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필멸의 검 (4)
츠츠츠츠츳!
가디언의 몸속에 갇혀 있던 두 번째 봉인석이 파괴되었다.
퀘스트가 완료되며 나타난 메시지들이 사그라졌고, 파괴된 봉인석에선 검은 빛이 사방으로 흘러나왔다.
주위로 생겨난 짙은 어둠의 그림자 사이.
프리아가 모습을 드러내며 성현의 앞에 나타났다.
“잘해 주었다. 이것으로 두 번째 조각이 돌아왔군.”
“갑자기 사라져서는 안 보이던 게 저 녀석의 능력 때문이었나.”
“어쩔 수 없었으니 말이다. 훤히 수를 읽히고 있는 와중에 도움을 줄 수야 없지. 그나저나, 지금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크으으으……!”
프리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엎어져 있던 가디언 나이브리카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이즈나의 맨 팔이 가슴팍을 헤집고서 강제로 봉인석을 뽑아냈지만, 그때 벌어졌던 상처조차 아물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흡수해 놨던 생명력이 모두 소진된 만큼 그 속도가 훨씬 늦어지긴 했지만 죽음을 맞이하진 않았다.
성현이 주된 목표였던 봉인석을 파괴했다고 해도, 녀석에게 얹혀 있던 불멸의 개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방법이 있으니 나타난 거겠지? 이즈나에게 봉인석을 파괴하라는 귀띔을 해 준 것도 그것 때문일 테고.”
“그야 물론이다. 나의 봉인을 풀어 줬으니, 거래 관계인 만큼 돌려주는 게 있어야겠지.”
프리아는 주저 없이 팔을 뻗었다.
가디언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움직이려 하는 와중에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기엔 곤란했고, 행동으로 보여 줄 뿐이었다.
우우우웅!
프리아의 팔에서 흘러나온 어둠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그녀의 어둠은 다른 어디도 아닌 성현의 검으로 흘러 들어갔고, 곧 검신을 검게 물들였다.
“이… 이건?”
“느껴지느냐.”
피식 미소를 지은 프리아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대꾸하는 것도 잊은 채 놀란 성현이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강력한 기운이 서린 성현의 검.
두 번째 봉인이 풀린 프리아는 나뉘어진 정신을 아직 반절도 되찾지 못했다곤 해도 상당한 힘을 되찾게 되었다.
그래서 시스템상으로 간접적인 도움에 주는 것이 아닌, 지금처럼 직접적으로 개입해 검의 능력을 강화하고 각성시킬 수 있었다.
[무기의 세 번째 특성이 개방되었습니다!]
우우우웅!
그동안 잠들어 있던 검의 세 번째 잠재력을 개방시키며, 모든 특성이 일깨워졌다.
원래 성현 정도의 수준이라면 검의 세 번째 특성은 진즉에 활성화되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프리아가 고의로 개입해 원래 검이 지닌 특성이 개화하지 못하도록 틀어막아 두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새롭게 채워 넣을 특성란이 하나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디언의 숨통을 끊기 위해선 이 힘이 필수적이지.”
[무기의 모든 특성이 개방되었습니다!]
[그림자가 깃든 파멸의 검]
[등급 - 신화]
[내구도 - 파괴불가]
[무기 공격력 1741~2056(+3892)]
[속성-그림자], [마력 감응], [필멸의 검]
[해당 장비는 사용자의 마력에 감응합니다. 사용자의 마력 스탯에 따라 검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세상에.”
한순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성현의 검.
외양과 이름마저도 바뀐 그의 검은 모든 스펙이 큰 폭으로 뛰어오르며 변화하였고.
무엇보다 새롭게 추가된 세 번째 특성이 한눈에 띄었다.
검 전체에 깃들어진 이질적인 기운.
하지만 악마종들의 것처럼 불쾌한 것이 아닌, 난생 처음 느껴 보는 뜨거운 감각의 기운이 고동치고 있었다.
“네… 네놈 무슨 짓을!”
반면, 주춤 물러선 가디언의 표정엔 경악이 서려 있었다.
필멸자인 성현과 이즈나와는 달리, 검에 서리기 시작한 저 기운을 보고서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고 만 것이다.
절대 죽음에 처하지 않는 불멸자들에게 필멸의 개념을 새겨 넣을 수 있는 검의 새로운 특성.
