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추적 (2)
“…여긴가?”
중국의 한 구석진 산골.
제대로 된 인적은커녕 닦여진 도로 하나 없는 이곳에 성현이 포탈을 타고서 나타났다.
하지만 그런 숲속 깊은 곳에서 성현을 맞이하는 이가 있었다.
“주군, 오셨군요.”
리치들의 군주, 네이아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성현에게 예를 갖추었다.
그러자 성현은 주위를 슥 둘러보며 말했다.
“이런 곳에 장소를 마련해 놓을 줄은 나도 몰랐네.”
“후후, 포탈을 사용할 수 있는 덕에 국내와 해외는 큰 의미가 없어졌으니까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할 목적도 있고요. 안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네이아가 앞장서며 지하로 향하는 통로로 안내했고, 성현은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건물 하나 없이 오지나 다름없는 이런 지역에, 기다란 지하 통로를 타고 들어간 성현은 꽤나 큼직한 은신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몇 개의 방이 딸린 공간과 한 층 더 아래에 위치한 수감 및 심문 시설 정도로 거창한 대형 시설과는 거리가 멀었다만, 길드의 비밀 은신처로 활용하기엔 모든 걸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생포한 악마종들을 끌고 왔단 말이지.”
“네, 이 아래에 모두 가둬 뒀습니다.”
이곳 은신처의 목적은 생포한 악마종의 감금이었다.
원래 생포한 적을 쥐도 새도 모르게 데리고 갈 만한 가장 은밀한 곳이자 본거지는 성현의 지하 던전 내부겠지만 그리로 데려가기엔 곤란했다.
가장 비밀로 해야 하는 장소인 만큼 혹여라도 악마종들에게 기억이나 감각의 공유, 하다못해 위치 추적을 할 수 있는 무언가라도 걸려있다면 그대로 위치나 내부 전력이 노출될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별도의 은신처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키이이이익!
“…확실히 그런 것 같네.”
요란하게 날뛰고 있는 악마종들의 비명 소리가 아래에서 들려왔다.
원래 이런 악마종을 가둬 두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이번에 생포한 악마종들은 전부 해외 고위 헌터들의 몸을 취한 녀석들이다.
예전 B급 이상의 고위 헌터들조차도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쓰러뜨리기 어려운 상대였고, 제압해 생포까지 한다는 건 더욱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인간의 생명력을 잔뜩 흡수해 재생력이 뛰어난 데다, 인간에 대한 증오심으로 똘똘 뭉쳐 있기까지 한 녀석들이었으니 생포라는 게 쉽지 않을 것이 당연했다.
그렇게 어렵게 생포를 한다 해도 숨통이 끊어지지도 않은 녀석을 가만히 묶어 두고 있는 건 더 골칫덩이임은 당연한 일.
‘그래도 아래에서 느껴지는 마력을 봐선 어떻게 했을지는 알 것 같네. 네이아가 손을 써 둔 거겠지.’
성현은 네이아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각자 독방 안에 갇혀 있는 악마종들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들이 흡수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가하면, 악마종의 추악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크아아아!”
“네놈……!”
쿠웅!
성현을 보자마자 갇혀 있던 악마종들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정작 그는 눈 하나 꿈뻑하지 않았다.
‘역시, 네이아의 솜씨로군.’
지하층 곳곳에 새겨져 있는 마법의 진.
그리고 수감 시설 안팎으로 느껴지는 온갖 마력의 흐름들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네이아와 리치들이 손을 써둔 것이었고, 마법진을 통한 강력한의 제약에 악마종들조차 저 안을 빠져나올 수 없던 것이다.
밖으로 달아날 수 없음은 물론, 아예 악마종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지도 못하게끔 장치를 해 두었다.
“어쨌든…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겠지. 이틀 동안 뻗어 있던 걸로 충분하니까.”
“바로 시작하실 건가요?”
“그래.”
츠츠츠츳!
성현은 등 뒤로 검은 그림자를 뻗었고, 그와 동시에 악마종이 갇혀 있는 철창을 움켜쥐었다.
콰득 소리와 함께 뜯겨져 나간 철창.
그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안에 있던 악마종조차 먼저 달려들지 못했을 정도였고, 오히려 성현이 주저 없이 그 안으로 들어섰다.
