을 노렸고, 녀석의 본체 역시 가만히 있진 않았다.
콰아아앙!
‘…공격이 제법 매섭네. 완전히 내 쪽에 집중하고 있고.’
달려드는 대악마 벨레드의 공세에 성현의 인상이 슬쩍 찌푸려졌다.
이즈나를 촉수로 견제하고선, 자신을 집중적으로 노려 오는 녀석의 움직임이 보였다.
마족 군주급이라 해도 결국 소환수일뿐.
차원의 틈이 아닌 이상 얼마든지 다른 군단을 소환할 수 있었기에 성현을 우선적으로 노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만 녀석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우선순위를 정한 건 좋다만, 그렇게 등을 내보일 정도로 우습게 보면 안 되지.”
“…뭐라고?”
콰아아아아!
벨레드의 등 뒤편에서 솟구친 강력한 화염 기둥.
녀석이 등 뒤에 놓고선 놓치고 있던 이즈나의 마법이었다.
“크아아아!”
작열하는 화염이 벨레드를 집어삼키곤 녀석의 온몸을 온통 태워 버렸다.
인간의 지식을 흡수하고, 성현에 대한 정보를 지니고 있던 악마종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엄청난 화력의 마법이었다.
물론 온몸이 불타 버린다 한들 쉽게 당할 녀석들이 아니었다.
벨레드의 몸은 불타 사라지고 있는 와중에서도 쉬지 않고 재생되고 있었다.
“크아아악! 이놈……!”
하나 화염 기둥은 빠른 속도로 재생되고 있는 벨레드의 살점을 계속해서 태워 갔다.
쏟아지는 엄청난 압력 때문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서 화염 속에서 타들어 가고 있는 벨레드.
원래 이런 강력한 화염 기둥은 한번 쏟아 내고 나면 금세 소멸되는 게 정상이었다.
하나 이즈나의 화염 기둥은 수초가 넘도록 계속해서 유지되며 벨레드를 불태우고 있었다.
쿠우웅!
“저기서 빠져나올 수 있을 줄이야. 제법인데.”
“크으으…….”
온몸을 비틀어 빼낸 벨레드가 화염 기둥 속에서 어렵사리 빠져나왔다.
어느새 멀쩡히 회복되어 있는 녀석의 모습.
하나 그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생명력을 갉아 먹힌 것은 변함이 없었고, 거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죽여 주마!”
벨레드가 포효를 토해 내며 달려들었다.
방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훨씬 많은 촉수들이 뻗어져 나오며 이즈나를 견제하는 동시에, 성현을 향해선 더욱 거칠게 압박해 왔다.
괜히 대악마들이 자신의 원래 힘을 회복하려는 가디언에게 먹힌 것이 아니었다.
놈들은 가디언의 베이스가 될 만한 힘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고, 산전수전 다 겪은 성현이라 해도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확실히 쉽게 당해 줄 녀석은 아니로군.’
하지만 성현은 여전히 침착한 모습으로 대응했다.
대악마급이라 한들 그가 차원의 틈 속에서 싸운 가디언과 환경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즈나.”
“네!”
카가가가각!
성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닥에서 붉은 가시들이 솟구쳤다.
이즈나의 혈마법이 벨레드의 하반신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우우우웅!
그와 동시에 녀석의 뒤편에 포탈이 번쩍하고 생겨났다.
던전에서 포탈을 관리하는 리치들에게 좌표를 건네고 지시를 내린 것이었지만, 아쉽게도 녀석으로부턴 살짝 빗나가고 말았다.
‘하지만 괜찮아.’
벨레드의 하반신이 빠르게 재생되고 있던 찰나.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선 성현이 놈의 가슴팍을 강하게 걷어찼다.
굳이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는 검으로 베지 않고, 다리를 사용한 것은 놈을 밀어내기 위함이다.
퍼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벨레드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러자 녀석은 꼼짝 없이 포탈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파아아앗!
“크으으으!”
어딘지 모를 지구 안의 한 무인도.
차원을 넘은 것도, 지하 던전으로 끌고 온 것도, 그리 거창한 장소인 것도 아니었다.
“네놈… 뭘 하자는 거지?”
“몰라서 물어? 마음 편히 싸우자고 장소까지 바꿔 줬더니만.”
곧장 포탈을 타고서 따라온 성현과 이즈나가 걸어 나왔다.
아무리 범죄 조직들로부터 버려진 외곽 지역이라 해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었고, 그들의 싸움에 애꿎은 사람들이 휩쓸릴 위험이 있었다.
무엇보다 성현은 더 이상 도시 안에서 가볍게 투닥거릴 수 있을 만한 레벨이 아니었다.
그의 전력을 끌어낸다면 건물 한두 개 날아가는 것 정도로는 끝나지 않으니 말이다.
[군주, 뱀파이어 로드 ‘이즈나’의 그림자를 흡수하였습니다!]
[‘마력의 심장’ 특성이 활성화됩니다!]
“여기선 힘 조절을 할 필요도 없으니… 마음 편히 요리해 줄게.”
* * *
후두두둑!
뿜어져 나온 엄청난 연기 속, 온갖 잔해 더미가 우수수 쏟아졌다.
싸움의 여파로 해변가의 지형 일부가 비틀린 모습.