놈들에겐 천적과 다름이 없는 무기였으니 당연했다.
“어딜……!”
“크아아아악!”
등을 돌려 달아나려 하던 가디언의 다리가 잘려 나갔다.
새롭게 각성한 성현의 검은 단단하던 가디언의 신체조차 마치 두부를 잘라 내듯 간단히 베어 냈고.
한 번의 휘두름만으로 큰 피해를 내는 것이 가능했다.
“크아아아!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하지만 무엇보다 효과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검에 한 번 베인 순간, 낯선 필멸의 개념이 가디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어설프게 불멸자 흉내를 내던 꼬맹이들답구나.”
반쯤 공포에 질린 듯한 가디언의 모습에 우습다는 듯, 구경하던 프리아의 입가가 비틀렸다.
진정한 불멸자이자 차원의 관리자인 신격들에겐 이런 필멸의 개념을 쑤셔 넣는 검의 능력은 통하지 않았다.
같은 강대한 신조차 서로를 완전히 소멸시킬 수 없어 끝없는 분쟁이 벌어지곤 했으니 말이다.
허나 일부 권능을 건네받았을 뿐인 반쪽짜리 불멸자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오히려 죽음이란 개념이 익숙하지 않는 녀석들은 난생 처음 느끼는 감각에 더욱 동요했다.
인간은 물론 일반 몬스터들조차 항상 짊어지고 가는 필멸의 개념은 녀석들에겐 너무나 낯설고 불쾌한 감각이었다.
우득! 우드득!
“크아아아아! 다 죽여 버리겠다!”
휘청이던 가디언의 몸이 마구 비틀리며 불어나기 시작했다.
인간의 신체를 버리고선 가디언으로서 원래 지니던 거대한 뱀 괴수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녀석.
압도적인 위압감과 덩치를 뿜어내는 녀석은 주변 기둥을 으스러뜨리며 날뛰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변해 봐야 변하는 건 없어. 이즈나.”
“네, 주군. 이번엔 제가 서포트하겠습니다.”
성현의 부름에 이즈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쩍 벌어진 거대한 뱀의 독니가 달려들고 있었지만, 그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모든 힘을 회복하지 못해 불안정한 상태인데다가, 여분의 생명력도 없는 마당에 본 모습으로 변해 봐야 의미가 없었다.
그저 죽음을 앞둔 존재의 마지막 발악일 뿐.
콰드드드득!
권능을 머금은 이즈나의 혈마법이 땅 속에서 마구 솟구쳐 나왔다.
수많은 붉은 가시들이 정면에서 달려들고 있던 가디언의 몸뚱이를 관통하였고, 단단한 비늘과 내부조차 이즈나의 새로운 혈마법들을 막아 내진 못했다.
파앗!
그러는 사이, 순식간에 움직인 성현은 어느새 가디언의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가디언의 머리 위에서 붕 떠 있는 채 나타난 성현은 검을 한껏 치켜 올린 상태에서 검을 휘둘렀다.
“이제 끝이다.”
필멸의 힘을 머금은 성현의 검은 칼날이 번뜩였다.
* * *
촤아아아악!
거대한 뱀의 목이 통째로 잘려 나가며 엄청난 양의 피가 솟구쳤다.
성현이 먹인 마지막 결정타는 가디언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놓았고, 봉인석을 파괴했던 때에 이어 메시지가 주르륵 차올랐다.
[네 번째 가디언 ‘나이브리카’을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봉인석을 부수고, 가디언까지 처리하면서 성현의 레벨은 순식간에 수십여 단계가 치고 올랐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숨통이 끊어진 가디언의 정수를 성현이 흡수하였고, 그 효과가 이어서 나타났다.
[군단 강화 특성이 추가되었습니다!]
[독 면역(+100%)을 획득하였습니다!]
[물리 저항 +10%]
[힘 스탯 +120]
[민첩 스탯 +100]
[체력 스탯 +120]
[마력 스탯 +100]
성현 자신을 포함한 군단 전체 적용되는 특성.