“너희들한테 큰 기대는 안 해. 그래도 쓸 만한 정보 몇 개쯤은 건질 수 있겠지.”
* * *
서울 외곽 지역의 한 뒷골목.
한때 범죄 길드와 헌터들의 놀이터나 다름없던 최악의 우범 지역 중 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지스 길드가 서울을 움켜쥔 이후, 대부분의 범죄 길드들이 쓸려 나간 지금은 그저 인적 없는 동네에 불과하게 되었다.
물론 그건 이면을 볼 수 없는 겉모습에 불과할 뿐.
텅 비어 버린 이곳엔 어느새 끔찍한 어둠의 존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 안……! 커억……!”
검은 촉수에 복부를 꿰뚫린 채 발버둥 치는 남자의 몸부림.
하지만 그의 다리는 이미 공중에 대롱대롱 떠 있었고,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상대로 인해 완전히 눈이 뒤집혀 있었다.
이미 빠져나가기엔 불가능한 상황.
털썩!
남자의 시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자 그와 마주하고 서 있던 악마종은 촉수를 거둬들이더니 널브러진 남자의 시체를 직접 퍼먹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이루어진 끔찍하기 짝이 없는 광경.
겉으론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던 녀석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악마종이 남자의 시체를 반도 채 흡수해 내지 못한 순간, 어둠 속에서 칼날이 번뜩였다.
촤아아악!
“크아아아악!”
깊숙이 잘려 나간 오른쪽 어깨와 팔에 악마종이 비명을 토해 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기습에 녀석이 등을 채 돌리기도 전, 날카로운 검격이 악마종의 목을 꿰뚫었고.
생명력을 소모해 재생되고 있던 어깨를 또 다시 잘라 냈다.
“네놈은……! 인간 따위가 감히!”
“인간, 아니거든.”
콰아아아앙!
커다란 화염 폭발이 악마종의 몸 한가운데에 꽂혔다.
그러자 뜨거운 불길 속에서 산산조각 난 녀석의 시체 쪼가리가 이리저리 흩어졌고, 꿈틀거리는 악마종의 살점들은 불에 타들어 갔다.
철컥!
이즈나가 허리춤에 검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그녀의 뒤편으로 나타난 성현.
“아무래도 제대로 찾아온 것 같습니다.”
“그래, 정보가 엇나간 건 아닌 것 같네. 이런 곳에 숨어 있었을 줄이야.”
성현이 흩어진 악마종의 시체 조각들을 내려다보았다.
한때 자신들에게 협력하던 범죄 조직원을 가차 없이 먹어 치우기 시작한 악마종들의 행동은 이곳에서도 이어졌다.
국내의 범죄 조직원들을 내세워 이지스 길드를 견제했지만, 그 배후에 있는 건 당연히 성현을 죽이기 위한 악마종들이었다.
“지금이야 산산조각났다만… 방금까지 미국 헌터들의 몸을 하고 있던 걸 봐선 맞는 것 같아.”
이번 계획에서 성현의 주요 목적은 봉인석을 삼킨 가디언의 추적이다.
그 목적을 위해서 중국까지 포탈을 열고서 갔지만, 겨우 악마종 몇몇의 심문만으로는 부족했다.
물론 병원을 습격하려 했던 녀석들은 성현을 직접 노릴 만큼 제법 강한 녀석들로 구성되긴 했다.
하지만 가디언의 위치를 알기 위한 핵심 단서를 수집하기 위해선 그보다 더 한 상위종을 필요로 했다.
애당초 악마종들을 심문한 건 바로 그 상위종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최소한 거대 길드장 급의 육체를 먹어 치운 개체는 되어야 생산 시설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겠지.’
가디언들의 완전한 힘의 회복을 위해선 그야 말로 엄청난 양의 악마종을 먹어 치우고서 생명력을 쌓아야 했다.
실패작이 아닌 제대로 된 악마종을 하나 만들어 내는 데에만 상당한 몬스터들의 희생과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생각하면, 보통 숫자로 될 문제가 아니었다.
나이브리카가 악마종을 생산하고 있던 던전에 자신의 제단을 쌓아 뒀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때문에 다른 가디언들 역시, 악마종을 만들어 내는 차원의 틈 사이 던전에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현재 성현이 노리는 것은 미국과 러시아의 대표적인 거대 길드의 수장들이었다.