성현과 이즈나가 함께 쏟아 낸 엄청난 위력의 마법들은 주변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놓았다.
물론 그를 직접 온몸으로 받아들인 상대가 어떻게 되었을지야 뻔한 일이다.
“죽은 건 아니지?”
“멀쩡히 살아 있습니다.”
정신을 잃고선 무릎을 꿇은 채 쓰러져 있는 벨레드.
그는 변화했던 악마종의 형태까지 잃어버리고선, 인간 헌터 아멜리오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것도 그나마 죽지는 않게 생명력이 고갈되기 직전, 그들이 힘 조절을 해 준 덕이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투웅!
한 손으로 녀석의 머리를 붙잡은 이즈나는 강제로 기절해 있던 벨레드의 정신을 깨웠다.
충격과 함께 깨어난 녀석.
“크아아악!”
하지만 벨레드는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머릿속으로 쏟아지는 이즈나의 마력에 잠식당해야 했다.
불과 1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 정신의 주도권을 빼앗겨 버렸다.
정신 지배에 강력한 저항을 가진 악마종, 하물며 그 중에서도 대악마급인 자신이 이런 마법에 당할 줄은 생각도 못했겠지만 녀석은 정신을 빼앗겼단 사실을 제대로 의식조차 할 수 없었다.
몸까지 넝마짝이 된 상태에 권능마저 품은 이즈나의 혈마법에 저항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멍한 눈빛으로 입을 꾹 다문 벨레드의 모습에 성현이 말했다.
“지금… 생각을 읽고 있습니다.”
“오, 그런 것도 되는 거였어?”
“혹시나 싶어 해 봤는데. 이 힘을 다루는 데에 익숙해지니 정말 되네요.”
눈을 감고서 집중하는 이즈나가 느릿느릿 말했다.
이전처럼 정신을 빼앗은 녀석을 상대로 굳이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혈마법을 통해 아예 녀석의 머릿속을 스캔하듯 들춰 보며 원하는 정보들을 알아내고 있었다.
“후우…….”
머릿속을 뒤지는 것이 끝났는지 이즈나가 차분히 눈을 뜨며 숨을 내뱉었다.
“어때? 쓸 만한 정보는 있어?”
“네, 예상대로입니다. 주력 악마종들이 숨어 있는 본거지의 위치들과 대악마들에 대한 정보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슬쩍 눈을 감은 이즈나는 텔레파시를 통해 얻어 낸 모든 정보를 성현에게 전달하였다.
머릿속을 타고서 흘러 들어온 정보들에 성현은 눈빛이 변한 고개를 끄덕였다.
“찾았군.”
성현이 직접 이 녀석을 추적해 쫓아온 이유이자, 그에게 주어진 퀘스트의 목표.
가디언의 위치가 벨레드의 머릿속 깊숙이에 꽁꽁 숨겨져 있었다.
우선 차원의 틈 속 악마종들을 만들어 내는 던전의 위치부터 알아내려 했던 거였는데, 그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정확한 정보가 있었다.
‘놈들이 지하 던전에서 빠져나온 이후로, 대악마들까지 모두 가디언의 지시를 받고 있단 말이지. 재밌네.’
악마종들에겐 차원을 넘어서는 지휘 체계가 갖춰져 있었다.
덕분에 성현으로선 가디언을 추적하기 더 쉬워졌다.
설마 악마종의 머릿속을 이렇게 강제로 뒤져 보는 게 가능할 줄이야 녀석들도 전혀 몰랐겠지.
“다만 대악마 별로 지시를 받는 가디언이 다르다고 하니… 나머지 가디언의 위치는 따로 알아내야겠어.”
“우선 가디언이 있는 차원으로 가실 생각이신가요? 아니면 다른 대악마들을 먼저 추적할까요?”
“아니… 굳이 나눌 필요 없이 한 번에 가자.”
잠시 생각하던 성현이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는 즉시 텔레파시를 통해 그림자 군단의 모든 수하들에게 그가 얻어낸 정보와 지시들을 전달했다.
은신처에 숨어 있는 다른 대악마들의 추적은 군단의 일부 병력과 이지스 길드가 함께 움직여 직접 맡도록 지시를 내렸고.
성현을 비롯해 나머지 군단의 병력 대다수가 맡아 처리해야 할 일이라면 간단했다.
성현은 마력을 불어넣고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카가가각!
거칠게 찢어진 차원의 균열.
한 눈에 보기에도 일반 포탈과는 다른 그것에 성현과 이즈나는 성큼 발을 내딛었다.
“음.”
그렇게 성현이 도착한 곳은 하늘 위 공간이 새하얀 빛으로 차 있는 차원의 틈.
그가 서게 된 던전의 장소는 온갖 나무와 풀들이 무성한 열대의 정글이었고, 온 사방에서 수많은 몬스터의 기척이 물씬 느껴졌다.
악마종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몬스터 수급이 중요한 만큼, 이번 던전 역시 만만치 않은 최소 대형 이상의 크기였다.
하지만 전혀 문제될 건 없었다.
“차원의 균열을 뚫을 수 있게 된 이상, 그림자를 불러들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츠츠츠츠츳!
성현은 자신의 그림자를 사방으로 뻗었다.
검게 물든 바닥 아래 가득한 눈동자.
최소 수십만의 기척이 그의 발치 아래에 일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