무려 군단 전체가 독 저항력 100%를 획득하게 되었고, 이는 모든 독 공격에 대해 완전한 면역을 갖추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일반적으론 특성이나 아이템의 효과를 중첩시키는 것만으로 저항력을 100%만큼 끌어 올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시스템상 각 속성에 대한 저항력은 일정 수치 이상으로는 더 오르지 않는 게 기본적인 법칙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성현은 권능을 지니고 있던 가디언의 정수를 획득함으로서 이런 특성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가장 귀찮을 수 있었던 수호자를 미리 처치해 냈군. 잘했다. 아 물론 그대도 말이다.”
프리아가 성현과 나란히 선 이즈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두 번째 봉인석이 파괴된 덕인지, 제대로 실체화한 탓에 성현뿐 아니라 이즈나의 눈에도 그녀가 보였다.
“가… 감사합니다.”
여신의 손길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이즈나가 고개를 꾸벅였다.
원래 그녀가 있던 차원의 신격이자, 직접적인 창조주이기까지 하니 그런 반응이 당연히 나왔다.
물론 성현의 그림자로 군단에 합류하게 된 이상,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건 프리아보다도 성현 쪽이었지만 말이다.
“확실히… 완전히 힘을 회복하기 전에 처리해서 다행이야. 제대로 회복하고서 붙었다면 더 까다로웠겠지.”
성현이 널브러진 나이브리카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목이 잘려 처참히 죽어 버린 상태에서도 여전한 위압감.
생각을 들여다보는 이번 가디언의 능력은 굉장히 까다로웠다.
완전히 회복을 하지 못한 데다, 빈틈을 파고든 이즈나의 활약까지 겹쳐져 처치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당신을 가둔 봉인석이 세 개가 남았어. 그런 반면 지하 던전 내에서는 퀘스트 마커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지. 그렇다는 건 이번 경우처럼 지하 던전 안에선 감지가 되지 않을 만큼 먼 거리가 있거나, 아예 다른 차원에 있거나. 둘 중 하나라는 소리겠지.”
“후후, 정답이다.”
프리아가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네 번째 수호자가 당했다는 건 지금쯤 다른 수호자들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렇다면 녀석들은 조금 더 신중해지겠지. 먼저 움직이기보다는 힘을 완전히 회복하기까지 충분한 수의 악마종들을 잡아먹고 난 뒤에야 움직일 것이다.”
“힘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긴 싫은데. 우리 쪽에서 먼저 찾을 순 없어?”
“그 부분에 대해서라면 약간의 도움 정도는 줄 수 있다. 힘이 회복된 덕에 차원 사이를 들여다보는 것 정도는 가능하니. 수호자들이 숨은 위치를 찾게 되면 알려 주도록 하지.”
“좋아.”
제법 든든한 그녀의 말에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또 다른 권능을 가진 가디언들 역시 만만치 않을 테지만, 그렇기에 놈들이 완전히 회복하기 전에 처리하는 편이 나았다.
쿠구구구궁!
“키이이익!”
그사이, 그들의 뒤편에서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성현이 가디언과의 혈투를 벌이고 있던 사이, 어느새 이곳 최하층까지 내려온 몬스터들.
감옥을 지키던 악마종 간수들이 쏟아지는 몬스터 무리들을 막아 내지 못한 것이었다.
“엄청난 숫자의 기척이네. 신나게 때려 부수고선 내려왔나 보군. 목적이야 달성했으니 이만 돌아가 볼까.”
감옥 내 시설들은 몬스터들에게 완전히 파괴되었을 터.
악마종의 생산 시설이나 다름없던 이 던전은 가디언의 죽음과 지하 감옥이 파괴됨으로서 본래의 목적을 잃었다.
그리고 목적은 전부 이룬 상태에서 쏟아지는 몬스터들을 일일이 상대해 줄 필요는 없었다.
고개를 돌린 성현은 프리아와 눈을 마주쳤다.
“그럼 이제 약속대로 여길 빠져나갈 방법을 알려 주지 그래?”
“아니, 굳이 알려 줄 필요는 없다.”
“…무슨 소리야?”
“방금 그대가 흡수한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이제 이해할 때도 됐을 텐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는 프리아의 말.
그러자 표정이 변한 성현은 자신의 검을 내려 보았다.
그는 나이브리카를 쓰러뜨리며 정수와 함께 깃들어 있던 신격의 권능까지도 함께 흡수하였고, 이는 단순히 보너스 스탯이나 쥐어 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
성현은 말없이 자신의 검을 들어 올렸다.