그들의 몸을 먹어 치운 주요 악마종 정도는 되어야, 생산 시설에 대한 단서를 품고 있을 거라는 의미다.
‘지금까진 잘 숨어 다녔다만… 숨바꼭질은 이제 끝낼 때도 됐지.’
* * *
원래 악마종을 심문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태생부터가 증오로 가득 찬 생명체인 데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수많은 암시까지 받았다.
일반 몬스터와 달리 지성을 가졌고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들 타협도 없고, 협박이나 회유 같은 것도 불가능했다.
거기다 정신 지배류 마법이나 약물에게도 강력한 저항력을 갖추고 있는 탓에 강제로 머릿속을 들춰 보는 것도 불가능했다.
여태 국내로 숨어든 악마종들을 마냥 쉽게 찾아내는 게 불가능했던 것도 바로 그 이유가 가장 컸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 숨어든 녀석들인데 생포나 심문조차 불가능한 상황.
하지만 네 번째 가디언 나이브리카를 쓰러뜨린 이후, 이즈나가 새로운 힘을 얻고 난 뒤부터는 이런 상황이 달라졌다.
권능의 힘을 일부나마 흡수한 이즈나의 혈마법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심지어 악마종들을 만들어 낸 힘과 같은 종류의 권능을 얻은 덕에 놈들의 정신으로 파고들기 더욱 쉬워졌다.
악마종들의 머릿속을 읽어 내고, 이곳의 위치를 찾아낸 것도 바로 그녀의 정신 지배 계통 혈마법 덕분이었다.
“들어가자.”
콰아아아앙!
굳게 잠긴 문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가떨어졌다.
뒷골목의 폐쇄된 상가 건물 안에 들어선 성현과 이즈나는 고요한 적막과 마주했다.
아주 오래 전에 폐쇄된 건물답게 온통 컴컴한 어둠과 쓰레기들로 뒤엉킨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곳에 은밀히 숨어 있는 존재들의 기척을 훤히 읽을 수 있었다.
“여기 숨어 있는 거 다 알고 있는데… 먼저 안 나오면 우리가 공격한다?”
스릉!
성현과 이즈나가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이즈나의 반대편 손엔 붉은 빛의 마력까지 감돌기 시작했다.
“죽여라!”
“키이이익!”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악마종들이 사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피식 웃은 성현은 검을 휘둘러 먼저 달려든 악마종 하나의 목을 잘라 냈다.
“키에에에엑!”
악마종답게 목이 잘려 나가고도 발버둥 치며 재생이 되기 시작했다.
놈의 뒤편으로도 수 마리가 넘는 악마종들이 매섭게 달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마력을 머금고 있던 이즈나의 마법이 번뜩였다.
카가가가각!
순식간에 솟구쳐 오른 피의 가시들이 온 바닥에서 솟아났다.
전방에서 달려들던 녀석들은 물론, 버둥거리며 목을 재생하던 악마종의 몸까지 온통 가시에 꿰뚫려 꼬치 신세가 되고 말았다.
물론 가시에 온몸이 꿰뚫린 정도로 생명력이 닳아 없어질 녀석이 아니다.
콰아아아!
곧이어 이어진 불의 세례.
이전보다 한 단계 경지를 뛰어넘은 이즈나의 마법은 절륜한 위력을 뽐내었고.
연달아 이어지는 이즈나의 공격 마법들이 시원시원하게 이어지며 달려들던 악마종들을 쓸어 냈다.
굳이 성현이 더 나설 것도 없이 건물 안이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이러고도 용케 건물이 안 무너져 내렸네.”
“그야, 너무 소란스럽진 않도록 힘 조절을 했으니까요.”
콰득!
용케 죽지 않았는지 꿈틀거리는 악마종의 목을 이즈나가 발로 짓밟아주며 절단냈다.
녀석을 끝으로 내부엔 이젠 작은 뒤척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겨우 이 정도로 끝날 현장이라면 수하들을 시켰지 직접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까도 너한테 하던 말이었는데… 못 들었나?”
돌아간 성현의 고개가 빈 공간처럼 보이는 어둠 속으로 향했다.
그 속엔 인간의 몸을 먹어 치운 대악마가 두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